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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석탄 전환 사회’, 폐광촌 주민 목소리는 없다

[특별기획: 검은 땅을 먹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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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1] 까막동네: 쇠락한 탄광촌 마을 사람들

1) “35년간 탄가루를 마셨고, 폐암에 걸렸습니다”
2) 탄가루가 내려앉은 퇴직 광부들의 마을, 까막동네
3) 여성 광부①: 가난해서 데모도 못 했다
4) 여성 광부②: 선탄 작업 도중 산재사고…다리를 잃어도 삶은 계속 된다
5) 여성 광부③: 광부는 두 하늘, 여성 광부는 세 하늘을 덮고 살았다
6) 탄광 노동자 죽음과 산재로 쌓아올린 석탄 산업
7) 탈석탄 전환 사회’, 폐광촌 주민 목소리는 없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은 석탄 산업의 발전으로 태백시와 함께 급속하게 성장한 지역이다. 강원도 산간 오지마을이었던 이곳은 석탄 증산 정책이 한창이던 1979년, 인구가 4만4543명까지 늘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1989년 시작된 석탄 합리화 정책으로 도계지역 탄광 13곳 중 대다수가 폐쇄됐고, 현재는 도계·경동광업소 두 곳만 남았다. 정부의 폐광조치로 인구 역시 급감하기 시작했다. 올해 10월 기준 도계읍 인구는 1만250명에 불과하다. 지난 30년간 도계지역 탄광의 77%가 문을 닫는 동안, 77%의 인구 역시 사라졌다.

이제 ‘폐광촌’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된 도계지역은 인구 고령화로 활기를 잃은 채 극심한 지역 공동화를 겪고 있다. 게다가 최근 국내외의 탈탄소 전환 움직임으로 석탄 산업의 사양화는 돌이킬 수 없는 미래가 됐다. 그 속에서 한때 산업발전의 역군으로 칭송받았던 탄광촌 주민과 노동자는, 탈탄소 전환 사회 논의에서 배제된 채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려 있다.

쇠락한 폐광촌 주민들의 목소리

2000년 10월 10일 오후 2시, 도계역 광장에 삼척 시민 1만여 명이 집결했다. 이들은 ‘도계광업소 중앙갱 폐쇄 방침 및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삼척시민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를 상대로 투쟁에 나섰다. 집회 장소에는 ‘석탄공사 광부는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냐’, ‘대체 산업 하나 없이 구조조정 어림없다’, ‘대책 없는 석탄 정책 정부는 각성하라’, ‘죽음을 각오했다, 도계를 살려내라’ 등의 구호가 적힌 만장이 나부꼈다.(1)

89년 석탄 합리화 정책으로 폐광촌이 유령마을이 되자, 정부는 95년 도계광업소와 경동광업소를 포함한 11개 탄광을 장기지원 탄광으로 지정했다. 아울러 국내에서 생산된 석탄을 발전 연료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강원도 동해시에 동해화력을 건설했다. 1999년 준공된 동해화력은 2006년까지 국내 석탄을 사용하다가, 2007년부터 10년 이상 수입산 석탄을 사용해 논란이 된 발전소다. 심지어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1998년 8월, 국무회의에서는 공기업 민영화 및 구조조정 방안으로 석탄공사 민영화를 비롯한 대규모 감산, 폐광 등의 조치를 논의했다. 그 과정에서 석탄공사 도계광업소는 중앙갱 폐쇄를 통한 인력 감축과 생산비 절감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일명 ‘10·10 도계 살리기 생존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했던 이이순(71) 씨는 60년 넘는 세월을 도계에서 살았다. 서울 출생인 그는 광부인 아버지에게 이불 보따리 건네러 왔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그 길로 도계 주민이 됐다. 남편은 광산에서 탄차를 운전하며 한 달에 쌀 한 가마니를 임금으로 받았다. 온 마을 길이 까만 탄가루로 반짝거리던 시절, 이 씨는 남편이 벌어온 쌀 한 가마니를 팔아 살림을 하고, 부녀자들과 함께 국숫집이나 구멍가게 같은 것을 운영했다.

이 씨는 과거 가족과 주민들의 생계를 떠받치고 있던 ‘석탄’이 조만간 그들의 삶에서 사라질 것임을 안다. 산을 파헤치고 공기를 훼손하는 산업이 존속돼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를 비롯한 주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그저 ‘석탄산업 발전’이나 ‘탄광 폐쇄 결사반대’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와 주민의 삶 또한 훼손되고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해가 너무 심하잖아. 세계적으로 탄을 안 파겠다고 했는데 계속 파도 안 되고. 그런데 우리도 전기를 좀 아껴 써야 해. 서울서 왔지? 서울에서 전기를 가져가느라고 여기 산을 다 망가뜨렸어. 강원도에 차 타고 다니면 여기저기 다 송전탑이야. 그 주변에는 귀신도 못 살아.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가 그러면 되겠어. 다만 다른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는 거지. 탄을 안 쓰고 송전탑을 안 세워도 친환경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도록.”

이 씨는 도계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만약 탄광이 모두 문을 닫는다고 해도, 주민들과 남은 광부들이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폐광촌 대책으로 추진된 사업들은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세금 낭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아이디어는 빈약했고, 주민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지역 주민의 생존과는 동떨어진 사업으로 전락했다.

3천억 원의 폐광촌 활성화 예산은 어디로 갔을까

실제로 삼척시는 지난 2007년 5월, 도계지역의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도계읍에 ‘블랙밸리 컨트리클럽’이라는 골프장을 건설했다. 해당 골프장은 삼척시 656억 원, 강원랜드 150억 원, 한국광해관리공단 100억 원 등 지자체와 정부 기관이 906억 원을 투자해 건설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골프장 사업은 지역주민 88명을 고용하는 데 그쳤다. 2019년 10월 기준, 골프장 전체 임직원 98명 중 지역 주민은 임원 1명, 직원 27명, 기간제 근로자 17명, 외주업체에 소속된 캐디 38명이다.(2) 그마저도 98명 중 55명은 기간제거나 외주업체 노동자다.

이 씨는 “골프장 손님들 숙소를 만들겠다며 광부들이 쓰던 사택을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했다”며 “광부들은 여전히 옛날에 지어진 허름한 사택에 살고 있다. 정말 지역주민과 광부들을 위했다면 이들의 주거 문제부터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2014년에는 강원랜드가 폐광지역 활성화를 목적으로 753억 원을 투입해 도계읍에 ‘하이원추추파크(추추파크)’를 건설했다. 추추파크는 옛 영동선 스위치백 철도를 활용해 만든 테마파크 리조트다. 추추파크는 개장 이래로 극심한 적자에 허덕이며 지역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애초 추추파크의 타당성 검토 용역보고서는 개장 첫해 77억 원의 매출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고작 23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개장 첫해인 2014년부터 34억 원의 적자를 봤다. 이후 2015년 41억 원, 2016년 38억 원, 2017년 30억 원, 2018년 23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개장 5년 만에 누적적자 163억 원을 단숨에 쌓아 올렸다. 방문객 역시 2015년 30만 명에서 꾸준히 감소해 2018년 15만 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도계 폐광지역 개발사업 기금인 1200억 원은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 설립에 투자됐다. 고령화된 지역에 활기를 넣고, 지역경제도 활성화하자는 취지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비와 도비 등 1200억 원을 들인 강원대 도계캠퍼스는 도계 시내와는 멀리 떨어진 해발 804m 높이의 황조리 황새터에 세워졌다. 캠퍼스와 도계 시내까지는 도보로 2시간 15분, 버스로는 40분이 걸린다. 김화윤 전두1리 이장은 “도계 시내에서 캠퍼스까지 9킬로가 넘는 거리인데 대학생들이 여기 왜 오겠나”라며 “학생들은 캠퍼스에 있다가 방학되면 서울 가는 버스를 타고 가 버린다. 도계에 오지를 않는다. 거의 2천억 가까이 들여 대학교를 산꼭대기에 만들어 놨으니, 지역 경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총 3천억 원에 달했던 도계지역 폐광촌 활성화 예산은 고용 창출도, 지역경제 활성화도 이뤄내지 못한 채 주민들의 깊은 불신만을 남겼다. 매일 탄가루를 마시며 사는 도계광업소 앞 까막동네 주민들의 삶도, 폐광 정책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는 탄광 노동자와 도계지역 주민들의 삶도,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각주]
(1) 삼척시립박물관, 탄광촌 도계의 산업문화사, 정연수, 2020.4
(2) 삼척시립박물관, 탄광촌 도계의 산업문화사, 정연수, 2020.4
  • 문경락

    실제로 삼척시는 지난 2007년 5월, 도계지역의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도계읍에 ‘블랙밸리 컨트리클럽’이라는 골프장을 건설했다. 해당 골프장은 삼척시 656억 원, 강원랜드 150억 원, 한국광해관리공단 100억 원 등 지자체와 정부 기관이 906억 원을 투자해 건설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골프장 사업은 지역주민 88명을 고용하는 데 그쳤다. 2019년 10월 기준, 골프장 전체 임직원 98명 중 지역 주민은 임원 1명, 직원 27명, 기간제 근로자 17명, 외주업체에 소속된 캐디 38명이다.(2) 그마저도 98명 중 55명은 기간제거나 외주업체 노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