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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그 악연의 고리를 끊어야 안 되겠습니까”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23)두 번의 해고, 박영선 후보 캠프 단식농성 중인 코레일네트웍스 이현서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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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오전, 코레일네트웍스, 이스타항공, LG트윈타워, 아시아나케이오, 뉴대성운전학원 등 9명의 해고노동자가 서울 안국동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선거 캠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노동존중’과 ‘하나의 일자리라도 반드시 지키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로 1,000명의 노동자가 집단해고 당해 길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다며 정부여당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박영선 후보 캠프 측은 문제 해결은커녕 식사와 침낭 반입조차 막아 농성자들은 애초 계획에 없던 단식농성에 들어간 상황이다.

박영선 후보 캠프 농성자 중 한 명인 코레일네트웍스 해고노동자 이현서 씨가 이번 농성을 하게 된 배경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33년 전 청주 택시노동자 총파업에 참여했다가 생애 첫 직장에서 해고당한 아픔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온 이현서 씨는 마지막 직장에서만큼은 해고자로 남지 않겠다는 각오로 투쟁하고 있다. <필자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농성 중인 해고노동자들 [출처: 공공운수노조]

문재인 정부 정규직화 정책으로 해고

“1000인 해고를 국회의원 한명이 해결할 수 있겠어요? 집권 여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죠. 면담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겠다는 답을 줘야 우리가 나가죠. 그래서 들어 왔어요. 우리가 좋아서 왔겠습니까? 금방 해결한다고 하면 여기 있을 필요도 없어요.”


이현서 씨가 담담하지만 결의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옆에서 “1천인 해고 정부여당이 해결하라!”는 구호 소리가 들려온다. 박영선 후보 캠프 직원들이 해고노동자들의 현수막을 떼려 하면서 큰 소리가 나기도 한다.

2017년 8월 부산선상주차장에서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 직접고용 기간제로 근무를 시작했던 이현서 씨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때문에 해고를 당한 피해자다.

한 달 단위로 계약을 했지만, 건강 문제나 특별한 개인 사정이 없는 한 70세까지 근무하는 게 현서 씨가 입사할 당시의 관례였다. 현서 씨 역시 당연히 70세 까지 근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마지막 직장이라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근무했다. 주차비 수납·정산, 청소, 무인 정산기 AS, 배수구 뚫기 등 주차장 곳곳을 다니며 일한지 넉 달이 되었을 때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12월 달에 무슨 무기계약직 한다고 무조건 사인을 하래. 그거 안하면 일 못한다 하니까 사인을 할 수밖에 없죠. 무기계약직은 계약이 없다는 거니까 당연히 기존에 했던 대로 70세 까지는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2년 뒤에 정년이라고 내보내잖아요. 차라리 그때 무기 계약직 안하고 기간제로 있었으면 계속 일하는 거 아냐.”


코레일이 무기계약직 전환으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실적을 높인 뒤 해고한 것이었다. 현서 씨와 같은 기간제 노동자뿐 아니라 민간 용역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비슷한 시기 무기계약직으로 강제전환됐다. 심지어 무기계약 전환자들 중에는 전환 당시에 이미 70세가 넘은 48년, 49년생도 있었다. 회사는 현행법에서 보장하는 ‘고령자 정규직 자동전환 예외규정’을 어기며 강제로 무기계약직 전환을 했다. (‘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는 55세 이상 되는 재취업이 어려운 고령자의 경우 이들의 고용촉진을 위해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노동자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돼있다.)

임금도 노동조건도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전혀 나아진 게 없는 ‘이름만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이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이들을 정규직 전환 실적으로 활용한 뒤 정년 60세가 됐다며 가차 없이 해고했다. 이렇게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으로 해고된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는 2019년 16명, 2020년 205명 등 총 225명이다. 1,000명 해고노동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마지막 직장이다 생각하고 왔는데...

대량해고를 예상한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철도조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은 2019년 12월 30일 무기계약직의 정년을 2019년부터 만 61세로 연장(고령노동자가 많은 역무직과 주차직은 만 62세)한다는 합의를 했다. 일단 당장 발생할 대량해고를 막고, 추후에 65세로 정년연장 하는 것과 70세까지 촉탁직 근무를 하는 것을 논의 해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회사는 자신이 한 합의를 바로 다음날 이행하지 않았다. 그 뒤로 1년여 동안 지난한 사측의 시간끌기가 이어졌고, 이현서 씨는 계절이 5번 바뀐 지금까지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강귀섭 사장이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데 왜 그만두고 나가야 되느냐고 정년연장 합의를 했는데, 그 밑에 있는 사람들하고 철도공사에서 자꾸 압력을 넣고 하니까. 회사 측에서는 처음에 1주일만 기다려라. 1주일만 기다리면 서류 정리해서 복귀하는 걸로 하겠다 했어요. 그 일주일이 한 달, 또 뭐 때문에 한 달, 또 이사회 연다, 이사회에서 부결됐다 그래가지고 또 넘어가요. 결국에는 법적으로 해라. 이렇게 된 겁니다.”


회사는 곧 해줄 것처럼 퇴사 처리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끌다가 지난해 8월 일방적으로 퇴직 처리를 하더니 이제 와서 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구제신청 결과를 가져오라고 했다. 현서 씨는 사측의 시간끌기로 부당해고구제신청 기간(3개월)이 경과해 이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 직장이다 생각하고 왔는데,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고 백기완 선생님 장례식 영결식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이현서 씨, 가장 오른쪽 [출처: 연정]

봉급 받으며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현서 씨 역시 생애 마지막 직장 생활을 잘 마무리 하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현서 씨는 첫 직장에서도 해고를 당했다. 젊은 시절 사고뭉치로 지내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출산을 앞둔 아내와 함께 서른 살을 목전에 두고 첫 직장을 찾았다. 1987년 우연히 선배의 소개로 50여 명의 택시기사가 23대의 택시를 운행하는 청주 원일교통이라는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잘 살아보려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객지생활이기도 해서 부지런히 했고 다른 기사들보다 사납금을 더 납부하기도 했어요.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았죠. 일당제가 아니라 우리도 다른 회사원들처럼 월급도 받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해서 파업을 했어요.”


1988년 6월 1일, 청주 택시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어용 조합장) 각 5명이 조합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전년도 완전월급제 합의를 뒤엎는 일당제 도입과 징계처분 시 상여금 미지급 등 하향된 임금협상안을 날치기 합의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청주지역 택시 노동자들은 다음날 바로 날치기 임금협상 합의 무효와 월급제 환원을 통한 생활임금 쟁취 등 전년도 노동조건 환원을 요구하는 전면파업에 돌입한다. 원일·영진·신안·삼보·신승·평화·상당·중원 택시 등 청주지역 20개 법인택시 중에 16개 법인 택시회사 1,500여명의 노동자가 이 파업에 참여했고, 6월 7일 청주 도시산업선교회에서 농성을 시작한다. (윤요성, “역사상 최장기 파업을 했던 그 곳을 돌아보다 청주지역의 운수노조 파업”,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

  1988년 당시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옥상에서 바라본 택시노동자들의 집회 장면. [출처: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윤요성, “역사상 최장기 파업을 했던 그 곳을 돌아보다 청주지역의 운수노조 파업” 수록 사진]

자기 이미지 관리만 하고 가버린 국회의원

현서 씨가 근무하던 원일교통 50여 명의 택시노동자들도 노동조합 김종우 조합장의 통솔 하에 전체 파업에 돌입하였으나 사측의 회유 등으로 도시산업선교회 농성에는 25명의 노동자만 참여하게 된다. 두 살 된 아이를 들쳐 엎은 현서 씨의 아내를 포함해 택시 노동자 가족 50여 명은 청주시청에 가서 “시장이 나서달라”며 철야농성을 했다. 청주시청 직원들은 농성 중인 노동자 가족들의 옷을 찢으며 구타하고, 담요에 싸서 2층에서 집어던지는 등의 폭력을 행사했다. 그즈음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이해찬 의원(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당시 평민당 소속)이 농성장에 찾아왔었다.

“본인이 알아서 잘 해결하도록 할 테니까 단식 풀고 돌아가 있으라고 하는데, 그거 믿겠습니까? 해결되지 않는다면 믿을 수가 없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해결책 가져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가더니 소식이 안와요. 그길로 끝이에요. 자기 이미지 관리만 하는 거지 뭐 있겠습니까?”


민주당과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현서 씨는 마지막 직장인 코레일네트웍스에서 정부정책으로 인해 해고를 당한 뒤 복직투쟁을 하면서 또다시 민주당을 만났다. (지난 연말 코레일네트웍스지부는 저임금 문제 개선을 위한 시중노임단가 100% 적용과 해고자복직 등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66일 간의 전 조합원 총파업과 43일 간의 간부파업을 진행했었다. 이때,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문제 해결을 할 것처럼 중재를 섰으나 결국 사측의 시간끌기와 명분 쌓는 것만 도와주고 자신들이 노력했다는 정치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떠났다.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해고자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2월 6일 희망뚜벅이 33일차 서울 흑석역에서 김진숙 지도위원과 코레일네트웍스노동자들 [출처: 연정]

같이 시작했으니 같이 끝내야지요

1988년, 함께 단식농성에 들어갔던 원일교통 동료 노동자들이 일당을 더 주겠다는 사측의 회유로 한두 명씩 농성장을 떠났다. 단식 20일 차가 되자 원일교통에서는 김종우 조합장과 이현서 씨만 남았다. 단식 22일 째가 되던 날, ‘무단결근, 근로자 선동’ 등을 사유로 해고통보가 날아 왔다. 아무 직책 없는 평조합원이었음에도 현서 씨는 농성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인간적인 의리 때문이었다.

“혼자 남겨두고 오기도 그렇고... 같이 시작했으니 같이 끝내야지요. 그래도 한번 해 보려고 끝까지 한 거죠.”


단식 25일 째 되던 날, 김종우 조합장이 현서 씨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절망감에 ‘죽자’라는 심정으로 라면 2개를 끓여 4홉들이 소주를 빈속에 들이부으며 한참을 울었다. 한 달 가까이 비어있던 위는 견디지 못하고 피와 함께 음식을 게워냈다. 현서 씨는 그렇게 해고를 당했다, 허리 36인치 바지를 입던 건장한 체격의 현서 씨는 26인치 바지를 입고 새 직장을 찾아 떠나야 했다. 블랙리스트 때문에 청주에서는 취직을 할 수 없어 아내의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리고 고단한 노동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58세에 들어간 마지막 직장에서 2년 4개월 만에 해고를 당해 다시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다.

“그때는(1988년) 우리가 잘 모르다보니 철저하게 준비를 못했던 거 같아요. 제일 중요한 건 단합이 안 됐다는 거예요. 단일노조다 보니 힘도 없었고. 그때 해고된 게 평생 마음에 남아요. 다시는 그런 일 없어야 안 되겠습니까? 다시 그런 꼴 안당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악연이다 보니 또 그때같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또 그때 같이 되면 이젠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여기가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단결도 잘 되고,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에서 같이 하니까 힘이 더 나요. 민주당과 악연의 고리도 끊어야 안 되겠습니까. 끝까지 해볼랍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선거 캠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해고노동자들 [출처: 공공운수노조]

집권 여당에서 해결책을 내놓아야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더 바랄게 없다는 올해 63세 현서 씨는 최선을 다해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지난 겨울에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일정에 대구부터 청와대까지 함께 걷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이번 농성도 망설임 없이 결단했다. 현서 씨는 지금도 평조합원이다. 그나마 생계에 보탬이 되던 실업급여도 끝나고, 가족들은 이제 그만 포기하라는 이야기도 하지만 현서 씨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1년 지나다 보니까 사람이 독이 올라요. 여태까지 해온 게 너무 아쉽잖아요. 정년연장 약속을 지키라는 거예요. 정부에서 ‘약속을 지켜라’ 그 한 마디만 하면 되는데, 그걸 안하고 있잖아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해고자가 2백 명이 넘어요. 엄청난 거 아닙니까?”


현재 경찰은 박영선 후보 캠프 건물 입구를 막고 출입을 통제하며, 면담은커녕 식사를 위한 김밥도 올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박영선 후보 캠프 측에서는 ‘두 명씩 자유롭게 나가서 먹고 오라’고 하는데, 건물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나가면 들어올 수 없다.

“본의 아니게 단식을 하게 됐어요. 와서 면담하고 해결책을 내놓든지, 아니면 그냥 단식을 해야죠.”


마지막으로 현서 씨에게 박영선 후보를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물었다.

“복직시켜 달라는 거 밖에 더 있겠습니까. 우리뿐 아니라 천 명이 해고돼 있는데, 집권 여당에서 해결책을 내놔야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