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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드러낸 차별과 위험을 당장 없애야만 하는 이유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③]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기획 낭독극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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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는 추세다. 얼마 전까지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문제는 코로나가 확산 추세이든 감소추세이든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이 사회적 위치에 따라 불평등하게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국가의 조치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홈리스,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는 여전히 코로나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지만 국가는 관심이 없다. 경제회복의 논리로만 일상 회복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삶은 존엄할 수 없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위 문제의식으로 당사자들과 함께 낭독극<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을 만들었다. 낭독극을 준비하면서 지난 시기를 되새기고자 코로나19와 인권의 현실을 연재한다. (편집자)


  이번 낭독극엔 검은 옷을 입은 수어통역사 두 명이 함께했다. [출처: 전병철]

홈리스와 장애인,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이주 노동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2020년 1월, 국내에서 COVID-19 첫 감염자가 발생하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마스크를 써야 할 만큼 코로나는 우리 삶의 많은 영역을 무섭게 휩쓸었다. 코로나가 확산한 지난 2년 8개월 동안 우리의 눈과 귀에 별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지닌 사람들이 지난 9월 3일 잠시나마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대도시에 비해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방 거주민으로, 게다가 2년 전 이주해 이곳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나의 몸마저 결국 2년 7개월 만에 육안으로 확인도 어려운 그 작은 바이러스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이 글을 쓰는 2022년 9월 13일 기준, 국내 누적 확진자 수는 총 2,404만 1,825명.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코로나 감염자이다.

동네 의원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후, 담당 보건소에서 바로 문자가 왔다. 증상이 악화할 경우 대처 방법(원스톱진료기관에서 대면진료 및 먹는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다)과 생활지원비 신청 방법까지 포함한 안내 문자였다. 당시 내가 프리랜서로 일하던 자리는 회사가 재빨리 다른 사람으로 대체했다. 함께 감염된 남편은 직장으로부터 격리 기간 동안 유급 병가 처리되니 잘 회복하고 격리 해제 후에 보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주일의 격리 기간은 고립과 폐쇄의 시간이었지만 감염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휴식의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가족 모두 증상이 심각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 증상이라는 것은 모든 감염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감염자 100명 중 한 명은 목숨을 잃었다. 누구에게 심각한 증상이 나타날지, 그로 인해 죽을 수도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지난 2년 8개월간 전 세계인이 감당해야 했던 불안이었다.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나와 가족이 무사할 수 있던 것은 ‘다행이었다’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우리의 감염과 격리는 다행히, 그렇게 지나갔다. 함께 위기를 극복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죽음은 과연 행(幸)의 있고 없고 만으로 판가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어쩔 수 없지 않냐’라는 말로 묻을 수만은 없는 피해와 죽음은 없었을까.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피해와 죽음은 없었을까.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에서 후원 행사로 낭독극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홈리스, 장애인,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이주 노동자의 코로나 재난 이야기를 낭독극 형식으로 들려주는 행사라고 했다. 우리 대부분이 안전을 위해, 감염으로 인한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접촉과 거리두기에 몰두했을 때, 그들의 삶은 어땠을지 궁금했다.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낭독극은 2020년, 정부가 첫 방역 지침을 내리고 그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코호트 격리로 시설 안에 갇혀 지내다가 감염되고 사망에까지 이른 장애인들의 이야기, 통역 서비스의 부재로 정부 지침을 이해할 수조차 없었으며 마치 자신들을 감염원으로 취급하는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대놓고 차별을 겪었던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 공공기관의 필수 인력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동자들과 달리 마스크 품귀 현상 때 마스크를 지급받지 못하고 백신 우선 접종에서도 제외됐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 코로나로 인해 큰 피해를 겪었던 관광 서비스 산업에서 가장 먼저 해고 대상이 됐던 노동조합 가입 노동자들과 코로나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이유로 용역업체가 변경돼 해고된 청소 노동자들의 이야기, 주민등록증 미소지로 재난지원금도 받지 못하고 무료급식소 등의 시설 폐쇄와 노숙인 지정병원 감소로 방치됐던 홈리스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자랑했던 K방역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코레일네트웍스 비정규직 노동자 서재유: 아프면 쉬라는데 비정규직이 쉴 수 있냐고. 고용도 임금도 불안해서 쉴 수가 없잖아.

이주노동자 우다야 라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강제 추방당할까 봐 백신 맞으러 가지 못했어요. 코로나에 감염돼도 고국으로 가지도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었는데 애도해줄 사람도 없어요. 본국에서 가족이 오기도 어렵고.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 활동가 안소율: 중증장애인이 활동지원사 없이 자가격리를 할 수는 없잖아. 먹지도 씻지도 못하는데 재택 치료가 말이 되냐고. 재택 치료가 아니라 방치야. 그러다 죽은 장애인이 많아.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학생회장 로즈마리: 노숙인 시설에 다니는 사람 중에 일하러 다니는 사람도 많아. 그런데 시설에 있으려면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방역 지침을 만들었어. 그러면 일하러 다닐 수가 없잖아. 이게 무슨 대책이냐고. 게다가 홈리스들은 밥 한 끼 먹으려고 해도 PCR 검사지를 달래. 아니 일주일마다 코를 쑤시면 되겠냐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는 함께 위기의 시기를 잘 극복하고 버텨온 한 공동체 구성원이었다’는 말은 그들 앞에서 차마 꺼낼 수 없는 것이었다.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자가격리가 가능한 집이 있는 사람, 주민등록증이나 외국인등록증 소지자, 활동지원사의 도움 없이도 거동이 자유로운 비장애인, 해고 위험이 없는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면 코로나로 인해 홀로 짊어져야 하는 위험의 무게는 몇 배로 가중됐다. 국가나 이웃의 도움 없이 죽기도 했다. 차별은 엄연히 존재했다.

낭독극은 코로나 재난이 들춰낸 문제를 마치 ‘마수가 할퀴고 지나간 자국 같다’고 자주 묘사되는, 태풍이나 홍수가 휩쓸고 간 지역의 잔해처럼 보여줬다. 차이가 있다면,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한동안 온 국민과 언론의 관심에 더해 보여주기식으로라도 정치인들의 관심이 재해복구에 쏠리지만, 코로나라는 전 지구적 재난이 들춰낸 우리 사회의 문제는 인권단체에서 기획한 낭독극에 제 발로 찾아가야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홈리스와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이주 노동자가 겪는 차별과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삶의 위험의 문제는 앞서 말한 행운이 있고 없고의 문제라기보다는 결국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보인 관심과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노력의 부족 때문이다. 관심조차 미미한데 문제 해결은 어림도 없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보장받는 삶을 누릴 자유와 권리, 홈리스도 안전하고 편안한 주거지라는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받을 자유와 권리, 어떤 재난적 상황이 발생해도 노동 기회를 위협받지 않고 미래를 보장받을 자유와 권리, 한국인이 아니어도 이 땅에서 차별받지 않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자유와 권리, 모두가 존엄한 인간으로 살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는 길은 찾는 것은 지금껏 차별과 위험을 가장 많이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당장 시작돼야 한다. 이것은 나 아닌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언제고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집을 잃을 수 있으며, 일자리를 위협할만한 재난을 겪을 수 있고, 태어나고 자란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조건들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야 할 의무와 권리를 박탈할 이유가 결코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