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돌봄노동자 “저임금·불안정 노동…노정교섭 촉구”

110만 돌봄노동자 “돌봄 국가책임 요구” 하반기까지 투쟁 이어져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코로나19로 돌봄의 공공성과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요구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 가운데, 민주노총이 돌봄의 공적 체계 강화를 요구하며 정부에 교섭을 촉구했다.

전국의 돌봄노동자는 108만7천여 명으로, 여기에는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장애아돌봄지원사, 가사·육아도우미, 아이돌보미,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보육교사 등 10개 직종이 포함돼 있다.


민주노총은 3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기본 권리인 돌봄서비스가 민간에 맡겨져 영리 추구 사업으로 전락한 현실을 혁신하지 않으면 25년 초고령사회가 왔을 때 발생하게 될 사회적 혼란과 비용은 심각한 상황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국가와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돌봄 사회 구축, 돌봄 노동자의 고용안정, 처우 개선 및 노동기본권 보장을 중심으로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 체계 건설과 돌봄서비스 질 향상을 요구”한다며 관련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노정 교섭을 촉구했다.

사회서비스 시설 99%, 민간 운영

현재 정부의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2%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사회복지시설통계에 따르면 사회서비스 시설 중 88%가 민간이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국공립 민간위탁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99%에 이른다. 보육교사의 71%도 민간·가정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이들의 89%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재가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들 대다수는 시급제 노동자로 저임금과 소득 불안정에 놓여 있다. 아이돌보미 등 재가 방문 돌봄노동자의 경우에는 근무시간이 불안정할 뿐 아니라, 기간제 계약을 맺기 때문에 일상적인 고용불안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 역시 최저임금 노동자다.

기자회견에서는 민간 운영으로 발생한 열악한 노동조건과 이로 인한 서비스 질 하락 문제에 대한 돌봄노동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노우정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위원장은 월급제 요양보호사의 월급이 보건복지부 기준 수가 상 인건비보다 월 34만 원, 단순계산하면 연간 400여만 원이 착복되고 있지만 이를 정부가 방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양보호사 임금이 국민에게 징수되는 장기요양보험료에서 지급되기 때문에 공공성과 투명한 관리가 핵심이지만, 정부의 관리 감독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노우정 위원장은 “요양시설 97.3%, 재가시설 99%가 민간운영자에게 위탁돼 부정수급과 비리 문제는 일상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18년 A요양보호사는 시급 9,700원을 B요양보호사는 시급 10,500원을 받는 등 시급 차이가 발생한다. 지역별로 재가센터장들이 담합을 해 그 지역의 시급을 정하기도 한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음에도 13년 동안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 직무 유기를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노인생활지원사인 배연희 씨는 “노인맞춤서비스의 경우 보건복지부, 지원기관, 지자체, 위탁사회복지기관에서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도입됐다. 노인들의 다양한 필요와 욕구를 반영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지만, 이용자 욕구에 맞는 서비스 유형 등이 체계화되지 않은 실정”이라며 이를 “노인돌봄서비스 성과를 위해 생활지원사들의 노동과 감정을 갈아 넣어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노인생활지원사는 노인들이 장기요양보험으로 중증화하는 것을 늦추고, 자립적인 노후생활을 지원하는 노동자다.

돌봄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도 묵인되고 있었다. 배연희 노인생활지원사는 “이용자 중에는 생활지원사에게 집안일을 시키거나 청소를 해달라는 식의 요구를 하는 이도 있다. 성희롱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지만 2인 1조는 실행되지 않고 있다”라며 그럼에도 “부당하다고 항의하면 기관은 평가에 반영될 것을 우려해 지원사들에게 오히려 참을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코로나로 123만 원이었던 임금마저 줄어든 돌봄노동자

아이돌보미의 경우엔 123만 원에 불과했던 임금이 코로나19 이후 35만 원가량 줄었다. 아이돌보미는 사용자가 이용자의 수요가 있을 시에 노동자에게 연계를 해줘야 일할 수 있는데, 코로나19로 이용자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7년째 아이돌보미로 일하고 있는 백영숙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인천아이돌봄지부장은 “아이돌보미의 약 30%는 월 60시간 미만으로 일하며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지 못한다. 덕분에 노동자 중 39%가 5년 미만 근속자”라며 또 “코로나19 이후 57%의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이 123만 원에서 88만 원으로 줄었다. 연계취소나 연계 자체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는 방식, 이용자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부족한 이용 시간, 그리고 최소한의 근무시간도 보장하지 않는 저임금 구조 등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용자와 아이돌보미 모두 힘든 상황”이라며 아이돌봄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서비스원조차 비정규직 비율 50%

정부가 돌봄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사회서비스원을 설립 중이나 서울사회서비스원을 제외한 곳의 노동자들은 1~2년 마다 교체되거나 해고되는 등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송정현 서비스연맹 전국사회서비스원노조 위원장은 “경기도사회서비스원의 전체 직원 412명 중 과반이 넘는 222명이 1년 단위 혹은 2년 단위로 교체되거나 해고되는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맞춤 돌봄 노인생활지원사, 긴급돌봄 요양보호사, 다함께 돌봄교사 등 비정규직 고용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라정미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장은 “사회서비스원이 직영하는 국공립 시설 수는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수에 한참을 못 미치고, 사회서비스원의 직영 종합재가센터 설립과 종사자 처우 개선에 필요한 예산은 지자체에 떠넘겨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9년 정부의 사회서비스원 설립 계획을 보면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사회서비스원 직영의 국공립 어린이집 510개, 요양시설 344개, 종합재가센터 135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2021년 현재 기준 사회서비스원이 운영 중인 국공립 어린이집은 17개, 요양시설 3개, 종합재가센터는 24개로 내년까지의 목표치에 한참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라정미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장은 “서울시 사회서비스원마저도 내년도 예산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고 지금은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교섭이 진행 중이나, 시 당국의 미온적 태도 속에 파행이 지속되고 있다”라며 또한 “전국 각지에서 설립 중인 사회서비스원별로 중앙정부가 편성한 예산이 5~9억 수준이다. 나머지는 지자체가 알아서 하게 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25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사회서비스원법의 문제에 대해서도 라정미 지부장은 “사회서비스원 직영 국공립시설을 늘리자는 조항을 수정해서는 누더기로 만들었다. 민간이 꺼리는 부문에서만 위탁받아 운영토록 하고, 국공립시설 입찰 시 사회서비스원 보고 경쟁하라고 해놓았다”라며 관련 조항을 즉시 수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화에 나서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복지, 노동강도는 돌봄서비스 질과 연결돼 있다”라며 “사회서비스 종사자 임금은 전체 산업 대비 53% 수준에 불과하고, 안전은 방치돼 있고, 복지는 전무한 상황이다. 고령자의 돌봄을 고령자의 값싼 노동으로 유지하는 구조를 바꿔야 국민들의 노후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정부에 △돌봄의 국가책임을 위한 로드맵 마련 △돌봄의 공공성 강화 내용이 담긴 제대로 된 사회서비스원법 조속한 입법 △돌봄시설의 직영화 및 정규직화 △돌봄노동자의 기본 노동시간 보장, 월급제·전일제 인력 확충 △돌봄예산 대폭 확충 △돌봄노동자의 인력배치 기준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를 갖고 민주노총 소속 돌봄노동자들은 오는 9월부터 올해 하반기까지 투쟁을 이어간다. 9월에는 노정 교섭을 촉구하는 청와대 릴레이 1인 시위와 같은 달 중순에는 증언대회를 계획 중이다. 또 같은 달 29일에는 세종시에서 돌봄 노동자 대회를 열고 10월 20일로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에도 참여한다. 그리고 11월부터는 대선에 대응해 돌봄의 국가책임을 요구하는 사업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