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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일곡유인호학술상에 《고병권의 자본강의》 선정

“기존의 해설서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자본》 해설서의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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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일곡유인호학술상’ 수상자로 《고병권의 자본강의》(천년의 상상 2022)의 저자 고병권 씨가 선정됐다.

일곡유인호학술상위원회는 15일 학술상 선정자를 알리며 “이례적으로 다수의 학술상 후보 도서가 추천돼 올라왔고, 심사위원회의 심사숙고 끝에 제14회 일곡유인호학술상 수상작으로 고병권 선생님의 《고병권의 자본강의》를 선정했다”라고 밝혔다. 《고병권의 자본강의》는 마르크스의 《자본》 1권을 해설한 책으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격월간으로 연속 출간한 《자본》 1권 강의록 12권을 한 권으로 묶어낸 책이다.

최갑수 일곡유인호학술상 심사위원회 위원장은 “기존의 《자본》 해설서들이 대부분 《자본》의 핵심 구절의 인용에 그친 것과는 달리, 《고병권의 자본강의》는 《고병권의 자본강의》의 주석과 인용된 문헌들은 물론, 주요 용어들의 어원까지 세밀하게 검토해, 마르크스가 《자본》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바를 거의 그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곱씹어 재현한다”라며 “이 과정에서 고병권은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vogelfreie Proletarier)를 재발견하여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개념을 확장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라고 평했다.

시상식은 오는 8일 오후 5시 건국대학교 새천년기념관 통일인문학연구단 세미나실에서 개최되며, 일곡기념사업회와 맑스코뮤날레가 공동주최했다.

일곡유인호학술상은 일곡 유인호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일곡기념사업회’가 제정한 학술상으로, 2008년 이래 매년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수상하고 있다.

고병권 씨는 수상소감에서 “《자본》을 혼자 읽기보다 동료들과 함께 읽기를 권하지만, 누군가 혼자서라도 읽어나갈 생각을 한다면 그의 길동무가 되어줄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누군가 《자본》의 독서길을 걷다가 어떤 단락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혹은 다른 사람은 그 단락을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할 때 제 생각을 들려주는 책을 쓰려고 했다”라고 밝혔다.

고 씨는 또 “《자본》이 자본가와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적 생산양식으로서 지위를 확고히 하면 고용관계 바깥에 있는 다양한 존재들, 실업자들은 물론이고, 주부들, 심지어는 동물들과 자연생태계 전체가 넓은 의미에서 자본 관계 안에 포섭된다”라며 “운명이 자본축적과 연동될 수밖에 없다. 저는 《자본》이 이들의 운명을 어떻게 기술하는지(혹은 기술하지 못하는지)를 드러내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제14회 일곡유인호학술상 선정작 심사평

일곡유인호학술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최갑수

2022년 제14회 일곡유인호학술상은 고병권의 《고병권의 <자본> 강의》를 선정합니다. 민중적 비판경제학자 유인호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 그것이 후학들에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제정된 일곡유인호학술상은 일곡유인호기념사업회와 맑스코뮤날레가 공동 주관하여 수상작을 선정해오고 있습니다. 올해 심사의 대상이 된 것은 학술상 심사위원회가 위촉한 추천위원들이 최근 2년간 비정규직 연구자들이 출판한 단행본 가운데서 추천한 저서들로서,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남자들의 방》, 《좀비, 해방의 괴물》, 《공동자원체제》, 《고병권의 <자본> 강의》 등 모두 다섯 권입니다.

심사위원회는 이 저서들이 모두 진보적 관점에서 저술된 중요한 학술적 기여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실제로 이 책들은 이른바 마트의 '캐셔 노동자'들과 유흥업소 '아가씨 노동자'들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 여성 노동의 착취와 억압, 차별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거나, 좀비 영화 비평의 형식을 빌려 팬데믹 이후 재난이 일상화되고 있는 세계로부터의 출구를 모색하는가 하면, 최근 포스트 자본주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커먼즈(commons)에 관한 본격적인 소개를 시도하거나,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새로운 대중적 해설을 제시하고 있는 데서 보듯이, 모두 일곡 유인호 선생의 진보좌파 이념을 계승하고 맑스코뮤날레의 정신에 부합하는 노작들입니다.

심사위원회는 위 다섯 권의 후보작들에 대해 한 달 이상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 《고병권의 <자본> 강의》를 학술상의 수상작으로 선정하고, 다른 네 권의 책들의 저자들에 대해서는 향후 저술을 기대, 격려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수상작인 《고병권의 <자본> 강의》는 저자 고병권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격월간으로 연속 출간한 《자본》 1권 강의록 12권을 다시 한 권의 책(총 1280쪽. 200자 원고지 약 1만 매)으로 묶어 출판한 것으로서, 《자본》 1권에 관한 한 국내외를 통틀어 사상 최대의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고병권의 <자본> 강의》는 옛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와 대동소이하게 《자본》을 '《자본》의 경제학', 즉 '마르크스 경제학'과 동일시해 온 기존의 해설서들을 넘어서 내용상으로도 새로운 지평을 연 획기적인 저작입니다. 고병권은 마르크스가 《자본》 1권의 부제로 제시한 '정치경제학 비판'의 관점에서 《자본》을 해설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을 '정치경제학 비판'의 방법론 혹은 철학으로만 환원하여 소외론, 물신성론, 가치형태론의 변증법을 특권화하고 《자본》에서 마르크스가 이룩한 '경제과학'의 혁명과 '《자본》의 역사학'을 부차화하지 않습니다. 그는 기존의 해설서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자본》에 제시된 가치론, 화폐론, 축적론 등 '《자본》의 경제학'의 주요 이론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텍스트에 근거하여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자본》의 철학', '《자본》의 역사학', '《자본》의 정치학', '《자본》의 생태학', '《자본》의 페미니즘', '《자본》의 문학', '《자본》의 언어학' 등으로 보충합니다. 이를 위해 고병권은 《자본》을 한편으로 마르크스의 동시대 저작, 그의 초기 및 만년의 저작들과 연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홉스, 니체, 푸코 등의 텍스트와 접합시킵니다. 기존의 《자본》 해설서들이 대부분 《자본》의 핵심 구절의 인용에 그친 것과는 달리, 《고병권의 <자본> 강의》는 《자본》의 주석과 인용된 문헌들은 물론, 주요 용어들의 어원까지 세밀하게 검토하여, 마르크스가 《자본》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바를 거의 그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곱씹어 재현합니다. 이 과정에서 고병권은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vogelfreie Proletarier)를 재발견하여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개념을 확장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합니다. 또 기존의 《자본》 연구서와 해설서들 상당수가 연구자를 독자로 상정하고 《자본》 관련 논쟁과 쟁점 검토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이른바 '학술적 글쓰기'를 벌인 것과 달리, 고병권의 책은 노동자 대중을 주된 독자로 설정합니다. 구어체인 강의록을 그대로 출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요컨대 《고병권의 <자본> 강의》는 마르크스의 《자본》 1권의 전체상을,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핵심에 탄탄하게 기초하면서도, 편향되지 않고 균형감 있게, 또 최대한 충실하게, 그리고 마르크스의 《자본》이 의도했 던 독자층인 일반 대중들을 염두에 두고 친절하게 재현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많은 해설서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자본》 해설서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회는 《고병권의 <자본> 강의》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면서, 니체에 관해 다수의 대중적 해설서를 출판한 저자가 연륜이 쌓이면서 거꾸로 '좌경화'하여 이전에 니 체에 대해 기울였던 것 이상의 열정과 노력을 《자본》 해설서 저술과 관련 대중 강연에 바침으로써 마르크스 독자층의 확대에 크게 이바지한 것, 저자가 장애인 투쟁 등 소수자 운동과 연대하면서 실천적 지식인의 삶을 살아온 것, 또한 일곡 유인호 학술 상의 취지에 잘 부합한다는 점을 아울러 확인합니다. 심사위원회는 고병권 선생을 제 14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이 학술상의 수상을 계기로 《자본》 2권, 3권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다른 주요 저작들에 대해서도 수상작처럼 듬직한 '동반자'(companion)를 계속 생산해 주길 기대합니다. 고병권 선생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연구자들이 한국 마르크스주의, 더 나아가 진보 담론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또 분발해 주기를 당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