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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냐?”라는 질문에 답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미디어택] 억지 주장에 너무 쉽게 사고하는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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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짧은 머리’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났다. 2020도쿄올림픽에서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가 두 개의 금메달을 딴 상황이었다. 진천선수촌 국가대표훈련장에서 훈련하는 안산 선수의 SNS 영상에 누군가 ‘찡그린’ 표정의 이모티콘과 함께 “왜 머리를 자르나요?”라는 댓글을 달면서 모든 일이 벌어졌다. 안산 선수는 “그게 편하니까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까지는 ‘본인의 취향을 남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라는 정도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안산 선수가 “웅앵웅”, “오조오억” 등의 표현을 썼던 과거의 글들을 ‘굳이’ 찾아내 그가 여대에 다닌다는 사실 등 여러 가지를 조합해 “페미냐?”라고 해명을 요구하면서 선을 넘기 시작했다.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숏컷하면 다 페미다”, “여자 숏컷은 걸러야 한다” 등을 포함해 입에 담기 어려운 글들이 올라왔다. 이어서 안산 선수와 양궁협회를 향한 “금메달을 반납하라”, “국가대표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라는 공세로 이어졌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늘 그래왔다

이번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건 “짧은 머리=페미”라는 공식이 특정 성(性)만을 향한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라. 저 수식 그대로라면 대부분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번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을 거다. 결국, 저 공식에 빠진 행간이 있었으니 바로 ‘여성’이라는 주어다.

이런 식의 ‘여성’에 대한 낙인찍기는 과거부터 존재해왔다. 2000년대 초반, ‘스타벅스 가는 여성’을 향해 ‘된장녀’ 프레임이 작동했던 때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된장녀의 기준’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6천 원 이상 되는 밥을 먹으면 된장녀”, “편의점 이용을 선호하면 된장녀”, “3만 원 이상 속옷 세트 입으면 된장녀” 이런 식이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그 마녀사냥은 ‘김치X’, ‘메갈X’ 등으로 이어졌다. ‘김여사’, ‘맘충’은 물론 ‘개념녀’ 역시 같은 맥락의 용어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 문제니까 말이다.

이런 식인 거다. 여성은 긴 머리를 해야 하고, 치마를 입어야 한다. 집 밖을 나갈 때는 화장을 해야 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대서는 안 된다. 결혼하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고 자녀 교육을 책임져야 하며, 시부모를 봉양해야 한다. 이렇듯 ‘여자는 이래야 한다’라는 가부장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상상을 해야 한다는 게 페미니즘의 기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페미니즘이 정치권의 표몰이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20·30대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없다”라는 이유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이 상황에서 안산 선수를 향한 공격들이 벌어졌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안산 선수의 쇼트커트를 빌미로 가해지는 메달을 취소하라는 등의 도 넘은 공격을 중단할 것을 제1야당 대표로서 책임 있게 주장해달라”라고 촉구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는 정작 “헛것”이라며 “이 모든 상황을 조작해 제1야당을 음해하려는 심각한 정치공작을 벌인 것”이라고 동문서답했다. 국민의힘 양준우 대변인은 “(안산 선수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남혐 용어 사용’”이라고 한 발 더 나갔다. 피해자인 안산 선수에게 원인이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여성이라면 문제라는 사람들…받아주면 끝이 없다

‘웅앵웅’, ‘오조오억’을 둘러싼 표현도 마찬가지다. 최근 브레이브걸스 유나가 SNS에 “5조억 점 받았다”라는 글을 게시하면서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 “사과하라”는 요구가 빗발친 거다. 그러자 유나는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분들? 사실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해봤다. 저는 생각보다 남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누가 무슨 생각을 하고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관심이 없다”라던 자신의 과거 인터뷰가 담긴 링크를 게시했다. 정확히 ‘오조오억’이라는 단어도 아니고 유추할 수 있는 용어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정작 남성 아이돌이 같은 표현을 쓴 것이 밝혀졌지만 문제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늘 같은 양상이었다. 레드벨벳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하자 페미니즘 논쟁이 벌어졌다. 반면 방탄소년단 RM이 같은 책을 읽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최근 논란이 된 편의점 GS25의 ‘캠핑가자’ 포스터 사건은 어땠나. 오죽하면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가 개그맨 유재석 씨, 트럼프 미 전 대통령, 가수 박진영 씨,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물론 본인이 같은 손 모양으로 찍힌 사진을 올리기까지 했겠나.

문제는 이 같은 억지 주장들에 한국 사회가 너무 쉽게 사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GS25는 논란이 일자 사과했다. 그 후, 줄줄이 사과 행렬이 이어졌다. 동서식품 RTD SNS 담당자, BBQ, 카카오와 카카오뱅크. 정부 기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포항시청은 물론, 전쟁기념관은 무궁화 포토존을 철거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 김남일 디지털콘텐츠 부장은 ‘손가락 찾기, 받아주는 사람 잘못이다’라는 칼럼을 통해 “이제 받아주는 사람에게 한국 사회를 퇴행시킨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며 “이런 부류 억지는 공론장에서 재치 대결로 승부를 가를 주제도 아니다. 자꾸 받아주면 끝이 없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지금은 ‘오조오억’, ‘웅앵웅’ 뿐이지만, 계속 받아주다 보면 그 표현들은 점점 넓어질 수밖에 없다.

‘언론’들도 정신 차려야 한다. GS25 손모양은 물론 억지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는 기사들은 중단해야 한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안산 선수에 대한 명백한 백래시를 단순 ‘젠더갈등’으로 표현해서도 안 된다. 외신에서는 ‘온라인 학대’라고 명명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자신이 쓰는 기사가 ‘혐오’를 부추길 수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더팩트의 “[단독] “양궁협회에 안산 금메달 박탈 요구” 내용은 ‘오보’”라는 기사는 최악으로 꼽을 만하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이 양궁협회에 ‘올림픽 3관왕’ 안산 선수의 메달 박탈을 요구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라는 기사 리드문부터 틀려먹었다.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이 안산 선수의 금메달 박탈 요구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몇몇이 양궁협회에 전화했다는 인증 글들이 올라왔던 것도 팩트다. 그런 위협으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있다. 그런데, 더팩트는 그 모든 것을 “오보”라고 단정 지었다.

이번 사태가 엄중한 것은 실질적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국가대표라는 ‘공적’인 일에서 벌어졌다. 강남역 사건을 보자. 여성들을 향한 폭력은 언제나, 어느 공간에서나 있었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직접적인 폭력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파장이 컸던 이유다. 안산 선수에 대한 공격도 마찬가지다. ‘일’이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그것도 개인전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사상검증이 벌어졌다. 이제 멈춰 세워야 한다. 그런 사상검증에 “페미인지 아닌지, 답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건 가장 멍청한 짓이다. 애초 “페미냐?”라는 말은 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 ㅋㅋㅋ

    페미냐? 가 여자냐? 가 아닙니다 페미는 남성여성 혐오주의자 입니다

  • ㅇㅇ

    페미는 정신병이니까 밝히면 안되긴해 ㅋㅋ

  • ㅇㅇ

    성차별하냐?는 질문에 답하는 건 멍청한 짓이긴 하죠. 페미니즘은 받아주면 끝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