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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작은 왕국, 연구실 속 학생연구원

[대학원생노조 연속기고④] 한 번 지도교수는 영원한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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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이던 재작년 여름, 수업이 끝난 뒤 교수님께서 ‘우리 연구실에서 철도 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관심 있으면 알바 한 번 해볼 생각 없냐’고 물어본 것이 계기가 돼 연구실 생활이 시작됐다. 그리고 교통공학 복수전공자이던 나는 교통공학 ‘전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부가 더 필요할 것 같아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됐다.

연구실은 교수의 왕국이자 작은 사업장이다. 모든 것은 교수가 정한 대로다. 교수는 농담을 가장해 “대학원생은 근로기준법 적용돼, 안돼?”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자신은 직접적으로 야근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덤이다. 연구 환경, 급여, 노동시간, 휴가 등 모든 것이 전공별, 교수별로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필자의 경험이 이공계 학생연구원 전체로 일반화될 수는 없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필자의 경우 학·석사연계과정에 지원한 후 연구실 내에서 석사과정과 비슷하게 간주됐는데, 첫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석사 2학기인 지금은 월급이 130만 원으로 올랐다. 근무시간은 ‘원칙적으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이다. 당연히 야근수당 같은 것은 없다.

월급은 R&D 과제의 학생연구원 인건비와 연구실 공동통장에서 나온다. 상대적으로 감시가 엄격한 R&D 과제와 달리, 일반적인 용역 과제 인건비는 연구실 공동통장에 회수한 후 각자 정해진 월급만큼 다시 분배한다. 불법이지만, 교수가 횡령하는 등의 문제만 없으면 상당수 연구실에서는 별말 없이 운영된다. 단기적으로 학부생 등을 알바로 고용할 때나 연구실 공동 비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는 등 이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연구실이 주로 하는 일은 교통 관련 R&D 과제나 예비타당성조사, 기타 지자체나 국책연구기관, 교통 관련 공기업에서 발주하는 교통 관련 연구과제다. 종종 언론에서 “한국개발연구원의 분석 결과 OO철도의 B/C(비용 대비 편익)이 1을 넘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었다.” 등의 내용을 접할 수 있을 텐데, 실제 분석은 많은 경우 대학원에서 수행한다. 원칙적으로 연구과제에 참여하는 것은 학생 개인의 의사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교수가 지시하는 모든 과제에 참여해야 한다. 필자의 경우 현재 명단에 포함돼 있는 과제는 5개가량, 실제 연구에 참여하는 과제는 2, 3개가량이다. 그리고 현재 2개의 신규연구과제 참여를 위해 추가로 제안서를 작성 중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과제나 보고서 작성일이 다가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한번은 최종발표를 앞두고 막바지 분석 결과를 산출하는데, 데이터가 방대한 탓에 새벽에 노트북이 과열돼 프로그램이 멈춘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 재부팅 후 쿨러 밑에 얼음을 깔고 작업하면서 ‘뭐 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거의 한 달 내내 야근하고 두 차례 아침 6시까지 일을 했다. 덕분에 과제 마감 후 오른쪽 관자놀이에 원형탈모가 생겼다. 지금은 회복됐지만 완치될 때까지 수차례 피부과에 내원해야 했다.

사실 그때보다 강도가 약간 낮을 뿐, 지금도 대학원 생활은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이다. 우리 연구실 대학원생들끼리는 “10시에만 퇴근하면 정시퇴근”이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한다. 지금 이 연재 글을 쓰고 있는 일요일에도, 글 작성이 마무리 되는 대로 신규 연구과제 제안서 작성을 마무리하러 연구실에 출근할 예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 연구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학부생 때 나름 성실하게 수업 과제를 작성하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제출 전날 구색만 갖춰 제출하는 수준이다. 또한 연구 과제 성과물에 논문 작성이 포함돼있는 경우가 있고, 교수 개인의 논문 지도성과도 채워야 하므로, 대학원생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현재 수행 중인 연구 과제를 바탕으로 학술대회에 나가거나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고, 학위 논문을 작성하는 경우가 다수다. 물론 연구 과제를 통해 양질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공계 대학원생이 연구 과제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교수 또한 원한다면 다른 주제로 논문을 작성해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주어진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것에 급급한 상황에서, 원하는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대학원생노조 활동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조리한 상황에 부딪혀보지도 못한다는 자괴감이 종종 든다. 대학원생의 노동운동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자 여타 노동환경과 다른 점 하나는, 학위 수여 권한을 사실상 지도교수가 쥐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연구노동에 헌신했어도, 한번 교수에게 밉보이면 대학원 진학의 가장 큰 목적인 학위 취득에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대학생들은 선뜻 교수에게 맞서지 못한다. 지도교수를 바꿀 수 있는 절차가 존재하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 지도교수가 승인해주지 않으면 지도교수를 바꿀 수 없는 것이 많은 대학의 현실이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따라서 제도적으로 지도교수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바꿀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학생연구원 및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조속히 법제화하고, 대학원생노조를 포함한 대학원생의 결사체가 교수와 대학 당국에 맞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5월 13일에 있었던 민교협과 교수노조, 대학원생노조, 한교조, 학단협의 “새로운 시대의 교수-학생 관계 공동선언문”처럼, 교수들 또한 대학원생을 연구 동료이자 노동자로 인정하고 연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