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팔레스타인은 원래 그래”

[INTERNATIONAL3] 무감각한 인종청소-마사페르 야타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지금 이스라엘 점령군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폭압의 강도와 속도를 높이고 있다. 8월 5일 이스라엘은 3일 동안 가자지구를 대규모로 폭격해 주민 49명을 살해하고 360여 명에 중경상을 입혔다.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중 하나인 ‘이슬람 지하드’ 전투원을 살해한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살해된 조직원은 14명, 살해된 아동 청소년은 17명이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뇌관과도 같은 예루살렘의 이슬람 사원 알아크사에 대한 불법 정착민의 침탈도 극에 달했다.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점령군(국경 경찰)이 사원의 신자와 시위대를 공격한 것은 물론이다. 서안지구 제닌과 나블루스 등 주요 도시에서는 야간 군사작전으로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그리고 ‘부수적으로’ 주민들을 살해하고 있다. 2021년 아무 근거 없이 ‘테러 단체’로 지정한 팔레스타인의 주요 인권·시민사회 단체 6곳에 한 곳을 더한 7개 단체의 활동가들을 심문하며 활동을 계속할 시 감옥에 가두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폭력과 살해의 뉴스 속에 국제 사회는 늘 그렇듯 형식적으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것 외에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런 무관심 속에 또 하나의 대규모 인종청소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서안지구 마사페르 야타 지역에서다.

법이 허락하는 인종청소

마사페르 야타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헤브론 남쪽의 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군이다. 569명의 아동을 포함해 약 1,150명의 주민이 12개 마을에 거주한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지난 5월 4일, 이스라엘 점령 당국의 마사페르 야타 마을 철거 계획을 중단해 달라는 마을 주민들의 청구를 최종 기각했다. 점령군은 바로 철거를 재개했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자행된 1948년 나크바(대재앙이라는 뜻의 아랍어, 이스라엘 건국 시 자행된 인종청소) 이후 단일 마을로는 최대 규모의 철거가 이뤄지며 이스라엘 건국 이전부터 살아온 주민들은 난민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 당국의 마사페르 야타 철거 계획과 이에 맞선 주민들의 싸움은 이미 1980년에 시작됐다. 1981년 이스라엘 점령 당국은 마사페르 야타의 일부 지역을 ‘군사보호구역 918’(Firing Zone 918)로 지정했다. 이후 ‘사루라’와 ‘카루베’ 두 마을이 철거당해 통째로 사라졌다.

1999년 점령 당국은 마사페르 야타 주민 700명이 “군사보호구역에 불법적으로 살고 있다”며 퇴거 명령을 내렸다. 그에 근거해 이스라엘 점령군은 주민 대다수를 강제 추방하고 집과 재산을 파괴·몰수했다. 그런데 이 퇴거 명령은 거주민에게 군사보호구역과 관련된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기존의 이스라엘 군사명령과 배치된다. 주민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몇 달 후 이스라엘 대법원은 최종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주민 대부분이 마을에 돌아가도 된다는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도 점령군은 간헐적으로 퇴거를 실행했다.

2012년 이스라엘 점령군은 자신들에게 마사페르 야타 13개 공동체 중 8개 공동체를 추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주민들이 경작과 방목을 위해 주말과 유대교 명절에만 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했다. 법정 투쟁으로 이 계획은 잠시 중단됐다.

  2021년 1월 27일, 마사페르 야타 ‘아즈왓딘’ 마을 이슬람 사원 철거에 사용된 현대중공업의 굴착기.
[출처: 팔레스타인 연대기 홈페이지]

2020년 8월 대법원의 심리에서 이스라엘 점령 당국은 군사보호구역 지정 당시 주민들이 마을에 정주하고 있지 않았다며 이들이 계속 마사페르 야타에 살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물론 날조다. 이미 심리가 있기 한 달 전에, 1981년 당시 농업부 장관이던 아리엘 샤론이 이스라엘 점령군에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 이주시킬 방안으로 군사훈련 구역을 지정하라고 지시했던 청문회 내용이 법원에 제출됐다. 주민의 정주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대법원은 올해 5월 4일, 군사 훈련을 위해 팔레스타인 주민을 추방하는 것이 이스라엘 법상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고 판결했다. 주민들이 가진 토지 권리 문서도 아무 소용 없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1999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소를 제기한 후 23년간 판결을 지지부진하게 미루며 그사이 이스라엘 점령군이 간헐적으로 자행하는 불법 철거를 묵인했다. 그리고는 국제법상 명백한 불법행위를 합법화해 주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판결문엔 소를 제기한 주민들에게 가구당 815만 원(2만 셰켈) 씩 소송비용을 지불하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불법 정착촌 건설을 위해 마련된 군사보호구역

이스라엘 대법원은 주민들이 정주하지 않는다는 이스라엘 점령 당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점령 당국은 특정한 계절에만 주민들이 마사페르 야타에 올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유목 생활을 하는 주민들은 1년의 절반은 마사페르 야타에서, 나머지 절반은 다른 지역의 동굴에서 보내지만, 이는 유목 생활의 특성에 따른 것인데다 마사페르 야타에서 보내는 6개월은 마을에 정주하며 농지도 경작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들은 땅을 소유하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 당국과 대법원의 태도는 애초에 팔레스타인 원주민이 버젓이 살고 있던 땅을 “주인 없는 땅, 황무지”라 날조하며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정당화했던 건국 초기부터 일관되기까지 하다. 그리고 당시의 인종청소는 오늘의 인종청소와 조응한다.

군사훈련은 표면적 이유일 뿐 이스라엘의 목적은 명확하다.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인종청소하고 그 위에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짓겠다는 것이다. 애초 7년이나 마사페르 야타에서 군사훈련을 하지 않던 이스라엘은 법원에서 유리한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2021년 갑자기 군사훈련을 재개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목적이 인종청소였음은 여러 문건에서 드러난다. 지난 7월 ‘일급비밀’ 문서가 발굴됐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당시 농업부 장관 아리엘 샤론이 1979년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의 정착촌 부서와 만난 회의록이다. 2001년 총리를 역임한 샤론은 이 회의에서 군사 구역을 지정하는 목적이 오직 이 땅을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넘겨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1967년) 6일 전쟁이 끝난 뒤 나는 내 부대와 함께 여전히 시나이반도에 있었습니다. 시나이에서 이 군사 구역들을 그렸죠. 이걸 그린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정착촌을 위해 땅을 준비해 놓기 위해섭니다.”

1980년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와의 또 다른 회의에서 샤론은 자신의 고민을 공유한다. “후라(네게브의 베두인 마을)엔 수천 명의 아랍인이 있고 마을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헤브론의 산 지역(마사페르 야타) 쪽 아랍인들과 접촉하고 있고요. 그 경계는 실제로는 베르셰바 인근까지 오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내가 수만 명의 유대인을 디모나 혹은 아라드로 보낸다고 칩시다. 그러면 이 차이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요? 네게브의 베두인과 헤브론 산의 베두인을 어떻게 갈라놓을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 8미터 높이의 장벽을 세워 헤브론과 네게브의 물리적 이동을 완전히 단절시킨 것은 2002년 이후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교류를 공식적으로 막은 것은 1987년 전국적인 민중봉기 이후다. 이때까지는 주민들의 이동과 교류를 전면 통제할 수 없었다. 아무튼 샤론은 마사페르 야타를 군사훈련구역으로 지정했고, 이를 통해 “산 중턱의 아랍 주민들이 (네게브) 사막으로 퍼지는 것”을 막아내 이들을 갈라놓는 데 성공했다. 1981년 1월 정착촌 건설을 위한 청문회에선 “헤브론의 산 지역(마사페르 야타)과 네게브의 유대인 거주지를 떼어놓기 위해 정착촌을 건설해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완충지대엔 ‘인종 경계’(ethnic border)란 이름을 붙였다. 샤론은 계획대로 네게브와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완충지대’를 만들고 군사보호구역을 설정하며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추방했다.

조용히 쫓겨나지 않겠다

5월 대법원 판결 후 이스라엘 점령군은 거의 매일 같이 집을 철거하고 압류하고 있다. 떠나지 않으면 차를 압류하거나 벌금을 매기거나 심문하겠다는 통지문도 붙이고 있다. 군사보호구역이라며 지뢰도 매설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떠날 생각이 없다.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무함메드 무사 샤하다(61) 씨는 “나는 여기 알마자즈(마사페르 야타 마을 중 하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왜 내가 원치도 않는데 내 땅을 떠나야 합니까? 왜 나크바를 또 겪어야 합니까?”라며 퇴거 명령이 내려진 1999년 당시를 회상했다. “1999년, 점령군은 트럭을 끌고 와서 사람들을 강제로 태우고 집과 땅에서 쫓아냈지만 우리는 한밤중에 걷거나 당나귀를 타고서 집에 돌아오곤 했죠.”

점령군에 더해 마사페르 야타 인근의 불법 유대인 정착민들의 폭력도 극심하다. 주민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구타하고, 차량의 창문을 깨고, 한밤중에 집에 불을 지르는 건 다반사다. 지난해엔 실탄을 쏴서 두 명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도 있었다. 연대하러 오는 활동가들도 공격 대상이 되긴 매한가지다.

이스라엘 점령군은 지난 6월 마사페르 야타 투쟁의 중심이 되는 단체 ‘흔들림 없는 청년들’(Youth of Sumud)의 커뮤니티 센터에도 철거 명령을 내렸다. 연대자들의 숙소로도 쓰인 이곳은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상시적인 철거의 위협 속에 놓이게 됐다. 주민들의 저항 운동을 효과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전략이다.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샤하다 씨의 배우자 아이샤 아부 아람 씨는 마을을 떠나게 되는 날을 상상하기도 싫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지난해에 남편이 우리 집 가까운 데에 무덤 두 개를 나란히 만들었습니다. 죽은 뒤에도 우리는 우리 땅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지금은 몇 년째 여기 동굴에서 살고 있지만, 죽으면 우리 땅에 다시 돌아갈 거예요.”

누가 인종청소에 공모하는가
: 현대중공업의 굴삭기


  2017년 움 알 히란 마을 철거 후 현대중공업의 보이콧을 호소하는 캠페인. [출처: 트위터 팔레스타인 BDS(보이콧, 투자철회, 제재) 운동 공식 계정]

원주민 인종청소는 마사페르 야타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무려 20%가 이스라엘 점령군의 군사훈련을 위한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애초 서안지구의 62%에 달하는 지역이 1995년 오슬로 잠정 협정 이후 이스라엘 점령군의 직접 통치하에 있으며 자의적인 군사명령에 종속돼 있다. 인종청소는 피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네게브/나깝 사막의 베두인 원주민들은 숲을 조성한다는 이스라엘의 국가적 그린워싱 프로젝트 속에 상시로 강제 이주당하고 있다. 베두인뿐 아니라 이스라엘 내 모든 팔레스타인 커뮤니티는 같은 위협을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집이, 사원이, 병원이, 학교가, 삶이 파괴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인류는 과거에 있었던 인종청소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왜 현재진행 중인 인종청소에는 이토록 무감각할까? 팔레스타인은 원래 그렇기 때문일까? 맞다. 애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원주민 인종청소로 세워졌으니 팔레스타인은 원래 그렇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은 계속 그래도 될까?

유엔이나 유럽의회는 형식적으로 일단 이스라엘을 규탄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런 규탄은 반세기 넘게 계속돼왔고, 아무 효과가 없다. 국제 사회의 공허한 외침 속에 팔레스타인 사회는 더 적극적인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전방위적 제재를 가해달라는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식민화에 공모하는 기업들을 보이콧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미 2017년 네게브/나깝 사막의 베두인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사용되는 현대중공업의 굴삭기를 지목하며 현대중공업이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가담하지 못하게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마사페르 야타의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파괴하는 데도 현대중공업의 중장비가 동원되고 있다. 물론 JCB, 볼보, 캐터필러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의 중장비는 불법 정착촌 건설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2012년 유엔 팔레스타인지역 인권 특별보고관 리처드 포크는 현대중공업과 위의 세 개 회사를 지목하며 이것이 불법행위에 대한 공모임을 지적했다.

마사페르 야타에 닥친 ‘합법적 인종청소’의 국면에 팔레스타인 사회는 재차 현대중공업이 인종청소에 더 이상 가담하지 않도록 한국 시민사회가 힘써 주길 요청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