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이준석 대표에게 ‘집회의 권리 파괴상’을 수여합니다

[이슈②] 문명국엔 집회의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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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의 대상이 아닌 당당한 권리주체로 나선 장애인들은 2002년부터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재정의하며 투쟁의 시간을 쌓아 올렸다. 올해로 21회를 맞은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장애인차별혐오상’을 수여했다. 나는 여기에 ‘집회의 권리 파괴상’도 얹어주고 싶다.

지난해 12월 6일부터 이어진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타기’는 서울교통공사의 대응과 이준석의 발언으로 사회적 이슈가 됐다. 2001년부터 진행된 이동권 투쟁이 20년 만에 대대적인 주목을 받게 됐으니 성공했다고 해야 할까? 집회·시위는 스피커가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키워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가 정치 지도자 및 정부와의 대화를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공공기관이 불법집회를 강조하고 정당의 대표가 비/문명을 언급하며 시위 내용을 가렸다. 이준석은 JTBC 시사 프로그램 〈썰전 라이브〉에 출연해서도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의 권리와 삶의 맥락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시위 방식을 트집 잡으며 대화를 흩뜨렸다.

이준석이 언급한 ‘비문명’은 새로운 표현을 입은 낡은 의미이자, 악의적인 공격이었다. 이 말은 과거의 유사 표현을 떠올리게 했다. 바로 이명박의 ‘떼법’이다. 이명박은 당선 직후 신년사에서 “우리 모두 편법과 불법은 이제 더 이상 시도하지도 말고, 용인하지도 말자. ‘떼법’이니 ‘정서법’이니 하는 말도 우리 사전에서 지워버리자”라고 말했다. 이후 법무부는 법질서 바로 세우기 운동을 전개하고 ‘떼법 문화’ 청산을 주요 목표로 세웠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자주 등장한 말이 ‘상습 시위꾼’이다. 이명박 정권의 ‘명박산성’과 용산참사, 쌍용차 파업 진압을 떠올리면 이 표현들이 그저 말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이준석이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요원 등을 적극 투입”해 “승객이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라고 발언한 이후, 4월 21일 재개된 지하철 시위에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집회를 떼쓰는 행위, 비문명적 행위로 비난하는 것은 집회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이준석의 말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기본권을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행동이라 비난함으로써 시민이 집회하는 사람들을 마음 놓고 공격하고 혐오하게 했다. 나아가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민주주의,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광범위한 권리 실현의 필수적인 수단을 파괴했다.

‘문명국’의 집회의 권리

용인할 수 있는 집회의 척도로 ‘문명’을 언급했으니, 문명사회로 볼만한 국가의 집회 권리를 살펴보자. 전 유럽 국가와 미국, 캐나다가 회원국으로 있는 ‘유럽안보협력기구 민주제도와 인권사무소(OSCE/ODIHR)’의 집회의 자유 위원단과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Venice Commission)’의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관한 지침(이하 ‘지침’)〉이 정하는 집회의 권리를 살펴보겠다.

지침은 모든 형태의 평화적 집회는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규정한다. ‘평화적’이라는 용어는 성가시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심지어 제삼자의 활동을 일시적으로 방해하거나 훼방하고 차단하는 행위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집회가 갖는 속성이고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폭력적인 집회라면 합법/불법의 여부와 상관없이 보장돼야 한다. 유엔 자유권 규약위원회 일반논평 37호에는 마치 이준석의 말에 반박하듯 명쾌한 해석이 있다. “때때로 평화적 집회는 논쟁을 초래할 이념이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그 규모나 성격에 따라 예를 들어 차량 흐름이나 보행자의 움직임 또는 경제적 활동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의도했건 또는 의도하지 않았건, 이러한 결과가 있다고 해서 그러한 집회가 향유하는 보호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이준석은 “시위의 대상이 중요”하며, 정치권 상대로는 표현이 과격하거나 불편을 야기해도 용납되지만 “시민들을 볼모로 삼아서 정치권이 말을 듣게 한다는 방식은 문명적이지 않다”라고 했다. 시민을 대상으로 시위하면 안 된다는 것인지, 지하철에서 시위하면 안 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이지만 일단 지침을 보자. 집회 참가자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이용권을 가지는 공공장소를 상당 기간 이용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공공장소에서의 공적 항의와 집회의 자유는 일상적 목적(상업활동 또는 보행 및 차량 교통 등)과 동등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국가는 주최자가 선호하는 장소에서 공공 집회를 촉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준석의 말대로 시위의 대상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대상은 이준석이 아니라 전장연이 결정할 일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는 집회의 장소·시간·방법과 연결되고 이는 집회 목적 달성의 결정적인 요소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자유가 집회의 시간·장소·방법·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고 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집회·시위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된다고 결정했다.

일상에 침투한 낯선 존재들이 만들어 낼 다른 세계

이준석은 당사자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론도, 정치도, 삶도 경쟁으로 여기는 이준석에게 중요한 것은 수치이고 능력일 뿐이다. 자신의 성과와 승리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을 이준석에게 집회는 불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준석과 같은 세계와 불화하는 사람들에게 집회는 존재의 증명이다. 집회를 통해 등장한 이들이 자기 삶이 사회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질문할 때, 사회를 지탱하던 질서에 균열과 혼란이 생긴다. 그들이 만들어낸 불편함과 소란스러움이 다른 세상의 상상력과 가능성을 만든다. 장애인은 선하기 때문에 이동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조건을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요청하는 것이다.

전장연은 삶과 맥락을 삭제하는 정치인 앞이 아닌 함께 살아갈 동료 시민들 앞에 ‘지하철 타기’로 등장했다. 지하철이야말로 이들이 던지고 싶은 질문을 가장 효과적으로, 극적으로 드러낸다. 빠르게 움직이는 대중교통으로 시간 맞춰 움직이는 시민에게 장애인은 어떻게 출근해야 할지를 묻는다. 당신과 같이 출근하고 같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를 묻는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장애인들은 그저 지하철을 타는 것만으로 이 사회가 구축하고 있는 비/정상성, 차별의 체계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전장연 시위를 향한 이준석의 공격은 이제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여전히 혐오와 적대의 말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만큼 지지와 연대가 커지고 있다. 이제 우리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더 키울 때다.
  • 문경락

    집회를 통해 등장한 이들이 자기 삶이 사회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질문할 때, 사회를 지탱하던 질서에 균열과 혼란이 생긴다. 그들이 만들어낸 불편함과 소란스러움이 다른 세상의 상상력과 가능성을 만든다. 장애인은 선하기 때문에 이동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조건을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요청하는 것이다.

    전장연은 삶과 맥락을 삭제하는 정치인 앞이 아닌 함께 살아갈 동료 시민들 앞에 ‘지하철 타기’로 등장했다. 지하철이야말로 이들이 던지고 싶은 질문을 가장 효과적으로, 극적으로 드러낸다. 빠르게 움직이는 대중교통으로 시간 맞춰 움직이는 시민에게 장애인은 어떻게 출근해야 할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