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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투쟁하니 임직원이라고 호칭해 주대요”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30) 대구 일원 도시가스 검침·점검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이야기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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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 온다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5월 4일 오전, 대구 중구 남산동 대성에너지(대표이사 윤홍식) 사옥 앞. 대구 도시가스 검침·점검노동자들의 3차 파업 집회에서 노동자들(공공운수노조 대구지부 대성에너지서비스지회 소속)이 투쟁가를 배우고 있다. 오늘은 신원철 부지회장의 진행으로 <단결투쟁가>를 배운다.

“백골단 구사대 몰아쳐도 꺾어 버리고 하나 되어 나간다. 자기 음정이 확 바뀌죠? 어렵습니다. 다시 해봅시다. 백골단부터 다시 갈게요.“

“백골단 구사대 몰아쳐도 꺾어 버리고 하나 되어 나간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아아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 뿐이다”

  5월 4일 대구 대성에너지 앞에서 3차 파업투쟁 집회에서 <단결투쟁가>를 배우고 있는 여성노동자들 [출처: 연정]

유리할 때는 연봉제, 불리할 때는 성과급

3월 첫 파업을 시작한 이후 파업 집회에서 제일 처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웠고, 그 다음으로 <파업가>를 배웠다. 이제는 두 노래의 가사를 보지 않고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달 동안 노동조합은 회사에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주었지만, 회사는 문제 해결은커녕 4월 25일 또다시 임금 삭감을 했다. 노동자 한 명당 삭감 금액이 무려 70~80만원에 달한다. 임금이 성과급이 아닌 소정 근로시간에 대한 대가이기 때문에 임금 삭감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4월에도 검침·점검 노동자들에 대한 기준 없는 임금 삭감을 했다. 회사는 본인들 마음대로 유리할 때는 연봉제로 지급하고, 불리할 때는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대구도시가스 검침·점검 여성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5월 1일부터 검침 기간 8일 동안 세 번째 파업에 들어갔다. 두 달째 임금삭감으로 인한 생계 문제로 대출을 받고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도 있다.

“83만 원이 깎였어요. 회사에서는 나름대로 계산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검침원들이 각자 전화해 물어보면 대답하는 게 틀려요 어떤 사람은 점검율 비율로 임금 계산했다 그러고, 어떤 사람은 파업 때문에 무노동 무임금을 했다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저는 애들이 다 커서 학생이 없으니 좀 나은데, 아직 애들 공부시키는 사람들은 타격이 크겠죠. 그래도 다 한마음 한뜻으로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건데 끝까지 가야 안 되겠어요.” (김숙경(가명), 검침·점검 노동자)

근무하던 센터에서 불공정한 인사처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원거리 센터로 부당전직이 되고, 2개월 째 18만원 감봉된 급여를 받고 있는 정명주 씨(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부지회장)는 4월 급여로 51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장거리 출퇴근으로 추가된 유류비와 식사비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는 정명주 씨는 ‘“점검 봉사활동 하러 다닌다”며 허탈하게 웃는다.

석 달 투쟁한 결과물이 전혀 없지는 않다. 올해 5월 10일 대성그룹 창립기념일인 ’대성의 날‘에 대성에너지 검침·점검 노동자들과 AS기사 노동자들도 20년 만에 처음으로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대성에너지 직원들은 다 쉬는 창립기념일에 비정규직노동자들은 근무를 해왔다.

타임오프 두 시간에 집기만 해주겠다고?

노동자들은 이제 앉을 때 일어날 때 “아이구~” 하지 않는다. “투쟁~”하고 앉고 “투쟁~!”하고 일어난다.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었지만, 회사는 달라진 게 없다. 4월 2차 파업이 끝난 후에 진행된 교섭 자리에서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는 노동조합 요구안의 3분의 1도 안 되는 안을 들고 나왔다. 회사는 연장근로수당과 차량유지비에 대해서는 여전히 돈이 없다는 이유로 현실적인 안을 내놓지 않고,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비스센터는 노동조합 인정이라 할 수 있는 조합 사무실과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마저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노동조합 활동 시간을 월 2시간만 인정하겠다고 제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실무교섭에서 ‘이거 일하다 화장실 가는 시간으로 주신 거 맞지요?’라고 물으니 대답이 없더군요. 타임 오프 월 두 시간에 조합사무실 제공은 어려우니 집기를 해주겠답니다. 노동조합 사무실도 없이 월 두 시간 쓰는데 누가 쓰라고 집기를 사준단 말입니까? 우리가 이런 수준의 회사와 교섭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돈이 없다고 합니다. 서비스센터는 재고가 필요한 회사도 아니고 시설 투자가 필요한 회사도 아닌데 계속 돈이 없다는 이야기만 합니다. 대구시에서 적정인력 용역 평가도 문제지만 내부에서 돈 새는 곳을 막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최규태 지회장)

최규태 지회장은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가 한 개 회사로 유지해도 되는 것을 굳이 16개 센터로 쪼개어 각 센터 임대료를 지출하고 대성에너지 본사에서 센터장을 데려와 고연봉 임금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검침·점검 노동자와 AS기사노동자들은 결원이 생길 경우 인력 충원을 하지 않으면서 쓸 데 없는 곳에 돈을 쓰고 있다고 했다.

  대구 도시가스 검침·점검 노동자들의 3차 파업 집회가 진행되는 대성에너지 사옥 앞 [출처: 연정]

서비스센터는 대성에너지의 한 부서일 뿐

“돈은 우리 노동자들이 다 벌어주는데 관리팀이라고 한가득 사무실에 앉아 월급은 우리 배 이상 받아가고 복리후생도 세 배 가까이 됩니다. 무슨 문제가 있어 물어보면 모른다고 알아보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실무자들이 거기 앉아서 모른다 하면 우리는 어떻게 일을 하란 말입니까? 이번 임금 삭감으로 월급의 세부내역을 가르쳐 달라니까 내부적으로 회의를 해야 된다고 합니다. 담당자가 모른다고 합니다. 이게 회사입니까? 뭐한다고 그만큼 들어앉아서 우리한테 와야 될 돈을 다 챙겨 가는지 진짜 묻고 싶습니다. 이런 상황 다 알면서도 대성에너지는 왜 관리 안합니까? 말이 독립된 회사이지 다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저기 서부지사 2층에 관리팀이라고 있는 우리 본사는 본사가 아니라 그냥 서비스센터를 관리하는 관리팀일 뿐입니다. 이 대성에너지의 한 부서일 뿐입니다. 관리팀이 당장 없어져도 문제될 거 있습니까? 다 잘 굴러갑니다. 업무 마비될 거 하나 없습니다. 대성에너지는 책임감 있게 나와서 시작해야 됩니다. 나오세요. 윤홍식 사장님, 교섭 전에 먼저 인사나 합시다.” (최규태 지회장)

“원청 책임 회피하는 대성에너지 규탄한다!”

“노동착취 수십억 배당금 대성에너지 규탄한다!”

“대성에너지와 직접교섭 단체협약 쟁취하자!”

“노조탄압 박살내고 민주노조 사수하자!”

3차 파업을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의 구호도 바뀌었다. 4월까지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외치지 않았을 구호들이다. 대성에너지가 해결 주체로 나서지 않으면 노동조합 인정도, 어떤 현안도 해결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성에너지는 검침·점검노동자들을 ‘남의 회사 직원’이라고 했지만, 이들 노동자들은 대성에너지를 ‘본사’라고 불렀다. 입사한 지 8년 된 김희자 씨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본사에서 검침·점검노동자들 중에 우수사원을 뽑아 제주도 연수 기회를 주었다고 했다. 대성에너지 직원들이 함께 갔고, 프로그램도 대성에너지가 짰다.

“사실 옛날에 대성에너지하고 센터하고 같은 회사였거든요. 우리 교육도 대성에너지에서 하고 기념품도 대성에너지에서 다 주고 했었어요. 팔공산 자리 빌려갖고 본사(대성에너지)에서 와서 교육도 했고요. 본사 직원들이 우리 다 알잖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선을 딱 긋더라고요.” (김희자, 검침·점검노동자)

  파업 집회에 참여 중인 대구 도시가스 검침.점검 노동자들 [출처: 연정]

대성에너지는 검침·점검 업무와 AS 업무와 관련된 실사를 포함한 모든 관리를 다 하더니 어느 날부터 이를 중단했다. 불법파견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다. 6년 동안 대구지역에서 도시가스 AS 업무를 해온 최규태 지회장은 서비스센터의 각 팀들이 마치 대성에너지 하나의 부서처럼 돌아갔다고 이야기한다.

“대성에너지에서 업무지시를 하는 단체 카톡방이 따로 있었어요. 예들 들어 계량기팀이면 각 센터 계량기팀장들을 채팅방에 초대해서 거기에서 대성에너지가 서비스센터를 통하지 않고 바로 업무 지시를 내려주고 했습니다.”

대성에너지는 최근까지도 유지하던 카톡방을 지난해 노동조합이 만들어지자 없애버렸다. 파업이 시작되자 대성에너지주식회사 이름으로 발행되는 도시가스 요금 고지서에는 ‘검침대행 위탁회사’라는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거리감이 있는 명칭이 표기되었다. 최근 대성에너지는 대성에너지센터서비스지회의 교섭 요구에 대해 직접적인 노사 당사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다.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3차 파업투쟁 결의대회가 진행 중인 대성에너지 앞 [출처: 연정]

끝까지 간다고 생각하는 거지

대성에너지의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투쟁은 점점 대성에너지와 대성그룹을 향해 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대구경북본부 이남진 본부장은 “5월 까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성홀딩스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고,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을 국정감사에 나오게 하는 투쟁을 전개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대성홀딩스는 대성에너지의 지분 71%를 보유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이길우 본부장도 지난 5월 1일 이 곳에서 1500명이 참석한 노동절 집회에 이어 6월과 7월에는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공공운수노조 집회와 민주노총 집회를 열겠다는 약속을 한다.

블랙스톤 외국 투기자본의 일방적인 폐업에 맞서 1년 가까이 투쟁하고 있는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는 최근 대성홀딩스가 대구시 달성산업공단에 있는 한국게이츠 공장 부지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확인했다. 한국게이츠지회는 이 부분이 공식화되면 대성에너지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대성그룹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결의를 밝힌 바 있다.

대성에너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을 향한 한 판 투쟁이 시작되었다.

  5월 4일, 3차 파업투쟁 결의대회에 참석 중인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조합원 [출처: 연정]

“우리 일하는 게 실제로 억수로 힘들거든요. 점검하고 이럴 때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이 딱 남더라고요. 그 한 집 보러 어떨 때는 스무 번도 가요. 프로테지를 내야 되니까. ‘아침에 9시에 온나. 11시에 온나. 1시에 온나. 3시에 온나. 저녁 9시에 온나.’ 같이 모아 할라 카면 고객들은 자기 편의 때문에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프로테지 맞출라고 진짜 하루에 6번 나간 적도 있어요. 밤 11시까지도 하고 이러니까 고객들은 우리가 야근수당에 월급 3백 만 원은 받는 줄 알아요. 진짜 자존심 상해갖고 말도 하기 싫어요. 나는 임금피크제라는 게 대기업에서 책상에 앉아서 일 하는 사람들한테나 적용되는 건 줄 알았어요. 안 그래요? 15년 동안 최저임금을 받았어도 일 한 노하우가 있다는 자부심으로 일해 왔는데, 거기서 또 깎아요. 만 55세가 됐다고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대요. 2년 동안 갓 들어온 수습사원하고 같은 월급을 받았어요. 너무 억울하고 억수로 기분 나빠요. 우리는 일한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은 것뿐이에요. 엊그제 회사가 보낸 공문을 봤는데 그래도 인식이 조금은 바뀐 거 같아. 처음에는 되고 안 되고가 아니라 우리를 아예 사람 취급도 안했어요. 이번에는 그래도 맨 마지막에 임직원이라고 호칭해 주대요. 빨리 파업 정리하고 돌아와서 일 하라고. 그래도 석 달 투쟁했더니 조금 낫구나. 거기서 한 가지 희망을 갖고 더 열심히 해야죠. 이래저래 손해보고 그런 걸 떠나가지고 석 달 정도 되면 전부 다 끝까지 간다고 생각하는 거죠.“ (김숙경(가명), 검침·점검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