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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정책에 우선순위 세운 정부에 정치적 책임 물어야"

민변·참여연대, 법적·정치적 책임 지적을 위한 기자간담회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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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 책임론을 부각한 가운데, 시민·법률단체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정책적 선택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태원 참사 이전, 참사의 발생 가능성이 예측됐음에도 중요한 관심사가 되지 못한 이유·원인의 규명과 함께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 뒷전 정책…정부의 책임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한 대표는 "법적 책임만 묻게 되면 결국 실제 행동해야 하는 말단 행정직만 책임을 지게 된다"면서 이런 식이면 "재발 방지와 넓은 의미에서의 피해 보전 등이 이뤄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것들은 재난에 대한 정책 가치를 어떻게 부여하는가와 직접 연관된다. 이 때문에 재난 발생 시 그에 대한 정책 결정권을 갖는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이고 이를 통해 재난에 대한 정책 순위가 바뀐다는 메시지를 사회와 국가 영역에 던져줘야 한다"라며 이것이 정치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 당일에는 경찰청의 책무가 우선하지만, 그 이전의 책임 소재는 재난 관리의 컨트롤타워인 행정안전부 장관이 책임지는 방식으로 한국의 재난관리 체계 자체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한 대표는 "참사 당일, 대통령 경호, 집회 관리, 이태원 등 세 가지는 각각의 위험을 예정하고 있었다. 이 세 가지 위험에 대한 예측·예방에서 행안부, 서울시, 경찰청을 중심으로 하는 관련 기관들은 순위를 정하고 있었다. 이태원을 맨 마지막으로 미룬 것"이라며 "이런 정책 판단은 누구로부터 이뤄졌고, 명시적 명령은 아니겠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라고 했던 업무 마인드로부터 연루된 것인지, 나아가 (참사) 당일에 근접하면서 경찰을 배분할 때 잘못된 판단이 있었는지, 대통령 경비를 최우선 순위로 둬야 했던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해 검토를 해야 한다. 여기에 행안부 장관의 책임, 경찰청장의 책임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해 한 대표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을 예시로 들었다. 그는 발언문에서 당시 헌재가 "국민의 신임 여하가 탄핵을 결정하는 한 요소에 해당한다고 선언"했다면서 "정책결정권을 갖는 고위공직자의 경우 책임 귀속은 행위책임이 아니라 그러한 정책선택이나 정책판단의 결과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신뢰 여부에 달려 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이해된다"라고 말했다. 국가가 어떤 정책을 우선하는지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 대표는 안전이 우선되지 않은 판단의 지속을 통해 재해가 발생하면,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정부에서는 권한의 정도에 따라 책임을 분배하고, 이태원 참사의 경우 책임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관련 법령, 재난 책임기관의 안전 조치 의무 제한한 것 아니다"

재난 책임기관의 역할과 법적 책임 문제도 지적됐다. 오민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10·29 참사 TF 공동간사 변호사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 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지위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 변호사는 앞선 용산구청, 행안부의 이태원 참사에 주최자가 존재하지 않아 법적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들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용산구가 이미 3년 전부터 핼러윈 시기 이태원 거리에 밀집 인파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점, 참사 사흘 전에 '핼러윈데이 대비 유관기관 간담회'에서 안전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충분히 인지됐던 점 등을 비추어 봤을 때 대응하지 않은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지역 축제 개최 시 안전관리 계획 수립과 안전 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정하지만(제66조의11), 이는 "법이 정하는 '지역축제'인 경우에만, 나아가 주최자가 있는 경우에만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안전 관련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고 제한한 규정으로 볼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해당 규정은 "제8장 '안전 문화 진흥'에 마련된 규정인데 해당 조항이 마련될 당시 개정 이유가 안전 문화 진흥을 위한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장의 의무를 정하면서, 그 일환으로 중앙행정기관 등이 축제를 주최할 경우 안전관리계획을 세우는 등 안전 문화를 증진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였음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 관련 피해자 권리 옹호 측면에서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정부의 책임이 강조됐다. 이태호 참여연대 운영위원장(4.16연대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참사' 대신 '사고'로, '피해자' 대신 '사망자'로 표현하는 등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국가 책임의 인정을 회피"했다면서,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들을 참사 발생의 원인 제공자(가해자)로 매도했다. 피해자의 일부인 생존자를 수사대상으로 간주했다"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 운영위원장은 "(참사 피해자들의) 재난 발생 이후 국가 등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적극적이고 의미 있게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와 특히 "피해자들이 모임이나 단체를 조직·운영할 집합적 권리"가 침해됐다고 했다. 피해자의 참여권이 침해됐다는 것이다.

한편 민변은 공익인권 변호사들로 구성된 '10·29 참사 TF'를 통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대응해오고 있다. 관련해 하주희 민변 사무총장은 "피해자 몇 분이 개인적으로 (민변에) 연락을 줬다. 앞으로 피해자 대리인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법적 대응과 관련해서는 바로 증거보전 신청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향후 궁극적으로는 국가배상을 전제로 해 관련 자료에 대해서는 보전하고, 법적 조치는 조사 진행 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필요에 따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민변과 참여연대가 공동 주최했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셀프 조사의 문제, 법적·정치적 책임 등을 지적하는 것을 통해 재발 방지 대책에 관한 논의 방향을 사회에 알리고자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