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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밤까지, 홀로 4천 세대를 방문하는 노동자들

[르포] 대구·경북 도시가스 검침·AS 노동자들의 첫 파업 투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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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하자마자 데모할 줄 몰랐어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3월 4일 오전,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에 3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구호가 울려 퍼진다. 대구시와 경북 경산시·고령군 등에서 도시가스 검침·점검 안전관리 업무를 하는 여성노동자(‘검침 노동자, 공공운수노조 대구지부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소속)들의 파업 4일 차 집회가 한창이다. 도시가스 검침 기간인 3월 1일부터 8일 동안 검침 노동자 240여 명이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 착취 근절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섰다.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파업기간 동안 매일 99명의 조합원이 소속 회사인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와 원청 대성에너지, 도시가스 관리 책임이 있는 대구시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3월 4일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총파업 승리 투쟁대회 장면 [출처: 공공운수노조 대구지역지부]

이들 노동자가 소속된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대표 안봉환)는 대성에너지(구 대구도시가스, 대표이사 우중본)로부터 도시가스 관리 업무를 위탁받은 회사다. 원청인 대성에너지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검침·AS 노동자들은 지난해 11월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병가조차 쓸 수 없는 노동조건을 바꾸고자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6개 센터 전체 노동자 430명 중 75%에 해당하는 320명이 순식간에 가입했다. 최소한의 노동권 확보를 위해 사측과 단체교섭을 진행했으나, 사측은 노동조합이 제시한 단체협약안 92개 중 90개를 거부하며 시간 끌기를 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해 쟁의권을 확보하고, 조합원 95.3%의 찬성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첫 파업을 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눈빛에서 설렘과 결의가 느껴진다.

“우리는 파업을 텔레비전으로만 접하잖아요. 이렇게 노조 하자마자 바로 데모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10년 동안 경북 경산에서 도시가스 검침 업무를 해온 김학순 씨(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부지회장)가 “데모하니 속도 시원하고 할 만하다”라고 이야기한다.

24시간 일하는 것 같아요

검침노동자 1인당 할당되는 검침·점검 세대 수는 무려 3,200~4,000개. 매월 1일~8일까지 각 세대를 돌며 사용량 검침을 하고, 9일부터 말일까지는 (1년에 한 가구당 두 차례씩) 검지기를 들고 가스 누출 확인 등의 안전 점검 업무를 해야 한다. 매달 20일~25일경 고지서를 송달하고, 체납 고객 관리 등의 업무도 한다. 노후 보일러 교체 점검과 호텔이나 병원, 식당 등 대용량 보일러 검침 업무도 이들의 몫이다. 수시로 사무실에 들어가 전산 확인과 방문 문자 발송, 고지서 업무, 마감 작업 등의 업무도 해야 한다.

“24시간 일하는 것 같아요. 여름에는 너무 더우니까 새벽 5시에 나가 검침을 하기도 해요. 검침은 바깥에 있는 계량기를 확인하거나 고객이 보고 알려줄 수 있는데, 가스 누출 안전 점검은 직접 세대 방문을 해야 해요. 고객이 퇴근한 후에 세대 방문을 해야 하니 밤 9시, 10시에 약속을 잡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보통은 오전 8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경산은 거의 밤 9시나 9시 반 정도는 돼야 업무가 끝나요. 낮에 일하고 저녁이 되면 또 다른 출근을 하죠. 일하는 중간에도 고객이 부르면 가야 해요. 5분 대기조에요. 집에서도 고객이 전화하면 계속 받아야 하고. 새벽에 자고 있는데, 당당하게 전화하는 분도 계세요.” (김학순, 검침노동자)


회사에서 요구하는 92%의 점검률(98%에서 하향조정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은 평일 주 40시간, 월 209시간 노동으로는 어림도 없다.

침대에 탈의하고 누워 계시더라고요

“방문 전날 ‘내일 점검하러 갑니다’라고 문자를 보내요. 100집 보내면 10집 정도 전화가 와서 약속을 잡아요. 그 외에는 부재중일 경우 ‘오후 몇 시에서 몇 시 사이 방문합니다’라는 메모지 붙여놓고 다시 방문해요. 그래도 만나지 못하면 토요일 맞춰서 전화하고. ‘나는 토요일밖에 시간이 없다’고 하면 토요일 날 가야 하는 거고, ‘나는 7시 이후만 가능하다’고 하면 7시 이후로 가야 하는 거고. 일요일에만 가능하다는 고객에게는 일요일 날 가야 해요. 안 그러면 점검률 92%를 못 맞춰요. 요즘은 개인 세대다 보니 남이 자기 집에 오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요. 코로나 때문에 거부하는 분들도 있고.” (전명주, 검침노동자)


대구에서 10년 동안 검침 업무를 해온 전명주 씨(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부지회장)도 고객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 이후까지 일하는 것이 다반사라고 했다.

점검노동자들은 시민안전을 위한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일찍 가면 일찍 왔다고, 늦게 가면 늦게 왔다고 고객에게 욕을 먹는다. 고맙다는 인사를 안 했다며 민원을 넣거나 요금이 많이 나왔다고 욕을 하는 갑질은 예사다. 악수하자며 손을 쓰다듬고, 옷을 벗은 상태로 문을 열고, 점검노동자를 앞에 세워두고 버젓이 포르노를 보는 등 남성 고객으로부터 성희롱과 성추행도 무수히 겪었다.

“문을 열어놓겠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점검하고 나오니까 다 탈의하고 침대에 누워 있더라고요. 내가 들어갈 때는 틀림없이 이불을 덮어쓰고 있었는데, 보여주려고 그랬겠죠. 그런데 반응하면 다음에 또 그래요. 그래서 ‘이상 없습니다’라며 문 닫고 나왔어요. 그다음에 갔더니 입고 있더라고요.” (김학순, 검침노동자)


야근·휴일수당 없고 실질적인 최저임금도 못 받아

그렇게 새벽부터 밤까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휴일 명절도 없이 일하지만, 야근수당과 휴일근무수당은 받아본 적이 없다. 근속연수에 따른 호봉도 없는 최저임금(+163원)이다 보니 10년을 근무해도 갓 입사한 신입 노동자와 임금 차이가 없다. 4대 보험과 세금을 공제하고 받는 실수령액은 월 165만 원 정도다.

“세대 간에 이동 거리가 있기 때문에 전부 자차로 움직이거든요. 주유비와 주차비, 세차비, 보험료, 사고 처리비, 보험료까지 만만치 않아요. 요즘 차 댈 데도 없어서 잘못하면 4만 원짜리 벌금이 허다하게 날아와요. 최소 기본비용만 계산해도 한 달에 15만 원은 넘더라고요. 우린 최저임금도 못 받는 거죠.” (전명주, 검침노동자)


한 명이 퇴사하면 인력 충원 없이 해당 업무를 기존 노동자들이 나누어서 한다. 이 때문에 날이 갈수록 업무량은 늘어난다. ‘병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과중한 업무 때문에 연차는 유명무실하다. 업무 중에 다쳐도 산재처리는 꿈도 꿀 수 없고, 산재 신청을 하려면 퇴사를 각오해야 한다. 지난 1월에는 암 치료를 위해 병가를 요청하는 검침노동자에게 센터장이 사직을 강요하며 바닥에 넘어뜨리고 목을 졸라 사회적인 공분을 사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최근 정시 출퇴근을 하며 준법투쟁을 이어가고 있는데, 대략 50~60%의 점검률이 예상된다고 했다. 이는 그동안 근무시간 절반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한 시간에 10~15개 배정, 매뉴얼은 무의미

노동자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들은 70여 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지만, 필수유지업무 제도로 전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AS노동자 역시 대성에너지로부터 위탁 업무를 하고 있다. 도시가스 사용계약 및 해지와 가스레인지 개통 및 철거 등의 업무를 한다.

[출처: 대성에너지(주)]

“계량기 교체 업무도 하고, 계량기가 고장 나거나 가스 냄새가 나면 가서 봐 드리고 있습니다. 채권 활동도 기사들이 업무 중에 짬짬이 해야 하고요. 보통 매뉴얼 상 하루에 할 수 있는 업무가 25~30건 정도 되는데, 이사 시기나 학교가 개학하는 시기에는 한 사람 당 70~80개씩 배정이 됩니다. 바쁜 철에는 석 달 정도 거의 쉬는 날이 없어요. 내려와서 차 타고 이동하는 시간도 있는데, 한 시간에 10~15개씩 배정이 되니 솔직히 매뉴얼이라는 게 무의미합니다. 지킬 수가 없는 거죠. 그러면서 사고가 나면 다 기사들 책임이라 하고. 수시로 회사에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이야기를 해도 바뀌는 게 없습니다.” (최규태, AS노동자)


6년간 대구지역에서 AS 업무를 해온 최규태 씨(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지회장)는 통상 호봉 없는 기본급 200만 원에 월 20시간의 연장근로수당과 차량 유지비 5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실제 업무량과 차량 유지비를 따져보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무엇보다 인력 부족에 따른 과도한 업무량은 화재 발생 등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폭언과 욕설, 폭력, 부당한 민원제기 등 고객의 갑질도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다.

노동조합은 사측에 검침·AS노동자들의 시간 외 수당과 차량 유지비 지급(+기사 차량 지급), 호봉 산정, 유급 병가 등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회사는 적자를 운운하며 돈이 들어가는 요구는 단 한 개도 들어줄 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원청 대성에너지의 하청의 재하청, 용역이잖아요. 재고를 쌓아두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랑 사무실만 있으면 돌아가는 용역 회사가 적자면 이 사업을 누가 하겠어요? 원청인 대성에너지는 매년 흑자가 나고 배당금도 어마어마하게 하거든요.”


최규태 지회장은 채권 관리 등에도 문제가 있다며, 정말 수익구조가 없어서 적자가 나는 것이라면 진짜 원청인 대구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상 문제라 관여할 수 없다는 대구시

원청인 대성에너지는 대구시와 경북 일부 지역의 120만 가구에 독점적으로 도시가스를 공급해 연간 1조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는 회사다. 지난해 매출액만 7,410억 원, 순이익은 144억 원으로 대구지역 매출액 3위에 해당하는 기업이다. (2019년, 대구상공회의소) 올해 대성에너지 주주총회에서 결정한 주주 배당 총액만 68억7500만 원에 달한다. 보통 대성에너지에서 퇴직한 임원들이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 센터장으로 오는데, ‘몇 년 안에 건물 사고, 사촌까지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회사는 도시가스 관리 현장의 최일선에서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견디며 수익을 창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최소한 요구에 적자 타령만 하고 있다.

  3월 4일 집회 후 대구시청으로 행진하는 대성에너지센터지회 조합원들 [출처: 연정]

‘도시가스사업법 제27조’에는 공공의 안전 유지를 위해 시장이 도시가스사업자에게 제한을 명할 권한이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구시는 이를 알면서도 수수방관하며 책임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 대구시 담당 부서인 물에너지산업과 관계자는 필자에게 “대성에너지가 진행하고 있는 에너지경제연구원 용역 결과에 따라 대성에너지가 판단할 부분”이라며 대구시의 책임과 권한을 전면 부정하는 답변을 내놨다. 대구시 담당자는 대성에너지 고객센터에 수수료 명목의 총괄 원가 운영비로 매년 2백억 원 정도가 지급 되는데, 임금은 경영상 문제이기 때문에 시에서 관여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검침노동자는 정해진 근무 시간 없이 자기 몫만 하는 간헐적 근무를 하고 있어 초과수당을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도 했다. 회사도 대구시도 누구 하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대성에너지 검침·AS노동자들은 1차 파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들은 사측의 파업기간 연차 반려와 임금삭감, 간부 전직 명령 등의 탄압에 대응하며 다음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부끄러울 줄 알았는데, 하면서 조금 더 당당해지는 것도 있고 더 잘 뭉쳐졌어요. 참석률도 정말 좋았고요. 첫날 할 때는 어색하고 뭔가 매끄럽지 못했는데, 이튿날 하니까 또 할 만하더라고요. 3일을 하니까 더 좋고. 끝날 때쯤 되니까 조금 서운하고 아쉬웠어요. 우리는 엄밀하게 따지면 그동안 회사에 착취당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많이는 바라지 않아요. 여태까지 줘야 할 것이라도 줬으면 좋겠어요.” (김학순, 검침노동자)


“좋은 고객님들은 한도 없이 좋거든예. 점검해주고 가스 누출 되가 잡아주면 고맙다카고. 거기서 보람을 느낍니다. 파업은 살면서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도 있었고 두려운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어요. 두 번째 되는 날부터는 정말 내가 참여한다는 느낌으로 되게 행복했어요. 내가 이래 해가지고 내 여건이 쪼매씩 나아진다는 기대감이라고 해야 할지. 뿌듯하고, 우리가 이제 쪼매 인간적인 대우는 받겠다, 이런 걸 느꼈지요.” (전명주, 검침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