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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극우도 제안한 기본소득, 두 가지 시도와 문제

[INTERNATIONAL] 기본소득이란 ‘단어’가 아닌, 목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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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파일럿프로젝트 시동

  기본소득 파일럿프로젝크 홈페이지. “기본소득이 우리의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출처: https://www.pilotprojekt-grundeinkommen.de]

독일경제연구소(DIW)와 ‘나의 기본소득 (mein Grundeinkommen)’ 협회가 공동으로 “기본소득 파일럿프로젝트(Pilotprojekt Grundeinkommen(1)”를 추진 중이다. 프로젝트 기간은 2020년 8월 18일부터 2024년 12월 31까지로, 2021년 봄부터 120명에게 빈곤선을 기준으로 매월 1,200유로(약 160만 원)를 제공한다. 특이한 점은 ‘나의 기본소득’ 협회에서 개인 후원비를 조성해 프로젝트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120명은 프로젝트 초기 장기연구 대상자로 모집됐던 1,500명 중에서 무작위로 선정됐다. 나머지 1,380명은 기본소득을 받는 집단과 비교하기 위한 관찰 대상이 된다. 실험 기간 동안 참가자 모두는 생업, 시간 활용, 소비 활동, 가치, 건강 등 6가지 온라인 설문을 작성해야 한다.

연구팀은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일반화된 과학적 연구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근거가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나의 기본소득’ 발의자들은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 모든 시민에게 제공된다면, 오늘날 많은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충분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력이 제거되면, 개인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프로젝트의 책임교수인 슈프(J. SChupp, 베를린 자유대 사회학과)는 현실이 이러한 유토피아를 견뎌낼 수 있는지 과학적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연구의 필요성을 밝혔다. 그는 3년 동안 물질적인 안전이 보장될 때,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본다. 실험에서 얻고자 하는 주요 질문은 기본소득이 제공되면, 돈을 쓰거나 재정적으로 비축하는지, 일을 그만두거나 덜하게 되는지, 더 사회적으로 되거나 더 많이 기부하게 되는지 등이다.

이 프로젝트의 모토는 “우리는 알고 싶다”이다. 이들은 프로젝트가 완료된 3년 후,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덜 이념적으로 변화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본다. 다만 슈프는 적어도 이 실험을 통해 “돈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2)

그러나 기본소득 파일럿프로젝트는 모든 시민이 기본소득을 받으면 물가가 얼마나 상승할지, 아프고 궁핍한 이들이 현재보다 더 적은 돈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 모든 자금을 조달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금이 필요한지에 관해서는 확인할 수 없는 한계를 갖는다.

  2013년 10월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앞두고 찬성단체들이 기자회견 중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러한 독일의 실험 이전에도, 스위스에서는 4년 전 국가적 차원에서 최초로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된 적이 있다. 당시 투표 결과 77%에 가까운 국민이 기본소득을 거부했다. 핀란드에서는 2017년과 2018년 무작위로 선정된 2,000명의 실업자에게 기존의 실업수당 대신 기본소득 560유로(약 75만 원)를 매월 지급하는 실험이 진행됐다. 기존 소득보장제도에서는 실업급여를 수급받는 동안 기준 이상의 노동소득이 발생하면, 실업수당에서 초과한 소득만큼 삭감했기 때문에 실업자의 노동유인력이 하락한다고 파악했다. 이 때문에 기본소득과 노동소득 모두를 가질 수 있게 함으로써 노동유인력이 얼마나 제고될 수 있는지가 주요 실험 목표였다. 실험 결과, 기본소득을 수급받은 참가자들은 대조군의 사람들보다 1년을 기준으로 6일을 더 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스위스는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경향을, 핀란드는 노동유인력 제고 여부를 실험했다면, 독일의 기본소득 파일럿프로젝트는 생계 가능한 수준의 급여가 실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므로 실험의 한계로 지적된 사회경제적 측면의 논쟁에는 직접적인 근거로 활용되기 어려워 보인다.

극우 정당(AfD)의 기본소득(Staatsbürgergeld) 제안

한국에서는 지난 9월 2일 ‘국민의 힘’이 당 강령을 전면 개정하면서, 기본정책 1-1로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고 제시했다. 전통적으로 자유주의와 시장을 중시해온 보수당까지 소위 ‘4차 산업혁명’을 내세워 일자리 소멸을 당연하게 가정하며 기본소득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기본소득에 대한 우파적 수용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현상이 아니다. 독일에서도 최근 극우 정당이 기본소득 제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독일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하 AfD: Aiternative für Deutschland)’은 좌파당 정치인과 녹색당 청년들이 지지해 왔던 조건 없는 기본소득(BGE: Das Bedingungslose Grundeinkommen)을 강력하게 거부해 왔다. 2017년 연방 선거에서도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워 반대했다. 하지만 지난 11월 초 AfD 지도부는 차기 선거 캠페인을 위해 기본소득 개념을 채택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당의 공동의장인 모이텐(J. Meuten)과 크룹팔라(T. Chrupalle)는 독일에 거주하는 대다수 시민에게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매월 500유로(약 67만 원)를 주 정부로부터 받게 되는 기본소득 안을 제시했다.(3) 이 안은 ‘국민수당(Staatsbürgergeld)’이란 이름으로, 당 소속 브란덴부르크 연방의회의원인 슈프링어(R. Springer)에 의해 고안됐다. 국민수당의 치명적인 문제는 EU 시민, 외국인을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단, ‘장기간 영주권을 가지고 독일 사회에 통합된’ 조건을 만족한 외국인은 10년 동안 과세 소득이 있으면 국민수당 수급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 결국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를 노골적으로 배제하는 전략이었다. 또한 직업이 없는 독일인 역시 당연 제공이 아닌, 신청서 제출을 전제로 했다. 극우 정당의 면모답게 민족과 국가, 쓸모 있는 국민을 내세운 지극히 극우다운 기본소득 모델이었다.

독일 현지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특정 인구집단에 대한 차별을 전제로 한 이 제안은 독일연방 헌법과 EU 법률 차원에서 불가능하고 논평했다.(4) 이러한 비판에 대해 슈프링어는 사회적 이주 금지가 전제돼야만 국민수당이 가능하다고 반응했다. 이는 이주 반대와 독일인 이외의 사회구성원을 차별하는 목적이 다분한 것이어서, 다수의 비평가는 ‘반사회적’으로 규정하며 우려를 표명했다.(5)

11월 28일 AfD 전당대회에서 제안된 국민수당은 당시 의제로 채택되지 않았고, 토론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민수당은 차기 선거와 코로나 19 정국을 돌파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서 당 지도부에 의해 추진될 전망이다. 이렇듯 기본소득이란 컨셉은 정치나 이데올로기 진영에 구애받지 않고 다각적으로 접근되고 대중화되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므로 시민들은 기본소득이란 ‘단어’에 반응할 것이 아니라, 목표와 내용에 대해 주목해야만 한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복지국가를 파괴한다?(6)

쾰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이자, 독일 사회정책의 대표학자인 부터베게(C. Butterwegge)는 2015년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복지국가를 파괴한다’라는 글을 통해 기본소득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은 이미 부유한 사람에겐 필요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충분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공정할 수 없어서 하나의 유토피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복지국가는 19세기 이후 질병, 노령, 장애, 실업 및 장기요양의 필요성을 표준적인 생애 위험으로 설정하고, 고용주와 피고용주가 분담금을 형성해 보장하는 사회보험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러한 혜택을 적용받지 못하는 시민을 조세 재원을 기반으로 보호해왔던 복지국가 체계가, 조건 없는 기본소득으로 도전받게 된 것이다. 관련된 세 가지 쟁점을 살펴보자.

첫째,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야만 공정에 이를 수 있는데,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불균등한 소득과 자산에 대해 동일한 수준으로 금전적인 지불’을 한다. 복지국가에서 ‘사회적 필요’와 빈곤 등과 같은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원리에서 벗어난 기본소득의 방식으로는 공정에 이르기 어렵다.

둘째, 재정 조달 측면과 집행 이후 발생할 문제에서도 상당한 딜레마가 예견된다. 소득이나 자산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시민이 기본소득을 받게 될 경우, 연방 예산의 약 3천억 유로를 여러 번 초과하게 된다. 이로 인해 빈곤 퇴치를 위해 사용돼야 할 공공비용이 사라져, 오히려 빈곤이 증대될 수 있다.

슈프렌디트(Splendid) 리서치는 2017년 10월 23일부터 11월 2일 사이 독일의 18세~69세 사이의 1,024명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 수준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다.(7)


그 결과, 749.92유로는 생활하기에 매우 낮은 수준, 953.82유로는 낮지만 생활할 만한 수준, 1243.69유로는 높지만 수용할 만한 수준, 1602.26유로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를 보면 1137.24유로가 기본소득의 평균 수준으로 볼 수 있다. 독일 내 모든 거주민에게 1인당 1137.24유로(약 152만 원)를 매달 지급할 경우, 매월 940억 유로가 필요해 4달 만에 연방 예산을 초과하게 된다.

셋째, 억만장자는 땅콩만큼의 월별 추가 수입을 국가로부터 받게 되는 반면, 중증장애인과 같이 욕구가 더 많은 시민은 통일된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하게 된다. 부유한 일부 고소득층을 제외하거나 조세로 다시 징수하는 방식은 일반적이거나 무조건적이지 않다.

부터베게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으로 기껏해야 인구의 일부가 일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되겠지만, 이것은 다른 시민이 그들과 함께 생성된 부를 공유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가능하고 본다. 부터베게의 비판 중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실업자들이 기본소득을 통해 더 많은 보장을 받게 되더라도, ‘사회적 배제’ 문제가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노동 사회가 유지되는 한 삶의 만족도나 사회적 지위 및 자존감은 여전히 직업 활동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용과 분리된 기본소득은 지속해서 대량실업과 맞서 싸워왔던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계급에 과연 유리한지 냉철한 검토가 필요하다.

복지국가는 노동의 탈 상품화 전략을 통해 제한적으로 노동소외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결코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었다. 즉 자본주의 생산체제에서 재분배 방식만으로 노동의 본질은 변화할 수 없다. 탈 노동을 지향하는 기본소득 진영의 논리는 노동계급의 이해와 충돌되거나 노동의 계급적 성격이 간과되고 있다. 이러한 쟁점이 제대로 검토돼야만, 포퓰리즘적인 기본소득의 모델과 구분되는 대안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1) DIW Berlin
https://www.diw.de/de/diw_01.c.796681.de/projekte/pilotprojekt_grundeinkommen.html
(2) “Pilotprojekt Grundeinkommen: 1200 Euro - jeden Monat, einfach so(기본소득 파일럿프로젝트: 1200 유로- 매달, 그렇게 간단히)”. 2020. 8. 25. Deutsche Welle(https://www.dw.com/de/pilotprojekt-grundeinkommen-1200-euro-jeden-monat-einfach-so/a-54690017. 2020. 12. 15. 검색)
(3) “AfD-Spitze will Grundeinkommen(대안당 지도부는 기본소득을 원함)”. 2020. 11. 2. Süddeutsche Zeitung online(https://www.sueddeutsche.de/politik/afd-grundeinkommen-staatsbuergergeld-1.5102512. 검색일: 2020. 12. 15)
(4) “AfD diskutiert Grundeinkommen für Deutsche(대안당 독일인을 위한 기본소득 토론하다)”. 2020. 11. 1. Wirtchafts Woche online( https://www.wiwo.de/politik/deutschland/vor-parteitag-afd-diskutiert-grundeinkommen-fuer-deutsche/26579432.html. 검색일: 2020.12.15.)
(5) “Die deutschtümelnde Wirtschaftspolitik der AfD(AfD의 독일풍의 경제정책)”. 2020. 11. 28.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Net(https://www.faz.net/aktuell/wirtschaft/warum-das-staatsbuergergeld-der-afd-unsozial-ist-17074253.html. 검색일: 2020. 12. 15)
(6) Christoph Butterwegge. “Das Bedingungslose Grundeinkommen zerstört den Wohlfahertastaat”. 2015. 3. 2. (https://www.bpb.de/dialog/netzdebatte/217778/das-bedingungslose-grundeinkommen-zerstoert-den-wohlfahrtsstaat. 검색일: 2020. 12. 15)
(7) “Bedingungsloses Grundeinkommen: Ein Weg für Europa?(조건 없는 기본소득: 유럽을 위한 한가지 길?)”. 2020. 22. 11. Deutsche Welle ( https://www.dw.com/de/bedingungsloses-grundeinkommen-ein-weg-f%C3%BCr-europa/a-55684281. 2020. 12. 15.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