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민주주의의 공동화, 시민운동의 은밀한 공모?

[새책] 사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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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에 저항했던 민주화 운동의 전통은 1980년 광주를 통해 혁명적 좌파 운동의 씨앗을 틔우고 1987년의 민주항쟁 이후 조직적 운동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은 1990년대 초반 동구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그 이론적 기초를 상실하고 ‘때 이른’ 쇠퇴와 분화를 경험하게 된다. 운동권들의 ‘고백’이 유행했고 사실 그 이론적 기초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에 대한 ‘고발’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계급정치의 종언이 선언되고 시민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운동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낯선 이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로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고 풍운아 노무현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시민운동도 성장했다. 1990년 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시민운동은 가장 신뢰받는 집단으로 한국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진보정당도 성장했다. 2004년 총선에서 10석을 얻어 단박에 제3당으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공고화’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민주화의 모습 이면은 추한 것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광주와 87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이 두 정권이 했던 것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벌거벗은 자본의 착취와 폭력을 수용하고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강변하면서. 민주주의, 그리고 때로는 진보의 이름으로 한국사회를 금융세계화 속으로 밀어 넣었다. 시민운동은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도덕적 정당성과 신뢰를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지지와 그에 동반되는 거래로 갉아먹었다. 시민운동에 진보와 보수의 대결은 민주당과 새누리당(한나라당)의 대결이었다. 또한 시민의 지지를 받는, 시민사회에 뿌리 내리는 독자적인 운동으로 서기보다는 명망 있는 시민운동가의 정치권 진입의 통로 내지는 민주당에 정책을 ‘구걸’하는 수동적 정책 파트너로 스스로를 위치시켰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치세력에게 스스로를 걸어버림으로써 시민운동이 가져야 할 독자성과 비판성마저 잃게 된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할지라도 이것이 시민운동이 제기했던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투쟁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운동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많은 시민운동가들은 여전히 비판적 정신을 구현하려 하고 있고 잘 알려진 큰 단체는 아니지만 풀뿌리에서 진보적 근거지를 마련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호 특집은 이러한 시도들에 눈을 돌리고 있다. 특집의 제목은 “한국사회 시민운동 평가와 새로운 사회운동”이다. 제목에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을 따로 적은 이유는 지금까지의 시민운동이 사회운동적 성격보다는 엘리트적인 싱크탱크의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종국에는 자유주의 정당의 지지부대 역할로 전락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 반영되어 있다. 현재의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반성적으로 사고하지만 계급운동과 나란히 발전해야 하는 사회운동의 새로운 구성이 절실히 필요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물론 특집에 실린 글들 모두가 이러한 기획의도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린 글 모두가 편집진의 의도에 부합할 필요도 없다. 다만 특집을 통해 마련된 토론의 장에 편집진의 의도가 자리매김됨으로써 독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실린 글들을 소개하기 전에 한국 좌파의 지적 풍토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 좌파의 지적 풍토는 외국 이론에 대한 압축적 수용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외국 이론은 오랜 동안의 논의를 통해, 그리고 실천을 거쳐서 소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으로서의 이론이 수입되고 짧은 시간 논의되다가 용도 폐기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이론이 발생하는 역사적 맥락, 이론의 내용과 실천은 유실된다. 30년이란 시기적 단절이후 복원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수용이 그러했다. 이미 민족주의화된 스탈린주의로 타락한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면서 북한사회주의 체제의 건설과 방어, 그리고 그것의 좌절과 타락이라는 역사에 대한 표면적 이해와 감성적 수용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적 운동을 좌절시키는 소위 ‘민주정부’의 옹호로 귀결되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에 대항하는 소위 피디적 입장은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와 혼동하기도 했다. 이론 수용의 ‘경박함’에 있어 대동소이했던 것이다. 19세기 말 수정주의 논쟁으로 표면화되었고 1960년대 전면화되었던 마르크스주의 위기에 대한 무지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수많은 운동가들의 좌절, 변절, 전향, 그리고 이에 대한 반경향으로서의 정통적 입장에 대한 무비판적 고수가 그 대가였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사회운동과 다양한 조류의 네오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전개된 동구사회주의 체제와 서구 사민주의 노선에 대한 동시비판이라는 기나긴 논쟁은 잘려나간 채 라클라우와 무페라는 낯선 이름과 읽기 힘든 번역본으로 다가 왔을 뿐이다. 설익은 수용은 이에 대한 소위 정통마르크스주의자들의 무지막지한 공격으로 더욱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내용과 맥락은 마르크스주의 폐기와 이에 동반되는 사상적 ‘전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했다.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에 대한 논쟁은 어땠을까? 우리에게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고민하게 했던 그람시에게 시민사회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도래했지만 혁명이 일어나기는커녕 파시즘이 출현했던 1930년대 유럽의 상황에서 도출된 것이었다. 파시즘 하에서의 혁명의 경로를 고민하려 했던 시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사민주의의 위기, 그리고 새로운 세대와 모순과 갈등에 의해 과잉 결정된 역사적 구성물로서의 신사회운동과 공산주의로의 새로운 경로에 대한 유로코뮤니즘의 고민이 출현하면서부터이다. 한국의 좌파는 촘촘하게 써진 이러한 운동과 이론적 논쟁의 역사를 이미 만들어진 체계로 수입하고 그것만으로 논쟁하거나 그것을 운동의 현장으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설 수 있는 핑계거리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신사회운동이 제기했던 문제들, 그리고 이념적으로 한국의 시민운동이 천명했던 다양한 투쟁과 모순을, 현실을 넘어서는 비판과 상상력으로 접합시키지 못한 채 기존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수정’하는 수준으로의 ‘후퇴’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한 것은 아닐까?

특집의 첫 번째 글인 정병기의 <한국 시민운동의 흐름과 시민성>은 앞에서 언급된 시민운동의 ‘시민성’의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정병기는 시민운동이 상정하고 있는 ‘시민’은 중산층 혹은 중간계급일 뿐임을 비판하고 시민운동의 운동적 성격은 이러한 협소한 틀을 벗어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시민운동이 다양한 부문적 쟁점을 둘러싼 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본주의적 모순과 계급정치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병기의 글은 간략하지만 매우 유용한 한국 시민운동의 연대기를 제공한다.

정경섭의 <노동조합, 진보정당, 그리고 풀뿌리 운동의 결합-민중의 집>은 진보적 정당의 활동영역 확장으로 접근하고 있는 글로서 저자 스스로가 진보정당 활동가로서 유럽의 민중의 집 운동의 경험에 기초해서 시민운동적 의제와 진보정당운동의 결합을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민중의 집이 시민운동적 성격을 가지지만 그 주체가 노동자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시민운동이 제기하는 지역적 의제와 노동자운동이 결합하고 그것이 진보정당의 토대가 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마포에서 시작된 한국의 민중의 집 운동은 이런 방향에서 풀뿌리 운동을 개척하는 노력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권오범은 <한국 생협운동과 공동체운동의 평가와 전망>에서 근래 들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생활협동조합운동(생협운동)과 공동체 운동을 다룬다. 생협운동과 공동체 운동은 자본주의 이후 사회를 향한 점진적인 이행의 교두보로 인식되기도 한다. ‘필수적 사용가치와 토지, 생산수단을 탈상품화해 나가자는 공유지 탈환, 해방구 전략처럼 비자본주의적 영역을 하나씩 늘려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생협과 공동체운동에 대해 일면적으로 낙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좌파가 아래로부터의 이러한 운동과 연대, 협동, 공진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경섭이 실천하고 있는 민중의 집 운동은 풀뿌리에 근거한 생활정치를 좌파정당의 사회적 토대로 확장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현실운동 방향에서 부분적으로 수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연대와 공진화’가 아닐까?

박래군의 <인권운동의 현 상황 진단과 방향 제언>은 인권운동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다룬다. 인권운동은 민주화와 사회진보에 기여한바 컸지만 현재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만큼의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 IMF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의 결과는 노동권과 사회권의 심각한 후퇴를 초래했다. 하지만 형식적 민주화의 진전에 따른 착시현상으로 오히려 인권담론이 가지는 진보적 성격이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래군은 인권운동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진보적 성격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창언의 <한국 로컬 거버넌스(지방의제21)의 현황과 민주적 재구축>은 리우환경회의 이후 구체화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역 거버넌스 모델인 지방의제21이 열어놓은 정치적 기회구조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거버넌스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참여모델인지 아니면 참여를 내세운 새로운 통제전략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유엔, 정부, 지방정부에 의해 열려진 개입의 공간으로서의 지방의제21에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창언은 지방의제21이 민·관의 협력관계에 기초해서 주민 주도의 비전과 계획수립을 시도했다고 평가한다. 그 과정에서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적, 제도적 조건의 미비와 외부적 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등의 한계 또한 지적하고 있다.

특집란에 실려 있는 글이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의 모든 쟁점을 다루고 있지는 못하다. 정병기의 논문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진 여성운동과 환경운동 등 부문운동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편집진이 의도한 한국의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에 대한 토론의 장의 마련으로서 그 의미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발언대에 실린 강은숙의 <난민, 고통과 희망의 경계에 선 사람들>은 우리가 주목하지 못했던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 준다. 사회운동의 또 다른 쟁점이 국제연대라면 한국의 사회운동이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이기까지 한다.

정세란에는 세 편이 글이 실렸다. 조희연의 <대선 이후의 진보정치의 혁신 과제>는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포스트―87년형 민주주의로의 수동혁명적 이행’으로 본다. 그리고 2012년 대선결과는 ‘심각하게 나쁜 48%’이며 진보정당의 비극 속에 ‘한국정치발전의 선순환구조’가 해체되고 미국의 2당체제도 아닌 일본의 보수패권체제보다 더 퇴행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을 한다.

홍성준의 <론스타게이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2012년 외환은행을 매각하여 4조원의 이익을 챙긴 론스타펀드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활용하여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에 소송을 의뢰한 사건의 전후 내막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김태연의 <2013년 노동자 투쟁의 현황과 과제>는 박근혜 정부 하의 노동자 투쟁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쌍용차 정리해고, 현대차 사내하청, 유성기업 노조파괴 등의 장기투쟁 사업장에 주목한다.

일반논문은 3편이 실렸다. 박영자의 <북핵과 김정은 체제 권력구조>는 북한 핵실험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의 권력구조를 해부하고 있다.

이원혁의 <보호와 복종의 완성으로서 사회계약>은 홉스의 사회계약론에 대한 레오 스트라우스의 공화주의적 해석이 가지는 문제점을 분석한다.

김원태의 <가사노동(논쟁) 비판>은 한동안 좌파 학계에서 논쟁거리였지만 지금은 크게 주목받고 있지 못한 가사노동 논쟁을 되돌아보고 있다.

다시 읽기란에 실린 이종영의 <‘전태일 평전’에 대하여>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중반에, 20대를 보낸 세대들이 읽고 감동받았던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의 기록을 철학적으로 재음미하고 있다.

목차

특집 : 한국사회 시민운동 평가와 새로운 사회운동
- 한국 시민운동의 흐름과 ‘시민성’/ 정병기
- 노동조합, 진보정당, 그리고 풀뿌리 운동의 결합-민중의 집/ 정경섭
- 한국 생협운동과 공동체운동의 평가와 전망/ 권오범
- 인권운동의 현 상황 진단과 방향 제언/ 박래군
- 한국 로컬 거버넌스(지방의제21)의 현황과 민주적 재구축/ 이창언

*발언대
난민, 고통과 희망의 경계에선 사람들/ 강은숙

* 정세
- 대선 이후의 진보정치의 혁신 과제/ 조희연
- 론스타게이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홍성준
- 2013년 노동자 투쟁의 현황과 과제/ 김태연

* 일반논문
- 북핵과 김정은 체제 권력구조/ 박영자
- 보호와 복종의 완성으로서 사회계약/ 이원혁
- 가사노동(논쟁) 비판/ 김원태

* 다시읽기
‘전태일 평전’에 대하여/이종영

* 서평
- 세계사가 보여주는 몇 가지 답들(‘세계사의 구조’)/ 이성민
- 노동을 넘어 행위로(‘크랙 캐피털리즘’)/ 권범철
- 공통적인 것은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 정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