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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세월호 비판 막자? 주독 외교공관, 언론인에 외압 논란

개인정보인권, 프라이버시, 표현의 자유 침해...“대통령 기분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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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외교공관이 정부의 세월호 재난 대처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기록한 재독 동포 언론인에게 사실상의 정치적 외압을 넣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해 논란이 일고 있다.

주독 한국대사관 소속 독일문화원 윤종석 원장은 최근 “한국인들의 분노(Die Wut der Suedkoreaner)”란 제목의 글을 독일 일간지 <차이트(Zeit)>에 기고한 재독 언론인 정옥희 씨에게 박근혜 대통령 관련 대목을 정정해 달라는 연락을 취했다.

  차이트에 실린 정옥희 씨의 글 [출처: http://www.zeit.de/]

여덟살 때 독일로 이주해 38년째 체류 중인 정옥희 씨는 세월호 재난이 발생한 지 이틀째인 지난 17일(현지시간) <차이트>에 글을 기고하여 당시 세월호 재난 대처를 둘러싼 정부, 정치인, 여객선원과 언론 등의 문제를 짚은 바 있다. 이 기고문은 국내 비영리 외신번역전문사이트 <뉴스프로>가 18일 <독 자이트, 여객선 사고 한국 국민 정부에 분노>란 제목으로 보도하며 한국에 알려졌다. 이 내용은 포털사이트와 커뮤니티 등으로 퍼지며 <다음 아고라>에서만 약 20만 건(22일 기준)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정 씨가 윤종석 원장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은 것은 한국에 해당 뉴스가 전해진 지 이틀째인 20일 새벽이다. 윤 원장은 기고문의 중간 제목인 ‘포즈 취하는 대통령’이라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며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애초 17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진도 실내체육관 방문 후 박 대통령이 당시 현장에 있던 6세 어린이의 얼굴을 어루만진 모습을 “부모 찾는 어린이 위로하는 박 대통령” 등의 제목으로 <조선일보> 등이 게재하며, 동원됐다는 논란이 확산된 터였다. 정옥희 씨는 이를 토대로 “단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여자아이를 체육관으로 데려간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했고, <차이트> 편집진은 해당 문단에 “포즈를 취하는 대통령”이라는 중간 제목을 달아 기사를 게재했다. 18일 오전 해당 어린이 고모의 <오마이뉴스> 인터뷰가 공개되며 이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나 정옥희 씨의 기고가 게재된 시간은 이보다 앞선 17일(현지시간)이었다.

해당 기사 내용이 사실에 어긋날 경우 정정보도 등을 통해 바로잡기가 가능하지만 윤종석 원장의 방법은 달랐다.

정옥희 씨에 따르면, 윤종석 원장은 20일 새벽 5시 48분과 6시 46분 두 차례에 걸쳐 정씨의 집에 전화를 걸어 내용 수정을 요청했다. 집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는 정씨의 질문에 윤 원장은 “(정 씨를) 아는 사람을 통해 받았다”고 밝힐 뿐이었다.

윤 원장은 20일 이외에도 주독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 명으로 다시 정옥희 씨와 <차이트> 편집자에 이메일을 보내 정씨에게는 ‘포즈 취하는 대통령’이란 중간 제목을 바꿔 달라고 요구한 한편, <차이트> 편집진에는 “진지하며 포괄적인 내용 수정”을 부탁했다.

정옥희 씨는 <참세상>과의 전화통화에서 “어떻게 공공기관이 휴일 새벽에 또 개인 집 전화번호를 구해서 얘기할 수 있는가”라며 “사적 영역을 침범한 황당한 사건이다”라고 혀를 찼다. 정씨는 또, “나는 독일 시민이지만 한국 사람이라 해도 이는 말이 안 된다”며 “한국에서는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한국 국적이라 하더라도 공공기관이 이러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비상식적인 일들이 여기 독일에서까지 이뤄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외교 관료의 국정원식 여론 개입

한편, 윤종석 문화원장이 정옥희 씨에게 보낸 메일에서 그가 “공사참사관(Gesandter-Botschaftsrat)”이라는 명의를 사용했고, 과거 문화원은 안기부 출신이 장악했었다는 점에서 국정원 직원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그러나 윤종석 문화원장이 실제 국정원과 관계가 있는 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외교부 서유럽과는 22일 <참세상>의 “윤종석 씨가 독일문화원장이 맞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그가 한국에 출장 중인지 국정원과의 관계가 있는지 또 해당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주독 한국대사관 측은 사실 확인을 위한 <참세상>의 질문에 전화통화와 이메일로 “그는 한국에 있다”고 밝히는 한편, “연락처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알릴 수 없다”고 알렸다.

이후 윤종석 원장은 취재 중에 있던 <참세상> 기자에게 이메일로 연락을 해왔으나 정옥희 씨의 집 전화번호 취득 경위 등의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윤종석 독일문화원장이 국정원과의 공식적인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해외 동포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며 기고문 수정을 요구하는 정치적 외압을 가한 점은 공인으로서 적합한 태도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학교수에 대한 ‘인터뷰 통제’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 한 상황에서 정부의 여론 개입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개인정보인권, 프라이버시, 표현의 자유 침해...“대통령 기분만 생각”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전화한 시간대도 문제지만 연락처를 입수한 경위에 개인정보 침해의 소지가 있고 언론 기사에 개입하려 한 점에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박 대통령 프랑스 순방 당시 현지 대사관이 교민들의 시위를 금지해달라고 프랑스 경찰에 신청했다가 거절당했었는데, 대사관이 정권의 안보 차원에 교민들의 활동을 통제한다든지, 여론에 개입하려는 행태가 있는 것 같다”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다는 반증이다”고 설명했다.

김종찬 언론연대 기획국장은 “세월호 사건이 세계적 이슈인 상황에서 잘못된 사실을 현지 외교공관이 바로잡으려 할 수는 있을 것이다”라면서도 “그러나 매체가 아닌 기고자에 연락을 취한 것은 부적절한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상임변호사는 “전화번호를 알아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상한 것”이라며 “정보기관의 개입이 충분히 의심되며 전화번호 알아낸 과정에 불법성도 있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공식적인 절차가 있을텐데 사생활을 침해하며 다 무시한 것은 대통령 기분만 생각한 태도”라며 “민주사회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인데 최근 정치인들처럼 언론의 다양성과 비판의 자유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