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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지 않는 책임자들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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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10.29 이태원 참사 3차 시민추모제에 참석하기 전 이태원 참사 현장에 들렀다. 전날부터 비가 내려 추모 공간의 메시지들이 물에 젖어 망가질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시민대책위 피해자권리위원회에선 이 메시지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 보관하기로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 오전이었지만 추모공간에 메시지를 남기거나 참사 현장을 찾아 잠시 이곳에 서서 이 공간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동안 몇 차례 메시지와 꽃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는데도 추모와 기억의 벽은 새로운 메시지로 빼곡했다. 슬프고 아픈 공간이지만 위로와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마음 덕분이었다.


골목의 상점 대부분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다. 가게들을 둘러보다가 이틀 전 국정조사 2차 공청회에서 지역 상인으로서 진술하셨던 분의 가게를 알아보았다. 진술을 시작하기 전에 유가족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에서 슬픈 분노가 일었다. 정작 사과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하지 않고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상황이라니. 문 닫힌 가게 앞에서 서서 공청회에서의 일들이 힘드시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다. 이른 시간에도 유일하게 가게를 연 편의점 사장님은 우리에게 비를 피해 짐을 놓을 곳을 마련해주었고, 고생한다며 따뜻한 음료도 내주었다. 편의점 사장님도 참사를 겪은 피해자인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됐지만 묻지는 못했다. 잊을 수 없는 기억과 감정 속에서도 삶을 위해 애쓰는 마음으로 오늘도 가게 문을 열지 않았을까 짐작만 했다.

우리가 놓쳐버린 존재, 더 이상 잃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

참사 78일째 날, ‘진실, 책임, 연대의 2023년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새해 첫 추모제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 159번째 희생자 고 이재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얼마 전 기사에서 보았던 앳된 얼굴의 영정사진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그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이유가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언 때문이었다. “생각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 좀 이런 생각들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지금 말씀하신 (원스톱) 지원센터 쪽에서도 그런 어려움을 좀 충분히 제기를 하셨다면….” 피해자의 아픔을 살펴보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오히려 피해자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심마저 드는 말이었다.


소중한 친구들을 잃은 재현의 마음을 몰랐다며 아빠는 아들에게 미안해했지만 정작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우리였던 것 같다. 참사의 현장에서 생존해 돌아온 이재현의 43일의 시간을 정부가,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두고 연인을 잃은 생존자는 국정조사 공청회에서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며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연인의 가족이 아니었다면 159번째 희생자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에겐 슬픔을 공유하고 서로 위로할 수 있도록 함께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고, 생존자들은 이 역할을 방기한 정부가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너지는 마음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을 피해자들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안부를 묻고 싶다. 따뜻하게 잠은 좀 잤나요?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 밥도 먹었나요? 때로는 웃을 일도 있었나요? 당신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온기가 전해졌나요? 불쑥 고개를 드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오늘 하루 버틸 힘을 얻었길 바라요. 그리고 내일도 당신의 안부를 물을 수 있기를.

책임지지 않는 책임자, 더 이상 필요 없다

10.29 참사 특별수사본부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3명을 검찰에 기소했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등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서면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이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수사로 모든 것을 다 밝힐 것이니 다른 과정은 필요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결국 이상민 장관이 정치적 책임은 없고, 법적 책임이 있다면 지면 된다는 입장으로 이어졌다. 수사 결과는 이상민 장관의 면죄부를 확인시켜준 셈이 됐다.

수사는 이태원 참사 사흘 만에 빠르게 시작했지만, 국정조사는 참사 발생 53일째가 돼서야, 그것도 예정된 일정의 반 이상을 흘려보내고 난 뒤 겨우 시작했다. 국정조사 내내 ‘몰랐다’면서도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는 정부 기관 수장들의 변명을 들었다. 이들은 159명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했는지, 왜 실패했는지 성찰도 사과도 없었다. 사퇴에 대한 질문에 도리어 이상민 장관은 “현재 제게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뻔뻔하게 답변했다. 행안부 장관은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 수립·총괄·조정 등의 사무를 관장하는 책임이 부여된 자리다. 참사 당일 수행비서를 기다리다 현장에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상민 장관은 ‘놀고 있었겠냐’며 항변했지만 85분간 직접 전화를 건 것은 한 통뿐이었다. 참사 예방과 대응에도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대체 무슨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인가? 2차 가해에 대해 해결해달라는 유가족의 호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행안부 장관이 계속 그 자리에서 하려는 ‘최선’은 무엇인가? 정말 그 자리에 ‘최선을 다하’겠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2차 가해를 중단하라고, 정부는 피해자의 권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유족을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 생존자들,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애썼던 시민과 상인들 이들 모두가 슬픔과 고통을 안고도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재난을 예방하고 구조와 수습을 위해 기민하게 협력하는 국가도, 이를 위해 상황을 총괄하고 조정하는 국가도 없었는데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애쓰는 국가도 없다. 오히려 정부의 책임자들이 피해자의 회복을 가로막고 우리 모두를 재난 상태에 묶어 두고 있다. 생존자 김초롱 씨는 국정조사 공청회에서 자신에게 2차 가해는 장관, 총리, 국회의원들의 말이었다고 증언했다. 책임자 자리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고 무능만을 확인시켜 줄 것이라면 그 지위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우리가 피해자들과 미래를 함께 하려면 강하게 요구해야 할 것 같다. 수사기관과 정치가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면 시민이 피해자들과 함께 물을 수밖에 없다. 책임지지 않는 책임자는 필요 없다. 이제 그만 물러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