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경찰이 집회 관리에 집중하는 사이, 다중운집행사 사고 이어져

이태원 일대 동원된 경력 137명…집회엔 한 건당 약 210명 경력 동원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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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 [출처: 은혜진 기자]

2006년 롯데월드 무료개방 행사 사고, 2009년 창녕 화왕산 억새 태우기 화재사고, 2014년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사고와 같은 다중운집행사에서 큰 사고들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지만, 관련법과 제도의 미비는 이태원에서 발생한 초유의 압사 참사로 이어졌다. 특히 다중운집행사에서의 안전은 민간경비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찰의 투입이 계속 요구됐지만 이번 참사 때까지 적정 동원 기준이 지금까지 부재했다. 이 기준이 부재해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지 못하고, 책임자의 재량에 의존하고 있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현재 한국에서 다중운집행사에서의 안전관리와 관련한 기본법은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 및 <공연법> 등 개별법이 있다. 그러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에서는 통상적인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의 임무나 역할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다. 다중운집행사에서 경력 동원을 위한 구체적 규정이 없다 보니 <경찰관 직무집행법>이나 <도로교통법>의 해석과 책임자 판단에 의해 경력을 동원하게 되는데 통일적이지 않은 규정은 지역 치안 여건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고, 안전 관리라는 목적에 실패하기도 한다. 합리적 경력 배치 기준안 마련에 대한 요구는 시민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2015년 7월 진행된 다중운집행사 안전관리 시 경찰의 역할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1)에 따르면 다수의 시민이 다중운집행사에서 안전 총괄 책임자를 경찰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중운집행사 안전 확보를 위해 경찰 채용과 경찰 참여가 더 활발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해당 조사에서 다중운집행사에서 안전책임을 담당하는 주체로 시민들은 ‘경찰’(50.5%)을 꼽았으며, 그 뒤로 ‘행사주최자’(22.9%), ‘해당 지자체’(22.4%)가 담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그 뒤를 이었다. 설문조사에 나선 대구가톨릭대학교는 “시민들도 다중운집행사를 안전하게 개최하기 위해서는 행사를 주최하는 자에 의하여 고용된 민간경비원과 경찰, 지방자치단체 등의 기관이 협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다중운집행사의 안전책임자는 안전전문가인 경찰이 중심의 안전통제에 높은 신뢰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분석했다.

같은 조사에서 다중운집행사 개최 시 경찰이 투입되는 기준에 대한 우선순위로는 ‘행사의 위험성’에 따라 경찰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94.0%로 가장 많았다. ‘행사의 주체’에 따라 경찰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80.1%, ‘행사의 규모’에 따라 경찰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58.0%, ‘행사에 참가한 유명인의 인기’에 따라 경찰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28.7%로 그 뒤를 이었다.

늘어나는 다중운집행사, 이미 안전 경고와 함께 경찰 역할도 강조됐지만

이태원 참사의 경우 이번 헬러윈 축제가 3년 만에 거리두기가 해제된 상황에서 젊은 층이 대거 운집할 것으로 예상돼 그 위험성이 이미 감지됐다. 최근 주말마다 이태원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인파가 몰렸고, 실제 사고 하루 전인 금요일부터 수만 명이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토요일엔 훨씬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해야 했다. 경찰 역시 이틀 전 종합치안대책을 발표하긴 했지만, 범죄예방 등에만 치중해 대규모 인파에 대한 각종 사고를 예측하지 못했다.

국무조정실에선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 안전관리시스템에 대한 국민 불신이 가중되면서 국민안전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개선 필요성이 대두”됐다며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을 통해 국민안전 분야를 대폭 강화할 수 있는 과제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경찰청의 역할 역시 제시됐다.

국무조정실 <‘비정상의 정상화’ 2차 과제 선정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은 2015년 2분기까지 다중 이용·운집시설 치안 강화를 과제로 내놨다. 경찰청은 다중이용시설(1,377개소)에 대한 구체적인 점검 지침 부재로 테러 대비가 부족한 점, 특히 지역 축제 및 공연 등 다중운집행사에 대한 달라진 법제도 미반영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안전관리 매뉴얼을 제정할 것이라 밝혔다. 2014년 8월 경찰청은 ‘다중운집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전국 지방경찰청에 배포했지만, 같은 해 발생한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참사 당시에도 지적됐듯 위험성을 판단할 사전 체크 리스트를 작성하지 않는 등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상운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017년 발표한 <외국경찰의 대규모 행사 안전관리로 본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이 보고서에서 “경찰이 (다중운집행사에 경력 투입을) 고려하는 기준에는 참가자의 흥분에 영향을 미치는 성향, 민간경비의 대응 방식에 대한 급격히 변화할 수 있는 요인 등에 대한 질적 평가항목이 부족하며, 구체적으로 참가인원 대비 대응인원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기준이 없어 사실상 책임자의 재량에 의존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경찰력 동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행사의 규모가 경찰력 동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질적 요인보다는 양적요인에 집착할 경우 경비경찰 활동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2009년 창녕 화왕산 억새 태우기 화재사고ᆞ, 2014년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사고를 예시로 들었다.

김 교수는 다중운집행사의 여섯 가지 특성을 꼽았다. ▲특정 제한된 장소에 많은 군중이 집중되는 성향이 강하다 ▲좁은 장소에 많은 군중이 집중돼 사소한 사고에도 큰 피해를 유발한다 ▲참여 군중이 행사성격, 연령, 외부 영향 요인에 따라 급격하게 흥분할 수 있어 돌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군중의 흥분 가능성이 높다 ▲위험이 연쇄적으로 반응하여 기하급수적인 피해를 유발한다 ▲행사에서의 통제권한이 경찰이 아닌 주최 측에 있지만 경찰력처럼 강제력이 바탕이 되지 않아 적극적인 통제의 어려움을 갖고 있다 등이다. 이는 전반적으로 이태원 참사에서 나타난 특징들과 비슷하다.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 [출처: 은혜진 기자]

집회·시위, 이태원 참사를 키운 원인?

이런 상황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어 경찰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장관은 도심 시위를 관리하기 위해 경비 병력 상당수가 광화문 쪽으로 배치됐다며, 지방에 있는 병력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계획이 짜여 있었다고도 했다. 제한된 경력을 필요한 곳에 투입하지 못한 상황을 장관이 나서 ‘집회·시위’ 탓으로 돌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집회·시위에서만 경력이 과도하게 투입되고 있다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8년 이래 불법, 폭력을 수반한 집회시위는 전체 집회시위 중 1% 내외에 그치고 있는 반면, 동원 경찰관 수는 거의 매해 집회시위 참가자수를 상회하고 있다”(2)는 지적이 계속됐다.

실제 2019년 경찰청 자체평가계획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법질서를 바로 세운다’라는 전략목표 하에 집회 동원 경찰부대수를 집회 1천 건당으로 측정해 평가하고 있었는데 2019년 경찰부대 2,109개를 동원해 ‘경비경찰역량강화’ 평가 부문 100%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대략 110~130명의 인력이 1개 중대의 경력이라고 얘기되는데, 최소한의 기준을 잡아 이를 100명이라 계산하더라도 집회 1천 건당 21만 900명, 집회 한 건당 약 210명의 경력이 동원된다는 계산이 도출된다. 단, 137명의 경력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와 경찰청이 참여 군중의 연령이 비교적 어리고, 거리두기가 해제된 상황에서 개최되는 흥분도 높은 행사, 거기에 이를 통제하는 주최 측이 따로 없다는 점을 고려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주말 이태원에는 1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측됐는데, 경찰은 참사가 일어난 29일 이태원 일대에 경찰력 137명만을 배치했다. 이는 앞선 집회들에 투입된 경찰 규모와 대조적이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는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 전국 집중 촛불대행진(11차)(촛불행동 주최)’과 ‘자유통일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 주최)’가 진행됐다. 경찰 추산 집회 참가자는 각각 약 1만 8천 명, 3만 5천 명으로 총 5만 3천 명 정도가 모였는데, 경찰은 이날 6,500여 명의 경찰 병력을 투입했다.

노동조합 주최로 진행된 집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2일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는 주최 측 추산 6만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날 세종대로에서 서울역, 한강대로를 거쳐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을 벌였는데 경찰은 이 일대에 1만여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지난해 7월 3일 민주노총이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려하자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원천봉쇄에 나섰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지난 8월 4일 하이트진로 맥주 생산·출고공장인 홍천공장 앞,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약 200명이 맥주 출하 차량 저지 시위를 벌이던 현장엔 경찰 800여 명이 투입됐다. 시위자의 4배에 이르는 경찰력이었다. 지난해 7월 30일에는 건강보험고객센터 직접고용 투쟁 관련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 예정됐는데, 전날 경찰은 집회 당일에 1천여 명의 인력을 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집회 장소였던 국민건강보험공단 앞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 농성장에는 원주시의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 조치로 인원이 50명에 불과했고, 민주노총 결의대회에는 민주노총 가맹 산하 대표자 10여 명만이 참여할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과도한 통제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집회·시위의 경우 예상 참가인원 대비 경력 동원 기준이 이전부터 정해져 있었고, 정권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데에만 관행적으로 수천 명의 경력이 동원됐다”라며 “안전한 집회 관리가 목적이라고 하지만 집회·시위에 수천 명의 경력이 동원돼야 할 이유가 없다. 교통 마비나 집회 대오 차량 등이 야기할 수 있는 사고들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 나오면 됐었지만, 이들 경력이 사실상 기본권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라고 지적했다.

<각주>
(1) 조사 기간: 2015년 7월 17일~27일까지 약 10일 간. 조사 대상: 전국 거주 19세 이상 성인 640명 대상. 조사 방법: 조사원들이 직접 대면 조사. 대구가톨릭대학교가 경찰청의 연구 용역 의뢰를 받아 수행한 연구의 일부로 활용됨.
(2)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질서의 조화를 위한 형사정책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