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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속 90도 꺾인 장애인 좌석

[1단 기사로 본 세상] 8년 광화문역 농성을 비난했던 언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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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시내버스 자리는 달리는 버스 앞을 보도록 설치돼 있다. 그런데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전용 자리는 90도 틀어져 옆으로 보고 앉도록 설계돼 있다. 대법원이 지난 1일 정면 못 보고 옆만 보게 설치된 휠체어 전용공간이 장애인 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뭘 이런 거로 소송을 다 하느냐고 넘길 수도 있지만 한 장애인이 소송을 냈다. 그는 버스가 달리는 앞 풍경을 보지 못하고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뒷문만 쳐다보고 가야 했다. 고개 돌려 앞을 보면 되잖냐고 하겠지만 장애인 중엔 고개 돌리는 게 힘든 경우도 있다. 버스 진행 방향과 직각으로 앉아서 가다 보면 급정거 때 사고 위험도 더 크다.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다른 승객들에게 표정이 노출되는 것도 고역이다.

1심 법원은 저상버스에만 교통약자용 좌석 설치가 의무화돼 있으니, 소송을 낸 장애인이 탔던 2층 광역버스는 휠체어 전용공간 설치 의무가 없다며 버스회사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과 대법원은 “장애인은 탑승한 시간 내내 자신의 모습과 표정이 다른 승객들의 정면 시선에 놓여 상당한 모멸감, 불쾌감 또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며 1심을 뒤집었다.

  버스 안 장애인 좌석을 보도한 4월2일자 기사들

이 소중한 대법원 확정판결 소식을 지면에 보도한 신문은 지난 2일 조선일보(10면)와 세계일보(9면), 한겨레(10면) 정도였다. 보수와 진보 신문의 구분이 없었다. 비록 1단이어도 조선일보도 한겨레와 비슷한 기사량으로 보도했다.

세 신문은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하진 않았지만, 모두 가독성이 높은 사회면에 실었다. 한겨레와 조선일보는 사진과 이미지를 넣어 가독성을 높였다.

버스회사들이 앞으로 휠체어 공간을 90도 틀어 정면을 보도록 하려면 해당 공간 바로 앞 한두 자리를 비워야 한다. 비용만 생각하면 쉽지 않겠지만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누릴 이익을 생각하면 후자가 훨씬 크다.

장애인 차별 철폐는 당사자들이 피난 노력으로 한 발짝씩 나아갔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제도, 장애인 거주시설 등 3대 적폐 폐지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잠시 농성을 멈춘 적도 있지만 장애인 단체의 광화문역 농성은 2012년 8월부터 무려 8년을 이어왔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폐지했다는 등급제는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15구간으로 나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에 여전히 살아 있어 ‘가짜 등급제 폐지’에 불과했다.

  조선일보 2013년 3월13일 10면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내내 3대 적폐 폐지운동의 교두보는 광화문역 농성장이었다. 농성 장애인들은 주말이면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조롱과 폭력에도 농성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 버스 좌석 90도 바꾸는 문제에 주목했던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부 초기였던 2013년 3월 13일 사회면(10면) 머리기사에 서울 도심 천막농성장 6곳을 보도했다. 농성자들의 절박한 사연을 소개한 게 아니다.

조선일보의 이 기사엔 ‘도심 속 화약고’, ‘LPG통 옆에서 담배 피우고 취사’, ‘무단으로 전기 끌어다 사용’, ‘전기장판에 가스레인지까지… 경찰 관할구청은 뒷짐만’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조선일보는 농성 10개월 남짓한 장애인들의 광화문역 천막 농성장도 빠뜨리지 않았다. “천막 안에는 전기포트와 전기담요, 전기난로 등 전열기구 플러그가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이 단체(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해 8월부터 광화문역 9번 출구 옆 복도를 불법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사 어디에도 장애인 단체가 왜 농성하는지 언급이 없다.

또 한 번 조선일보의 장애인 기사가 어처구니없었던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가 한창때인 2015년 8월 12일 6면에 실린 ‘통진당 경력도 제대로 검증 안 하고 국가인권위원에 추천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이란 제목의 기사다.

  조선일보 2015년 8월12면 6면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지금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몫의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박영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를 추천했다. 당시 주류 정치권에선 통합진보당을 악마로 취급했기에 박영희 대표가 통진당 소속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보수 정치권에선 배제의 대상이 됐다.

통진당 소속이었다는 것만으로 비난하지만, 심상정 의원 등 지금 정의당원 상당수도 한때 통진당원이었다. 박 대표는 통진당 주류세력도 아니었다. 박 대표는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 탈당해 진보신당을 만들 때 공동대표와 부대표를 지냈다가 4년 뒤 통합진보당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당시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 의결 직전 박 대표의 추천을 보류했고, 결국 박 대표는 인권위원이 되질 못 했다.

조선일보처럼 ‘악마 찾기’에 골몰하는 언론이 우리 사회를 이런 이분법에 익숙하도록 만들었다.

장애인이, 그것도 장애인 활동가가 어떤 정당에 가입하는 건 장애인 운동의 연장선이지 정치인이 되고자 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