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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돌봄 노동이 사회화된 세계는?

[3·8 국제 여성의 날 특집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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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① 최초의 여성 총파업, 그리고 가사 노동의 가치
②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③ 변혁 전략으로서 ‘돌봄 혁명’―가브리엘레 빈커
④ 돌봄 노동, 여성 그리고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
⑤ 직접 제공을 거부한 정부, 민간이 탐낸 ‘가사·돌봄’
⑥ 돌봄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 ‘언택트’가 미래다
⑦ 가사·돌봄 노동이 사회화된 세계는?

청소, 빨래, 요리 등의 가사 노동은 가족 내에서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다. 동시에 가사 노동은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과 비교해 항상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일로 저평가돼 왔다. 아이를 키우는 양육, 환자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간병‧요양 등의 돌봄 노동도 여성이 전담해왔다.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사회영역에서도 ‘가사’와 ‘돌봄’은 주로 여성 노동자가 담당하고 있다. ‘저임금·장시간·불안정 노동체제’는 가사‧돌봄 일자리의 특성을 전적으로 드러내 주는 말이다.

자본주의 생산체제는 가부장적 구조와 여성 노동을 수탈하는 구조 속에서 자본 축적을 이뤄왔다. 그리고 그 규모와 영역을 지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민간 영역에서는 ‘가사 플랫폼’을 필두로 가사 서비스 시장이 확대됐고, 돌봄 서비스 역시 시장화·산업화하며 시장을 넓혔다. 이 속에서 기업은 이윤 축적을 위해 여성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고착화했다. 자본과 기업만이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불균형한 시장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 ‘일과 가정의 양립’, ‘서비스 질의 향상’, ‘이용자의 선택권 보장’ 같은 화려한 말이 난무하지만, 이것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누구나 느끼고 있다. 간병비를 부담하지 못해 ‘간병살인’이 일어나고, 지방자치단체와 학교가 아이 돌봄을 두고 책임 공방을 벌인다. 여성과 남성 간 임금 격차는 개선될 줄 모른다. 나이가 들면 쓸쓸히 요양원에서 인생을 마감하나, 고독사하는 것이 일상이 돼 버린 시대다. ‘가사·돌봄 사회화’는 이러한 현실에서 나온 대안이다.


가사·돌봄 노동의 사회화란?

‘사회화’란 정부가 소유권을 갖고 운영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자기 결정권’을 갖고 민주적 참여 속에 연대와 협력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즉 ‘소유’의 여부를 넘어 민주적 운영과 참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대중의 힘과 사회역량을 갖춰가는 과정이 ‘사회화’다. 물론 ‘사회와 공공영역’이 가사·돌봄의 주된 운영 주체로 기능하고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필요조건이자 전제조건이다.

‘가사·돌봄 사회화’는 가사·돌봄은 모두가 누려야 하는 권리이자, 누구나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의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를 ‘사회적’, ‘공공적’으로 보장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가사·돌봄의 수혜자와 공급자(노동자) 모두 ‘자기 결정권’을 가진 존재로서 민주적 참여와 통제 속에 공동체적 사회 역량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사·돌봄 사회화’는 지금의 가사·돌봄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여성과 개인에게 내맡겨진 시장화 된 현실을 넘어서는 ‘탈 성별화’ ‘탈 가족화’ ‘탈 시장화’를 의미한다.

돌봄 노동 역시 의식주를 유지하는 삶의 기초가 되는 가사 노동이다. 동시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보살핌 노동이다. 그래서 의료와도 연결돼 있고, 발달 과정에 따른 교육과도 연관돼 있다. 일부 돌봄 영역에서는 일정 부분 탈 가족화라는 진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돌봄의 시장화 속에서 이뤄져 온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돌봄이 필요한 순간은 온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많이 벌어야 노후와 돌봄의 불안이 해소된다고 믿게 만든다. 시장화된 돌봄을 기본값으로 둔 채, 공공의 영역은 취약계층으로 구획된 이들에 대한 시혜성 제도로 축소한다.

요양·간병 같은 돌봄에는 청소, 식사 등의 가사서비스도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특히 가사·돌봄 서비스의 중요성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더욱 두드러졌다. 이른바 ‘필수서비스’, ‘필수노동’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필수서비스·노동이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제공돼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가 가사·돌봄을 제공하는 동시에 모두가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비스 제공자와 받는 자 모두에게 적정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가사·돌봄이 평등을 기반으로 공유, 사용될 수 있으며 보편적 권리로 실현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가사·돌봄이 이뤄지려면 사회구성원들 간에 새로운 상호의존 및 관계 형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관계 속에서 각각의 역량 발전을 통해 ‘사회적 역량’의 발전을 이뤄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경쟁과 효율’이라는 시장 논리 속에서는 이뤄질 수 없으며, ‘연대와 협력의 원리’가 실현돼야 가능하다. 이제는 시장이 아닌 공적 시스템이 기본값이 되는 돌봄 사회가 필요하다. 가사·돌봄 사회화는 비단 기혼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돌봄 사회, 이윤이 아닌 연대와 협력의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돌봄의 사회화, PCP모델

돌봄 사회화는 ‘지역사회’ 속에서 ‘공적인 공급체계’가 작동돼야 가능하다. 이를 ‘공공-지역사회 협력 공급체계(‘Public-Community Partnership’이하 PCP모델)’라고 부르고자 한다.

PCP모델이 실현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가사·돌봄의 공적, 사회적 공급체계 구축이다. 이제까지 개인과 가족, 여성이 부담하고 책임져왔던 가사·돌봄 공급체계를 국가와 사회, 지역이 책임지며 누구나 자유롭게 권리를 누리고,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질 좋은 가사·돌봄의 실현이 가능토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PCP 모델의 장점은 가사·돌봄 제공의 보편성, 이용자 및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권리확보, 그리고 가사·돌봄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사회서비스 이용자 간의 연결을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수급자의 자기 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다. 사회서비스 제공 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는 그 자체로 사회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지역사회 공동체간의 수평적인 연대와 연결은 사회의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PCP모델은 “지역사회에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보편적 권리를 누리며 평등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목표로 한다. △공공주도–사회적 역량과의 협력 강화 △사회적 권리로서의 돌봄권 보장-보편적 적용 △이용자의 존엄과 자기 결정권 존중 △통합성 △성별 분업의 철폐 등을 원칙으로 삼는다.

아울러 △‘지역’ 공간이 중심(기초단위 지자체가 핵심주체이자 역할) △지방정부와 공적 서비스 공급기관의 주도와 지역사회 공동체의 자발적 참여 △이용자와 노동자의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협업 모델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돌봄 유형별로 분절적이 아닌 통합적 모델 지향 △코어(혹은 앵커) 기관으로서의 ‘사회서비스원’과 ‘통합가사돌봄서비스센터’ △‘의료와 돌봄 통합모델’: ‘병원-시설’에서 ‘지역-재택’으로 △돌봄서비스 기획, 의사결정, 종합 소통기구로써 ‘지역 돌봄위원회’ 등을 주된 내용으로 포함할 수 있다.

가사·돌봄 사회화가 구현된 사회는?

그렇다면 가사·돌봄 사회화가 구현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전국 3,500여 개에 달하는 읍·면·동에 ‘공공 가사 돌봄센터’가 설치될 것이다. 풀뿌리 지자체, 그리고 지역사회 주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가사·돌봄 서비스가 시행되는 것이다. ‘공공 가사 돌봄센터’는 현재의 어린이집, 재가 노인 돌봄센터, 장애인 자립 지원 생활센터 등의 기능과 기관을 산하에 두고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면밀한 실태조사를 거쳐 서비스 수요를 조절할 필요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보육, 요양, 장애인자립지원 등의 돌봄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다. 추가로 ‘빨래방’이나 ‘마을 공동식당’ 등도 산하에 설치하게 된다. ‘마을공동식당’은 지역의 ‘공공 앱 플랫폼’을 통해 지역 식당들을 연계하여 배달, 공급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공공 가사 돌봄센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금도 ‘치매 센터’, ‘재가 돌봄센터’, ‘장애인 자립생활지원센터’ 등이 존재하고, 지역에는 ‘마을 공동식당’ 등이 다양한 형태로 운영된다. 여기서 필요한 인력을 확충해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통합적으로 운영하며, 공공적 성격을 가미하면 된다. 이러한 과정이 실현되면 학교와 지자체가 ‘어린이 돌봄’을 둘러싸고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통합 가사 돌봄센터’의 관장 하에 ‘어린이집’, ‘방과후 학교’, 그리고 각종 학원의 역할 분담과 인력 조정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민간에 맡겨진 재가요양기관의 서비스 불안정성, 서비스 질 악화, 서비스 제공 노동자의 노동조건 악화 등도 충분히 개선이 가능하다.

또한 현재 극소수의 읍·면·동에 설치된 보건지소를 전국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동시에 주치의 제도를 실시해 돌봄과 의료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노인의 경우 일상적인 만성질환 관리와 돌봄 서비스가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커가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에는 서비스 이용자들의 조직화된 역량(예컨대 지역별 요양 이용자 모임, 노인회 등)과 서비스 제공 노동자의 노동조합이 운영과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이 전반적인 서비스 운영에 관해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합의·결정하는 지역별 ‘돌봄위원회’ 같은 민주적인 통제기관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이 같은 기반에서 [읍·면·동 단위의 ‘공공 가사 돌봄센터’—시·군·구 단위 사회서비스센터(원)—광역단위의 사회서비스센터(원)—중앙단위의 사회서비스공단] 같은 전국적인 체계와 운영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적 돌봄 체계가 구축되더라도 이를 담당하는 노동자가 대부분 여성이어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의 가사 노동과 양육이 여성에게 맡겨져서도 안 된다. 가사·돌봄 노동의 성 평등한 역할 분담(탈 성별화)를 이루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노동시간의 단축이 획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다른 하나는 돌봄 노동의 노동권과 생활임금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장시간 노동은 성 평등한 가사분담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이다. 주 4일 30시간 노동제가 실현되고, 성 평등하게 노동시간이 재구성돼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육아휴직 쿼터제 등의 실시로 남성의 육아휴직이 의무화돼야 할 것이다.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가치 절하는 저임금화, 불안정화와 연결된다. 가사·돌봄 노동자의 노동권, 생활임금보장은 ‘탈 성별화’를 이루는 기반이 된다.

돌봄 사회화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장벽이 놓여있다. 크게는 한 사회 경제 운영의 원리를 ‘이윤과 경쟁’에서 ‘연대와 협력’으로 바꾸는 것이고, 국가재정을 대폭 확충하기 위한 조세재정정책을 세우고, 세금과 재정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와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는 생활임금을 보장하면서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노동시간과 생활시간을 재구성하는 것과 연동돼 있기도 하다. 문화적으로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성별 역할과 가부장제적 구조에 대한 의식을 바꾸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사회구성원 간의 갈등과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장벽과 갈등을 넘어서는 힘은 ‘민주적인 사회역량, 인민역량의 강화’에 달려 있다.

자연과 여성을 착취하고 수탈하며 유지해 온 현재의 자본주의경제체제로는 지구생태계의 유지가 불가능하다. 새로운 체제를 위한 ‘돌봄 사회’와 ‘평등 사회’를 이뤄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이유다. ‘한 사람이 꾸면 꿈에 그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꾸면 현실이 된다’라는 말처럼, ‘돌봄 사회화’는 반드시 와야 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 문경락

    ‘사회화’란 정부가 소유권을 갖고 운영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자기 결정권’을 갖고 민주적 참여 속에 연대와 협력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즉 ‘소유’의 여부를 넘어 민주적 운영과 참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대중의 힘과 사회역량을 갖춰가는 과정이 ‘사회화’다. 물론 ‘사회와 공공영역’이 가사·돌봄의 주된 운영 주체로 기능하고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필요조건이자 전제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