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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대학이 기업인가

교육부, 금지업종 102개를 21개로 줄인 대학자율화 계획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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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기업 사이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교육부는 8월 2일 대학자율화 계획을 발표하고 학교기업 금지업종을 102개에서 21개로 줄였다. 대학들은 이제 숙박이나 노래방, 술집 등을 빼고는 맘만 먹으면 웬만한 도 소매업과 서비스업을 다할 수 있게 된다. 말이 대학이지 기업과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아예 학교기업을 일반 회사처럼 학교 밖에 세우는 것도 허용된다.

대학법인화의 일환인지 대학법인화를 더 강도 높게 추진하려는 것인지 그 의도를 알바는 아니나 대학과 무슨 공모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길 또한 없다. 따지고 보면 얼마 전 내신 반영비율을 놓고 티격태격 하는 것 같더니 결국 교육부는 대학과 한 배를 타고 있었고 이제는 배까지 저어주고 있었음을 훤히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는 기존의 이해 방식을 초월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영국의 대처 수상이 역사학을 가리켜 ‘사치품’이라고 비판했던 것은 ‘대학기업’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 수준이다.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 글로벌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교육보다는 돈벌이에 올인하고 있는 한국의 대학들에게 장사를 가르치다니, 이것이 글로벌화의 진면목이고 교육부가 할 일이란 말인가. 교육‘인적자원’부라고 스스로를 명명할 때부터 알아본 것이지만, 대학에 홈플러스가 들어오고 쇼핑몰이 들어 와도 과연 되는 것인가. 대학이 신성한 전당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글로벌의 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2005년 11월 9일 뉴욕대학교 대학원생 조직위원회(GSOC)가 비준투표로 85%의 신뢰를 얻어 파업에 돌입했다. 미합중국에서 그것도 미국 대학에서 최초로 유일하게 파업이 일어났다. 뉴욕 대학교만이 아니라 미국의 대학에도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범람하면서 대학의 기업화가 진전되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 교육 목표는 이미 ‘이익이 되는 연구’로 기울어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 조짐은 이미 몇 년 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BK사업 등 각종 ‘학술’을 빙자해 경제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그러나 미국 뉴욕 대학교에서 일어난 파업은 대학에 장사를 가르친 교육부 때문이 아니었다. 대학의 기업화가 진전하면서 대학의 교육노동에 노동시장의 ‘유연화’ 전략을 감행하려는 사태에 저항하는 파업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우에는 이미 비정규직 교수들을 파견노동자로 전환시키고 다음 수순으로 대학을 비즈니스센터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 발 앞선 정책이요 선진적인 정책이자 대학경쟁력을 순식간에 높이자는 전략인 것이다. 뉴욕대학교 섹스톤 학장은 2007-8년도 예산 배정에서 ‘기업연구’, ‘학술기업가정신’을 강조했지만, 한국의 대학들이 선진적으로 비약할 수 있는 토대를 교육부가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 홈플러스가 들어오고 대학이 장사를 하면 대학이 선진적으로 되고 경쟁력이 생기는 것일까. 대학이 기업이 되는 마당에 교수노조는 왜 합법화하지 않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 투성이의 교육부라지만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뉴욕대학교에서 대학원생들은 교육조교(GA), 연구조교(GR)의 고용불안정 정책에 맞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 나라 후속세대들은 직업보장도 수당도 없는 싼 임금에 떠밀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지식의 국가독점화’의 첨병들이 되어가고 있고 교수들은 진두지휘하고 있다.

1999년 이후 양산된 비정규직 교수들, 아니 파견노동자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가? 2007년 5월 뉴욕에서 대학원생과 교수들이 토론하는 가운데 길버트는 <상아탑을 깨부수기 -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대학>이라는 글에서 지난 20년 사이 가장 유망한 연구기관의 하나로 자리매김 되었던 뉴욕 대학교의 몰락을 경고한다. 그와 반대로 우리 나라 대학들은 수년 안에 혹은 몇 년 안에 세계 유수대학으로 발돋음할 것이라는 환상에 부풀어 있다. 그 꿈이 경영마인드를 바탕으로 돈벌이에 재간을 부리는 ‘재벌대학’의 꿈이 아니길 빌어마지 않는다. 체질을 갑자기 확 바꾸면 다이어트로 죽는 사람이 있듯이 ‘대학체질’도 확 바꾸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