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그들의 불빛, 우리들의 어둠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2013년 7월 1일, 대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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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장자리에서 일한다. ‘가장자리’는 홍세화 선생님이 만든 학습 협동조합의 이름이다. 짤막하고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가장자리라는 협동조합은 북을 어떻게 칠지 입으로만 떠드는 곳이 아니라 손으로 북채를 잡고 북을 치는 곳이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자는 듯 죽은 듯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을 북소리로 흔들어 깨우려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북을 손질하고 북채를 준비하는 일을 한다.

가장자리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마다 대한문에서 ‘인문학 강좌’를 연다. 6월 10일부터 시작했으니 이번 주 월요일인 7월 1일로 벌써 네 번째 주가 되었다. 대한문 광장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싸우는 노동자들 곁에는 언제나 경찰 무리가 있다.

가게 주인이 좋은 물건을 상점의 진열창 맨 앞에 놓아두는 것처럼 정권은 우리 사는 세상이 안녕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경찰을 써먹는다. 도시 한복판에서 노동자들을 때리고 짓밟고 패대기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한문을 지나쳐 가는 이들에겐 경찰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경찰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정권의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려우니까 동원하는 것이다. 두려우니까 말로 안 하고 때리는 것이다. 요새 학교에서는 선생님 한 사람이 스무 명도 안 되는 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지만 노동자 한 사람에게 피라니아 떼처럼 달려드는 경찰들의 숫자는 내 기억으로 언제나 그보다 훨씬 많았다.

6월 10일에 열기로 했던 첫 번째 인문학 강좌는 그날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와 시청 앞 재능교육 농성장, 양재동 현대자동차 농성장이 잇달아 짓밟히는 어수선한 가운데 결국 나중으로 미루어졌다. 17일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 아래서 가슴을 졸이며 강좌를 열었다. (비를 가릴 수 있는 뭔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두 주를 겪어 보니 적어도 경찰들보다는 소나기가 더 낫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6월 24일에도 세 번째 강좌가 있었다. 강좌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었다. 배경 삼아 커다란 현수막 하나 대한문 광장에 걸어 놓고 홍세화 선생님과 초대 손님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진지한 물음을 던져 보거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짚어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 자리를 ‘인문학’ 강좌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홍세화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지금 이 자리는 인간에 대해 묻고 스스로 생각해 보는 ‘인문학’의 자리입니다.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민. ‘내가 잘리면 어떡하지?’ ‘그래도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해야 하지 않을까?’ 그 존재의 갈등은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역시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인문학 광장에서 인간이 무엇인지 묻고 인간에 대해 탐색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만났고 심보선 시인과 ‘비정규직없는세상’ 집행위원인 박점규 씨도 만났다. 그리고 네 번째 강좌에서는 재능교육과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을 만나기로 했었다.


7월 1일 월요일 저녁 8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미사가 끝나고 대한문 앞에 인문학 강좌 현수막을 펼쳐 놓으려 했을 때 화단 쪽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보였다. 노동자들이 분향소를 세우려 하자 어느새 벌떼처럼 몰려든 경찰들이 노동자들을 둘러싸고 꼼짝도 못하게 막고 있었다. 남대문 경찰서 최아무개 경비과장이 타고 있을 경찰 트럭에서는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고 사진기를 든 경찰들은 그곳에 모인 이들의 얼굴을 겨누어 쉴 새도 없이 찰칵거렸다. 미사를 마친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그 자리를 뜨기도 전이었다. 최아무개 경비과장은 집시법, 도로교통법, 경찰직무집행법의 조항들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노동자들이든 누구든 전부 검거하라고 대놓고 경찰들을 부추겼다.

그렇게 몸싸움이 벌어지던 중에 경찰 하나가 어쩌다가 제의(미사 때 사제가 입는 옷)를 한 벌 빼앗아 간 모양이었다. 한 신부님이 금세 마이크를 잡고 최아무개 경비과장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이 나라의 경찰은 노동자를 짓밟는 것으로 모자라 이젠 종교까지 탄압하려 합니까?”
“제의인지 모르고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무지는 죄가 아니니까요. 허나 경비과장이 나와 제의를 돌려주고 사과하지 않으면 천주교 차원에서 문제 삼겠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십니까?”

그토록 수다스럽던 경찰 트럭에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열심히 머리 굴리고 있을 경비과장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얼마 뒤 창살처럼 버티고 서 있는 경찰들 틈으로 최아무개 경비과장이 멋쩍은 얼굴로 걸어 나왔고 경비과장을 지키려는 경찰들과 조금 전까지 경찰들에게 엉망으로 쥐어뜯기던 이들이 신부님과 경비과장을 둘러쌌다.

“불법적으로 설치되려 한 분향소를 합법적으로 철거하는 과정에서 우리 부하 직원 하나가, 그 뭣이라고 합니까, 제의? 제의를 습득하게 된 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우우 하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내 옆에 서 있던 나이 지긋한 분은 픽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정말 구차하네.”

나는 문제가 더 커질까봐 마치 발길질에 움츠리는 강아지처럼 깨갱대는 경비과장이 꼴도 보기 싫어 아까 펼치다가 만 현수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경비과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뉘우침이 아니라 종교 쪽은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바삐 현수막을 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경비과장과 남대문 경찰서장은 수녀님 신부님들뿐만 아니라 경찰 권력에 겁도 없이 맞서는 사람들마저 몸서리치며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조리 연행하라는 말이 괜한 으름장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런 식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은 채 무작정 벽을 세우고 그물을 치고 불빛 속에 가두려 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으키는 발작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을 비틀며 손발을 배배 꼬고 입에서는 거품을 질질 흘리고 있는 경찰들과, 그런 발작을 방패 삼아 자신들을 지키려는 정권이 있다. 어떻게 보면 경찰들은 장기판의 졸(卒)과도 같다. 뒷전에 도사리고 있는 왕은 졸을 총알받이이자 방패막이로 써먹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며 사방은 온통 어두워졌고 화단 앞에 손자보를 들고 버티고 앉은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찰들은 손짓 하나면 으르렁거리며 달려 나갈 사냥개들처럼 대한문 광장 이곳저곳에 무리지어 서 있었다. 분위기도 분위기였지만 경찰 트럭이 똥물을 끼얹듯 대한문 광장에 불빛을 퍼붓고 있으니 그곳에서 도저히 강좌를 열 수가 없었다. 무대를 향해 앉은 사람들이 빛 때문에 도무지 눈을 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강좌를 접기로 하고 나를 비롯한 가장자리 사람들은 경찰들이 몰려 있는 화단 쪽으로 파고들어 갔다. 홍세화 선생님은 아예 손자보를 들고 화단 앞에 앉았다.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더는 보이지 않아서인지 경찰 트럭은 다시 수다스러워졌다. 이미 지난 2월에 ‘공공질서의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 한 신고되지 않은 옥외집회라 하더라도 행정관청이 강제 해산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바 있지만 용감한 경비과장은 대법원이 누구네 집 개 이름이냐는 듯 ‘미신고 불법집회’니 ‘2차 경고’니 ‘강제 해산’이니 하는 말을 지치지도 않고 주절주절 읊어 댔다. 외국인이 듣는다면 불경을 외는 스님이 경찰 트럭에 타고 있을 것이라 상상할 만했다. 대한문 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경비과장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벌컥벌컥 화를 내며 경찰 트럭 쪽으로 삿대질을 했다.

“너희가 사람이야?”
“월급 받고 살면 양심도 없어지는 거야?”
“어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연행해 봐!”

하지만 경비과장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서 경찰들을 장기 말 옮기듯 마음대로 다루었다. 경찰 버스는 아까부터 대한문 광장을 빙 둘러싸고 있었고 광장에서 남대문 쪽으로 가는 방향에는 무리지은 경찰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었다. 더구나 화단 쪽엔 경찰 트럭이 세워져 있으니 만일 경비과장이 심술이라도 부린다면 우리는 토끼몰이를 당하기 딱 알맞은 곳에 있는 셈이었다. 우리에게 겁을 주려는지 경찰들이 광장의 이쪽저쪽으로 몰려다녔고, 화단 앞에서는 끊이지 않고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들은 남자고 여자고 가릴 것 없이 몸을 통째로 들고 화단에서 떨어진 곳에 사람들을 하나 둘 장작처럼 부려 놓았다.

그러다가 한 명이 연행되어 끌려갔고 한 명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어둠을 밝히려는 것이 아닌 누구의 얼굴에 낙인을 찍을지 정하기 위한 눈부신 불빛은 여전히 경찰 트럭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밤 아홉 시가 넘어가자 경비과장은 노래방에 온 기분이라도 들었는지 마이크를 놓으려 하지 않았다. 다치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할 경찰이 왜 저렇게 사람들의 화를 돋우려고만 할까 궁금할 지경이었다. 더는 참지 못한 사람들이 경찰들에게 달려들기라도 하면 그걸 핑계 삼아 모두를 잡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단지 현장에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을 뿐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을 멍청한 빨갱이들이라 여기는 걸까? 어떻게 생각하든 답은 하나로 모아졌다. 자기만의 요새 안에 숨어 있는 저 경비과장은 분명 바보였다.


그러고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 모두가 어디선가 많이 보고들은 듯한 것들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기름진 경찰 트럭 불빛에 눈을 찡그리며 생각을 가다듬어 보니 이것들은 어느 시간이나 장소에서만 보고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고 어디에서든 들을 수 있었다. 어쩌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 왔을 수도 있었다. 사냥한 짐승을 잡아먹거나 풀을 뜯어 먹으며 살던 원시인들이 어느 순간부터 무기를 만들고 힘센 이를 족장으로 뽑아 무리를 지으며 살게 되던 바로 그때부터, 누군가의 권리를 다른 이들의 권리보다 더 높은 곳에 두던 그때부터 아마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랜 시간을 거쳐 오며 세상 사람들의 유전자에 깊숙이 새겨졌을지도 모른다.

5년 전, 아프지 않은 소를 먹고 싶다는 마음들이 불을 댕겨 벌어진 촛불 집회가 있었다. 경찰이 사람들을 언제나 지켜주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뒤늦게나마 깨닫기 시작했다. 그 뒤로 일터에서 내몰린 노동자들의 싸움이 여기저기에서 잇따라 벌어져 왔지만 경찰은 늘 한결같았다.

그렇다면 경찰이 한결같지 않았던 시절이 있기는 했을까? 경찰들을 움직이는 것은 경찰 한명 한명의 양심이 아니라 이 나라의 법이다. 경찰이 하는 일은 법을 어긴 누군가를 찾아 족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경찰이 날뛰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조차 경찰은 마당쇠처럼 부림을 당한다. 구청장이, 시장이, 경찰청장이,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후미지고 으슥한 곳에서 뭔가 나쁜 짓을 하고 싶을 때 경찰은 그들의 손에 피가 묻지 않도록 하는 착한 심부름꾼이 된다. 구청장? 경찰청장? 대통령? 그 이름은 늘 바뀌어 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명령을 내리는 이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죽지 않고 얼굴과 이름만 바꾼 채로 우리들과 함께 살아 왔다.

결국 틀린 그림 찾기였던 것이다. 짓밟으려는 이들은 늘 있었지만 그들이 누군가를 짓밟는 방식은 조금씩 변해 왔다. 털가죽 옷은 제복으로 바뀌었고 맨발은 군홧발로 바뀌었으며 나무창은 곤봉이나 방패로 바뀌었다. 옛날 같았으면 단칼에 죽여 없애거나 산채로 불구덩이에 던져 넣었겠지만 민주주의를 흉내라도 내야 하는 지금은 그저 곤봉으로 때리거나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칠 뿐이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이것들은 또 다른 무언가로 바뀔 것이다. 얼굴과 이름과 목소리가 다른 누군가가 사람들을 향해 을러댈 것이고, (경찰이라는 말이 훗날에도 존재한다면) 경찰들은 곤봉과 방패가 아닌 다른 것으로 사람들을 때릴 것이다. 억압과 폭력의 역사는 자본주의보다도 길다. 그리고 그 어떤 이념이나 체제보다도 길 것이다.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짓밟히는 이들이 짓밟히는 방식뿐이었다. 사냥을 하고 나무 열매를 따먹던 시절에도 아마 누군가는 힘센 자들과 맨몸으로 싸우다 죽어 갔을 것이다. 힘센 자들이 얼굴과 이름을 바꾸며 살아남는 동안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이름도 없이 죽어 갔다. 죽임을 당한 방식은 저마다 달랐지만 누가 죽이는 쪽이고 누가 죽임을 당하는 쪽인지는 결코 변하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맨몸으로 싸움에 나섰고 무기를 든 자들은 그들을 거침없이 죽였다. 깔아뭉갰다. 으스러뜨렸다.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과 이름을 바꾼 채로 지금껏 살아남았다. 짓밟히는 이들은 모든 폭력과 억압을 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싸우거나 죽거나 싸우다 죽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에 토라졌는지 경비과장은 3차 경고니 강제 해산이니 떠들어 대며 혼자서 열을 올리고 있었다. 불빛은 우리들의 온몸을 훑고 있었고 경찰들은 밀랍으로 빚어지기라도 한 듯 아무런 표정도 없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경찰들에게 당신들도 사람이냐고 물었지만 그 물음의 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경찰들도 사람이다. 사람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경찰들도 분명 사람이다. 그들의 마음속은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싶고 기쁘면 웃고 싶고 속상하면 울고 싶어 할 것이다. 다만 그들은 사람의 마음속에 조금씩은 자리하고 있을 비겁함이라는 것으로만 우리와 만나고 있을 뿐이다. 마치 저 하늘의 달이 한쪽 면만을 우리에게 내보이듯 경찰들도 비겁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 앞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 조직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들은 그렇게 지내라고 내버려 두어야 한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달라지고 싶어도 달라질 수가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달라지려는 낌새를 비추기라도 하면 경찰이라는 조직은 옷에 묻은 얼룩을 지우듯 그를 지워 버릴 것이다. 목이 쉬도록 양심을 부르짖든 피 흘리는 사람들을 제발 좀 보라고 가리키든 그들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진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눈물을 글썽이며 경찰들을 향해 목 놓아 소리 지르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벽에다 달걀을 던지는 셈일까? 무섭게 불길이 이는 산에 물 한 바가지 끼얹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우리는 사람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 온 틀린 그림 찾기를 언제까지나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까?

그 사이 누군가가 또 끌려 나와 길바닥에 내던져졌다. 누군가가 내 옆에서 쿨쩍거리며 울었다. 누군가는 화를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경찰들의 몸에서 나는 독한 땀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어와 내 가슴속을 무겁게 눌렀다. 경비과장의 혓바닥은 신나게 춤을 추었고 불빛은 모두의 눈을 따갑게 쏘았다. 우리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는 불빛은 어둠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이 역사를 우리 차례에서 얼버무릴 수는 없었다. 저들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를 이기도록 놔둘 수도 없었다. 사소한 것만 바꿔 달은 채로 변함없이 우리 위에 버티고 앉아 있을 힘센 자들에게는 그들만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우리들만의 역사가 있어 왔다. 비록 그것이 짓밟힘의 역사이자 패배의 역사일지라도 상관없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짓밟힘과 패배는 그것이 끊이지 않고 말하여지는 한 짓밟힘과 패배로 끝나지는 않는다.

무엇이 패배인가? 누가 누구에게 패배했는가? 싸움이 끝나야 패배가 있다면 싸움이 끝나지 않는 한 패배도 없을 것이다.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가 당장 아무것도 바꾸어 놓지 못할지라도 분노는 그 자리에 꺼지지 않고 살아 있어야 한다. 벽을 허물기 위해 달걀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벽을 더럽히기 위해, 우리 눈앞에 벽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리기 위해 던지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의 역사가 처음 열리고 난 이후 짓밟히는 자들은 늘 어느 곳에나 있어 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한가운데에 그들은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농민, 철거민, 빈민, 장애인, 이주 노동자, 성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2013년 현재 서울의 대한문에는 많은 이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수많은 눈물과 분노가 깃들고 있다. 그것은 그 모습 그대로 우리의 역사다.

그리고 대한문에는 불빛이 있다. 우리의 몸을 뼛속까지 훑는 흉악한 불빛이,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얼굴에 범법자라는 낙인을 찍기 위한 불빛이 있다. 그것 또한 그들의 역사다.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끝까지 추적해서 벌금 50만 원을 부과하겠다는 경비과장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그곳을 떠났다. 등을 돌리니 그 눈부신 불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등 뒤에 집채만 한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가 떠올라도 사라지지 않을 어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