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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콘텐츠가 BBC 드라마·마블 영화와 하나의 진열대에 오르는 시대

[미디어택] 문화 다양성 갖추기 어렵다면 사업적 마인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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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라켓소년단〉은 선정·폭력 등 자극적인 내용이 난무한 한국드라마들 속에서 ‘무해한 드라마’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형이다. 〈라켓소년단〉에 ‘인종차별 드라마’라는 꼬리표가 붙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SBS 〈라켓소년단〉 주인공인 해강(탕준상 분)은 초등학교 시절 배드민턴 대회의 모든 상들을 휩쓸며 천재로 통했다. 배드민턴 스포츠 종목에 진심이었으나, 마음의 상처를 받아 그만둔 것이 5년 전. 그랬던 해강은 해남서중 배드민턴부 친구들과 부대끼며 다시 배드민턴을 시작하게 된다. 이제 해강의 꿈은 배드민턴 국가대표다. 그의 친구인 한세윤(이재인 분)은 세계랭킹 1위로 등장한다. 그래서 드라마에는 자연스럽게 국제대회 장면이 등장하곤 했다. 맞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청소년 국가대표 팽 감독(안내상 분)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경기를 앞두고 “숙소 컨디션이 엉망이다”, “자기들은 본 경기장에서 연습하고 우리는 에어컨도 안 나오는 낡아빠진 경기장에서 연습하라고 한다”, “(상대편이) 공격 실패 때 환호하는 건 X매너”라고 말한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승한 한세윤에게 인도네시아 관객들은 야유를 퍼붓는다. 누가 보더라도 인종차별 요소가 다분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SBS 〈라켓소년단〉의 문제의 장면을 두고 “국가에 대한 모독”, “인종차별”이라며 공분이 터져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SBS는 ‘스브스now_insta’을 통해 인도네시아어로 사과문을 게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었다. 방송이 아닌 SNS를 통한 사과는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한국방송이 한국방송 했던

최근 SBS 〈펜트하우스3〉도 같은 문제를 야기한 바 있다. 시즌2에서 자동차 폭발 사고로 사망한 로건 리의 형 알렉스(박은석 분)가 레게머리에 얼굴에는 타투를 한 모습으로 등장해 ‘인종차별’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배우 박은석은 “조롱하거나, 무례하게 할 의도는 없었다”라며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접근한 것이었으나 잘못된 시도였다”라고 사과했다.

생각해보면, 한국방송의 ‘인종차별’은 어제오늘 날의 문제는 아니다. 1987년 KBS 〈쇼 비디오자키〉에서 개그맨 이봉원· 장두석이 흑인분장을 하고 “시커먼스~”를 불러 큰 인기를 끈 시절도 있지 않았나. 이후 ‘블랙페이스’가 가지는 차별적 함의가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시간이 지나며 바뀌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동남아시아나 중국 동포 등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한국 방송의 ‘혐오’적 시각은 여전했다. 2006년, KBS 〈개그콘서트〉에서 이주노동자로 등장한 블랑카(정철규 분)가 “사장님 나빠요”를 외치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한다. 2013년 KBS 〈개그콘서트〉의 유명 코너였던 ‘황해’는 어떤가.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한 개그에서 어눌한 한국어로 “고객님, 많이 당황하셨어요?”라던 모습은 특정 집단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드러나기에 충분했다.

무수한 논란에도 한국 사회는 ‘학습’하는데 게을렀다. 2017년, 인기 그룹 마마무는 팝가수 브루노 마스의 인기곡 ‘Uptown Funk’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얼굴을 검게 칠하고 등장했다가 비난에 직면했었다. 같은 해 SBS 〈웃찾사-레전드 매치〉에서 개그우먼 홍현희는 아프리카 흑인 추장 분장을 하고 개그를 선보였다가 사과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좀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의정부고 학생들이 가나의 장례 문화를 담은 유튜브 영상을 패러디 한다며 흑인분장을 하고 졸업사진을 찍었던 이른바 ‘관짝소년단’ 논란이 벌어진 것이 2020년이다. 올해 2월에는 다른 곳도 아닌 공영방송 KBS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벌어졌다. KBS의 특집 다큐멘터리 ‘호모 미디어쿠스’ 5부작 홍보 포스터가 공개됐는데, 인류가 진화하는 모습을 구현하며 진화할수록 피부색이 하얗게 변하도록 그렸다. 문제는 이 포스터가 공개되기까지 조직 내부에서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KBS 시청자 미디어부장은 시청자위원회 답변에서 “미국에서는 인종이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 같다”라며 “그런데, 사실상 저희로서는 문제의식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포스터) 배포 전에 디자인부터 색깔을 봤지만,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최소한 사업적 마인드라도

이번 SBS 〈라켓소년단〉 논란은 어쩌면 ‘학습 없던’ 한국 사회에서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일지 모른다. ‘한국방송이 한국방송 했을 뿐’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놀라웠던 건 인도네시아 시청자들의 반응이 실시간, 즉각적으로 뒤따랐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 그리고 한국 콘텐츠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상승이 가져온 변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SBS 〈라켓소년단〉의 온라인 유통을 보자. SBS 홈페이지를 통한 on-air와 VOD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이 합작한 온라인동영상 서비스 (OTT) 웨이브(WAVVE)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서도 유통된다. 이제는 온라인을 통해 타 국가의 드라마를, 시차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그 나라의 언어로 곧바로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재밌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SBS 〈펜트하우스2〉가 방영되던 어느 날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배로나는 죽지 않았다”였다고 한다.

한때 KBS와 MBC·SBS 지상파만 존재하던 때가 있었다. 시청자에게 선택지가 3개 채널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여기에 tvN· OCN 등 케이블 PP가 생겨나고 TV조선· JTBC·채널A·MBN 등 종합편성채널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OTT의 탄생 및 성장은 시청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주었다. KBS 〈동백꽃 필 무렵〉과 영국 BBC 드라마 〈셜록〉이 이제 하나의 플랫폼 진열대에 놓이는 시대가 됐다. 여기에는 전 세계적 인기를 끈 마블 영화들도 놓여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등 각각의 OTT가 선보이는 콘텐츠들도 마찬가지다. 시청자의 선택권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말이 된다.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방송사업자들은 그만큼 ‘판로’가 늘어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문화 다양성’ 관점이 그것이다.

SBS 〈라켓소년단〉 제작진은 인도네시아 내 배드민턴의 인기를 알았을 것이다. 그 ‘팩트’만 놓고 국제대회 상대국으로 설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만 접근해선 안 된다. 시각을 넓혀 인도네시아의 역사·문화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학습이 더딘 한국방송 제작진에게 너무 어려운 부탁일까. 그렇다면 제발 이것 하나만이라도 명심했으면 좋겠다. 인도네시아 시청자들 에게 팔 거라면 최소한 그들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콘텐츠를 만들어 달라. 최소한 사업적 마인드라도 갖춰달라는 당부다. 방송 제작진이 갖춰야 할 인권 감수성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말이다. 제발 좀!
  • 문경락

    SBS 〈라켓소년단〉 제작진은 인도네시아 내 배드민턴의 인기를 알았을 것이다. 그 ‘팩트’만 놓고 국제대회 상대국으로 설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만 접근해선 안 된다. 시각을 넓혀 인도네시아의 역사·문화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학습이 더딘 한국방송 제작진에게 너무 어려운 부탁일까. 그렇다면 제발 이것 하나만이라도 명심했으면 좋겠다. 인도네시아 시청자들 에게 팔 거라면 최소한 그들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콘텐츠를 만들어 달라. 최소한 사업적 마인드라도 갖춰달라는 당부다. 방송 제작진이 갖춰야 할 인권 감수성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말이다. 제발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