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시민사회, 이태원 참사 관련 정부에 집단 행동 시사

대통령의 사과, 독립적 조사 기구 구성 등 촉구…참사 피해자 "시간은 약이 되지 못한다"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재난∙산재 참사 피해자단체와 종교∙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부에 요구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시 "계속해서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모을 것이며, 함께할 수 있는 행동"을 하겠다고도 밝혔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21개 단체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진정을 담아 사과할 것 △독립적·공정한, 피해자 중심의 진상규명 △피해자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을 요구했다.


요구안과 관련해 단체들은 "사과는 책임을 지는 시작점"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경찰, 지자체 책임자가 희생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현재 경찰이 경찰을 수사하는 것이 신뢰를 획득하기 어렵다"면서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수사·조사가 필요하며, 조사와 재발 방지대책 마련 과정에서 피해자와 시민들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세부적인 안을 밝히진 않았으나,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피해자 지원과 관련해서는 피해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제공,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절차 수립, 사고 원인 및 지원에 관한 정보 공개, 피해자들이 원치 않는 정보 유출 통제, 피해자를 향한 폄훼·혐오 발언에 대한 단호한 대처 등을 요구했다.

법률, 노동, 종교 등 영역별로 제기된 문제들, 모이는 목소리

단체들은 정부가 '주최자가 없다'는 말로 시민 안전 보호 의무를 회피하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라며 "헌법 제34조는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찰관 직무집행법>과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서도 경찰과 지자체의 안전관리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정부의 말대로 매뉴얼도 없고 주최자도 없었다면 더더욱 정부와 경찰과 지자체에 안전관리의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해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법적인 책임은 용산경찰서, 서장, 청장,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안전에 책임 있는 부처의 지휘 체계 라인에서 보고와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는 직무 유기에 해당하는지, 나아가 형사상의 업무상 과실 등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생명의 침해에 대해서 국가 배상을 청구할 법적 책임을 국가가 지는가에 대한 부분이 있다"라며 경찰이 참사 당시 10만 명 이상이 이태원 일대에 집결할 것이라는 점을 인지했음에도 경찰력이 137명에 불과했던 점 등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수사 방향에서의 문제도 지적됐다. 경찰이 사고 현장의 폐쇄회로(CC)TV 영상과 SNS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 조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핼러윈 참여자의 행위를 문제 삼아 희생양을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면서 또한 "112 신고 대응 미비를 이유로 일선 경찰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닌가도 우려된다. 책임에는 지위고하가 없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참사가 발생하게 된 구조적 문제와 작동하지 않은 안전관리 시스템,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 경찰 대응의 적정성"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현장의 사진, 영상들이 온라인상에서 퍼지며 2차 가해가 유발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대책이 촉구됐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은 지금까지도 무분별한 선정 보도, 비극적 현장의 영상·사진을 반복해 미학인 주장과 유언비어에 대해 충분한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출처조차 없이 사용하고 있다. 참사의 원인 규명을 가로막는 무리한 억측과 마녀 사냥식 희생양 찾기 보도를 하고 있다"면서 또 "현장 사진과 영상을 퍼뜨리는 시민과 이를 방치하는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번 이태원 참사가 안전 관련 규제 완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매년 반복된 행사에 안전 중심의 인력이 배치되지 않은 이유는 정부가 노동자 시민의 생명을 우선으로 하는 여러 기조·방향을 후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안전과 관련한 규제 완화가 지속 추진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그 시행령을 개악해 협소하게 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면서 "지난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도 그전 정부가 축제와 관련한 안전 대책의 규제 완화를 추진했고 기존의 많은 시민 재난 참사에서도 단 한 번도 책임자가 처벌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종교계를 대표해 민김종훈(자캐오) 신부(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는 "지난 29일, 이태원 한 골목에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잠시 자취를 감췄다. 분명 다 갖춰져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시스템과 엉성한 프로세스들로 인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간절히 필요했던 국가와 사회의 도움을 만나지 못했다"라며 "이번 사회적 참사로 인해 상처받고 슬퍼하며 고통받는 모든 분에게 말한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기도와 용기, 지혜가 되어, 이 깊은 아픔을 함께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은 약이 되지 못한다. 이제 국가는 대답해달라"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재난 참사, 산재 참사 피해자와 가족들의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이태원 참사처럼 이들의 요구는 국가를 향하고 있고, 이 중에는 가족 죽음의 원인조차 알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발언에 나선 이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국가를 향한 분노와 함께 연대의 말을 전했다.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소속 이영문 씨는 자신을 "6년 전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허재용의 엄마"라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 부모들은 내 자식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권리가 있다. 또 우리는 알아내야 할 의무도 있다"면서 "시간은 약이 되지 못한다. 이제 국가는 대답해달라"라고 말했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의 김미숙 씨는 "나를 지켜야 할 국가가 거꾸로 내 전부를 앗아가 버렸을 때 느꼈던 절망감이란 내가 이 나라 국민이란 게 진저리가 처질 정도로 참혹했다. 정부가 국민의 가치를 비참하리만치 격하시키는데 이런 정부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국가적 망신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은) 11번의 위험신호를 무시하지만 않았어도 살아있을 자식들"이라며 정부가 유족 앞에 사죄하고, 유족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우리와 같은 억울한 유가족이 생기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지난 8년이 넘는 시간을 싸워왔다. 그런데도 이런 어처구니없고 비극적인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것에 대해 세월호 가족들은 큰 자괴감과 함께 비통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라며 "지난 8년 동안 이 국가는 이 정부는 이 책임자들은 반성도 없고 바뀐 것도 없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순미 가습기살균제참사 범단체.victims 위원장은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참사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는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속하게 피해를 복구하고, 재발을 방지할 대책을 명확하게 해, 규범과 준칙으로 만들어 내놓아 달라"라고 요구했다. 또한 그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11년째 표류하면서 가장 서러웠던 것은 책임 전가, 미보상, 지연, 방치, 묵인 등이 아니"라면서 "가장 큰 서러움은 동병상련하며 의지하고,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위로·의지하고 싶은 피해자들의 모임을 돕거나 장려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방해하고 흩어 놓는 정부와 공직자들의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적 태도"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