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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사상검증’과 싸우는 여성 웹툰 작가

[3·8 여성의 날 특별기획 인터뷰②]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전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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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페미니즘 이슈를 지지한 디지털 콘텐츠 창작자들은 국내 게임 업계로 돌아가지 못했다. 게임 업체들은 이들과 더 이상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작품의 노출을 막았다. 일이 끊인 일러스트레이터, 웹툰 작가 등의 창작자들은 해외에서 일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게임 업계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과 플랫폼 업체의 부당행위를 경험한 여성 창작자들은 노조를 만들기로 했다. 웹툰, 웹 소설, 일러스트 작가 같은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업계에 대항해 목소리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합원이라는 사실만으로 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노조를 통해 여성 차별적인 업계 관행과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 14년 차 출판만화, 웹툰,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 중인 김희경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달 23일, 2년간의 지회장 임기를 끝냈다. 디지털 콘텐츠 창작자의 ‘노동자성 인정’을 위해 싸우는 여성 작가. 김희경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전 지회장을 만났다.

[출처: 민영영]

업계로 돌아가지 못한 여성 노동자, 노조를 만들다

2년 전 게임 업계 여성 작가 6인은 페미니즘 이슈에 동의를 표했다는 이유로 업계에서 배제됐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해 7월 “게임 업계 내 여성 혐오 및 차별적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작가들이 제기한 진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프리랜서인 5명의 피해자는 고용영역에 해당하지 않고, 노동자성이 인정된 1명의 피해자는 진정 시기가 지났다는 이유였다. 결국 ‘사상검증’으로 업계에서 배제된 피해 노동자들의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다.

“인권위 의견 표명에도 회복된 것은 없어요. 해당 기업의 사과나 피해자들의 복귀가 이뤄지지 않았으니까요. 사실 인권위 의견 표명 전에 피진정인 업체가 에이전시를 통해 진정인 한 명에게 외주 의뢰 연락을 했어요. 당사자는 한 번 거절했다가, 고심 끝에 외주를 받기로 했죠. 그리고 업체 측과 사상검증 피해 관련 합의서를 썼어요. 과거에 공개 불가 조처된 작품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죠. 그런데 한 달간 연락이 없더니 다른 작가에게 그 외주 일을 줬다고 하더라고요. 합의서만 받고 계약은 백지화를 시킨 것이죠. 사실 업체 쪽도 저희의 진정으로 위기감을 느꼈을 겁니다. 지회는 인권위 결정문에 언급된 개선 요구들이 실행될 수 있도록 꾸준히 투쟁하려 해요.”


업계에서 부당함을 경험한 여성들은 ‘노동조합’에 눈을 돌렸다. ‘사상검증’ 피해 작가들과 웹툰 전문 플랫폼 ‘레진코믹스’의 부당행위를 규탄한 작가 일부가 뭉쳐 2018년 말 노조를 설립했다. 개별적인 대응을 넘어, 여성 프리랜서 작가군의 조직적 활동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김희경 전 지회장은 ‘노조가 있으면 창작자의 노동조건도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 결성에 대한 작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노조 가입 홍보를 시작하자마자 하루에 100명의 작가들이 가입했다. 업체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해 노조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프리랜서도 남성 수입이 여성보다 많다”

페미니즘 이슈로 차별을 경험한 여성 노동자들은 ‘성별 임금 격차’라는 또 다른 차별에 주목했다. 김희경 전 지회장은 성별 수입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기업과 작가가 개별 계약을 맺고 있어, 정확한 수입 격차의 이유가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가 업체에 소득 격차의 발생 원인을 질의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지 못했다. 현재 전반적인 업계의 성별 수입 격차는 노조가 수집한 사례와 실태 조사상의 평균 소득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민영영]

“같은 프리랜서라도 남성의 수입이 여성보다 높아요. 제가 겪은 출판만화 업계에서도 원고료 차별이 있었어요. 이것이 현재 디지털 플랫폼 노동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른바 ‘남성은 가장이니까’라는 남성 중심적인 이유였죠. ‘순정만화’를 그리는 여성의 원고료가 ‘소년만화’를 그리는 남성 작가보다 낮았던 거예요.

많은 사람이 웹툰 작가의 원고료는 인기와 경력에 따라 책정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기 순위가 더 높고 경력도 더 긴 여성 작가의 원고료가, 모든 기준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남성 작가의 원고료보다 앞자리 수가 적은 사례가 있었어요. 이를 플랫폼에 문의하니 ‘다양한 이유가 있어 설명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사실상 답변을 하지 못한 거라고 봐야죠. 게임 회사의 여성 정규직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남성 중심 문화를 견디지 못해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것은 뼈아픈 현실입니다. 웹 소설의 경우 이러한 실태 파악조차 부족해요.”


지난해 (주)글로벌리서치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의뢰로 진행한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평균 총수입은 5천579만여 원인 반면, 여성은 4천423만여 원으로 1천156만여 원 정도 차이가 났다. 2017년 서울시가 진행한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에서는 여성 만화·웹툰 작가가 166만 원을 받을 때 남성 작가는 222만 원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경우도 여성 작가가 127만 원을 받을 때 남성 작가는 212만 원을 받았다.

어떻게든 빼앗기는 창작물에 대한 대가

아무리 작품에 영혼을 갈아 넣어도 수입은 온전하게 보장되지 않는다. 김희경 전 지회장의 웹툰 마감일은 10일 주기로 돌아왔다. 하루 중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작업에만 매달렸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일어나 점심을 먹고, 3~4시경부터 작업을 시작해 자정에서 새벽 2시까지 일했다. 식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저녁은 항상 배달음식으로 해결했다. 작업 기간에는 마감 스트레스로 4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다. 마감을 끝내면 하루를 쉬고 다시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창작물에 대한 수익분배는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적정한 기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기본급 개념인 원고료는 업계에서 사라지는 추세다. 그 대신 ‘미리 수익을 당겨와 작가에게 지급’하는 MG(Minimum Guarantee, 최소 보장) 제도가 많이 사용된다. MG 제도는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가 만든 제도로 ‘주간 연재 작가들에게 월 최저 금액’을 보장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다. 그러나 이 돈을 갚지 못하는 작가들은 ‘빚쟁이’가 됐다. 심지어 수익금에서 MG 금액을 언제 차감하느냐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작가들도 많다. 김희경 전 지회장은 사용자 단체와 교섭을 통해 공정한 분배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처: 민영영]

“예를 들어 업체와 작가가 5:5로 계약을 해요. 그달에 수익금이 1천만 원이 났고, MG 금액이 500만 원이라고 해보죠. MG를 먼저 차감하는 방식을 ‘선 차감’이라고 해요. 1천만 원 수익에서 지급받은 500만 원을 빼고 나머지를 절반씩 나누면 작가는 250만 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MG를 ‘후 차감’하는 경우 수익금 1천만 원을 먼저 5:5로 나누고 500만 원을 빼게 되니 작가가 그달 받는 금액은 0원이 돼버려요. 이 ‘후 차감’ MG 제도가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차감 방식에 대해서는 계약서에 적혀 있지도 않아요. 더 심각한 것은 마이너스가 될 경우에 다음 달로 이월되는 것이에요. 애초 제도의 목적을 잃어버린 거죠.”


김 전 지회장은 원고료와 수익 배분을 병행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다. 업체가 원고료를 준다는 명목으로 수익 배분율을 높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현행 MG 제도가 누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도한 수수료도 문제다. 웹툰·웹 소설 플랫폼 수수료는 통상 30% 정도다. 하지만 프로모션 명목으로 45~50%까지 수수료를 떼어가기도 한다. 디지털 콘텐츠 특성상 작품이 잘 팔리기 위해서는 플랫폼 대문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업체는 플랫폼을 큰 배너, 작은 배너들로 구성하고 이곳에 배치되지 않는 작품은 이용자들이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작가들은 작품을 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수료를 떼이면서 프로모션에 참여하고 있다. 김희경 전 지회장은 디지털 콘텐츠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장기적 과제로 ‘노동자성 인정’을 꼽았다.

“인권위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차별이라고 인정했습니다. NC소프트나 넥슨을 상대로 노동자 개인이 민사 소송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행이었죠. 노조를 설립한 계기도 사상검증 문제였기 때문에 관련 대응은 꾸준히 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인권위는 디지털 콘텐츠 창작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때문에 지회에 가입된 웹 소설, 웹툰, 일러스트 분야의 불공정을 타파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노동자성 인정 투쟁이 필요합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이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듯 우리도 그런 과정을 밟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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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김 전 지회장은 원고료와 수익 배분을 병행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다. 업체가 원고료를 준다는 명목으로 수익 배분율을 높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현행 MG 제도가 누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도한 수수료도 문제다. 웹툰·웹 소설 플랫폼 수수료는 통상 30% 정도다. 하지만 프로모션 명목으로 45~50%까지 수수료를 떼어가기도 한다. 디지털 콘텐츠 특성상 작품이 잘 팔리기 위해서는 플랫폼 대문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업체는 플랫폼을 큰 배너, 작은 배너들로 구성하고 이곳에 배치되지 않는 작품은 이용자들이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작가들은 작품을 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수료를 떼이면서 프로모션에 참여하고 있다. 김희경 전 지회장은 디지털 콘텐츠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장기적 과제로 ‘노동자성 인정’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