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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열심히 투표해도 ‘로 대 웨이드’는 돌아오지 않는다

[INTERNATIONAL1] ‘로 대 웨이드’의 한계와 민주당의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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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데이비스(36)는 지난 9월 1일 2,400Km를 이동해 뉴욕시에서 두개골이 발달하지 않은 태아를 임신중지했다. 그가 사는 루이지애나의 병원이 임신 중지 수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루이지애나에서는 지난 6월 24일 로 대 웨이드 판례가 전복된 뒤 임신 중지를 금지하는 세 개의 법안이 제정됐다. 이후 주판사는 이를 일시적으로 차단했지만, 임신 중지 허용요건이 불명확했고, 또 언제라도 다시 임신 중지를 불법화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병원이 이를 우려해 수술을 거부한 것이었다. 루이지애나에서 불법으로 임신중지 시술을 할 경우에는 감옥에 갇히거나 벌금을 받을 수 있으며 의료인 면허 또한 박탈될 수 있다.1)

그러나 데이비스의 사례는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폐지되면서 수많은 여성이 겪고 있는 고통의 일부분일 뿐이다. 지난 7월 오하이오에서 강간을 당한 뒤 임신한 10대 소녀는 인디애나로 이동해 임신을 중단해야 했다.2) 지난 8월 중순 플로리다법원은 임신중지를 요청한 16세 소녀에게 “그가 그러한 결정을 하기에는 너무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실제로 로 대 웨이드 판례 폐지 이후 미국 사회에서의 임신중지 권리는 광범위하게 후퇴했다. 단적으로 임신중지를 위해 필요한 평균 이동 거리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지 불과 2주 만에 약 2배 이상 증가했다. 임신 중지를 금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까지 포함하면 평균 이동 거리는 217Km로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전북 사이와 유사한 거리를 임신중지 시술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셈이다.3)

현재 미국에서는 최소 14개 주가 로 대 웨이드 판례 전복 이후 이른바 트리거조항을 통해 임신 중지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고 있다. 트리거 조항은 대법원의 임신 중지 폐지 결정과 동시에 임신 중지를 금지·제한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이외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주들이 임신 중지를 제한하거나 금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4)


로 대 웨이드의 한계

그동안 미국에서 임신중지 권리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최대 22~24주까지 보장됐다. 이러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전복된 것은 미국 여성에게는 역사적인 패배였다. 하지만 로 대 웨이드 시절에도 미국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가 전면적으로 보장됐던 것은 아니다. 로 대 웨이드는 3분기의 임신 주수를 기준으로 임신 중지 권리를 규제해, 임신 중지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허용했다. 또한 3분기에는 태아의 생존 가능성을 기준으로 임신 중지에 관한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프로라이프 세력의 주장도 받아들였다. 이외에도 판례가 보장하는 임신 중지의 권리 역시 평등이나 여성의 자율권이 아니라 사생활의 권리에 근거해 국가의 사회경제적인 책임은 외면했다.5) 더구나 다양한 제한 조치는 이러한 로 대 웨이드 판결마저 무력화했는데, 바로 하이드 수정안(Hyde Amendment)6)이나 케이시 판결, 트랩법과 같은 장벽이 임신중지의 권리를 가로막았다.

우선 1976년 제정된 하이드 수정안은 임신 중지에 연방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이는 로 대 웨이드 이후 우파가 쟁취한 첫 번째 입법적 승리였다. 결과적으로 로 대 웨이드 판결 뒤 약 30만 명이 메디케이드를 통해 임신 중지 시술비를 지원받았지만, 하이드 수정안이 통과된 이후 이 수는 수천 건으로 줄어들었다. 메디케이드가 65세 미만의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한 국민의료보조제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임금 여성 노동자, 유색인종, 장애인 등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임신 중지 권리부터 빼앗긴 셈이었다.7)

또 다른 장벽은 케이시 판례인데, 이는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사실상 무력화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케이시 판례는 로버트 케이시 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민주당)가 1982년 주법으로 임신 중지를 제한하자 미국 재생산 권리단체 가족계획협회가 소송을 제기해 나온 것으로 이후 임신 중지에 부당한 기준을 부과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판결은 태아의 생존 능력에 관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의 ‘3분기’ 프레임을 뒤집어 각 주가 1분기에도 임신 중지를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한 각 주가 ‘과도한 부담’을 부과하지 않는 한 임신 중지를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8) 이러한 케이시 판결이 나오자 각 주는 주법과 자치조례 등을 이용해 임신 중지 시술 병원의 시설과 인력 기준을 강화하고, 부모 동의와 대기 기간을 의무화했다. 각 주가 2021년 상반기까지 제정한 임신 중지 제한법은 모두 1,336개에 달할 만큼 이는 임신중지 권리에 광범위한 악영향을 미쳤다.9)10) 이러한 케이시 판결로 수많은 임신중지 규제 조치가 도입됐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것은 트랩법이었다. 트랩법은 임신 중지 서비스 제공자를 표적 규제하는 법률인데,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규정이나 자격, 시설에 관한 요건을 강제하며, 심지어 시설 요건으로 진료소 복도의 너비나 벽장 크기, 벽의 페인트 색상까지 간섭할 수 있게 한다.

공격하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공모

공화당이 백인우월주의자와 음모론자, 극단주의자와 보수적인 종교계를 동원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지했지만, 민주당이 그들에 맞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것은 아니다. 공화당이 앞장서 임신 중지에 대한 억압을 강화했다면, 민주당은 기껏해야 방어적인 조치에 머물렀다. 더구나 케이시 판례는 민주당 출신 주지사 때문에 나온 판결이었다.

그러면 민주당 정부들은 과연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우선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임신 중지자유법에 서명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집권 후인 2009년에는 이것이 최고 우선 사항은 아니라고 밝혔고, 실제로도 추진하지 않았다.11) 오바마는 멕시코시티 정책12)을 해제하기는 했지만, 하이드 수정안이나 구조적으로 임신 중지 권리를 제한하는 법제도는 방치했다. 오바마가 의료보험 제도 개혁 조치로 도입한 오바마케어 역시 임신 중지 관련 지원은 배제했다. 더구나 오바마의 반노동적인 경제위기 대책은 201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부상하는 배경으로 작용해, 각 주에서 임신 중지를 제한하는 조치가 급격히 증가하는 데 일조했다.13)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트럼프 정권이 되살린 멕시코시티 정책을 해제하는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폈지만, 유사한 한계를 되풀이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선 전 하이드 수정안 폐지를 약속했다가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14) 더구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전복된 뒤 낸 행정명령은 다급하게 대안을 찾는 여성들에게 화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더구나 바이든은 지난 7월 임신 중지에 반대하는 공화당계 채드 메러디스 변호사를 켄터키주 종신 연방판사로 임명하려고 했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철회하기도 했다. 낸시 펠로시 연방하원의장을 비롯해 민주당 고위 정치인들도 앞에서는 임신 중지 권리를 지지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텍사스 민주당 정치인 헨리 쿠엘라 등 임신 중지 권리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지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15)


선택이냐, 체제냐

이러한 민주당 정치인들이 지지하는 임신 중지의 권리란 기껏해야 선택권이다. 즉, 누구에게든 임신 중지할 자유는 보장되지만, 병원 문 앞에서 서성거리지 않을 수 있는 여건은 소수에게만 허락된다. 물론 로 대 웨이드 판결부터 임신 중지권을 프라이버시 권리로만 규정했을 뿐이다. 민주당은 임신 중지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했고,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는 여성과 유색인종, 사회적 약자의 권리는 모르는 체했다. 민주당이 떠받치는 자본주의라는 계급사회에서 임신 중지 권리가 보장되는 방식은 이런 식이었다.

이러한 민주당의 입장은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폐지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폐지된 지 2주 만에야 유산유도제와 응급 피임법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어 8월 3일에는 임신 중지를 위해 주 경계를 넘도록 지원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등 민주당 성향의 언론마저 이 조치들이 모호하며 임신 중지 권리 옹호자들의 요구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평했다.16)

이제 민주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17)를 앞두고 로 대 웨이드 판례 폐지를 선거운동에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임신 중지에 관한 헌법적 권리가 박탈된 상황에서 대안 입법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 공화당이 주도하는 백래시에 맞서기 위해 민주당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선동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발의한 여성건강보호법안(WHPA)18)과 임신중지접근보장법안(AEA)19)은 이미 온갖 장벽에 둘러싸인 로 대 웨이드 체제를 성문화할 뿐 구조적인 한계는 여전히 방치하고 있다. 더구나 2021년에 발의된 임신중지평등의료보장법안(EACH)은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에서조차 통과하지 않았다.20)

그러나 민주당은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폐지된 뒤 공화당에 대한 여론 악화로 반사 이익을 챙긴 집단이다. 9월 16일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46%가 민주당을, 44%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민주당이 우세한 데에는 임신 중지 권리 후퇴에 대한 분노와 다시 등장한 트럼프에 대한 반발이 민주당의 한계를 은폐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21)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번 중간선거 투표 결정 요인으로 49%가 일자리, 세금, 생활비 등 경제적인 문제를 선택했지만, 민주당이 내세우는 임신 중지 권리, 총기 제한, 민주주의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선택한 비율은 31%에 그쳐 중간선거의 결과를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또 유권자의 52%가 경제 문제에 대해 공화당에 동의한다고 대답한 반면,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38%에 지나지 않았다. 고유가나 인플레이션, 급격한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으로 지난 경제위기 이후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미국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곱게 표를 내줄 이유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누가 집권하든 그들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접근 가능한 임신 중지 권리를 옹호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갈수록 악화하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노동자・민중에 전가할 것이며, 그 첫 번째 희생자는 지금까지처럼 저임금 여성 노동자와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비정규직과 같은 사회적 약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로 대 웨이드 전복 역시 썩어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백인우월주의자, 음모론자, 보수적 종교집단들을 동원해 지키기 위한 미국 기득권들의 백래시였다. 따라서 임신 중지의 권리 보장 여부는 이를 쟁취하기 위한 여성 노동자계급과 사회적 약자의 투쟁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들이 주체가 되는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라는 계급사회 역시 변혁할 수 있을 것이다.22) 반격은 이미 시작됐다. 8월 2일 캔자스에서는 주민투표 결과, 임신중지권 보호를 삭제하는 주 헌법 개정안이 압도적인 표차(반대 59%, 찬성 41%)로 부결됐다. 미시간에서는 11월 유사한 주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워싱턴, 뉴욕 등 미국 전역에서는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1) 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22/sep/14/louisiana-woman-skull-less-fetus-new-york-abortion
2) 그러나 인디애나 역시 9월 15일 대부분의 임신중지가 불법화했다.
3)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2-02139-3
4)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2/us/abortion-laws-roe-v-wade.html
5) https://jacobin.com/2022/08/abortion-reproductive-rights-roe-v-wade-law-privacy-equality2)
6) 법안 이름은 대표 발의자인 일리노이 공화당 하원의원 헨리 하이드의 이름을 땄다.
7) 메디케이드는 미국의 국민 의료 보조 제도로 65세 미만의 저소득층과 장애인 등 1710만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 가임 연령 여성 5명 중 1명 꼴이다.
8) 연방대법원은 펜실베니아 임신중지통제법 5개 조항 중 배우자 통지 요건을 제외하고 모두 인정했다.
9) https://www.guttmacher.org/article/2021/07/state-policy-trends-midyear-2021-already-worst-legislative-year-ever-us-abortion
10) 지난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지함과 동시에 임신 중지의 합법·불법화 여부를 각 주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케이시 판례를 폐기한 이유 역시 별도의 제한 규정을 둘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11) https://www.leftvoice.org/im-not-waiting-until-after-the-november-midterms-for-my-rights-speech-by-a-feminist-activist-in-detroit/
12) 임신중지를 시술하거나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국제 가족계획단체들에 대한 재정지원 금지 조치
13) 경제위기가 시작한 상황에서 집권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을 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도산하는 은행과 기업은 수억 달러를 지원해 회생시키면서도 실직과 강제퇴거, 학자금과 의료비 부채 등의 위기를 겪었던 수많은 노동자계층은 외면하면서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화당은 2010년 11월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1948년 이후로 가장 성공적인 승리를 기록했다. 이후 당선한 공화당 의원들은 ‘프로라이프’를 의정활동의 주요 의제로 채택하고 임신중지권을 공격하는 데 전념했고 실제로 각 주에선 임신중지권을 제한하는 법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14) https://www.politico.com/news/2022/02/15/ban-federal-funds-abortion-democrats-00008761
15) https://www.democracynow.org/2022/5/16/voting_wont_save_abortion_rights
16) https://www.nytimes.com/2022/08/03/us/politics/biden-abortion-executive-order.html
17) 2022년 중간선거에서는 하원 의석 전체 435석, 상원 의석 100석 중 35석을 새롭게 선출한다. 이와 더불어 39개 주와 준주의 주지사를 비롯해 주 주요 공직, 기타 지방 선거 등이 실시된다.
18) 주정부의 임신중지 제한을 금지하며, 임신중지 서비스 제공자에게도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제한을 금지한다.
19) 다른 주에서 임신중지 시술 지원을 금지하는 주법을 금지한다.
20) 공화당 측에서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9월 15주 이후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21) https://www.nytimes.com/2022/09/19/us/politics/inflation-gop-midterm-elections.html
22) 미국 임신중지 권리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사항은 11월 출간 예정인 『검은 시위』를 참조.
  • 일견

    은희님 오랜만이어요. ㅎ
    제가 시력이 안 좋아서 글은 잘 못 읽겠네요. 그런데 은희님이 국제분야를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책을 잘 안 봐서 그런지 낙태, 폐미니즘 등 일련의 성적 이해가 떨어지더라고요. 은희님은 한번 기본부터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볼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아, 그리고 반감과 이해관계의 차이를 더 생각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맑스레닌주의는 일정한 과학성에도 불구하고 반감으로 머물렀다고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