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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공기업 비정규직 계약해지 문제 취재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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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6일 맺는 글 세 편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

IPC는 내 앞에서 굳게 입을 닫았고 AT는 정작 중요한 답변을 해 주지 않고서 숨어 버렸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제법 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고발을 하겠다는 AT의 으름장이 두렵기도 하지만 나도 확실한 증거 없이 섣부르게 한쪽 편을 들 생각은 없다.

지금까지 내가 모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신혜정 씨와 AT, IPC 사이에서 엇갈리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AT는 IPC보다 먼저 신혜정 씨에게 접근해 함께 일해 보자고 했다.’
‘AT는 전화 상담원을 뽑는다고 공고를 내지도 않았고 따라서 정규직이 아닌 파견직을 뽑는다는 사실도 공지할 수 없었다.’


공고를 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AT 직원이 신혜정 씨에게 이메일을 통해 연락했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공고가 없었으니 파견직을 뽑는다고 공지할 수도 없었는데 이는 파견법 제24조 1항 ‘파견사업주는 근로자를 파견근로자로서 고용하고자 할 때에는 미리 당해 근로자에게 그 취지를 서면으로 알려주어야 한다’를 어긴 것이다. 파견사업주인 IPC가 먼저 신혜정 씨를 파견직으로 채용한 다음 사용사업주인 AT 쪽으로 파견하는 형태가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신혜정 씨가 AT 직원과 주고받은 이메일

‘신혜정 씨는 파견직 노동자로 AT에 들어가는 것에 동의했다.’

이는 AT 직원이 신혜정 씨에게 보낸 이메일과 신혜정 씨 본인의 진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6개월 뒤에 정규직으로 바꿔 주겠다는 팀장의 이야기에 신혜정 씨가 설득당한 부분도 있었다.

  파견업체를 소개해 주는 AT 직원의 메일

‘6개월 뒤 계약 만료 시점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겠다고 팀장이 신혜정 씨에게 이야기했다.’

2011년 9월에 입사한 신혜정 씨는 계약 기간이 이듬해 3월까지로 되어 있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는데 당시 팀장이 정규직 전환을 입에 올린 적이 있다고 했다. 이는 신혜정 씨의 주장이기에 당시 팀장으로 있던 사람의 진술이나 증인의 진술이 없는 한 증명될 수 없다. AT 경영관리처장은 인사팀에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보고가 들어온 적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이라는 미끼가 없었다면 과연 신혜정 씨가 순순히 파견직 계약에 동의를 했을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2012년 2월에 기업지원팀에서 인사팀으로 보낸 계약 연장 요청 공문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식품 기업 고객에 대한 전문 상담과 기업지원센터 조기 운영 활성화를 위해 기존 업무 숙련자 활용이 긴요하므로 계약직 전환 필요.’ 즉 정규직으로 해 주겠다는 약속은 흐리멍덩하게 넘어갔지만 대신 신혜정 씨를 계약직으로 쓰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공문을 통해 나온 것이다. 물론 그 의견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계약 연장 요청 공문

‘전문적 상담 업무를 하기 위해 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잡일을 도맡게 되었고 결국 사무실로 오는 전화는 모두 받게 되었다.’

신혜정 씨의 주장이다. 근로계약서에는 신혜정 씨가 하게 될 일이 ‘사무 지원 종사자의 업무’라고 쓰여 있을 뿐이다. 실제로 AT 기업지원센터에서 신혜정 씨에게 기업 자문 업무를 제외한 다른 업무를 하게 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단 신혜정 씨가 2011년 9월에 입사한 뒤로 상담 업무 실적이 2010년에 비해 140%가 증가했고 2011년의 상담 목표로 잡은 3,000건을 122% 달성했다는 사실은 문서로 남아 있다. 업무 실적만으로 보면 신혜정 씨는 매우 능력 있는 상담원이었던 것이다.

  신혜정 씨 입사 이후의 상담 실적

‘신혜정 씨가 처음에 하기로 했던 업무 말고는 시킨 적이 없다.’

경영지원처장이 한 말인데 물론 증거는 없다. 단 근로계약서의 ‘사무 지원 종사자의 업무’라는 표현을 나쁘게 써먹었을 가능성은 있다. 표현 자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기 때문이다. 상담 업무를 해도 사무 지원이 되고 온갖 전화를 다 받아도 사무 지원이 된다.

  근로자 파견계약서 부록

‘파견대행비는 파견 근로자의 근태 상황을 고려하여 파견업체에서 AT로 청구하고 AT는 청구한 금액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IPC에서 AT로 보낸 파견대행비 청구서에서부터 신혜정 씨의 급여가 깎여 있는 이유를 묻자 AT가 답변해 온 내용이다. 물론 신혜정 씨의 근로계약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AT의 징계 규정이나 IPC의 징계 규정을 확인해야 했지만 두 곳 모두 내게 어떠한 답변도 해 주지 않았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파견 근로자의 근태 상황을 고려’한다는 표현이 AT든 IPC든 돈줄을 쥐고 있는 누군가가 멋대로 지어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덧붙임 : 이 부분을 쓰고 난 뒤에 신혜정 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바로 위에서 본 ‘근로자 파견계약서 부록’에서 문제의 대목을 뒤늦게 알아보았다고 했다. 부록 제10조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파견대가는 전월 16일부터 당월 15일까지 파견근로자의 근태상황을 고려하여 매월 16일까지 ‘을’(IPC)이 세금계산서로 ‘갑’(AT)에게 청구하고 ‘갑’은 청구일로부터 7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하며 ‘을’은 매월 21일 ‘병’(신혜정)에게 임금을 지급한다.” 나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용이라 깜짝 놀랐다. 즉 AT나 IPC의 ‘돈줄을 쥐고 있는 누군가’가 멋대로 지어낸 대목은 절대로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문제가 말끔히 풀리는 것은 아니다. 파견법 제34조에 따르면 파견직 노동자의 임금은 사용사업주(AT)가 아닌 파견사업주(IPC)가 관리해야 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IPC에서 감봉 징계를 내리기로 했다면 IPC에서 노동자에게 직접 급여를 줄 때 돈을 깎아야 한다는 신혜정 씨의 주장은 여전히 옳다. 이 경우 원래 급여에서 깎여 나간 돈이 지금 누구의 손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된다. AT에서 IPC로 신혜정 씨의 급여가 넘어갈 때 급여가 이미 깎여 있었다는 사실은 파견대행비 청구서를 보면 알 수 있다. 깎인 돈은 IPC가 아니라 AT의 금고 안에 있다. 그러므로 감봉 징계의 주체는 IPC가 아니라 AT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문제의 대목에 따르면 ‘파견근로자의 근태상황을 고려’하는 주체는 ‘을’인 IPC가 되어야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2012년 6월 27일에 한 민원인이 신혜정 씨에게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부었다.’
‘민원인은 AT 감사실에 전화를 걸어 신혜정 씨가 불친절하게 대했다고 주장했다.’


녹취 자료가 남아 있지 않으므로 민원인과 신혜정 씨 사이에 오간 대화는 전적으로 신혜정 씨의 기억에 의존한다. 실제로 신혜정 씨가 친절하게 응대를 했는지, 민원인이 욕설을 퍼부었는지 알 수 있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신혜정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굳이 왜 지금까지 버티며 공기업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1인 시위나 집회는 돈이 되는 일이 아니라 돈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신혜정 씨에겐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일부러 돈 나가는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른 일자리를 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혜정 씨와 함께 상담 업무를 맡았던 파견직 노동자 한 명은 다른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계약 만료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한편 민원인이 감사실에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AT의 주장이고 신혜정 씨는 AT 측에게 전해 들었을 뿐이다. 신혜정 씨는 전화가 걸려왔다는 기록이 전화국에 남아 있느냐고 AT에 거듭 문의했지만 AT는 확실한 답변을 해 주지 않았다. 내가 AT로 보낸 질문지에도 그 내용을 묻는 부분이 있지만 AT는 답변을 거부했다. AT가 가지고 있는 것은 민원인이 처음 감사실에 전화를 걸었을 때 감사실 직원이 기록해 두었다는 통화 내용뿐이다. 그리고 신혜정 씨 말에 따르면 AT는 그 기록을 신혜정 씨에게 보여준 적이 없고 단지 민원이 들어왔다고 전해 주기만 했다.

  혜정 씨가 기록해 놓은 상담일지

‘AT는 민원인이 감사실에 전화를 걸어 신혜정 씨가 불친절하게 대했다고 말했다는 통화의 기록을 처음에는 만들지 않았다.’

신혜정 씨의 주장이다. AT 쪽에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데 양쪽 모두 아무런 증거가 없다. AT가 지금 가지고 있는 기록은 신혜정 씨가 중노위에 제소할 무렵 AT에 요구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경영관리처장은 신혜정 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AT는 내게 보낸 답변서에 당시 민원 접수를 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통신 기록(통화가 있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답변을 거부했다. 신혜정 씨는 통신 기록도 없고 민원 접수도 하지 않았으니 애초에 민원 자체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며 AT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건 상태다. 지노위와 중노위에서는 통신 기록과 민원 접수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민원인이 신분 노출을 원하지 않아서 민원 접수를 하지 않았다’

AT가 보내 온 답변서에 있는 내용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감사실 직원은 AT 민원사무처리규정 제4조 2항 ‘민원서류 접수부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민원서류의 접수를 보류하거나 거부할 수 없으며 고의로 접수시간을 지연시키거나 접수된 민원서류를 부당하게 반려하여서는 아니 된다’를 어긴 셈이 된다. 하지만 감사실에서 징계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말 신혜정 씨가 민원인에게 불친절하게 대했을 것이라 여기는지 아니면 그저 신혜정 씨가 불친절하다는 민원이 들어온 것뿐인지 AT는 끝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말 그대로다. 신혜정 씨가 징계를 받은 이유는 ‘상담원의 불친절함을 호소한 민원’ 때문이었지만 경영지원처장은 ‘신혜정 씨는 아마 상담을 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지원처장의 말이 AT의 입장과 일치한다면 신혜정 씨가 징계를 받은 이유는 오로지 ‘민원이 접수되었다’는 사실 때문이 된다. 신혜정 씨가 실제로 민원인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AT의 이러한 태도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질문지를 통해 거듭 물어보았지만 AT는 아무런 답변도 해 주지 않았다.

‘신혜정 씨에게 내려진 모든 징계는 IPC에 책임이 있고 AT는 징계 조치에 한 번도 관여한 적이 없다.’
‘AT 측은 노무사에게 파견 계약 해지에 대해 문의해 답변서를 받은 적이 있다.’
‘IPC 부장은 네이버 지식인에 징계 해고 절차에 대한 문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AT가 신혜정 씨에게 내려진 징계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AT가 노무사에게 문의해서 받은 답변서에 이런 대목이 있다. ‘공사 내 K-Food지원센터에서는 식품외식사업 관련 고객 전화 상담을 전담하는 파견근로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나 최근 업무 수행 능력 문제로 인해 파견근로계약 해지를 검토하고 있음.’ 이 말이 사실이라면 AT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더군다나 AT는 인터뷰를 하러 찾아온 KBS ‘추적 60분’ 취재 팀에게 노무사 답변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노무사 답변서는 파견대행비 청구서와 함께 AT가 징계에 관여했다는 정황 증거가 되는데 AT 쪽에서는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노무사 답변서의 표지

한편 IPC 부장이 네이버 지식인에 글을 올린 적이 있는지는 그쪽에서 아예 통화를 거부한 탓에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신혜정 씨 말에 따르면 지노위 출석 조사 때 만난 부장에게 정말 네이버 지식인에 글을 올렸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막상 부장은 입을 꾹 닫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문의

‘AT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피하기 위해 1년 6개월 이상은 계약을 하지 않는다.’

희망연대노조 윤진영 사무국장과 신혜정 씨가 AT의 임원이 이런 말을 했다고 똑같이 증언했다. 파견법을 그런 식으로 써먹는 기업이 한둘이 아니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아마 AT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뭐가 잘못이냐며 도리어 따지고 들 것이다. (경영지원처장도 이미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신혜정 씨에게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 AT가 직원으로 채용한 107명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68명이었고 그 중 파견직 노동자는 48명이나 되었다. 2012년은 채용한 93명 중 52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그 중 파견직 노동자는 43명이었다. 신규 채용 인원에서 파견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 44.8%에서 2012년 46.2%로 증가했다. 1.4% 증가했을 뿐이지만 새로 뽑은 인원들 중에서 파견직 노동자의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더구나 AT는 공기업이다. 경영지원처장은 AT 말고 다른 공기업에서도 다들 비슷비슷하게 파견직을 쓴다고 말했다.

  AT의 비정규직 채용 현황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에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AT는 신혜정 씨에게 징계가 내려지기까지 전혀 끼어든 적 없다고 이야기한다. 노무사 답변서와 네이버 지식인 글이 있지만 지노위와 중노위 판결을 보면 알 수 있듯 AT가 IPC에 압력을 넣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되지 못한다. 최아무개 노무사가 말한 대로 신혜정 씨 쪽이 문제 삼을 수 있는 부분은, 처음부터 파견사업주 IPC가 아닌 사용사업주 AT가 계약을 제안했다는 ‘위장 파견’과 근로기준법 9조의 ‘중간착취의 배제’ 위반 사항 이 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노위와 중노위는 둘 다 외면해 버렸다.

분명한 것은 신혜정 씨라는 전문직 노동자에게 AT가 먼저 접근했고, AT는 파견직으로 고용한다는 사실을 면접을 통과한 시점에서 밝혔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원 전화 한 통이 난데없이 감사실에 걸려 오면서부터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이름을 달리한 징계 조치들이 거듭 내려지는 가운데 AT는 결국 신혜정 씨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에 민원 전화가 없었더라면 신혜정 씨는 AT와 2013년 3월에 재계약을 할 수 있었을까? 언젠가 AT는 신혜정 씨를 정규직으로 고용해 주었을까? 신혜정 씨는 처음에 AT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을 만큼 지식과 경험을 고루 갖춘 식품 기술자이고 AT의 상담 실적도 크게 늘려 놓은 유능한 상담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계약도 정규직 고용도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재작년과 작년의 파견직 비율을 보면 알 수 있듯 AT 임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을 낮출 생각이 없다. 새로 뽑는 직원들 중 절반을 파견직으로 뽑는 공기업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서는 안 된다. 어쩌면 신혜정 씨는 파견 업체로 이력서를 보내야 한다는 말을 AT 직원에게서 듣자마자 마치 뜨거운 것에 덴 것처럼 펄쩍 뛰며 물러서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신혜정 씨는 지금도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나는 신혜정 씨가 정말 욕설을 견디다 못해 전화를 끊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입에 걸레를 문 그 민원인은 여성 상담원이 감히 자기에게 대드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져서 홧김에 AT 감사실로 전화를 걸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민원 때문이라기보다는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 신혜정 씨에게 화가 난 AT 임원들이 마치 오래 굶은 두꺼비처럼 입을 쑥 내민 심술궂은 얼굴로 신혜정 씨를 대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무슨 수를 써도 증명할 수 없다. AT가 정말 징계에 관여했는지도 AT 쪽에서 먼저 털어놓지 않는 한 아마 결코 밝혀 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든지 다른 것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 바로 파견법이다. 나는 지금까지 신혜정 씨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의 뿌리에는 파견법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파견법

나는 AT 경영지원처장이 들려준 이야기를 쓴 부분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조금도 되돌아보지 않고 품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바로 파견법이었다.’

파견법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줄임말이다. 앞서 말했듯 근로기준법 9조에는 누구든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지 못한다는 ‘중간착취의 배제’ 조항이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에 파견 업체를 끼워 넣는 파견법은 근로기준법 9조를 대놓고 무시하는 법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파견법은 언제 어떻게 생겨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일까?

파견법은 한국이 거지꼴이 되었던 1998년에 국제통화기금(IMF)이 고용 유연화 정책을 권고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일단 경제는 살려 놓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정부와 기업의 논리가 먹힐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파견법을 만들자니 근로기준법 9조인 중간착취 금지와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즉 파견법은 근로기준법의 일부를 일부러 어기면서까지 만들어 낸 법률인 것이다.

그 대신 파견법에는 ‘고용의제’라는 안전장치가 들어 있었다. 고용의제는 ‘직접적으로 고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고용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사용사업주가 2년이 넘도록 파견 노동자를 고용했다면 파견 고용이 아니라 직접 고용을 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파견직으로 2년 이상 고용된 노동자는 직접 고용되었다는 지위를 자동으로 얻게 된다.

파견법 제6조 3항 (고용의제)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 다만, 당해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파견법의 고용의제 부분은 2006년 말에 ‘고용의무’ 조항으로 개정되었다. 고용의제가 2년 넘게 일한 파견 노동자에게 직접 고용 노동자의 지위를 주는 것이라면 고용의무는 2년 넘게 파견 노동자를 고용한 고용주에게 직접 고용을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파견법 제6조의2 (고용의무)
① 사용사업주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당해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여야 한다.
1. 제5조제2항의 규정을 위반하여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2. 제5조제3항의 규정을 위반하여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3. 제6조제2항 또는 제4항의 규정을 위반하여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4. 제7조제3항의 규정을 위반하여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은 경우


(파견법 제5조는 파견대상 업무에 관한 내용이고 제7조는 파견사업 허가에 관한 내용이다.)

파견법 제6조의2 고용의무 조항은 2012년에 살짝 개정되었다. 법에서 파견직 노동자를 써서는 안 된다고 정한 업무에 ‘불법 파견’ 고용을 했다면 2년이 지났든 지나지 않았든 파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년이 넘도록 파견직으로 고용했을 때 반드시 직접 고용을 해야 한다는 점은 개정되기 전과 같다.

그렇다면 고용의제와 고용의무 중에서 어느 것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할까? 고용의제는 파견 노동자에게 직접 고용 노동자의 지위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을 거부한다고 해도 노동자가 부당해고 무효 소송을 걸거나 직접 고용하지 않은 기간에 대한 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의무는 사용사업주에 단순히 의무만 부과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업주가 직접 고용을 거부해 버리면 그것으로 끝나 버리고 파견 노동자에게 직접 고용 노동자의 지위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2년 넘도록 부려먹었으면서 직접 고용을 하지 않은 사용사업주에게는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모든 과태료가 다 그렇듯 냉큼 내 버리면 끝이다.

물론 고용의제 조항이 있던 시절에도 논란은 있었다. 2년이 넘게 일한 파견 노동자를 직접 고용 노동자로 보아야 한다면 그 범위는 합법 파견까지인가 불법 파견까지인가? 즉 고용의제를 합법적인 파견 노동에만 적용하는가 불법적인 파견 노동에까지 적용하는가의 문제였다. 이 오래된 문제는 얼마 전 현대자동차가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다시금 세상에 드러났다.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이 결국 불법 파견이었다는 판결은 이미 2004년에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2년이라는 시간을 끌다가 2006년에 불법 파견 혐의가 없다는 처분을 내렸고 현대차 노동자들은 끝이 안 보이는 법정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0년에 마침내 대법원에서 현대차의 사내 하청을 불법 파견이라 못을 박았고 얼마 전인 2013년 3월에는 중노위도 현대차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현대차는 아예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이 사용사업주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해고의 자유’를 제약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리고 고용의제 조항만으로는 그것이 불법 파견까지 아우르는지 알 수 없다며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까지 들고 나왔다.

현대차는 1998년 파견법이 생겼을 때 두 손을 들고 기뻐했을 기업이다. 고용의제 조항을 보지 못하고 넘어갔을 리가 없다. 불법 파견이라는 판결들이 잇달아 나오고 부당해고 구제 소송이 여기저기서 밀어닥치니 파견법이 생긴 지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새삼스럽게 위헌이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고용의제 조항에 불법 파견까지 직접 고용으로 보아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는 것은 아마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노동부마저 고용의제가 위헌이 아니라고 판정한 마당에 헌법재판소가 고용의제를 위헌이라 판결할 가능성은 적다. 고용의제를 위헌이라 하는 것은 고용의제를 보장했던 옛 파견법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 고용의제와 고용의무 중에서 어느 것이 노동자들에게 더 유리할까? 실은 둘 다 유리하지 않다. 현대차가 헌법소원을 냈다고 해서 고용의제가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고용의제는 파견법을 처음 만들 당시 노동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끼워 넣은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5년이 넘도록 싸운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파견법 준수’가 아닌 ‘파견법 철폐’를 부르짖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대차는 해고한 노동자들을 다시 고용할 마음이 없기에 고용의제가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파견법이야말로 중간착취를 정당화하는 법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고용의제 역시 위헌이라 주장한다. 양쪽이 똑같이 위헌이라 주장하지만 맥락은 다르다. 현대차는 고용의제 없는 파견법을 통해 사내 하청이라는 불법 파견을 어물어물 덮어 버리려 하는 것일 뿐이다. 파견법 자체를 위헌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애초에 파견법을 만들지 않았다면 고용의제 같은 안전장치도 필요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즉 현대차가 고용의제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만은 막아야 하기에, 파견법이 폐지되기를 바라는 현대차 노동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파견법과 고용의제를 옹호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유리한 것은 고용의제도 아니고 고용의무도 아닌 ‘상시 고용’과 ‘직접 고용’이다. 파견법은 그 어떤 말로 꾸민다고 해도 사람이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기업이 정규직을 쓰지 않고 비정규직, 그것도 파견직 노동자를 쓰는 이유는 딱 하나다. 노동자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년이 되기 전에 멋대로 잘라 버려도 해고가 아닌 계약 만료일 뿐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죄책감을 품을 필요도 없이 재계약을 빌미로 노동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죄책감은커녕 합법적으로 기업을 잘 이끌어 가고 있다는 자부심마저 느끼게 된다.

바로 그것이 파견법의 가장 무서운 지점이다. 시장에서 사람이 물건처럼 거래되고 있지만 아무도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신혜정 씨 사건을 보자. 신혜정 씨와 AT, IPC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고용의제와 고용의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신혜정 씨는 2년이 되기 전에 AT에서 나왔고 (혹은 쫓겨났고) AT는 신혜정 씨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지만 법적으로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IPC는 신혜정 씨에게 잘 가라고 인사만 하면 끝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한 사람의 삶이 어느 순간부터 흉하게 뒤틀렸는데 잘못한 이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아니, 모든 잘못은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고 징계 조치마저 받아들이지 않은 신혜정 씨에게 있다고 한다. 더 무섭고 끔찍한 사실은 이것이 신혜정 씨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파견직 노동자들이 있는 수많은 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AT와 IPC 직원들은 집에 돌아가면 분명 좋은 아빠와 좋은 엄마, 착한 아들딸들일 것이다. 이 세상이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약한 존재는 모두 없어져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이를 주먹으로 때리거나 힘없는 이들을 강간하거나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 모두는 다른 이들의 아픔을 함께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돈 생기면 좋은 곳에 기부하고 가난한 나라에 사는 아이들의 학용품 값을 후원하며 커피도 공정무역 커피만 마시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 파견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아픔은 아픔이 아니다. 그들은 그 아픔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런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들이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파견법이라는 법을 통해 확인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세상에는 아픔도 상처도 고통도 없다―그것이 바로 그들의 삶이 지닌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결코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없다.

파견법은 인신매매를 합법화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리고 신혜정 씨는 물건으로 팔려 왔다가 내동댕이쳐졌다. 물건으로 여겨지는 사람을 부르는 이름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 왔다.

노예.
파견법은 노예법이다.
신혜정 씨는 AT에서 그렇게 노예가 되었다.

당신들과 우리의 감정 노동

감정 노동이라는 말도 ‘멘토’나 ‘힐링’이라는 말이 그랬던 것처럼 곧 여기저기에 널리 퍼질 듯하다. 어쩌면 이미 맹랑한 친구들은 마치 자기가 만들어 낸 말인 양 언죽번죽 입에 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행하는 것에는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나는 희망연대노조 사무국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 노동이라는 ‘유행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고 다행히도 사무국장은 내가 뜻한 바를 잘 이해한 듯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무국장의 말대로 감정 노동은 노동자들 저마다의 감정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고객에 맞추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만 노동자들이 스스로 그렇게까지 하도록 만드는 힘은 노동자들 바깥에 있다. 사람의 감정조차 고객을 끌어모아 더 많은 이윤을 남기도록 하는 도구로 써먹겠다는 상상력이 바로 감정 노동의 본질이라면 문제는 누가 그런 상상력의 힘을 이 세상 속에서 떨치고 있는가이다.

처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세워지는 기업들은 어차피 모든 노동자들을 도구로 생각한다. 그것도 오래 쓰는 도구가 아니라 건전지처럼 금방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라 여길 것이다. 그렇기에 기업의 입장에선 감정 노동이든 뭐든 굳이 마음을 쓸 이유가 조금도 없다. 온종일 미소만 짓기 위해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감정이 어떤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노동자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일은 돈이 들지만 고객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면 돈이 들어오니 기업이라면 자연히 돈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기업이 아니라 기업에서 일하는 임원들로 좁혀 생각해 보자. 임원들도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감정이 있을 테니 임원들도 아마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임원들이 감정 노동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뭔가 억울한 일이 생길 때마다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임원들에게 노동자들의 감정은 돈 낚는 도구다. 쓰던 도구가 부러지면 다른 것으로 대신하면 된다.

그렇다면 임원들에게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능력이 없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왜 없을까? 이는 굉장히 중요한 물음이다. 나는 임원들, 즉 고용주들도 나름대로 그들만의 ‘감정 노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감정 노동이야말로 사람의 감정조차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이 될 수 있다는 상상력을 가장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힘이라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고객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기 위해 그때그때 감정을 만들어 낸다. 늘 친절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살가운 미소를 지어야 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객에게 자신의 진짜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고객에게 내보이는 가짜 감정과 자기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게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짜 미소와 가짜 친절을 내보여야 하는 자기 자신을 견뎌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정 노동을 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견디지 못한다면 당연히 고객의 기분도 좋게 만들 수 없다. 성매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일터에서는 되도록 자기 자신을 잊으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임원들 역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려 애쓴다. 노동자들이 고객을 대하며 겪는 고통? 망나니 같은 고객 때문에 받는 상처? 억지웃음을 지어야 한다는 아픔? 아마 임원들도 자기 자식이 그런 일을 하게 된다면 마음이 아파 밤에 잠도 못 잘 것이다. 하지만 임원들은 기업 살림을 꾸려 가야 하고 돈을 벌어들여야 한다. 기업이라는 조직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임원이 해야 하는 일이다. 임원들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어디쯤에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마음가짐부터 자기 지위에 걸맞게 다잡으려 한다. 그 마음가짐이란 바로 작은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까마득히 낮은 곳에서 일개미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의 감정만큼 작은 일도 없다.

그래서 임원들은 노동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다. 작은 일에 얽매이다 보면 큰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조직을 운영해 나가려면 부품 몇 개 망가지는 일쯤은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겪는 험한 일들을 마치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일로, 아주 머나먼 나라에서 벌어진 일로 여기고 그것과 철저하게 거리를 둔다. 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사연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쏟는 사람은 결코 기업을 이끌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감정 노동은 그것이 감정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자신의 감정에서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니 만일 기업의 임원이 노동자들의 감정을 노동자들에게 다시 돌려주려 마음먹는다면 감정 노동이 벌어지고 있는 사업장 자체를 없애야 한다. 노동자들을 교육하기 이전에 고객들부터 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들이다.

감정 노동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희생해서 임금을 받는다면 감정 노동을 통해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임원들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여 노동자들을 부리고 이윤을 얻는다. 신혜정 씨가 일했던 AT도 마찬가지다. 전화 상담원이었던 신혜정 씨는 날마다 전화로 수십 명씩을 상대하며 그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꾸며야 했고 고객이 욕을 하든 희롱을 하든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했다. 그리고 AT는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기며 누더기가 되기 일쑤인 상담원의 마음을 보살피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도록 상담원을 길들이기 위해 상담원 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AT 임원들 가운데 그 누구도 파견직 전화 상담원 신혜정 씨의 아픔을 이해해 주려 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상담원이 겪는 고통을 함부로 자기 일처럼 느끼지 않기 위해 신혜정 씨와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일의 법적 정당성을 바로 파견법에서 얻을 수 있었다.

감정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는 이들의 감정 노동―노동자들의 현실과 거리 두기―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파견법을 폐지하고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를 없앤다면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의 법적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될까? 그렇다면 정규직 감정 노동자들은? 정말 파견법과 비정규직이 없어진다고 해도 남들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이 경제 체제가 송두리째 뒤집어지지 않는다면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들이 감정 노동까지 해 가면서 노동자들과 거리를 두는 이유는 자기네들이 손에 쥔 것을 어떻게든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의 일상 속에도 노동자들과 거리를 두려는 감정 노동이 숨어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기업의 임원이냐 아니냐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2012년 6월 27일 신혜정 씨에게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은 사람이 사람에게 건 것이었지만 한쪽 사람은 다른 쪽 사람을 전혀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 사람은 똥물을 끼얹듯 욕설과 험한 말을 퍼부으며 신혜정 씨를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대했다. 기르던 개가 으르렁거리면 주인은 화를 낸다. 전화를 건 민원인에게는 전화 상담원이 그저 주인을 보고 살랑살랑 꼬리나 흔들 줄 아는 개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젊은 여성 상담원을 전화 한 통으로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니 그 얼마나 흐뭇한 착각이었을까? 하지만 상담원이 자기 딸이거나 아내였다면 그 민원인은 결코 그런 식으로 통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AT의 임원들이 돈과 권력을 손에 쥔 채 그것을 지키려 하는 것과 비슷하게 민원인은 아마 그 흐뭇한 착각을 지키고 싶어 했을 것이다. 자기가 지키고 싶어 하는 것에만 마음을 쏟느라 상대방의 감정이 어떻게 곪고 썩어 들어가는지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던 그들에게 감정 노동이란 수백 수천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신혜정 씨에게 전화를 걸어 더러운 말을 게워 낸 그 민원인과 얼마나 다를까? 이윤을 불리기 위해 노동자들의 현실을 공감하려 하지 않는 임원들과 얼마나 다를까? 우리라고 해서 노동자들과 거리를 두려는 감정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이들의 고통을 못 본 체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먹고살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팔 수밖에 없는 이들과 우리 사이엔 지금 얼마큼의 거리가 있을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스쳐 지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헤아리기엔 우리는 너무나 바쁜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의 감정은 노동자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느끼고 있을까?

우리는 감정 노동자들이 인형처럼 미소를 지은 채 항상 그 자리에 붙박여 있어 주기를 속으로 바라 온 것은 아닐까?

자본과 권력을 쥔 이들이 감정 노동을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 노동은 이윤을 얻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의 감정 노동은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고 상처와 아픔을 살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 속 감정 노동이 노동자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진정한 감정 노동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