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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앞둔 ‘기후정의동맹’, 체제 전환 위한 포럼 개최

자본주의 체제 문제에 대응하는 주체 형성과 전략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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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 대응해온 사회운동을 평가‧성찰하면서 ‘체제 전환’이라는 대안적 요구에 나서자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의 해체를 요구하며 출범한 ‘탄소중립위 해체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공대위(탄중위 해체 공대위)’를 재구성한 새로운 연대체 출범도 앞두고 있다. 활동가들은‘기후정의동맹’이라는 연대체를 통해 거대한 사회 세력과 권력을 만드는 길에 본격적으로 나서자고 입을 모았다.

앞선 조직인 ‘탄중위 해체 공대위’는 ‘녹색성장’을 향하는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이들은 ‘기후정의’에서 나아가 ‘체제 전환’이라는 운동 방향을 모색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올해 상반기 출범을 앞둔 기후정의동맹(준)은 29일 오전부터 밤까지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체제 전환의 전망과 대안을 고민하고, 기후정의 운동의 밑그림을 그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체제 전환을 위한 기후정의 포럼’이란 제목으로 열린 행사는 사회운동 진영이 모인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 모임(길내는모임)’이 공동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온·오프라인을 포함해 120여 명의 사람이 모여 체제 전환 운동에 대한 각자의 고민을 나눴다. 포럼은 30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기후정의동맹(준)은 하반기 ‘기후 총궐기’도 계획 중이다.


체제 전환 운동이 필요한 이유

29일 오전, 포럼의 기조 발제를 맡은 한재각 기후정의동맹(준) 집행위원은 기후위기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따른 ‘착취와 파괴’의 결과 중 하나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자본주의 체제와 분리해낼 수 없는 속성이라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윤을 무한히 창출·축적하기 위해 끝없이 경제 규모를 성장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필요한 값싼 노동과 자원을 투입하기 위해 착취와 파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착취가 기후위기, 생태 위기를 낳았고, 사회적 불평등 위기와 재생산 위기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고 비판했다.

기후정의동맹(준)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시작한다. 수많은 사회 운동이 자본주의 체제가 야기한 착취와 파괴에 저항해 개별적으로, 혹은 연대해 싸워왔지만, 체제를 총체적으로 바꾸기 위한 ‘거대한 동맹’의 구성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한재각 집행위원은 “기후위기는 단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의 자본주의 성장체제를 무너뜨려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의 투쟁에 ‘체제 전환’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라며 “점증하는 기후위기 속에서 자본주의 성장체제에 맞서고 무너뜨리기 위한 투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자본주의 성장체제에 맞서는 거대한 기후정의동맹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당면한 과제”라고 밝혔다.

여기서 핵심 과제는 수많은 사회운동의 주체, 즉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들’이 함께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당사자들은 비정규직 및 불안정 노동자, 실업자, 이주노동자, 주로 여성인 돌봄 노동자, 성소수자 등의 소수자, 소농 및 가족농, 산업 시설 및 핵·석탄발전소 등 각종 인프라 시설로 피해받는 주민, 주거 불안정에 놓인 도시민, 노인 등 빈곤 계층, 중소상공인들이다.

토론자로 나선 미류 길내는모임·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기후정의운동이 서로 다른 운동을 틔워주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와 노동을 연결하는 방식은 일자리를 통해 이뤄지고, 기후위기와 농업을 연결할 때는 식량이 매개가 된다”라며 나아가 “자본주의체제가 강요하는 속도에 문제 제기하는 장애인 운동이 기후정의운동이 되고, 새벽배송으로 과로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운동이 기후정의운동이 되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노동자가 생산을 통제’한다는 체제 전환 운동의 전략

노동자들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오후 진행된 ‘체제전환을 위한 노동의 재조직’ 세션의 발제를 맡은 정록 기후정의동맹(준) 활동가는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 생산한 자본주의적 생산과는 다른, 어떤 사회적 필요에서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 낭비되지 않는 적절한 생산량은 얼마인지, 생산과정에서 탈탄소와 자원 순환이 가능한 방식은 무엇인지를 묻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생산자로서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록 활동가는 발전소 폐쇄에 직면한 석탄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를 예로 들었다. 그는 “비정규직 차별, 원하청 외주화, 수익 중심의 공기업 운영, 복잡한 고용 관계로 단결하기 어려운 노동자들 상황까지, 석탄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한국 노동체제가 갖는 구조적 문제의 종합판이었다”라며 “고용위협에 처한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한 수세적 싸움으로 반복되서는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투쟁은 생태적 재생에너지의 공공성을 구축해나가는 ‘에너지 체제 전환’ 투쟁의 핵심이 될 수 있다”라며 “어떤 에너지를 얼마나 어떻게 생산하고 사용할지를 발전노동자들이 제기하고 사회적으로 함께 결정하는 과정으로서 ‘공공 재생에너지 체계’를 앞장서 만드는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노동자의 요구가 현재의 고용과 임금, 노동조건 등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장귀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 소장은 “공공성과 사회적 통제의 강화를 통해 노동(력)의 탈상품화를 실현해야 한다”라고 했다. 지구적인 생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시장적인 소비와 생산의 통제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귀연 소장은 “안정적인 고용과 임금 확보는 아직도 노동운동에서 중심 주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현재 변화한 자본주의적 축적 방식에서는 점점 그 실현이 어렵다. 최근 정규직화 논란에서 드러나듯 이것이 노동자계급 연대의 축으로 작동하기보다 오히려 분열의 지점으로 작동하고 제 살 깎아 먹기가 돼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 소장은 “자본주의적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것에 대한 자본의 대응책이 이른바 금융화다. 이제 노동 소득으로 사람이 안정적 생활을 하면서 생활 수준을 향상할 수 없다는 것은 자본주의자들 스스로도 인정한다. 그리고 노동자에게도 자본소득(부동산, 코인, 주식 등)을 권유한다. 하지만, 금융화·투기화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도 없고 극심한 사회적 분열과 적대를 가져올 것이므로 유지 불가능하다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라고 꼬집었다.

비임금 노동자로의 주체 확대의 필요성

돌봄·재생산 노동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현재 돌봄 서비스 대부분이 정부 재정을 통해 이뤄지지만, 민간 자본의 위탁 운영으로 돌봄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돌봄 노동을 비롯한 필수 서비스와 재화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활동가는 “자본주의 생산·재생산 구도를 넘어 돌봄·재생산 노동, 사회적 필수 노동의 물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라는 제기에 동의한다며 이를 위한 고민을 밝혔다.

나영 활동가는 재생산 노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를 기획하는 운동은 단지 돌봄·재생산 노동을 새로운 임금 노동의 일자리로 만드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과 생산성에 대한 가치 위계를 전복시키고 이성애·남성 가부장의 가족 단위 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구조의 모순을 깨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생산과 재생산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뒤집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생산성 없는 사람들’로 취급된 수많은 비공식, 비임금, 재생산 노동자들의 투쟁에 주목했다. 2000년대 중반 국영 석유 회사의 민영화로 황폐해진 마을의 실업자들이 일자리와 실업 수당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이면서 본격화된 아르헨티나의 실업자 운동(MID, movimiento de trabajadores desocupados)과 이 운동에 참여했던 페미니스트들이 일으킨 니 우나 메노스(Ni Una Menos) 운동이다. 니 우나 메노스 운동은 2015년 발생한 여성 살해 범죄를 계기로 시작됐다. 이들이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는 주체가 됐다는 점에서 예시로 소개됐다.

또한 나영 활동가는 “MID 운동에 참여했던 페미니스트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여성 살해와 젠더 폭력, 성폭력, 임신 중지에 대한 심각한 처벌과 이로 인한 폭력의 근원에 여성이 수행하는 수많은 비공식 노동과 돌봄 노동, 재생산 노동의 비가치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니 우나 메노스 운동으로 연결했다”라며 또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공공의 자원을 줄이고, 노동의 영역을 축소해 나감으로써 점점 더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 무수한 노동의 대가를 무상으로 전유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연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성장을 통한 분배’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식의 기조가 유지되는 이상, 위기가 가속할수록 불평등은 더욱 심화할 것”이라며 “기후위기에 불평등한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기후정의와 재생산정의 운동을 통해 정치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조직하는 일 등이 앞으로 체제 전환을 위한 생산·재생산 시스템의 전복, 노동과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을 위한 논의들 속에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한편 오는 30일 포럼에서는 △석탄발전 비정규 노동자 투쟁의 연대 전략 △기후재난에 대응하는 농민투쟁의 연대 전략 △기후위기 최전선 현장 투쟁과 연대전략(라운드 테이블) △정의로운 기후 거버넌스 전략 등의 세션이 이어진다.
  • 문경락

    노동자들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오후 진행된 ‘체제전환을 위한 노동의 재조직’ 세션의 발제를 맡은 정록 기후정의동맹(준) 활동가는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 생산한 자본주의적 생산과는 다른, 어떤 사회적 필요에서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 낭비되지 않는 적절한 생산량은 얼마인지, 생산과정에서 탈탄소와 자원 순환이 가능한 방식은 무엇인지를 묻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생산자로서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