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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날 수 없는 조종사들, 땅에서 버틴 2년의 시간

[르포] ‘기획 먹튀’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이스타항공 노동자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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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이스타항공은 자본잠식과 코로나19 경영 위기를 이유로 605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했다. (상반기 계약해지 등을 통한 570여 명 정리해고까지 포함하면 1,600명의 노동자 중 75%인 1,200명이 정리해고를 당했다) 사측은 정리해고 과정에서 조종사 노조 간부 11명 중 10명을 정리해고하는 등 전체 조합원의 80%를 표적 해고했다. 조종사 노조인 이스타항공조종사지부(공공운수노조 소속)는 이스타항공이 코로나19 직전까지 50억여 원의 영업흑자가 나는 상황에서 고의로 임금을 체불하고 업체 대금을 미지급하며 의도적으로 회생 불가 기업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이 제주항공과의 기업결합 승인을 통해 거액의 매각 대금을 챙기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결국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이 무산된 이스타항공은 파산 위기에 몰려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지난 11월에는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회생계획안을 인가받았다. (주)성정(골프장 관리·부동산 임대업체)이 이스타항공의 인수자로 결정됐고, 이스타항공은 2022년 초 국내선 운항 재개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에 관해서는 어떠한 협의도 제안하지 않았다. 한편에선 희망퇴직자부터 복직을 진행한다는 등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다시 비행하게 될 날을 기다리며 2년째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이스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필자 주


2년 동안 임금체불 530억 원이 무죄?

  12월 17일 이스타항공 전현직 대표에 대한 임금체불 재판이 열린 서울 남부지방법원 [출처: 연정]

12월 17일 오후 5시, 서울남부지방법원. 이스타항공 최종구 전 대표와 김유상 현 대표의 임금체불·4대 보험료 횡령 등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에 관한 재판(형사8단독 판사 최우진)이 시작된다. 잘 나가던 LCC 항공사(저비용 항공사)에서 발생한 1,600명 노동자에 대한 530억 원 임금체불 사건은 이제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는 걸까. 본의 아니게 단독 취재를 하게 된다. 노동자 75%를 정리해고 하고 내년 2월 운항을 재개하겠다는 회사의 전·현직 대표는 그 어떤 비난과 비판도 없이 자유롭게 재판정을 드나들었다.

30분 가까이 진행된 재판은 마치 이스타항공 측 피고인 6명과 판사의 오붓한 간담회 자리 같았다. 이들은 방청석에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소곤소곤 대화를 이어나갔다.

“지연됐지만 회생 과정에서 (체불임금) 변제를 위해 최대한 노력했고, 그에 따라서 전액 변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연락이 좀 늦어지는 직원들을 제외하고, 사실상 1,600명에 대해 전부 지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1,632명 중에 1,519명 (처벌불원서를) 받았습니다. 근로자들이 너무 많고 산재해 있기 때문에 처벌불원서를 받는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습니다. 두 달 정도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여의치가 않습니다.”


최종구 전 대표 측은 1,600명 전체 노동자가 임금체불 진정을 한 것도 아닌데, 전체를 대상으로 처벌불원서를 받고 있다고 했다. 임금체불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회 이상 임금체불 유죄 확정을 받거나 체불총액이 3천만 원 이상이면 체불사업주 명단이 공개된다. 하지만 임금체불 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사업주를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 조항(‘근로기준법’ 제109조 2항)이 적용된다.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는 얘기다.

법정에 피고로 출석한 이스타항공 전·현직 대표는 임금체불로 2년 가까이 고통받은 노동자에 단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선 그 어떤 죄책감이나 책임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과는커녕 임금을 지급하고 처벌불원서가 늘어가자 이들은 무죄를 주장한다.

“피고인은 회생 신청을 위해 대표이사가 됐던 것입니다. 개시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는 관리인으로서 법원의 감독을 받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행위만 했습니다.”


김유상 현 대표가 무죄를 주장한다. 올해 초 취임해 처벌불원서 대상이 30명밖에 안 돼서 그런지 여유 있고 자신감 있는 모습이다. 반면 이상직 의원의 배임·횡령 건으로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받은 최종구 전 대표는 안절부절못한다. 그 역시 임금체불 자체는 인정하지만, 지급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고 지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른바 ‘책임조각사유’(범죄 성립의 요건인 형사 책임이 성립되지 않게 하는 사유) 주장이다.

“(처벌불원서를) 수령하는 데 최종구 피고인은 두 달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씀인 거죠?”


판사가 피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심지어 한 달을 보너스 기간으로 주며 다음 재판 기일을 3월 11일로 정한다. 피고인들은 기한 내에 처벌불원서를 100%를 수령해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을까?

정말 용서가 안 돼요

“처벌불원서요? 그걸 왜 내요? 저는 낼 생각 없어요. 본인들이 잘못한 일에 대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600명이 부당하게 해고돼서 저처럼 울분에 차 있어요. 우리 입장에서 정말 용서가 안 돼요. 그 사람들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처벌불원서 이야기가 나오자 김진수(가명) 씨의 목소리가 격앙된다. 진수 씨는 이스타항공에서 2년 동안 조종사로 근무하다가 2020년 10월에 정리해고를 당했다.

“조종사는 어릴 때부터 정말 하고 싶었던 꿈이에요. 어렵다는 생각에 시도를 안 했다가 직장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어렵게 비행을 배웠어요. 자격증도 따고 이스타항공에 들어왔죠.”


처음 합격자 발표 소식을 듣고 기뻤던 순간도 잠시. 진수 씨는 1년간의 불안한 훈련을 견뎌야 했다. 훈련에서 떨어지면 회사를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정말 피가 마르는 것 같았어요. 훈련 끝나고 진짜 좋았는데…. 불과 몇 달 뒤에 ‘내가 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했나?’ 하는 생각에 허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입사해서 1년 동안 교육받고, 부기장이 돼 정식 비행을 시작한 지 3~4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2020년 2월 25일, 여객의 증가로 전년 대비 1월 매출이 12% 증가하고, 50여억 원의 영업흑자가 났음에도 이스타항공은 지급불능을 이유로 임금을 40%만 지급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사측과 25% 임금삭감에 합의한 다음 날이었다. 심지어 회사는 그해 2월까지만 해도 중국노선을 늘리고, 20명의 부기장 신규채용을 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정부가 코로나19로 항공여객운송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휴업수당의 최대 90%까지 지원하고 있었지만, 이스타항공 경영진은 이를 신청하지 않았다. 이스타항공은 1,600명 노동자의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임금체불을 계속 늘리고 4대 보험료를 횡령했다. 얼마 뒤에는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노동조합은 체불임금 일부 포기와 무급순환휴직 등 고통 분담 의사를 밝히며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통한 고용유지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다시 비행할 날만 기다리던 진수 씨에게 돌아온 것은 정리해고 통보였다.

“저의 30대를 정말 다 녹여가면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인생에서 황금 같은 시기에 모든 걸 희생하고 어렵게 시작한 일인데, 타인의 잘못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렇게 되는 상황이 많이 화가 납니다.” (김진수 조종사)


진수 씨는 다른 일을 선택하기엔 너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단순히 들어간 시간과 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하늘이 좋고 비행하는 게 좋아 뒤늦게 선택한 일이었다. 진수 씨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비행을 위해 현재 배달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50억 원 흑자에도 고의적인 임금체불과 미지급

“그즈음 한 달에 4~5일 밖에 못 쉬고 밤새우면서 일했어요. 그만큼 장사가 됐다는 얘기잖아요. 1월만 해도 50억 원 흑자를 냈다고 스스로 떠들었는데, 어떻게 2월부터 갑자기 임금이 체불될 수 있습니까.” (박이삼 지부장)


전투기 조종사 13년, 아시아나항공 9년 등 30년 가까이 조종사로 일해 온 이스타항공조종사지부 박이삼 지부장은 사측이 철저한 기획 하에 고의로 지급불능 상태를 만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2020년 10월 이스타항공 아시아나케이오 정리해고 문제 정부여당 해결을 촉구하는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 [출처: 연정]

“2019년 7월에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 결정을 하고, 그때부터 비상경영 선포를 했어요. 그리고 2019년 12월 이스타항공이 제주항공과 매각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자마자 미지급금을 엄청나게 발생시킵니다. 업체들에 돈을 한 푼도 안 주고, 2월부터 임금체불을 시작한 거죠. 그러다가 3월부로 셧다운 했잖아요. 멀쩡한 회사를 망가뜨린 거죠.”


박 지부장은 이스타항공을 제주항공에 매각하기 위해, 고의로 회생 불가능 상태를 만들어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 심사를 통과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7조에서 독과점이 우려되는 기업결합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예외 조항이 있어요. 첫 번째는 어느 시점에 완전한 미지급 상태가 발생할 때에요. 두 번째는 가지고 있는 기재를 활용할 수 없을 때, 세 번째는 해당 회사를 인수할 다른 회사가 없을 때란 말이에요.”


이스타항공은 이 세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해 2020년 4월 23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주항공과의 기업결합을 승인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스타항공의 항공기 리스료·공항 이용료·항공유 구입비·임금 등 미지급 채무액이 1,152억에 달하고,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 점 등을 들어 이스타항공을 ‘회생 불가 회사’로 판단했다.

“이상직(이스타항공 창업주이자 실질적 소유자, 전주시 국회의원, 전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이스타항공을 제주항공에 매각해 먹튀 해서 나가려고 고의로 그런 짓을 한 겁니다.” (박이삼 지부장)


지난 11월 24일, 전주지검은 550억 원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상직 씨에게 징역 10년에 추징금 554억 원을 구형했다. 구형 과정에서 이스타항공 노동자 600명에 대한 정리해고와 5백억 원이 넘는 임금체불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작 해고 노동자들은 중노위(중앙노동위원회)에서조차 부당해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편의점과 배달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복직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장래에 올 수도 있는 경영상 위기에 미리 대처하라?

5월 3일, 지노위(지방노동위원회)는 이스타항공 41명의 노동자에 대한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2020년 초 신규채용과 형식적인 희망퇴직, 고용유지 지원금 미신청, 무급 순환휴직 미실시 등 사용자가 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는 사유였다. 그러나 8월 11일 중노위는 동일 대상 동일 사안에 대해 지노위의 판정을 뒤집고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다.

“중노위 판결문이 정말 황당해요. 해고 회피 노력이나 해고자 선정 등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회생 과정에 있고 인수할 회사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부당해고로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만 있어요.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받은 거니 끝까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박이삼 지부장)


중노위는 사측이 무급 순환휴직, 회사 매각 노력, 희망퇴직 등 해고 회피 노력을 다 했다고 밝혔다.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았다면 추후 인원 감축 시 회사의 경영상 위기를 가중시킬 수도 있었다며, 지노위 판정과 상반된 판정을 내렸다. 이는 ‘장래에 올 수도 있는 경영상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인원 감축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지난 2014년 콜텍 정리해고 고법 파기환송심 내용과 동일한 것이다.

10월 12일, 노동조합은 중노위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무죄를 주장한 이상직 의원의 선고 공판은 2022년 1월 12일로 잡혀 있다. 이스타항공조종사지부는 이 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정리해고 철회 투쟁 2라운드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 이스타항공 회생 과정에서 인수하는 회사와 해고자들 간에 논의가 전혀 없는데, 그건 이상직이 여전히 관여돼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박 지부장은 항공업에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이상직 씨 관련 회사가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것도, 회사를 이렇게 만든 이상직 씨의 측근이 경영진으로 남은 것도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노동자 복직을 위해서라도 이상직 의원을 완전하게 털어낸 이스타 항공의 경영 정상화는 꼭 필요한 과제다.

박이삼 지부장은 코로나19 등의 상황으로 마냥 긍정적인 기대를 갖기는 어려운 게 사실지만, 적어도 ‘당신의 복직은 언제’라고 얘기해줄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볼 계획이다. 결국 해고 전에 노동조합이 제안했던 순환 무급휴직이 대안일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했다. 그 기다림이 길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조종사들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갖고 있는 자격증과 경력을 다른 데 쓸 수는 없기 때문에 내가 다시 복직할 수만 있다면 기다리겠다고 얘기해요. 석 달에 세 번 이착륙을 하면 자격 유지가 되니까 한 달 일하고 한 달 쉬면 돼요. 서로 양보하고 나눠가면서 자격 유지를 하면 모두 다 같이 살 수 있잖아요.”
  • 문경락

    12월 17일 오후 5시, 서울남부지방법원. 이스타항공 최종구 전 대표와 김유상 현 대표의 임금체불·4대 보험료 횡령 등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에 관한 재판(형사8단독 판사 최우진)이 시작된다. 잘 나가던 LCC 항공사(저비용 항공사)에서 발생한 1,600명 노동자에 대한 530억 원 임금체불 사건은 이제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는 걸까. 본의 아니게 단독 취재를 하게 된다. 노동자 75%를 정리해고 하고 내년 2월 운항을 재개하겠다는 회사의 전·현직 대표는 그 어떤 비난과 비판도 없이 자유롭게 재판정을 드나들었다.

  • 머가리

    그 기회를 지들이 다 걷어참 ㅋㅋㅋ

  • 머가리

    그 기회를 지들이 다 걷어참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