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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기억, 주체의 형성

[기고] 정리해고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 폐기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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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주변을 맴돌던 평범한 말들이 ‘갑자기’ 가슴을 뒤흔든다. ‘맞아, 이거야!’ 무릎만이 아니라 온몸을 친다. 물론 그렇게 가슴을 흔드는 이유가 말, 말 그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그동안 그 말들이 사람의 마음에 다가앉지 못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걸 나는 ‘머리로’ 알고 있다. 그저 주인을 찾지 못한 말들이 허공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이겠지. 착지하지 못하는 말들, 수신할 수 없는 말들, 수신했으나 받았다고 말하기 힘든 말들....이기 때문이겠지.


1월 8일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법제도 폐기 2차 쌍용차 전원복직 오체투지 행진단>이 LGU+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는 여의도 농성장에 닿았을 때 말들이 주인을 찾는 걸 목도했다. 그리고 별 것 아닌 말들이, 화려하지 않은 그 말들이 사람들을 흔들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현장에서 2차 오체투지 행진단의 맨 앞에 서고 있는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이 말했다.

“오래도록 있었을 LGU+농성장을 보며 눈물이 왈칵 나오는 것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그 말은 꾸며낸 말이거나 겉치레가 아니었다. 말의 음색, 얼굴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이어 사회를 보던 LGU+비정규직 노동자는 오체투지 행진단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며 눈물을 참는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노동자다.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하나 되어 정리해고 박살내자!”

수없이 들어왔던 이 말이 나를 흔들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단결해서 싸우자는 것, 그것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말해오던 말인데... 그날 사람들을 흔들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지 말의 진정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이 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온몸을 땅에 던지는 말이었던 ‘오체투지’가 이끌어낸 말이다. 온몸을 던져 정리해고 철폐와 비정규직 법제도 폐기를 외치던 몸에서 끌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그냥 ‘참 고생하네’하고 미안해하며 지나갔을 농성장이 그리도 뼈아픈 이 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로 다가온다. 종아리부터 목까지, 머리까지 노동자의 고통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땅에 납작 엎드린 오체투지가 우리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임을 상징적으로, 신체적으로 보여준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외면하려 해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노동자들의 아픈 현실... 의사소통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뚱어리를 가진 인간이 몸뚱어리로, 원초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우리 노동자의 현실은 왜 이래? 그런데 우리 이렇게 계속 있어야겠어?’라고.

그래서 LGU+비정규직 노동자가 외친 ‘우리는 노동자다’라는 구호는 그냥 현실에 대한 인정만이 아니라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걸로 싸워나가겠다는 선언이다. ‘우리는 노동자야, 우리 노동자는 가만있지 않겠어.’ 라는 다짐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인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여의도 농성장에서 마음을 나눌 때도 같았다. 아니 그때만이 아니다. 오체투지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은 몸으로 노동자의 현실을 기억하고, 몸으로 연대를 배우고, 몸으로 싸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갖는 가장 밑바탕인 그 몸으로 그 모든 것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싸움은 2015년 박근혜 정권이 마른수건 짜듯이 휘두르는 노동탄압에 맞선 우리 싸움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온몸을 던져 정리해고 요건 완화나 비정규직 양산정책을 막겠다는 결기이다. 청와대로 가지도 못한 광화문 광장에서 막힌 바닥에서, 새누리당사 앞에서 원내대표 면담을 촉구하며 아스팔트 바닥에서 온몸으로 처절하게 싸웠다. 몸이 추위에 굳어가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그 마음과 그 결기. 그래서 오체투지라는 투쟁방식이 너무 수세적이라는 말은 머릿속에서만 본 오체투지에 속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오체투지를 하며 기대하게 된 것은 싸움을 할 사람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체투지로 서울의 길바닥을 쓸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서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만나는 게 아니라 기어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원초적 의사소통의 기억은 몸에 오래도록 각인된다. 비가 오는 날 무릎이 시리듯, 기어서 간 그 투쟁의 현장에서 육성으로 보여준 분노와 결기, 연대의 마음은 싸움의 근본적 방향과 태도에 대한 초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 폐기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 첫날의 모습과는 달라진 다음날의 모습을 보았다. 이번 2차 정리해고 철폐 오체투지 행진은 지난해 연말 기륭전자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법제도 폐기 오체투지와는 분위기가 달랐기에 고민이 됐었다. 단지 대공장 정규직 남성사업장이 중심이 돼서일까? 사람이 많이 늘어서일까? 의제가 정리해고여서일까?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없어 답답했던 마음은 답을 만났다. LGU+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교육공무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스타케미컬 해고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참여하면서 달라지고 있는 참여자들의 모습을 언뜻 언뜻 보면서 풀렸다. 비정규직 의제와 정규직 의제가 만난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몸으로 서로 만났다. 그건 오체투지를 하며 몸으로 서로 느끼고 나눴던 시간들을 겪은 사람들이, 그걸 함께 본 사람들이 만난 것이기 때문이리라. 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불안과 차별은 비정규직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노동자의 문제임을 몸으로 배우고 나눴다. 거기서 밑에서부터 나오는 말들,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서로에 대한 진실어린 눈빛들이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이 변해가고 있음을 서로가 느꼈다.

우리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어렸을 때 한글을 익힐 때처럼 하나씩 익히고 있고 그렇게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떻게 같이 싸워야 하는지, 정리해고문제와 비정규직 문제가 하나의 싸움임을 몸으로 깨우치고 있는 듯 했다. 아직 우리의 싸움은 시작이지만 2015년 싸움의 원천이 될 것이다. 힘의 원천을 발견하며 서로를 만나는 감격의 순간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이제 서두르자. 1월 11일 오체투지 행진단과 함께 청와대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