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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익-고위험’에 쫓기는 연기금운용...그 끝은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 연기금이 투기판 게임머니가 아닐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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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재단, 기부금까지 투자에 사용...총학 감사원 조사 요청 (뉴시스 2012.02.24)

일본 연금운용사 2조원 손실 스캔들 ‘시끌’ - 기업들 맡긴 2천억엔 모두 날려..영업정지 (머니투데이 2012.02.24)

3대 연금 주식투자 모두 손실...국민연금 –9%, 사학연금 –12.64%, 공무원연금 –14.7% (헤럴드경제 2012.02.27)


[출처: 헤럴드 경제 기사 캡처]


연금기금의 투자 손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요?

정치의 봄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이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건의 개요를 살펴보자면, 고려대 재단이 적립금을 고위험 상품에 투자해 거액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진 것입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뜻으로 모아진 기부금 중 일부인 건물건축기금까지 고위험 상품 투자에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죠. 지난해 10월24일 재단 유동성 현금자산의 81.7%(490억원 정도)를 주가연계증권(ELS)과 주가연계신탁(ELT)에 투자했다가 250억원 정도 손실을 입었다고 알려진 것입니다. 한 학교에서만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이와 유사한 사건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액수라 짐작됩니다.

또한 옆 나라 일본에서도 한 대형 기업연금 운용사가 2000억 엔, 우리 돈 약 2조 8000억 원을 날려 일본 금융당국이 수사에 나섰다고 합니다. 검사 결과 연금운용사가 최대 24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는 허위 광고로 기업들의 연금 운용을 위탁해왔다고 하는데, 2002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124개 업체로부터 기업연금 1984억 엔을 수탁해 주로 주가지수 옵션에 투자해왔다고 하는군요. 이로 인해 80만 명에 이르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 금융집단의 모럴해저드로 떠들썩했던 부실저축은행 피해자 규모와 비교할 때, 이 사건은 정말 충격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군요.

다음으로 세계경제의 더블딥 우려와 유로존 위기로 주식시장이 요동쳤던 지난해, 3대 연금 모두 상당한 수준의 손실을 보았다는 뉴스입니다.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이 그대로 수익률에 반영되는 셈이죠. 실제 지난 2010년 관광개발기금, 문화예술진흥기금, 국제교류기금 등의 경우 외부에서 영입한 자산운용전문가의 무분별한 국내외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바 있습니다. 도대체 이와 같은 책임을 누구한테 물어야 하는 것일까요?

연기금 수익이 대박났다면, 어찌할 것인가요?

일단 혀를 한번 내두르고, “돈지랄들 하는 구만...”, “아니 어찌 서민들의 피 같은 돈을 지들 맘대로...” 자, 그런데 우리의 이런 거친 분노에 담긴 무의식을 한번 들여다봅시다. 만약 고대재단이 기금을 잘 운용해서 수익률이 대박 났다면? 연금 운용사가 잘 투자해서 약속대로 고수익을 올렸다면? 이번엔 박수를 쳐드려야 하는 것일까? 이들의 자랑찬(?) 노력에 수혜를 받는 사람들은 기뻐 환호할 것이고, 직접 관계없는 이들도 뭐 별 할 말은 없을 것입니다. 속으론 약간 배가 좀 아플까?

그런데 이렇게 끝나고 말 문제인지 정말 현미경을 들이밀며 찬찬히 따져 봅시다. 도대체 그들이 대박을 기대하는 돈의 출처는 어디인지! 그건 바로 정확히 반대상황에 놓여 있는 위에 언급한 사건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노동자 시민들의 호주머니와 월급통장입니다. 더 나아가, 국경을 넘나드는 투기성 자금의 성격상 그 피해자는 전세계 어딘가 살고 있을 평생 얼굴 한번 못 볼 어느 노동자의 쌈짓돈일 수 있습니다. 돈을 벌면 투자가 되고, 돈을 잃으면 투기가 되는 작금의 금융세계화의 투전판에서, 이런 웃고 우는 한편의 코미디는 태생부터 이미 모두 웃을 수 없는 반쪽짜리 드라마일 뿐인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우리 현실을 말해 봅시다

기금 운용 수익률 1%P 만 낮아져도 연금고갈 5년 빨라져, 저출산 인플레 등 재정 추계 예상치 크게 웃돌아 (한국경제 2011.06.07)

작년에 나온 기사를 보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요? “어? 내 연금이 없어진다고? 뭐야 이건...” 이 신문기사의 카피문구처럼 수익률 1% 포인트에 후들거리는 상황이 두려우십니까? 이미 이렇게 우리의 생각은 저들의 논리에 철저하게 종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은 더욱 철저하게 수익률 싸움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오늘날의 지배논리인 것입니다.

부르주아 경제학의 교과서에 나오는 ‘효율적 시장가설의 원리’에 따라 설명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수익률은 항상 평균수익률로 수렴합니다. 매번 고수익을 낸다는 건 도박에서 언제나 기가 막힌 신내림(?)을 받아 매번 돈을 따는 것과 같은 거죠. 그러므로 영화 타짜에나 나오는 ‘손기술’과 같은 불법적인 투기적 정보가 없다면, 수 십년 장기간의 기금운용을 통해 고수익을 낸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입니다.

[출처: 2011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보고서]

위 그림은 <2011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보고서>에 나오는 포트폴리오 변화 추이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보시다시피 국민연금의 투자자금 구성을 보면 적지 않은 부분이 주식과 대체투자(부동산, 해외 금융자산 및 부동산 등)에 묶여 있습니다. 작년 주가하락 방어를 위해 연기금이 대거 투입된 사례를 보면 이미 우리의 쌈짓돈은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큰손이 되어 있습니다.

현재 국민연금의 액수는 350조를 돌파하여 세계 3위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해 뉴욕사무소에 이어 올해 런던사무소까지 개설할 예정인데, 2009부터 취임한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에 따르면 채권의 비중을 줄이고 국내주식이나 해외주식, 해외부동산 자산규모를 더욱 늘린다는 계획이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저금리기조가 계속된다면 3-4% 밖에 안 되는 채권수익률이 재정운용을 위한 기대수익률 6-7%에 한참 밑돌 것이기에 더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커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올해 2월 임시국회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을 통과시키면서 소위 ‘10% 룰’이라는 것을 변경시키려고 했으나 통과되지는 못했습니다.

자본시장통합법 2월 임시국회 처리 사실상 무산, 350조 국민연금 주식운용 발목 - 연기금 주식투자의 최대 걸림돌인 ‘10%룰’ 완화 규정 시행 못해...증시체질 개선도 물거품 우려 (머니투데이 2012.02.13)

여기서 잠깐! ‘10%룰’이란 상장사 주식 10% 이상을 보유한 주요 주주는 지분 변동사항이 있을 때마다 이를 5일 이내에 공시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보유지분이 10%를 넘으면 주식을 한 주라도 사고 팔 때마다 공시의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기금들은 ‘10%룰’에 따른 공시 부담과 투자전략 노출 등을 우려해 개별 종목 주식을 10% 넘게 매수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데, 이로 인해 ‘10%룰’이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식 운용을 제약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고 주류언론들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애초 금융위는 2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곧바로 시행령을 고쳐 연기금의 공시의무를 현행 5일 이내에서 분기당 한번(지분변동일이 속한 분기말 이후 열흘이내)으로 완화한다는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나, 이들의 아쉬움은 얼마나 깊게 베어 있는지, “연기금의 주식투자 활성화는 기금 운용 수익성 개선은 물론 대외변수에 취약한 증시체질 개선과 직결된 문제” 라는 관계자의 말을 빌려 강하게 성토를 하는군요. 이제는 연금기금운용의 목적이 자체수익성을 넘어, 외국인들의 예기치 못한 이탈로 폭락하는 증시의 튼튼한 버팀목으로까지 확대되길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2008년 같은 금융위기 사태가 재발한다면? 위 그림에서서 보듯 연금기금운용의 3분의 1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연금기금의 고갈은 2050년이 아니라 수년 내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수익률 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편한 진실

당연히 이런 무분별한 자금운용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건 투기자금화에 대한 단순한 경고만은 아닐 것입니다. 2006년 쯤인가 국민연금 고갈문제로 일부사람들이 납부거부를 주장했던 일을 기억해보도록 하죠. 2047년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연구결과로 인해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 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좀 더 적게 받는 구조를 만들어 재정안정성을 유지하자’, ‘수익률 개선을 위한 자산전문운용이 필요하다’, 심지어 ‘저출산문제로 연금부양액이 줄어드니 출산장려운동을 하자’ 라는 이야기들만이 주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런 기금의 자금운용이 결코 회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사실에 대해 털끝하나 건들지 못했습니다. 그건 바로 스스로 증식을 할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누군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부를 이전 시켜야만 한다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그래서 항상 투자수익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 굴레를 결코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이죠. 저성장이 구조화되는 지금, 이런 불편했던 진실의 모순은 더욱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결국 자본주의의 안정적 성장에 대한 장기적 전망 하에 디자인된 지금의 연금운용계획은 수 년 내로 중대한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혹자는 2014-15년부터 보유자산의 만기불일치에 따른 유동성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데, 연기금의 운용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입니다.

다음 신문기사에 보듯, 이미 신자유주의자들은 연기금의 사회적 참여와 역할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가지고 경영권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결론은 결국 기업의 수익률을 높이는데 기여해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있습니다. 건전한 기업문화 운운은 ‘립서비스’일 뿐이고, 반대진영에서 ‘연금사회주의’라 비판하는 것도 기득권 방어에 급급한 색깔론일 뿐입니다.

경영권 감시 통해 기업가치 제고...국민재산 위탁자의 당연한 의무
기업 경영 혁신 유도할 시장 내부장치 꼭 필요, 주주이익 극대화 통해 기업-연금 ‘윈윈’ 가능 (한국경제 2012.02.24)


이제 ‘안정적인 고수익’이라는 모순된 바람을 계속 품을지, 아니면 연금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 그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국민들이 계속해서 더 많은 보험료를 내던지, 아니면 더 적게 받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연금 수익률이 은행 이자율 수준에 접근한다면 국민연금은 존재자체가 무의미 해 집니다. 때문에 신자유주의자들의 관심은 400조에 달할 이 연기금을 어디에 쓸지에만 관심을 가졌고 지속불가능한 미래를 담보로 연기금을 투기판의 게임머니로 전락시켜 왔습니다.

국민연금이 이런 형태로 지속불가능하다면 이제는 방향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애초에 설정했던 국민연금이라는 공적부조의 개념을 살린 대안적 형태로 바꿔내는 ‘전환’을 어떻게 이루어 낼지 고민을 모아야 할 때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