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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방해변: 석탄화력발전소가 훼손한 명사십리

[특별기획: 검은 땅을 먹고 살았다] 핵발전소 막은 삼척주민들, 바다 살리기에 다시 한번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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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아름다운 모랫길이 10리에 걸쳐있어 맹방해변은 ‘명사십리’라 불렸다. 한국의 대표적인 명사십리로 꼽히던 그곳에 별안간 해안침식이 진행됐다. 그리고 최근, 이를 완전히 망가뜨린 ‘인재(人災)’가 일어났다.

석탄 수입을 위한 부두 공사가 진행된 지 1년. 이제 맹방해변은 그 모습을 알아볼 길 없이 부서지고 파괴됐다. 시공사는 해상 내 불법 구조물을 설치했고, 쉽게 쓸려가는 썩은 모래를 채워 넣으며 바다를 망가뜨렸다.

지난해 2월 시작된 이 해상공사는 포스코가 석탄화력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를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삼척블루파워는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건설되는 석탄화력발전소이자, 30년간 핵발전소 건설에 맞서 싸워온 삼척 주민들의 마지막 접전지다.








명사십리 맹방해변을 파헤치는 석탄화력발전소
핵발전소 막은 삼척주민들, 바다 살리기에 다시 한번 나서다



지난 10월 20일 저녁 7시,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맹방해변로 근처의 한 식당에서 축하 파티가 열렸다. 이날은 상맹방1리 현안대책추진위원회 등이 맹방해변 침식을 이유로 삼척블루파워 측에 해상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천막농성에 들어간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삼척블루파워는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 인근에 2.1GW급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 아울러 부대시설로 수입 석탄을 들여오기 위한 항만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맹방해변의 해안침식과 오염 등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문제를 알리고 공사를 막기 위해 지난 7월 1일부터 무기한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이날 100일 기념 자리가 더 각별했던 이유는 일주일 전 국정감사에서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공사로 인한 환경파괴가 이슈화돼, 환경부로부터 해상공사 중지 의견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13일 원주환경청은 맹방해변의 침식 등을 이유로 산업통상자원부에 맹방해변 항만공사 중지 명령을 요청했다. 원주환경청은 “맹방해변 일원 침식 저감시설 설치 계획이 장기간 지연되고 있다”라며 “사후 환경영향조사 및 전문가 합동 현장조사 결과, 맹방해변 침식이 해양환경 변화와 함께 해상공사로 인해 가중되고 있다고 보여 추가 항만공사를 중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제작장 외 항만공사 즉시 공사 중지 조치 ▲준설토 즉시 회수와 양빈용 모래 적치장 원상 복구 ▲동해안 전반적 해양환경 변화를 고려한 침식 저감 대책 보완 등 환경영향평가 협의 사항에 대한 추가 이행조치 명령을 산업자원부에 요구했다. 결국 6일 뒤인 10월 26일, 산업자원부는 삼척블루파워에 해상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주민과 활동가들은 투쟁 100일을 기념한 저녁을 먹으며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하지만 훈훈함도 잠시, 곧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가 오갔다. 당장 환경부 명령으로 공사가 중지된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었다.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막지 않는 이상 항만공사는 시간이 지연돼도 강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이라는 더 큰 목표가 이들에겐 필요했다. 그렇다고 단번에 석탄화력발전소를 막아내는 투쟁을 모아내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오랜 투쟁 끝에 삼척 핵발전소를 막아낸 주민들은, 다시 한번 질긴 싸움에 나서는 데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척블루파워, 해안침식 막겠다며 더러운 모래 갖다 두고 눈속임


지난해 2월 석탄 항만 공사를 시작한 후 맹방 해변에서는 심각한 해안 침식이 관찰되고 있다. 해안 침식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삼척 맹방해변은 공사가 시작되기 이전인 2010~2019년 사이 7차례나 해안침식 D등급(심각, 재해위험)을 받은 바 있다. 다른 동해안 전역의 해변도 마찬가지인데 원인은 기후 변화와 난개발이었다. 급기야 2015년 8월 13일 해양수산부 장관은 경북 울진의 봉평해변, 전남 신안의 대광 해변과 함께 맹방해변을 연안침식관리구역으로 지정했다. 연안침식관리구역 제도는 연안 침식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지역을 사전예방적 차원에서 관리하는 제도다. 해양수산부는 2014년경부터 전국 250개소에 대한 해안침식을 모니터링했고 최종적으로 위 3개소를 연안침식관리구역으로 결정했다.

연안침식관리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연안관리법에 따라 건축물, 공작물 설치, 토지 형질변경, 바닷모래 채취 등의 임의적 개발행위가 제한된다. 하지만 블루파워는 화력발전소 건설이 “기타 공익상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행위 제한 규정의 예외로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청은 항만공사를 위한 환경영향평가를 수년에 걸쳐 진행하면서, 해안침식에 대한 저감대책 마련을 조건으로 석탄발전소 사업에 동의했다. 하지만 해상공사가 착공된 이후 침식 저감시설 공사는 인허가 미비를 핑계로 진행되지 않았다. 삼척블루파워는 해안침식이 일어난 지 한참 후인 지난 6월에야 침식 저감시설을 부랴부랴 설치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해안침식 피해를 주민들이 인지하면서부터다.

맹방해변은 우리나라 해변 중에서도 바닷모래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맹방의 바다는 명주조개로 유명하고, 비단조개와 참조개 등의 집단 서식지이기도 하다. 상맹방1리 주민 김덕년 씨는 맹방해변을 가리키며 울분을 터뜨렸다. 바다 침식을 막기 위해선 흙을 옮겨다 심는 양빈작업을 충분히 해야 하는데, 삼척블루파워가 저질 준설토로 쌓는 시늉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주환경청 역시 산업통상자원부에 공사 중지 명령을 요청하며 “맹방해변 양빈에 사용된 준설토는 원래 맹방해변 모래와 비교해 입도·색깔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양빈용 재료는 해변 모래에 가까운 입도 및 색깔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이미 양빈한 준설토를 회수하고 적합한 양빈재로 다시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맹방해변에 뿌려진 준설토가 원래 맹방의 모래와 입도와 색깔에서만 차이 나는 것은 아니다. 준설토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주민들은 이를 오니(슬러지)라고 주장했다. 준설 오니는 유기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악취가 심하며, 우리나라 폐기물관리법상 일반폐기물로 분류된다. 주변 환경이 오염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처리가 요구되는 폐기물인 셈이다.

김 씨는 “이 오니(슬러그)는 오십천 하류에 퇴적된 흙으로 악취가 나는 등 오염이 상당하다. 1987년까지 삼척은 분뇨를 바다에 뿌렸다. 이것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온 석탄재와, 시멘트공장의 석회석 가루가 쌓인 더러운 흙”이라고 했다. 실제로 만져본 준설토는매우고왔는데김씨는준설토는입자가매우고와 파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꾸 쓸려가고 있다고 했다.

김 씨는 이어 “원래 침식 저감을 위해 45만 루베(m2)의 모래를 들여와야 한다. 15t 트럭으로 치면 5만 대 분량이다. 하지만 지금 삼척블루파워는 4천 대 가량의 더러운 흙만 퍼 날랐다. 그리고 그 위에 모래를 덮어 위장했는데 모래 구분이 가능한 우리는 대번에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을 갈라놓은 석탄화력발전소


항만 공사가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삼척블루파워가 항만공사를 착공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발전사업자가 동양파워에서 삼척블루파워로 변경된 다음 해인 2015년 2월, 환경영향평가 초안 주민설명회 및 공청회가 진행됐다. 당시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졌는데 바닷가 근처의 상맹방1리 주민들의 저항이 컸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을 포섭한 뒤, 반대하는 주민들을 배제하는 식으로 사업허가에 대한 동의가 진행됐다. 결국, 삼척블루파워는 2016년 12월 20일 권리자 동의를 받게 된다.

해변과 접해 있는 상맹방1리 주민은 보상절차가 시작된 2018년 8월 현안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반대표명을 했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건설 현장 공사 차량 출입을 저지하고, 삼척시장과 간담회를 요구하며 적극적인 싸움에 나섰다.

현안대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이자 상맹방1리에서 40여 년을 산 김성래 씨는 주민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제대로 된 과정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로인해 마을주민 간의 갈등과 분란만 커졌다. 전 대책위원장이 문서를 위조해 헐값의 보상금을 받았다는 의혹도 있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마을 이장을 제치고 대책위원장이란 사람이 10억으로 주민 피해를 퉁치는 협의서에 사인을 했다. 총회도 열지 않았다. 자기가 주민들 사인을 대신해서 만들어 놓은 문서를 내가 우연히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해변이 이렇게 망가지는데 10억은커녕 100억 원을 갖고도 해결이 안 된다. 자기 사업에 도움이 되기 위해 마을과 유산을 사유화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상 문제로 마을 사람들 간의 반목이 심해졌다. 게다가 삼척블루파워는 지금까지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주민들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와 언론 등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맹방해변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자 블루파워는 태세를 전환했다.

김 위원장은 “블루파워 직원이 전화해서 ‘지금까지는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았지만 공사를 방해해 건설 일정이 지연되면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했고, 그 얘기를 하면서 당신들의 의견은 다 알았으니 협상을 하자고 했다”라며 “3, 4일 전에도 전화가 와서 협상하자는 이야기를 하더라. 맹방 해수욕장 자체가 없어지게 생겼는데, 주민 몇 사람 더 보상해준다고 하면 끝날 일인가?”라고 회사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했다.

이밖에도 삼척블루파워 석탄화력 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를 소비처인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선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이 대거 이뤄질 수밖에 없다. 한국전력공사는 500kV 동해안-신가평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계획을 세웠는데, 해당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무마시키고자 우선합의 지역에 차별적 보상방안을 마련한 것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여성 3인방, 항만공사를 막다

항만공사의 문제가 주민들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올해 5월부터다. 해상공사를 담당한 시공사가 해상에 철골 구조물인 케이슨 제작장과 방파제 등을 만들면서 해안 침식이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했다. 3명의 여성 주민은 공사를 막기 위해 몸을 던져 싸웠다. 이들은 맑은 날, 비 오는 날을 가리지 않고 공사 시작 전인 새벽 6시부터 나가 공사를 막았다.

박은희(61) 씨는 삼척에서 일어났던 반핵투쟁의 힘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큰 회사와 정부를 상대하는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지만,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처음 공사에 항의했을 때는 가슴이 벌렁거려 한 달 동안 잠을 잘 못 잤다고 했다. 싸우다가 실신을 한 것도 여러 차례. 경찰을 그런 식으로 마주한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하청업체는 공사방해를 이유로 경찰을 불러 중재를 요구했는데, 경찰이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 잘못한 것처럼 괜히 중압감이 들었다고 했다.

박 씨는 “빽차(경찰차)가 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밤에도 잠을 못 잘 정도였다. 크게 실랑이한 날엔 병원에도 실려 갔다. 공사 관계자들이 때리지만 않았을 뿐 밀치고 위협을 가한 건 분명했다. 나중엔 위험하게 구덩이를 파서 우리를 못 들어오게 막은 적도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맹방 해수욕장 앞에서 남편과 민박집을 운영하고 번개시장에서 활어 장사를 하는 이점선(57) 씨는 피해에 대한 보상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사 3년 동안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민박과 식당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회사 입맛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보상을 논의하고 끝내버린 점이 화가 난다고 했다.

이 씨는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인데 바다를 망치고 관광객을 끊어놓으면 어쩌자는 것이냐. 화가 나서 공사를 막았더니 포크레인으로 큰 돌을 우리 앞에 떨구기도 했다. 거기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대화하고 싶어도 국회의원이나 공무원들은 한 번 휙 둘러보고 가기만 하고, 회사와는 아예 대화 창구가 없다”라고 답답해했다.

공무원 생활을 끝내고 펜션을 운영하는 김미선(64) 씨는 “동해와 태백의 해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말했다.김씨는발이뜨거워한번은쉬고나가야할정도로 길었던 한여름의 해수욕장을 기억했다. 맹방해변은 그가 결혼한 해인 1982년 처음 봤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각종 유흥시설이 주변에 생기는 다른 해수욕장과는 달리 맹방해변은 거의 그대로 보존돼 주민들의 자랑거리였다.

김 씨는 “이렇게 해변이 망가져 있는 줄 올해 5월에서야 알았다. 여기서 39년을 살아 내게도 고향 같은 곳인데 이렇게 가다간 다신 예전의 모습을 못 보겠다는 공포감이 들었다”라며 “지금 바다를 살릴 수 있는 길은, 당장 항만공사를 중단하는 일뿐이다. 오랫동안 지켜온 우리의 고향인 맹방 바다를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 문경락

    석탄 수입을 위한 부두 공사가 진행된 지 1년. 이제 맹방해변은 그 모습을 알아볼 길 없이 부서지고 파괴됐다. 시공사는 해상 내 불법 구조물을 설치했고, 쉽게 쓸려가는 썩은 모래를 채워 넣으며 바다를 망가뜨렸다.

    지난해 2월 시작된 이 해상공사는 포스코가 석탄화력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를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삼척블루파워는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건설되는 석탄화력발전소이자, 30년간 핵발전소 건설에 맞서 싸워온 삼척 주민들의 마지막 접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