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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기완 선생 별세 “고인의 삶은 민중운동 역사 그 자체”

정치권, 노동 시민사회단체들 애도 줄이어…15일 13시 장례절차 발표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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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새벽 고 백기완 선생의 별세 소식에 노동계를 비롯한 각 시민사회단체들과 정치권의 애도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고인이 소장으로 있던 통일문제연구소는 15일 오후 1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서 발인과 장례일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여든다섯 살, 청년 백기완 [출처: 정택용]

고 백기완 선생의 타계 소식에 각계에선 고인의 영면을 비는 메시지들이 계속해서 발표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라고 고 백기완 선생의 부고를 전했다. 민주노총은 “선생님 부재의 자리가 시리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이기에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도 못하는 시간이 서럽고 쓰리다”라며 “선생님과 함께 꿈꾸었던 세상을 다짐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착하고 어질고 깨끗하고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 노나메기 세상을 위해 나아가겠다”라며 “탁월한 누군가의 달음질이 아니라 110만 조합원과 이천만 노동자의 의지를 모아 한걸음 한걸음 내딛겠다”라고 고 백기완 선생의 영면을 빌었다.

전교조는 “쩌렁쩌렁 울리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 진보의 큰 어른이셨으며, 전교조에도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라며 “2019년 5월 20일,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를 촉구하는 전국시민사회원로·단체 기자회견 후 백기완 선생님께서 전교조 위원장(권정오 전위원장)에게 ‘얄곳은 갈아엎고 살곳은 일구어라’는 글을 직접 써주셨다. ‘얄곳(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는 곳)’은 갈아엎고, ‘살곳(사람이 사람으로 살만한 곳’을 일구어 가겠다. 선생님의 뜻을 이어 노나메기 세상 계속 일구겠다”라고 밝혔다.

  2017년, 여든다섯 살. 대통령 박근혜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민중의 힘으로 권력을 바꾼 쾌거였다. 마지막 범국민촛불집회에서 백기완은 축포를 함께 들었다. [출처: 채원희]

한국노총도 추모 성명을 발표하고 “불과 얼마 전까지도 노구의 몸을 이끌고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함께 하셨던 백기완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싸우는 모습을 보고, 주인이 머슴끼리 싸움을 붙이는 거라며, 노동자는 하나고 사람은 다 똑같다며 속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라며 “선생님의 삶과 말씀을 항상 새기며,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겠다”라고 밝혔다.

  2017년, 여든다섯 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규탄과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집회 [출처: 채원희]

정의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고 백기완 선생의 별세를 추모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고인의 삶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민중운동의 역사 그 자체”라며 “우리 현대사와 민주화의 큰 고비와 이정표마다 늘 고인이 있었다.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그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셨다”라고 애통해했다.

  2015년, 여든세 살. 민중총궐기 집회 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진 백남기 농민 쾌유와 민중생존권 사수를 위한 행진 [출처: 채원희]

정 수석대변인은 “백기완 선생님은 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한일협정 반대, 유신 반대, 긴급조치 위반, YMCA 위장결혼 사건과 부천 권인숙 씨 성고문 폭로 대회 등으로 투옥돼 옥고를 치르셨다.  또한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염원하며 1987년 해방 이후 첫 민중후보로 대선에 출마하였습니다. 이어 1992년 대선에서도 민중후보로 출마하여 대한민국 사회가 외면해 온 수 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의 주인으로 호명하고 대변했다”라며  “또 용산참사, 세월호 참사 등 우리 국민의 고통이 있는 곳에 함께하였고 은퇴 후에는 고인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시며 생의 마지막까지 한반도 평화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셨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서면 브리핑으로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백기완 선생님은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올곧게 농민, 빈민, 통일, 민주화 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 운동에 평생을 바쳐오셨다”라며 “선생님의 대한민국을 위한 이 같은 열정은 우리에게 큰 울림과 감동으로 남을 것이며, 우리 사회를 깨어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영원한 민중의 벗, 백기완 선생님은 우리를 떠났지만 선생님의 정신은 우리 곁에 남아 영원할 것이다”라고 추모의 뜻을 전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유세가 열린 서울 대학로 [출처: 통일문제연구소]

이밖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주화 운동가 겸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오늘 새벽 우리 곁을 떠났다"며 "치열했던 삶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기억될 것"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고인은 모진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한평생 오로지 민주주의와 국민 인권을 위해 헌신했다"며 "국민이 주인 되는, 더 나은 세상을 열망했던 뜻을 가슴 깊이 되새기겠다"고 했다.

   2009년, 일흔일곱 살. 용산참사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촉구집회 [출처: 정택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