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무기력함의 역사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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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틀 동안 찍은 사진들이다. 화요일에는 평택 송전탑에 가서, 수요일에는 시청 광장에 가서 찍었다. 내가 봐도 솜씨도 맵시도 없는 사진들이라 한 번 보고 잊고 다른 사진을 봐도 좋을 듯하다. 사진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버스를 타고 서울역 광장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햇빛 흥건한 차창 밖에 눈을 두고 있는데 문득 내 마음 속에서 어떤 감정 같은 것이 조금씩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져서, 곧 서울역 광장에서 맞닥뜨리게 될 수많은 깃발들과 민주노총 조끼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는 그것들이 내 마음을 쥐고 흔들려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하늘에는 하늘과 맞닿은 노동자들이, 땅에는 땅에 엎드린 노동자들이 지금도 고공 농성장과 천막 농성장에서 자기 삶 내걸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안타까움, 분노, 허탈함, 막막함, 슬픔 같은 낱말들로 편하게 내 마음을 풀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지금껏 내가 수백 번 수천 번 되풀이해 온 낱말들에 쉽게 기대지 않고 다시 한 번 내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정말 내 마음 속에 무언가가 고여 있다면 그것을 오래도록 지닐 수 있는 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그것이야말로 현장 노동자들과 마주하는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그 감정을 위해 나는 예전에 그 비슷한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 열심히 기억 속을 더듬어 보았다. 지니고 있기엔 힘이 들지만 그렇다고 뿌리칠 수도 없는, 등을 돌린 채로 잊어버리고 싶지만 그래 버린다면 너무나 후회할 것만 같은 그 감정은 분명 내게 낯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혹시 예전에 숱한 현장에서 만났던 노동자들에 대한 기억이었을까?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피를 토하는 것 같았던 그들의 목소리였을까? 버스 안에서 한참 동안 기억을 돌이켜 보다가 어느 순간 내가 찾던 그것에 가 닿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어머니였다.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시던 어머니.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서 살림살이를 패대기치시던 어머니. 아무 말 없이 연방 한숨만 쉬시던 어머니. 힘든 것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고작 이불 속으로 숨어 들어가시는 것이 전부였던 어머니. 벽에 걸린 달력에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적어 놓으시던 어머니.

어머니가 오래 전 젊고 사나운 아버지에게 시달림을 당하시던 시절에 나는 어렸고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어머니는 무엇인가에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하셨는데 이 세상이라 뭉뚱그려 부를 수 있는 그것들 속에는 자식인 나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젠 아버지 정도는 힘으로 누를 수 있게 되었는데도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집안사람들이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이 먹고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바짝 말라 가는 대추처럼 점점 조그맣게 쪼그라들어 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늘 힘들었다.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고 때로는 그 마음 때문에 어머니도 나도 더는 견디지 못하고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자주 떠올리며 살기란 어렵다. 힘들기 때문이다. 술 한 잔 먹어서 생각이 나는 것인지 생각이 나서 술을 먹는지 모르겠지만, 잊히지 않고 남아 있는 많은 기억들을 나는 버리지도 간직하지도 못한 채로 어중되게 살아 왔고 그렇게 쌓인 시간들은 내가 결국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기만 했다. 그럼에도 어쨌든 살아가야 한다는 질긴 미련과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는 체념이 뒤섞이는 속에서 어떤 오기라도 생겨났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관성일 뿐인지 어머니와 나는 아직도 꾸역꾸역 살아 내고는 있지만 이것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삶인지 무기력함을 숨기기 위한 시늉일 뿐인지 여전히 나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잠자코 기다리다가 서울역에서 내리면 될 것을 괜히 옛 일들 들추어내니 가슴속이 쓰려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제야 비로소 내가 찾던 것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은 나를 어딘가로 이끌었지만 나는 그곳으로 가고 싶어 하면서도 온몸을 던지지 않았고 끝내 뒤돌아서지도 못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결코 끝장내지 못한다는 뻔한 현실이 나는 너무나 두렵고 싫었다. 현실에 손을 댈 수 없었다는 것은 어쩌면 좋은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 전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어머니를 방구석에서 숨죽여 지켜보던 시절의 나에게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의 얼굴은 정말 끔찍하게 생긴 무기력함이었고 또한 내 얼굴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죽어 간 노동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을 ‘위해’가 아니라 노동자들과 ‘함께’ 무엇을 했는지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가 아는 것은 지금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가 전부다. 사람이 차마 머무르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자기가 있을 곳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는 사람들을 향해 무언가를 부르짖고 있다. 하늘의 농성장과 땅의 농성장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주먹질과 발길질 속에서 무언가를 견디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서 내 어머니의 모습을, 내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리게 만드는 무기력함의 역사가 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죽창처럼 무참히 꿰뚫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온 세상이 봄볕 아래 환했다. 내가 내 지난 시간들을 머뭇거림 없이 헤집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저 환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의 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은 내 어머니와 어떻게든 이 세상을 살아 보겠다는 결심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왜 굳이 어머니와 함께 살 것을 고집하는 걸까? 그것은 무기력함의 역사에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다는, 복수가 힘들다면 똥칠이라도 하고 싶다는 턱도 없는 내 바람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노동자들이 자기 목숨 내걸고 싸우는 곳에 이제 와서 함께하려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123주년 노동절 집회로 가는 버스 안에서 깨달았다. 무기력함의 역사에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다는, 복수가 힘들다면 똥칠이라도 하고 싶다는 턱도 없는 내 바람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짧지 않은 시간을 서로 싸우고 할퀴고 보듬고 안아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람들이 효도라고 부르는 것도 결국은 투쟁이라는 것이다. 무엇과의 투쟁일까? 적은 언제나 강하다. 강하지 않으면 적이 아니니 적이 강하다고 푸념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나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적들과 새삼스레 싸우기 이전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과 마음에 깊게 배어든 무기력함과 싸워야 한다. 그 무엇도 소용없을 것이라 여기며 방안에 틀어박히려고 하는 마음과 싸워야 한다.

나는 어머니와 싸움과 화해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시간들 속에서 둘 사이로 통하는 길을 조금씩 만들어 갔다. 그럼 노동자들과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써야 한다.
  • 차별철폐

    오랜만에 반가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엔 열심히 동지의 글을 많이 그리고 좋아했습니다. 좋은 글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