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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로 군대에서 살아내기

[어서 와요, 소소부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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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평등으로 간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2020년 8월 17일, 전국 25개 도시를 순회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평등버스’가 출발했다. 때는 수도권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였다. 버스 안 28개 좌석 중 거리두기 차원에서 최대 16명만 탑승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승·하차마다 체온 측정과 차량 내부 소독을 통해 방역에 신중을 기했다. 탑승 인원 중에는 ‘방역 단장’의 역할을 하는 활동가가 한 명 있었다. 그가 바로 이번에 소소부부네에 찾아온 손님인 ‘이영’이다.

  소소부부와 이영 활동가 [출처: 소소부부]

“영~! 반가워요. 요즘 뭐 하고 지내요?”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2주간의 평등버스 전국 순회를 마치고 사흘 후인 9월 1일, 그는 돌연 입대했다. 사실 돌연이라고 하기도 무엇한 게, 이틀 만에 입대하고 싶다고 입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입영일이 정해진 상태에서 입대하기 전 귀하디귀한 2주의 시간을 자진해서 평등버스에서 보낸 것이다. 그 정도로 그는 인권운동에 진심이었다.

그의 인권운동은 청소년 시절부터 시작됐다. 고등학생 때는 지역에서 청소년 인권운동 단체를 만들었다. 대학 시절,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혐오 선동세력의 ‘집단적 린치’를 경험한 후에는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QUV의 행정팀에 들어가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이어갔다. 연대사업을 담당했던 그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에 결합하게 됐고, 그게 평등버스 탑승으로 이어지게 됐다. 그러던 그가 군대에 갔다. 차별에 저항하고 부조리를 참지 못하던 그에게 군대의 조직문화는 충격이었다.

“군대는 이 사회에서 안 좋은 것만 모아놓은 축소판 같아. 내 인생에서 걷어내고 싶은 순간. 사실 평등버스 때 6시간씩밖에 못 자고 군대에서는 더 길게 잤는데, 그런데도 평등버스 탔을 때가 더 좋더라고.”

대학 교수들과도 비교적 평등한 관계에서 지내던 그에게 군대식 상명하복의 위계적 조직문화는 견디기 어려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로 뒤늦게 나온 첫 휴가 복귀 후, 그는 연이은 트랜스젠더들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 그들 중 한 사람을 ‘죽인’ 집단인 군대에 복무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엇인가 하고 싶지만 할 방법도 막막하고, 시도했을 때의 결과를 두려워하는 자신으로 인해, 그는 비참함을 느끼고 무기력해졌다. 결국 그는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화 장애를 겪게 되고, 현역 복무 부적합 심사(현부심)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그가 아니었다.

“현부심 노렸는데 안 돼서 그다음부터는 부조리를 없애야겠더라고….” (웃음)

앞으로 1년도 넘게 있어야 하는 곳의 조직문화가 견디기 힘들다면, 그 조직문화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른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평등버스에 탔을 때의 사진 등을 관물대에 붙이면서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 잊지 말자고 다짐했고, 군대 내 위계에 의한 부조리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부대 내 성폭력 교육 시간에 성소수자 혐오 내용이 포함돼 있으면 중대장에게 찾아가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 다음부터 주변인들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 부대원들은 그를 밖에서 인권운동 하다 온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했다. 그가 부조리를 고발할 때면 옆에서 반겨줬고, 중대장은 그에게 성폭력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하지 못한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커밍아웃이다.

“커밍아웃 못해서 답답했지. 하고는 싶은데, 피해 볼까 봐…. 학교에선 다 하고 다녔는데, 군대에선 못하겠더라고.”

  이영 활동가 [출처: 소소부부]

그는 훈련소에서 상담받을 때 상담사로부터 ‘혹시 성소수자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비밀보장이 되느냐는 그의 물음에 상담사는 아니라고 답했고 그는 함구했다.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상담 윤리가 군대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관심병사로 등록될 것이고 자연스레 간부들이 알게 될 것이라는 걸, 그는 지레짐작이 아닌, 경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대 내에서 부고 소식을 듣고 너무 힘들 때도 군대 내 상담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군대 내 부조리에 대한 고발은 좋아하지만, 페미니즘은 싫다는 부대원들에게도 차마 커밍아웃을 할 수 없었다.

많은 성소수자에게 군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결코 들켜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이는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 결과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영역(조직)별 성소수자에 대한 비우호도’를 묻는 문항에, 한국 사회 내 대표적인 반성소수자 세력이라고 인식되는 개신교를 제치고 군대가 1위를 차지했는데, 그 응답이 무려 91.4%라는 굉장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군대 내 마초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와 성소수자를 관리 대상으로 보는 지침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것 말고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군형법 제 92조의6’의 존재다.

군형법 제 92조의6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조항 자체에는 성소수자나 동성애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국내 유일 동성애 처벌법’이라는 악명을 떨치며, 오랜 시간 군대 내 동성애자를 검열하고 처벌해왔다. 휴가 나온 군인이 군부대 밖에서 성관계해도 처벌하고, 합의된 성관계나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까지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만큼 악법 중의 악법이다. 국내 학계 및 시민사회는 물론 국제 인권 기구들도 지속해서 해당 조항을 폐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아직 실존하며 동성애에 대한 낙인을 씌우고 있다.

“처음 입대할 때는 ‘군형법 위반하면 어쩌지’ 그랬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적은 없었고.” (웃음)

비록 이영은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대부분의 성소수자는 군대에 가기 전부터 정체성이 알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입대 후에는 정체성을 숨기느라 전전긍긍한다. 때로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드러나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기도 한다. 심할 경우 군형법 제92조의6으로 기소돼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군은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군대문화가 아닌 성소수자 군인 개인을 문제화하고 있다.

그러다 지난 4월 21일, 군형법 제92조의6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현행 규정의 보호법익은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과 함께 군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도 포함된다”는, 그동안 군형법 제92조의6이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유였다. 좋은 신호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해당 사건에 대한 판결일 뿐, 군형법 제92조의6은 헌법재판소에 여전히 계류돼 있고, 많은 성소수자 군인의 발목에 족쇄로 채워져 있다.

군대 내 부조리에 맞서 싸우던 이영은,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맞서 싸우기를 포기한다. ‘포기하니까 편하더라’며 너스레를 떨던 그였지만, 복무 말미에는 대대장에게 직접 항의해 코로나19로 인해 제한된 휴가를 얻어 2월 말에 제대할 것을 2월 초에 나오기도 했다. 인권운동으로 다부진 몸이었기에 때론 맞서 싸우기도 하고 때론 타협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 명의 성소수자 군인이 군 생활을 ‘무사히’ 마무리해낼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처럼 군 생활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잊고 살아갈 테지만, 많은 성소수자 군인이 군 복무기간을 간신히 ‘견뎌’내고 ‘살아’내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입대에 앞서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기도 하다.

군대에는 성소수자 군인이 분명히 실존하지만 군대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하고 문제시하는 데 급급하다. 자신을 완전히 드러낼 수 없는 환경에서 성소수자 군인들은 평등권과 존엄을 침해당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법원판결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참작해 하루빨리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평등한 군대를 만드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