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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하청노동자 3년간 20명 사망…“원인은 '외주화'”

고 김다운 씨 산재 사망 추모 기자회견 열려…한전의 ‘위험의 외주화’ 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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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 고압 전류에 감전돼 숨진 고 김다운 씨의 사망을 두고 한전의 위험 업무 외주화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고인이 하던 업무는 2020년까지 한국전력이 담당하던 업무였지만, 추락사 등의 사고가 발생하자 지난해부터 이를 하청업체에 떠넘겼다는 것이 현장 전기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하청업체 중에선 한전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저압 전문회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업무를 위탁받았고, 저압 전문회사는 그 구조상 2인 1조 작업이나 활선작업자, 활선차량 등이 미비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다운 노동자까지 최근 3년간 20명의 전기 노동자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라며 “사고의 원인은 위험의 외주화에 있고, 그렇다면 직접고용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설노조는 “COS 회로차단 전환 스위치 투입 및 개방(투개방) 작업은 원래 한국전력 배전운영실 소속 전기 노동자들이 하는 일이었지만 2021년 4월부터 갑자기 하청업체로 투개방 작업지시가 넘어왔다. 작업지시를 떠넘기기 전인 2020년 3월 9일 한전 정규직 노동자가 전봇대 작업 중 추락사하는 등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어떤 경과에서든 한전이 하던 일을 업체에 떠넘기면서 문제가 시작됐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하청업체가 투개방 작업을 맡으며 어떤 부실을 낳았는지 세 가지 상황을 들어 설명했다. 우선 지상 감시자가 부재해 안전 관련 사항 점검을 하지 못했던 점이 제기됐다. 전력체계상 재해가 발생하면 2차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스위치를 끌 수 있는데, 고 김다운 씨는 사고 현장에 혼자 있었고, 사고 후에도 30분 가까이 전기가 흘렀다. 사고 후 즉시 전기 차단도 못 하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도 놓친 것이다.

또 투개방 작업엔 배전전공, 활선전공을 각각 맡는 2명의 노동자가 필요하지만 이윤이 남지 않는 작업이다 보니 사고 현장에선 혼자 작업에 투입되는 일이 빈번했다. 또 고소절연트럭(활선차량) 대여비를 줄이기 위해 장비 또한 사용하지 않았다. 건설노조는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의 안전조치, 산업재해 예방조치 등을 규율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여 노동자가 사망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라며 “한국전력은 원청 도급인으로서 처벌받아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엄인수 건설노조 강원전기지부장은 “한전 강원본부에서도 지난해부터 투개방공사를 전문회사들에 지시하고 있다. 하지만 강원 지역 고압전문회사들은 작업 인원, 장비 부족을 이유로 이를 거부해 결국 저압전문회사들이 이를 시행하고 있다. 이 회사들은 활선 전공을 꼭 보유하지 않아도 되는 회사들이다”라며 “저압전문회사들도 사실상 강제로 하고 있다. 이익이 남아서라기보다 한전의 규정이나 업무처리 지침상 불이익을 받을까봐 억지로 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유족 참석 “‘사회적 살인’ 막으려면 원·하청 업체에 강력한 처벌 내려야”


고인의 유족도 참석해 이번 사고를 ‘사회적 살인’이라 강조하며, 원·하청 업체와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호소했다. 매형 A씨는 “사고의 책임이 있는 한전은 어제 있었던 한전의 안전관리 특별대책 발표를 통해 발주차라는 명목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라며 “유가족들에겐 아직까지 아무런 해명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안전관리 특별대책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그 내용도 기사를 통해 접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전은 지금까지 사고 경위를 은폐하고 사고 처리와 관련해서는 노동부와 검찰 수사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서 법적 도의적 책임을 하려고 한다는 말로 일축하고 있는데, 한전과 하청업체들은 지금이라도 유족과 전 국민들 앞에 진실을 밝혀주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주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또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고를 발생시킨 원청과 하청의 대표 및 관리자 책임자들에게 최대한 강력한 처벌”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박범계 의원 보도자료(2019.10.11.)를 근거로 노조가 재구성. [출처: 건설노조]

한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자료를 토대로 한 ‘연도별 한전 사망재해자수’를 살펴보면 지난 7년 동안 47명의 전기 노동자가 추락과 감전사고로 사망했다. 이러한 사망률은 2019년 6명, 2020년 6명, 2021년 8명으로 최근까지도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사망한 노동자들은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이 숫자는 실제보다 적게 집계된 것”이라며 “한전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누락된 사고 수도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김다운 씨는 지난해 11월 5일 경기도 여주시에서 오피스텔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전봇대에서 작업하다 감전사고를 당했다.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11월 24일, 19일 만에 사망했다. 그가 38세의 젊은 노동자라는 점, 잔인한 상황 속에서 죽어갔다는 점,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들이 알려지며 추모의 물결은 커졌다. 유족은 한전과 하청업체의 방치 속에 최소한의 안전장치 없이 홀로 작업하다 억울하게 사망했다며, 지난 1월 4일 국민청원을 시작하기도 했다. 하청업체는 과태료 1천4백만 원을 내고 한 달간 작업을 중지한 끝에 다시 운영을 재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