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2030 재테크’ 기사를 보면서

[1단 기사로 본 세상] 범람하는 재테크 기사 앞에서 중심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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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90년대 중반 경찰기자 생활도 몸에 좀 익숙해질 때쯤, 경제부에 있는 금융 담당 선배에게 “저도 언젠간 경제부 발령이 날 텐데 지금이라도 주식을 조금씩 해 볼까요?”라고 물었다. 그 선배는 ‘흐름을 이해하려면 해보는 것도 좋은데, 재테크 할 생각이라면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다. 왜 그런지 물었더니, 우리 같은 개미 투자자에게 주식은 자기 패 다 보여주고 화투 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 뒤로 주식 쪽으로 눈길을 준 적이 없다. 물론 투자할 돈이 없어서 더 그랬다.

뭐든 신조어 지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언론은 요즘 ‘주린이’이란 말을 작명해 냈다. ‘주식’과 ‘어린이’의 합성어로, 초보 주식 투자자를 뜻하는 모양이다. 요즘 2030세대들에게 재테크는 화두다. 한겨레마저도 3월 11일 10면 머리기사로 ‘2030 여성, 혼삶을 위한 재테크 연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기사에 등장하는 여성은 모두 8명이다. 29살 여성 직장인 최모 씨는 매달 월급 20%가량을 주식 등에 투자하고 있다고 했고, 주식 등에 3천만 원가량을 투자한 32살 직장인 김모 씨도 등장한다. 유학자금을 마련하려는 26살 직장인 박모 씨와 2천만 원가량을 금과 주식에 투자한 23살 대학생 정모 씨도 등장했다.

기사에서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이는 30살 직장인 오모 씨로 그는 주식 등에 1억 원가량을 투자했다. 기존 재테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가 지나치게 남성 중심이라서 비혼 여성을 위한 재테크 정보만 공유하는 카톡 오픈채팅방을 직접 만들었다는 26살 프리랜서 김모 씨도 나온다.

30년 전 한겨레 창간 초기였으면 절대로 실리지 않았을 법한 기사라고 치부하기엔 요즘 재테크 열풍이 너무도 강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미래를 도무지 꿈조차 꿀 수 없는 2030세대가 이쪽으로 몰리는 현상을 보고 누굴 탓할 수만은 없다.

그래도 한겨레는 살면서 우리 주변에서 만날 법한 사람 8명을 기사에 등장시켰다.

  조선일보 3월10일 1면과 10면(왼쪽), 한겨레 3월11일 10면(오른쪽 위).

한겨레 사회면 머리기사 보도 하루 전인 3월 10일, 조선일보 1면과 10면에도 비슷한 기사가 실렸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위장 미혼하는 신혼들… 혼인신고 역대 최저’라는 제목을 달아 요즘 2030세대들의 부동산 재테크 세태를 보도했다.

조선일보 1면과 이어진 10면 기사엔 교수나 부동산 전문가를 제외한 4개의 일반인 사례가 등장한다. ①부부 합산 소득이 1억 2천만 원인 30살 직장인 최모 씨와 ②다음 달 결혼 예정인 28살 공무원 임모 씨 ③결혼 전 각각 집 한 채씩 산 뒤 결혼한 34살 임모 씨 부부 ④지난해 10월 관악구 봉천동에 17평 아파트를 5억 원에 산 29살 직장인 김모 씨 커플이다.

30살에 부부 합산 소득이 1억 2천만 원이고, 결혼 전에 각각 집 한 채씩 샀다는 사례는 일반 국민과 상당한 거리가 느껴진다.

결혼 전, 집 한 채씩 산 34살 부부는 결혼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1가구 2주택자’가 되기 싫어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맞벌이 신혼부부에게 주는 주택청약 우선공급 기준이 8100만 원(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120%) 이하인데 이 부부는 합산 소득이 1억 2천만 원이라서 혜택을 못 받는다고 했다. 이게 현실적일까.

물론 조선일보에 등장한 2030세대도 여야 586 정치인들이 망쳐놓은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지만 일반적 사례라고 보긴 어렵다.

두 신문이 재테크 기사를 쏟아내는 사이에 지난해 시간당 8590원인 법정 최저임금도 못 받은 노동자가 319만 명에 달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같은 날 숨진 2명의 쿠팡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갓 넘는 돈을 받았다. 1년여 심야와 새벽 배송을 해온 40대 노동자는 지방에 가족을 둔 채 서울에 와서 혼자 살다가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언론이 어떤 뉴스를 취재할지 결정하는 것부터 치열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범람하는 재테크 기사가 2030 세대를 엉뚱한 방향으로 내모는 건 아닌지 생각할 때다.

  조선일보 3월 9일 B2면.
  • 문경락

    90년대 중반 경찰기자 생활도 몸에 좀 익숙해질 때쯤, 경제부에 있는 금융 담당 선배에게 “저도 언젠간 경제부 발령이 날 텐데 지금이라도 주식을 조금씩 해 볼까요?”라고 물었다. 그 선배는 ‘흐름을 이해하려면 해보는 것도 좋은데, 재테크 할 생각이라면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다. 왜 그런지 물었더니, 우리 같은 개미 투자자에게 주식은 자기 패 다 보여주고 화투 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 뒤로 주식 쪽으로 눈길을 준 적이 없다. 물론 투자할 돈이 없어서 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