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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녀를 어떻게 노예로 만들었을까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공기업 비정규직 계약해지 문제 취재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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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5일 수요일 늦은 4시 40분 협동조합 가장자리 사무실
신혜정 씨가 다시 한 번 들려준 이야기


양재동에서 협동조합 ‘가장자리’의 사무실이 있는 합정동으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나는 부랴부랴 신혜정 씨와 다시 약속을 잡았다. 고맙게도 신혜정 씨는 더위를 뚫고 가장자리 사무실로 와 주었고 우리는 베란다 탁자에 마주 앉았다.

AT 경영관리처장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밝히고 서로 엇갈리는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았다. 마찬가지로 읽기 쉽게 다시 엮었다.

기업지원센터 상담 업무가 시범 사업이어서 비정규직을 썼다구요? 2011년 하반기, 그러니까 제가 입사할 즈음에 기업지원센터가 시범 사업으로 선정된 건 맞는데요. 상담 업무를 맡은 저와 다른 한 분의 실적이 워낙 좋아서 2012년 1월에 시범 사업이 아닌 정식 사업으로 승격이 됐어요. 원래는 식품기획팀 안에 기업지원센터라는 TF(Task Force, 일정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조직되었다가 성과가 달성된 뒤에는 해산하는 임시 조직)가 있었는데요. 기업지원센터가 세 팀을 포함하는 큰 규모로 확대가 되었죠. 기업지원팀, 컨설팅팀, 식품수출정보팀 이렇게 세 팀이 있었는데 저는 그중 기업지원팀 소속이었어요. 시범 사업이라서 비정규직을 썼다면 정식 사업으로 바뀐 뒤에도 왜 끝까지 비정규직을 고집한 거죠? 이해할 수가 없네요. 혹시 기획재정부에서 끝까지 정원을 만들어주지 않아서 그랬나? 그럼 그렇다고 이야기를 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AT가 되풀이하는 주장은, 자기네들은 신혜정 씨를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니 해고 압력도 넣을 수 없다는 것인데요. 그게 거짓말이라는 증거 자료가 다 있어요. IPC 부장이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올린 적이 있어요. 상담원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징계를 거부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해고할 수 있느냐, 징계 해고 절차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걸 인터넷에 질문으로 올린 거예요. 거기 보면 이런 대목이 있어요. ‘이에 부서에서는 이 건으로 인한 회사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기에 해고를 건의하고 있으나’. IPC에 해고를 건의한 게 AT 아니면 누구겠어요? 네이버 지식인에 자기가 질문을 올렸다고 그 부장도 이미 인정을 했어요. 그리고 저를 해고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지 AT가 노무사에게 질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노무사가 질의에 직접 답변해 준 문서도 있어요. 이 문서에도 공사 내 지원센터가 파견근로계약 해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대목이 나와요. 네이버 지식인은 제가 인터넷 검색하다가 우연히 찾아낸 건데 노무사 답변서는 IPC 부장이 제게 직접 건네줬어요. 그러면서 AT가 저를 해고하라고 IPC에 종용했지만 자기가 무마했다고, AT가 갑이고 자기(IPC)는 을이라서 이렇게까지 하고 있다고 저한테 말했죠.

AT는 해고 말고도 3개월 감봉 징계에도 관련이 있어요. 제가 받는 급여는 AT에서 IPC를 거쳐 제게 들어오도록 되어 있어요. IPC에서 AT로 파견대행비 청구서를 보내면 AT에서 지출 결의서를 써서 다시 IPC로 급여를 보내고, 그렇게 IPC로 들어온 급여를 제가 수령하는 형식이었거든요. 근데 감봉 징계를 IPC가 결정했다면 IPC에서 제게 급여를 줄 때 돈을 깎아야 맞는 건데, IPC에서 AT로 보낸 파견대행비 청구서에서부터 벌써 돈이 깎여 있었어요. 이상하잖아요? 파견 계약상 저에 관한 모든 인사 관련 업무는 IPC에 책임이 있지 AT에 있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AT는 깎이지 않은 100% 급여를 IPC로 일단 보내 줘야 맞아요. 만일 AT가 감봉 징계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면 AT는 급여 전액을 보내고 IPC에서 감봉을 해야 맞는 거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었다는 거죠. IPC가 AT로 보내는 파견대행비 청구서에서부터 이미 돈이 깎여 있었다는 건 결국 3개월 감봉 징계 조치에 AT가 어떻게든 관여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어요. AT에서 급여가 나갈 때부터 감봉이 되어 있었으니 그 돈은 결국 AT가 먹은 셈이지요.


네이버 지식인 글, 노무사 답변서, 파견대행비 청구서, 지출 결의서까지 모두 지노위 제출 자료에 포함되어 있었는데도 지노위에서는 그중 아무것도 문제 삼지 않았어요.

저는 AT에도 녹취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입사했을 때부터 건의했어요. 근데 예산이 모자라 못 해준다고 하더니만 작년 10월쯤에 갑자기 녹취 시스템을 들여오겠다고 했어요. 그 즈음에 기업지원팀 차장이 녹취 시스템에 결재를 해야 한다고 제게 요구했어요. 전자 문서에 마우스로 클릭을 하면 자동으로 서명이 되어 결재가 되는 방식이었죠. 당시 이미 녹취 시스템을 들여와 운영하고 있었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굳이 결재를 할 이유가 없는데 왜 저한테까지 결재를 요구하는지 궁금해서 팀장한테 이유를 물어봤어요. 근데 결재 안 할 거면 회사를 나가라고 했어요. 저야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고 시스템을 들이면 들이나 보다 하는 게 전부인데 왜 저의 결재가 필요한지, 왜 회사를 나가라고까지 하는지 알 수가 없었죠. 근데 알고 보니 결재를 하면 곧 저의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에 동의하는 게 되더라구요. 제가 결재를 안 하겠다고 하니 AT는 행정자치부에 문의를 넣어 원하는 답변을 받았고 녹취 시스템은 그렇게 도입이 되었죠. 저는 녹취 시스템을 동의하지 않은 게 아니라 왜 결재를 강요하는지 물어본 것뿐이에요.

AT가 전화 상담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구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사건이 터진 당시에는 상담원이 인격적 모욕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어떤 교육도 실시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상사에게 전화 돌리지 말고 상담원 선에서 알아서 처리하라’고만 했죠.

민원인이 감사실에 신고를 했다는 기록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에요. 지노위에 제소했을 때만 해도 그 어떤 기록도 없었으니까요. 지난 1월에 감사실 담당 팀장이랑 면담을 한 적이 있는데 민원인이 감사실로 전화를 했을 때 자기가 받았지만 민원 접수는 안 했다고 하더라구요. AT의 민원 처리 규정에는 전화로 민원이 들어오면 반드시 서류 접수를 해야 한다고 나와 있어요. 그러면 민원 전화가 왔는데도 규정을 어기고 서류 접수를 안 한 그 팀장이 징계를 받아야 하지 않나요? 즉 서류상으로 보면 그때 당시의 민원은 발생하지 않은 것이 되잖아요. 지노위 판결에 불복하고 중노위에 다시 제소할 때 제가 AT에 당시 민원 관련 서류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그제야 감사실에서 기록을 만든 거예요. 지금 AT에가 갖고 있다는 기록은 그때 만든 기록이에요. 근데 기록이라고 해도 제가 고객에게 불친절하게 굴었다는 거 말고는 별 내용은 없어요. 도대체 뭘 어떻게 불친절하게 굴었다는 건지는 하나도 쓰여 있지 않아요. 당시는 녹취 시스템이 없었을 때니 녹음된 자료는 당연히 없구요.

징계 위원회에 AT 쪽에서 아무도 출석하지 않은 건 맞아요. 다만 징계 위원회에서 결정된 3개월 감봉 징계 사항을 IPC가 AT로 통보하니 팀장은 이게 겨우 감봉으로 끝날 일이냐며 펄펄 뛰었죠. 제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팀장이니 감사실에 보고를 해야 하는데 제가 시말서도 안 쓰고 징계 교육도 거부하고 하니 딱히 보고할 게 없어서 그렇게 화를 냈는지도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민원 접수도 안 한 감사실에 보고를 해야 하다니 정말 우스운 일이죠.

AT 쪽에서는 계약 해지가 아니라 만료라 주장하고 있다죠? 근데 해지라는 표현은 제가 지어낸 게 아니라 IPC가 만든 서류에 들어 있어요. 지난 1월 말쯤에 근로계약기간이 3월 4일부로 끝난다는 서류가 제게 날아왔는데 거기에 보면 ‘근로계약기간 만료(해지) 예고 시달’이라 쓰여 있거든요. 3월 4일이라는 날짜를 적어 사직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구요. 게다가 파견 회사 직원이 저한테 말하기를 사직서 내지 않으면 퇴직금이 안 나온다고 했어요. 되게 감정이 상하더라구요. 가만히 놔두면 자연스럽게 계약이 끝나게 될 걸 굳이 왜 계약 해지 서류를 보냈을까요? 게다가 사직서를 안 쓰면 퇴직금도 없다는 얘기는 대체 왜 했을까요? 웃긴 건 사직서를 안 썼는데도 나중에 퇴직금이 세 번에 걸쳐 통장에 들어왔다는 거예요.


아무튼 AT와 IPC는 상담원이 욕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어떤 교육도 실시하지 않았고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으면서 오로지 제가 불친절했다는 민원 하나만으로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어요.

그리고 저한테 있는 증거 자료 중에는 제가 계약이 해지되어 나가고 나면 다시 새로운 파견직 상담원을 채용하겠다는 문서가 있어요. 앞으로 기업을 상대하는 상담 업무를 일용직 전문가로 꾸려 나가겠다는 녹취 기록도 있구요. 전문 지식이 필요한 자리에 공기업이 아예 대놓고 비정규직을 썼다가 버리겠다고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하던 업무를 정규직 직원들이 나누어 맡고 있다는 얘기는 AT에서 들으셨죠? 그거 아세요? 현재 AT에는 식품 기술사가 단 한 명도 없어요. 전문 지식이 필요한 업무를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거죠.



신혜정 씨의 이야기를 거듭 들었지만 시원하게 풀리는 것은 조금도 없었고 AT와 IPC에 묻고 싶은 것만 산더미처럼 생겼다. 신혜정 씨가 집으로 돌아간 뒤 나는 IPC 쪽에 무엇을 물어보아야 하는지 수첩에 적어 보았다.

신혜정 씨를 해고하라는 압력을 실제로 AT에게서 받았는가?
네이버 지식인에 올렸다는 글은 정말 부장 본인이 쓴 것인가?
AT 인사팀에 신혜정 씨가 교육 잘 받았다는 보고서를 보냈음에도 따로 신혜정 씨에게 경고문을 보낸 이유는 무엇인가?
감봉 징계가 내려졌을 당시 왜 파견대행비 청구서에서부터 돈이 깎여 있었는가?
모든 징계는 AT의 압력이 없는 상태에서 IPC 내부에서 결정된 것인가?
시간 끌 것 없이 IPC로 바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부장이 밖에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만 듣고 통화를 하지 못했다. 다음날은 현충일이라 IPC도 쉴 것이니 6월 7일에 다시 전화를 걸어 보리라 마음먹었다.

2013년 6월 7일 협동조합 가장자리 사무실
오후에 걸었던 전화들


IPC
부장은 이날도 외근을 나가서 사무실에 없었다. 월요일인 6월 10일에 다시 전화를 걸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 지방노동위원회
신혜정 씨 사건을 취재하고 있다고 하니 교환대 직원이 어느 조사관에게 연결해 주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조사관은 당시 신혜정 씨 사건을 맡은 조사관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지금 지노위에 없다고 했고 그 자리에는 새로 온 조사관이 앉아 있으니 원한다면 그 사람과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신혜정 씨를 담당했던 심판위원의 연락처를 알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니 날마다 새 심판위원들이 오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판위원들이 일용직처럼 일한다는 신혜정 씨의 말은 참말이었다.) 나는 새로 온 조사관에게라도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짐작한 대로 새 조사관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고 내가 신혜정 씨 본인이 아니니 그 어떤 정보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신혜정 씨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무엇도 말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잠자코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인권위에 진정을 넣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신혜정 씨가 직접 들려주었다. 처음 인권위에 갔더니 어차피 지노위에서 패소한 만큼 인권위에서도 각하될 거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신혜정 씨는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호소했지만 인권위는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물러설 수 없었던 신혜정 씨는 인권위 홈페이지에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담은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제야 인권위 쪽에서 한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거듭 만나는 동안 인권위가 AT로 찾아가서 조사를 벌였다고 했다.

조사 결과는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6월 16일)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최아무개 노무사와의 통화
감봉 징계가 내려졌을 때 파견대행비 청구서에서 돈이 깎여 있었던 사실이 과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다행히도 신혜정 씨가 소개해 준 최아무개 노무사와 통화해 볼 수 있었다. 노무사는 신혜정 씨 말대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파견대행비 청구서는 징계에 AT가 관여했다는 증거물이 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파견법 상으로 (그리고 AT가 주장하는 대로) 파견 노동자의 징계는 파견 업체(파견사업주)가 내려야 하는 것이지 AT(사용사업주)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만일 파견대행비 청구서가 AT가 징계에 관여했다는 증거물이 된다면 AT는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그리고 최아무개 노무사는 법에 까막눈이나 다름이 없는 내게 무척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여기에 적어 본다.

“AT 사건은 참 특이한 경우인데요. 원래 파견법 상으로는 파견사업주가 면접을 통해 직접 노동자를 채용해서 고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노동자가 파견사업주인 파견 업체에 고용되는 방식이 바로 파견직이니까요. 근데 신혜정 씨에게 연락을 하고 면접을 봐서 채용한 건 파견사업주인 IPC가 아니라 사용사업주인 AT였거든요. 파견법상으로는 IPC가 직접 면접을 보고 채용한 노동자를 AT에 파견해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맞는데, AT는 파견 업체와는 상관없이 신혜정 씨를 고용하기로 먼저 확정하고서는 채용 단계에 이르러서야 파견 업체를 끌어들인 겁니다. AT가 채용에 관한 모든 것을 정해 버린 셈이 되는 거죠. 이는 위장 파견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근데 유감스럽게도 현행 파견법상에는 이런 위장 파견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요. 파견법상으로 금지되어 있는 건, 특정 업종은 파견직을 고용해선 안 된다는 것, 파견 기간을 넘기면 안 된다는 것, 파견 노동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 등등이 있는데 파견법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AT의 사례 같은 위장 파견에 해당되는 법 조항은 없습니다. 남은 건 근로기준법 9조의 ‘중간착취의 배제’ 조항인데요. 그 조항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 따라서 위장 파견을 제재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현행 파견법으로는 안 되고 부득이하게 근로기준법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AT 사건처럼 서류상으로만 파견이지 실은 직접 고용과 다름이 없는 위장 파견 사례가 요새 들어 늘어나고 있어요. 사용자로서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으니 그런 변칙적인 고용 형태에 자꾸 눈독을 들이게 되는 거죠. 하지만 현행 파견법으로는 그런 고용 형태를 제재할 수가 없고 이와 비슷한 판례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신혜정 씨와 저희는 위장 파견이라는 고용 형태를 통해 근로기준법 9조를 위반했다는 사항으로 노동부 강남지청에 AT를 조만간 고발할 계획입니다."


2013년 6월 10일 늦은 3시 협동조합 가장자리 사무실
IPC 부장과 통화한 내용


부장은 딱 잘라 거절했다.
“요새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도저히 업무를 볼 수 없습니다. 드릴 말씀 없으니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나는 부장이 전화를 끊기 전에 얼른 물었다.
“그럼 신혜정 씨 입장만 기사로 나가도 괜찮은 건가요?”
“좋으실 대로 하십쇼.”
그대로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끝내 통화를 거부한 IPC 부장의 태도가 정말 많은 것을 말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굳이 글로 밝혀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3년 6월 11일
AT에서 보내 온 답변서


6월 10일 월요일에 나는 AT 홍보팀 김아무개 차장을 통해 AT로 질문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경영관리처장과 다시 만날 약속을 잡으려고 했지만 차라리 질문지를 보내 주면 어떻겠느냐고 AT 쪽에서 먼저 제안했고 나도 더 자세한 답변을 받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선뜻 그렇게 하자고 했다. 다음은 내가 보낸 질문지와 그에 따른 AT의 답변이다.

1. 신혜정 씨가 퇴사한 후 정규직 직원들이 상담 업무를 나누어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 신혜정 씨가 수행했던 업무는 상당한 전문 지식을 요하는 상담 업무라고 하는데 현재 상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규직 직원들이 그러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현장 경험이 많고 지식적 수련을 충분히 쌓은 직원들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기업지원센터는 센터 내 직원들이 요일별로 상담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분야는 자금, 수출, 경영, 마케팅 등 전 분야이며 상담 업무 수행 직원은 해외 지사 근무 경력자, 수출 부서 근무 경력자, 자금 부서 근무 경력자, 컨설팅 부서 근무자, 경영학 박사 및 경영 지도사 자격증 소지자 등으로 구성된 현장 근무 유경험자로 운영되고 있음.

2. 전화 상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원 교육은 사건 당시 (2012년 6월) AT에서 실시되지 않았다는데 사실인지요? 지금 실시하고 있다는 상담원 교육의 내용은 대략 무엇이고 언제부터 실시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기업지원센터는 사건이 발생하기전인 2012년 3월 22일 고객관리에 관한 CS 교육(한국능률협회 컨설팅)을 실시하여 고객응대의 중요성에 대해 상기 시켰으며, 이후 기업지원 상담매뉴얼을 제작하여 숙지토록 하였고, 이외에도 공사 전체의 고객 전화응대 매뉴얼도 수시 회람토록 하였음.

3. 경영관리처장님 말씀으로는 기업지원센터 업무가 2011년 하반기에 시범사업으로 선정되었기에 정규직 직원을 채용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아울러 기획재정부의 정원 미확보 문제도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시범 사업은 언제 정식 사업으로 바뀌었으며 정식 사업으로 된 후에도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2011년 7월부터 기업지원센터 시범조직(T/F)으로 운영하다 2012년 1월 ‘농수산식품기업지원센터’로 정식 개소하여 기업 상담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인력 운영은 전체 정ㆍ현원, 증원, 정부지침 등을 고려하여 전사적인 차원에서 계획되어 운영됨으로 정규 사업화가 된다고 하여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되는 것이 아님.

4. 신혜정 씨 말에 따르면 감사실에 민원이 들어온 기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혜정 씨가 중노위에 진정을 넣을 무렵 AT에 요구해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그게 사실인지요? 사실이라면 처음부터 민원 기록을 남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답변) 민원 기록이 신혜정 씨가 요구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 민원인이 본인의 신분 노출을 원치 않는 비공개 민원 처리를 요구하였기에 때문에 민원 접수를 하지 않은 것일 뿐이나, 감사실 청렴혁신팀장이 불친절한 응대를 성토하는 민원인의 항의성 전화 통화 내역을 기업지원팀에게 전달하였음.

5. 민원인이 감사실에 민원을 넣었다는 전화 통화 기록이 전화국에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사실인지요? AT의 공식적인 입장은 민원인이 신혜정 씨의 불친절함에 대한 민원을 실제로 넣었다는 것입니까, 넣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답변) 전화 통화 기록이 전화국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통화 내역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임. 민원인이 신혜정 씨의 불친절한 전화 응대와 관련하여 항의 민원을 제기한 것은 사실임.

6. IPC가 AT로 보낸 파견대행비 청구서를 보면 감봉 징계를 받은 만큼의 액수가 급여에서 빠져 있습니다. AT가 신혜정 씨의 징계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면 AT는 100% 급여를 IPC에 지급하고 IPC에서 신혜정 씨에게 급여를 줄 때 감봉을 해야 하지 않나요? 맨 처음의 파견대행비 청구서에서부터 감봉이 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감봉된 돈을 현재 관리하고 있는 곳은 AT인지 IPC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파견대행비는 파견 근로자의 근태 상황을 고려하여 파견업체에서 공사로 청구하고 공사는 청구한 금액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음. 신혜정 씨 건의 경우에도 IPC에서 감봉에 따른 감액한 파견대행비를 세금 계산서로 청구하였으며 이에 공사에서 지급한 것으로써 징계에 관여한 사실은 없음 .

7. 아시다시피 신혜정 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국가 인권 위원회에 진정을 넣은 상태입니다. AT에서는 인권위 조사관이 왔을 때 조사에 협조해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국가 인권 위원회에 진정함에 따라 지난 5월 22일 인권위 조사관이 방문하여 현장조사를 하였으며, 공사는 조사 장소 확보 및 사무 기기 준비뿐만 아니라 신혜정 씨의 피진정인인 소속 팀장 및 차장은 물론 소속 팀 직원들도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하여 조사 내용에 대해 진술하는 등 인권위 조사에 적극 협조하였음.

8. AT의 공식입장은 신혜정 씨가 민원인과 처음 통화를 할 때 불친절하게 대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신혜정 씨가 불친절하게 상담하지는 않았지만 민원이 들어온 이상 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까?

(답변) 2012년 6월 27일 민원인이 감사실을 통해서 전화상담원의 불친절한 태도와 불성실한 응대에 대한 항의전화를 길게 하였고, 이후 해당부서에도 항의전화를 다시 하는 등 상담원에 대한 큰 불만을 제기하였음.

9. 신혜정 씨 말로는 지난 2월에 AT 아무개 차장님께서 민원인과 통화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그 민원인은 신혜정 씨에게 폭언 및 욕설을 퍼부은 적이 없다고 했다는데 그게 사실인지요? 즉 그 민원인은 신혜정 씨에게 욕설을 퍼부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까?

(답변) 2월 민원인과 통화가 되어 당시(2012년 6월 27일) 통화시 상담원에게 폭언 ․ 욕설을 하였는지에 대한 민원인 답변은 아래와 같음
"농어촌 입지 지원사업에 대해 신혜정 상담원에게 문의하였는데, 상담 내내 고자세와 반말 비슷하게 하는 등 불친절하게 응대하여 몹시 불쾌하였고, 나는 신혜정 상담원에게 폭언과 욕설을 전혀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신혜정 상담원이 반말 비슷하게 하는 등 퉁명스럽게 응대하더니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 기분이 너무 상해 감사실에 항의전화를 하였던 것입니다."

10. ‘직원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일할 권리’와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고객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 의무’ 중에서 aT의 입장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쪽입니까?

(답변)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 두 가지다 모두 중요함. 정규직이던 파견 직원이던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일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지켜주어야 할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으로서 국민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공사는 고객만족경영에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입장임.

이 답변서를 읽고 나니 AT 쪽에서 일부러 의뭉스럽게 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이 사건의 본질이 뭔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질문지를 한 번 더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지금 무엇이 쟁점이 되고 있는지 수첩에 적어 보았다.

AT에서 전화 상담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교육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상담원? 고객? 아니면 AT?
신혜정 씨와 민원인이 통화한 기록, 그리고 민원인과 AT 감사실이 통화한 기록이 정말 남아 있는가? 남아 있다면 AT는 그 기록을 확보하고 있는가?
감사실에 민원이 들어왔다는 기록은 신혜정 씨 말대로 나중에 만들어졌는가, 아니면 AT의 주장대로 사건 당시에 만들어졌는가?
파견대행비는 파견 노동자의 근태 상황을 고려하여 파견 업체에 청구한다는 AT의 답변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규정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AT와 IPC 가운데 어디에 존재하는가?
AT는 신혜정 씨가 정말로 민원인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경영지원처장이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아마 신혜정 씨는 상담을 잘 했을 것’이라고 말한 부분은 무엇을 뜻하는가?

다음날인 6월 11일에 나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건물에 있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아가 윤진영 사무국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그쪽에 있었던 신혜정 씨에게 근로계약서와 AT 민원사무처리규정 같은 귀한 자료들을 받을 수 있었다. (IPC 쪽에서 ‘징계’ 항목이 덧붙여진 새 근로계약서를 들고 와서는 서명하라고 을러 댄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신혜정 씨가 서명하지 않으니 그냥 돌아가 버렸다고 했다. 성실하지 못한 자세로 CS 교육에 참여했다는 경고장이 날아온 것은 새 계약서에 서명하기 싫다고 한 며칠 뒤였다고 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일까? 물론 전화 통화를 거부하는 IPC 쪽에 나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문제의 새 계약서는 IPC 직원이 가지고 돌아가 버린 탓에 증거로 남아 있는 것도 없다. 그래서 나도 이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지는 못한다.)

신혜정 씨에게 받은 자료들을 훑어보며 나는 새 질문지를 만들었고 AT 홍보팀 김아무개 차장에게 다시 메일을 보냈다.

1. 지난 질문지에서 신혜정 씨의 업무를 맡고 있는 정규직 직원들의 전문성에 대하여 여쭤 보았습니다. 해외 지사 경력, 수출 부서 경력, 자금 부서 경력, 컨설팅 부서 경력 등등을 말씀해 주셨는데 신혜정 씨의 전문 분야였던 식품 기술에 대한 경력을 가진 직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식품 기술에 대한 경력을 가진 직원이 있다면 그분의 경력에 식품 관련 기업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포함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2. 제가 입수한 AT 민원사무처리규정 문서를 보면 4조 2항에 ‘민원서류 접수부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민원서류의 접수를 보류하거나 거부할 수 없으며 고의로 접수시간을 지연시키거나 접수된 민원서류를 부당하게 반려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질문지에 답변해주신 내용에는 ‘민원인이 본인의 신분노출을 원치 않는 비공개 민원처리를 요구하였기 때문에 민원접수를 하지 않았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AT에서 민원인의 신상정보를 파악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당시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민원인의 민원 접수를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이 사건과 관련된 전화 통화는 두 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신혜정 씨와 민원인의 통화, 두 번째는 민원인과 AT 감사실의 통화입니다. 통화 두 건에 대하여 신혜정 씨에게 통화 기록(여기서 말하는 통화 기록은 녹음된 통화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닌 전화 자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이 전화국에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3-1. 그리고 실제로 전화국에 그 두 건의 통화 기록이 남아 있는지, 남아 있다면 AT에서는 확인을 하였는지, 확인을 했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를 AT에서 확보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확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3-2. 두 건의 통화가 각각 몇 분 동안 진행되었는지 시간을 알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알고 계시다면 각각의 통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공개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 지난 질문지에 대하여 해 주신 답변에는 ‘파견대행비는 파견근로자의 근태상황을 고려하여 파견업체에서 공사로 청구한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규정은 제가 신혜정 씨의 근로계약서를 확인해 본 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근로계약서에 포함되지 않은 AT만의 다른 징계 규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T에도 그런 규정이 없다면 결국 IPC의 징계 규정에 있다는 것인데 IPC 측은 저와의 통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AT에서 제게 알려주실 수 있는 징계 규정이 없다면, IPC의 징계 규정을 공문서의 형식으로 받아 제게 이메일이나 팩스로 넣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부분 역시 아주 중요한 문제라 답변을 확실히 해 주시지 않으면 신혜정 씨 쪽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5. 보내주신 답변에 따르면 민원인이 감사실에 항의 전화를 넣은 뒤 나중에 해당 부서에도 항의 전화를 다시 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항의 전화에 대한 기록이 AT에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6. 지난 질문지에 포함되었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답변서에 누락되어 있어서 다시 여쭤 봅니다. AT의 공식 입장은 신혜정 씨가 ‘민원인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다’는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신혜정 씨는 ‘불친절하게 대하지 않았지만 신고된 민원은 일단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까? 둘 중 AT의 공식적 입장은 어느 것입니까? 이는 본 사건의 핵심 쟁점이니 모쪼록 확실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7. AT 아무개 차장님과 민원인과의 통화 내용은 날짜로 보면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입니다. 그런데 일 년 전 일인데도 무척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여쭤 봅니다. 민원인의 말은 녹취를 통해 기록된 것입니까, 아니면 아무개 차장님의 기억에 기댄 것입니까?

거듭 번거롭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12일 수요일 오전까지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요일 오전까지 기다릴 것도 없었다. 질문지를 보내고 나서 10분쯤 지났을 무렵 김아무개 차장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무척 점잖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받아 적느라 내 오른손은 바삐 움직였다.

“저희가 1차 인터뷰를 했고 질문지도 두 번에 걸쳐 답변을 드렸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세세한 것들까지 저희가 대답해 드리면 나중에 신혜정 씨와 분쟁이 붙었을 때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저희로서는 일도 해야 하는데 일일이 답변해 드리게 되면 업무적인 부담도 있습니다. 그만 이쯤에서 마무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모든 취재에 응해야 하는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인터뷰와 질문지로 취재를 여러 번이나 하셨는데 아직도 궁금한 것이 있으시다니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취재에 대한 답변은 여기서 마무리하자는 것이 저희 AT의 공식 입장입니다.”

나는 알겠다고, 감사드린다고 말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AT의 공식 입장은 답변 거부였다. 내가 보낸 질문지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싶어 몇 번을 다시 읽어 보았지만 공기업의 명예를 깎아 먹거나 AT 직원을 쓸데없이 헐뜯는 표현은 찾을 수 없었다.

아니, AT는 최선을 다해서 답변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IPC와 마찬가지로 AT 역시 조개처럼 입을 꼭 닫아 버림으로써 오히려 무척 많은 것을 알려 주게 된 셈이다.

2013년 6월 11일 이른 10시 30분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조 사무실 사무국장 윤진영


신혜정 씨가 몸담고 있는 희망연대노조(http://cafe.daum.net/hopeunion) 이야기도 글에서 함께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광동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 윤진영 사무국장을 만났다. 지난 AT 본사 앞 집회 때 한 번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희망연대노조는 어떤 곳인지, 그리고 그동안 신혜정 씨와 이 싸움을 어떻게 이끌어 왔고 앞으로는 또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를 들어보았다.


우리는 2010년에 만들어졌으니 거의 신설 노조나 마찬가지예요. 서울일반노조와 마찬가지로 사업장 단위로 노조에 가입하기 쉽지 않은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주로 서울과 경기 지방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요. 직장과 고용 형태에 관계없이 노동자라면 누구나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어요. 그리고 노동자들끼리의 노동 운동을 넘어 지역 주민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지내보자는 뜻을 품고 있는 지역 사회 운동 노조이기도 하죠.

희망연대노조는 2010년 1월에 케이블 방송 회사인 씨앤엠(C&M) 정규직 지부가 조직되면서 만들어졌어요. 그 뒤에 집집마다 케이블 설치하시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분들과 함께 케이블 방송 비정규직 지부를 만들었고 역시 케이블 방송 회사인 티브로드(T-Broad)의 케이블 노동자들과도 티브로드 지부를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다산 콜센터 지부, 예전의 KT 정리해고 사태 이후에 생겨난 Ktis 지부와 Ktcs 지부, 신혜정 씨가 조합원으로 있는 ‘더불어사는지부’까지 같이 오게 된 거예요.

그리고 강동, 성북, 남양주 지역의 시민 단체들과 손을 잡고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해 왔어요. 지역아동센터와 함께 하기도 하고, ‘희망의 집수리’ 사업이라든지 지역 인권 센터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노동 인권 교육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지역 사회와 호흡을 같이 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 왔죠. 씨앤엠 지부가 사측과 임금단체협상을 하면서 따낸 ‘사회공헌사업기금’이 그러한 활동을 해 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됐어요.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 사회 운동에 나서니 그때까지 노동자들의 일을 ‘남의 나라 일’로만 알던 지역 주민들이 우리의 사업을 ‘우리 동네 일’로 여기고 참여하기 시작했죠. 요즈음에는 구로와 용산, 송파 쪽으로까지 범위를 넓혀 그쪽의 지역아동센터와 함께 하고 있어요.

우리 노조의 더불어사는지부에는 전화 상담 노동자였던 신혜정 씨를 비롯해서 시민 단체 활동가, 심리 치료사, 일반 회사 직원, 장애인 운동 활동가 등등 개인 차원으로 가입하는 다양한 분야의 조합원들이 있어요. 신혜정 씨는 처음에는 다산 콜센터 지부에 연락을 했었죠. 지노위에서 뒤통수를 맞고 너무 억울해 무작정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다산 콜센터 지부를 찾아 바로 연락한 거였어요. 그때 제가 마침 다산 콜센터 쪽과 같이 움직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신혜정 씨와 인연이 닿게 되었죠.


올해 3월에 신혜정 씨와 AT 사이의 계약이 끝나기 전까지는 부당 징계 철회, 진상 규명, 계약 연장을 요구하며 싸움을 이어 갔어요. 3월 이후 계약이 끝난 뒤에는 좀 더 폭넓은 이야기로 싸움을 해 나가야겠다 싶어서, 공공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나 콜센터 노동자들을 위한 배려 같은 것들을 더 앞에 내세웠죠. 신혜정 씨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는 요구와 함께요. 그런데 사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절대로 정규직으로 바꿔 주지 않기 위해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해 버린다는 것에 있었어요. 그것도 AT 같은 공기업에서 말이죠. AT의 임원이 우리들 앞에서 대놓고 이런 말까지 한 적이 있어요.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써야 하니 늘 1년 6개월씩만 썼다.”

아무래도 그런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니까 양재동 AT 본사 앞에서 집중 집회와 1인 시위를 신혜정 씨와 함께 꾸준히 벌이고 있어요. 언론에도 알려서 지금까지 몇 번 보도가 되기도 했구요.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는 요새 들어 우리 쪽에 심심찮게 찾아오는 편인데 아마 얼마 전에 있었던 대한항공 승무원 폭행 사건 이후 이른바 ‘감정 노동’이라는 것에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서 그럴 거예요.

언론을 통해서든 방송국을 통해서든 예전에는 주로 감정 노동자들의 실태를 들여다보고 현실을 진단하는 게 전부였는데 요즘에 와서는 감정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권리’나 감정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실태를 파악한다는 것은 물론 의미가 있는 일이고 그 점에선 언론과 방송국도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는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부분도 함께 짚어야 하겠죠.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감정 노동자들의 여러 운동 단위들이 그동안 이렇다 할 자료를 만들어 놓지 못했다는 거예요. 방어권과 제도적 장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지 그 내용조차 아직 충분히 만들어지지 못한 상태라는 거죠. 우리만 해도 2011년부터 콜센터 노동자들을 조직해 왔는데 지금까지도 뭔가 그럴 듯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는 못하고 있어요. 이건 분명 우리들이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언론에서 다뤄지는 감정 노동은 흔히 노동자들 저마다의 감정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아요. 언제부턴가 유행하고 있는 ‘힐링’이라는 말 있잖아요.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마음을 가라앉히고 감정을 스스로 추스르는 힐링이라고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감정 노동을 개인이라는 틀에만 가두어 놓고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개인의 감정을 통제하려는 외부의 힘이 분명 존재하기도 하니까요. 더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감정 노동을 저임금 여성이 도맡는 하찮은 직업이라 생각해요. 여성 노동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거죠.

그리고 일터에서 고객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만을 두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게, 일터에서는 감정을 잘 다스리면서 정작 집에 가서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콜센터 노동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일을 하면서 참을성은 많이 늘었지만 그게 한 번씩 폭발할 때가 있다고 해요. 마땅히 풀 곳이 없으니까요.

콜센터 노동자들 가운데는 감정 노동이라는 용어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어요. 감정 노동이라 불리는 일을 웃음과 서비스를 파는 하찮은 직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으니까, 자기가 하는 일이 그렇게 하찮은 대접을 받는 게 싫은 거죠. 근데 감정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제도가 잘 되어 있으면 제조업이나 운수업 같은 이름처럼 감정 노동도 노동의 어엿한 한 갈래가 되겠지요.

노동자의 급여나 노동 조건이 노동자 자신의 감정과 관련되고 노동자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직종을 감정 노동이라 부를 수 있다면, 아마 감정 노동의 범위는 시간이 흐르며 더욱 넓어질 거예요. 앞으로 새로운 일자리는 감정 노동 직종에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는 1인 시위와 집중 집회를 주로 해 왔지만 이제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문화제가 될 수도 있고 길거리 선전이 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이번 사건을 사회적으로 널리 알리는 작업도 계속 해 나가려고 해요. 하반기 국정감사가 있을 때까지 AT를 압박해야 하니까요. AT 안에는 신혜정 씨와 함께 싸워 줄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이렇게 압박할 수밖에 없어요.


윤진영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끝으로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한 취재를 모두 마쳤다. 협동조합 가장자리 사무실에서 일하는 틈틈이 지금까지 모은 자료들을 정리하며 며칠을 보냈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6월 16일 일요일이다. 그리고 이제 이 기다란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계속)
덧붙이는 말

* 나는 이 글을 지난 6월 5일부터 16일까지 열이틀 동안 썼다. 내가 몸담고 있는 ‘협동조합 가장자리’에서 펴낼 격월간지 『말과 활』에 싣기로 한 글이지만 어찌어찌 하다가 싣지 못하게 되어 이렇게 참세상에 보낸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