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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식 ‘큐어넌’ 극우세력의 위협과 민주주의

[INTERNATIONAL2] 팬데믹 시대...어쩔 수 없었던 것, 그럼에도 되돌아봐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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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te bleiben Sie zu Hause(집에 머물러 주십시오!)

지난 10월 17일 메르켈(A. Merkel) 독일 총리는 신규 코로나 감염사례가 3일 연속 7,830건 증가하자 ‘매우 심각한 단계(sehr ernsten Phase)’라고 규정했다. 메르켈은 시민을 향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여행이나 파티는 삼가며, 가능한 집에 머물러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출처: 독일연방정부홈페이지(https://www.bundesregierung.de/breg-de/themen/coronavirus/fallzahlen-coronavirus-1738210. 검색일 2020.10.27.]

10월 19일 기준 독일의 누적 감염자 수는 36만6,299명(신규 감염자 수 61,710명), 누적 완치자 29만4,800명, 누적 사망자9,789명으로 치사율이 2.67%다. 다만 아래 그래프에서 확인되듯 지난 4월 1일 최고 수준의 감염자 규모가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10월 이후 신규 감염자가 급속하게 증대(전 주 평균 대비 76% 증가)되면서 사회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로버트 코흐 연구소(RKI)(1)에 따르면, 지난 몇 주 동안 검사가 증가하며 신규 감염사례가 더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감염확산을 증가된 검사 수로만 설명될 순 없다고 보고했다.

코로나19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

같은 10월 19일 기준, 국제적으로 누적감염자 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미국(815만4,935명), 인도(755만273명), 브라질(522만4,362명)이다. 이들과 비교하면 독일은 상대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고, 유럽 내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감염률과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2). 독일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시민들이 규정을 잘 준수했기 때문에 국가의 통제 하에 위기가 관리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방법을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은 한국과 비슷하게 코로나 진단 검사를 대대적으로 시행해 왔다. 역학조사를 위한 시스템 정비, 중환자실 보유율 등에서도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안정적이다. 또한 시민 85~90%가 정부의 봉쇄조치(lock down)를 포함한 각종 규제를 수용해 왔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의 대응책과 상당히 유사하다. 우선 양국은 사회보험으로 건강보험이 제도화돼 있다. 다만 병원시설에 있어 독일은 주와 시의 재정으로 설치돼 사회보험재정으로 운영되고, 한국은 대개 개인 및 민간법인이 설치해 건강보험재정과 환자들의 추가비용으로 운영되는 차이가 있다.

딥 날리지 그룹(Deep Knowledge Group)(3)은 8월 23일까지 수집된 데이터를 기준으로 250개 국가, 지역 및 영토를 대상으로 수행된 코로나19 지역 안전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주요 평가 영역은 검역효율, 정부효율, 모니터링과 감지, 의료대비(체계), 국가취약성, 응급대비였다. 여기서 독일은 총 762.64점으로 코로나19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평가됐다. 2, 3위 국가보다 월등하게 높은 평가를 받은 항목은 의료대비(체계) 영역이었다.

[출처: https://www.dkv.global/covid-safety-assessment-250-list(검색일. 2020.10.20.)]

정부효율 측면에서 독일과 한국은 공통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양국의 다른 정치체제에도, 연방정부(중앙정부)의 정책집행이 상당히 집중적으로 수행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독일은 지난 3월 연방의회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전염병을 선포하고, 2021년 3월까지 특별규정(Sonderregelung)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규정 중 전염병 대응에 주된 역할을 수행하게 될 보건부장관인 슈판(J. Spahn)에게 많은 권리가 부여됐다. <쥐트도이취 신문> 보도에 따르면, 보건부장관은 항공사나 버스 회사가 위험 지역에서 사람들을 수송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다. 운송회사가 아픈 승객을 당국에 신고 할 수 있는 보호 법률도 계획하고 있다. 보도에서는 정해진 기한을 넘어서까지 복지부 장권이 더 많은 권한을 원하게 될 것이라 우려했다. 또한 녹생당 대표인 괴링-엑카르트(K. Göring- Eckardt)는 “지금 연방 보건부장관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권한과 규제 옵션”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독일의회로 이와 같은 권한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연정의 대변인 역시 “기본적 권리 침해와 2차 봉쇄 여부에 대해 의회에서 (논의돼야 할) 시간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팬데믹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이제까지 ‘코로나 제한’과 관련된 결정이 메르켈 총리와 주무 장관들을 중심으로 독점돼 왔다는 비판이 가시화됐다.(4)

팬데믹의 장기화, 국가 통제에 대한 반응

전염 확산을 막기 위한 공적 조치 중 기본권 제한은 필수적으로 진행됐고, 이는 거대한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가능했다. 역학조사를 위해 개인정보는 당연하게 공개·추적되도록 법안이 통과됐고, 반론의 기회는 제공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팬데믹 극복이라는 공동체적 가치에 수긍하며,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공개하는데 협조적이다. 지난 3월 27일, 국가적 차원의 제한에 대해 시민 75%가 충분히 적절하다고 답했다. 20%는 충분한 수준만큼은 아니라고 여겼으며, 단 4%만이 과도하다고 응답했다. 6월 초 메르켈 총리의 업무에 대해서는 시민의 84%가 ‘다소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코로나 위기 직전 독일사회는 거대한 분열과 어느 진영도 정치적 다수를 형성하기 어려웠던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 위기 발생 후 나타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는 상당히 놀라운 결과였다.

그러나 팬데믹 기간이었던 4월 초부터 다양한 시위가 일어났다. 일부는 출국 및 집회 권한 제한 등의 국가적 조치에 반대하기 위한 시위였다. 또 다른 시위대는 임대가격, 핵폐기물 운송을 반대하기 위해, 또는 난민과의 연대를 요구하기 위해 집회를 열었다. 부활절 행진과 노동절 집회도 진행됐고, 5월 말부터는 전 세계 블랙 라이브즈 매터(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Black-Lives-Matter) 운동의 일환으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가의 팬데믹 규제조치에 대한 반대표명 이외에는 매우 일상적이고 다양한 주장들이 집회의 이슈가 돼 왔던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8월 29일 베를린에서 열린 집회는 그동안 누적돼 온 통제에 대한 피로도가 다양하게 폭발된 사례였다.

8월 29일 시위. 극우세력의 도전

  지난 8월 30일 독일 언론 <타게스샤우>가 극우가 연방의회 저지선을 넘어 계단까지 장악하자 “우리 민주주의 심장에 대한 공격”이라고 보도했다. [출처: <타게스샤우> 갈무리]

베를린 경찰은 8월 29일자로 신고 됐던 모든 집회를 금지했고, 이 금지처분은 8월 1일 시위를 근거로 했다. 베를린시 사민당(SPD) 상원의원 가이젤(A. Geisel)에 따르면, 8월 1일 시위에서 ‘1.5m 거리유지, 입과 코를 보호하는 마스크 착용’과 같은 사항은 사전 합의된 규칙이었지만, 상당히 고의적으로 규칙이 어겨졌다. 그는 시위대가 자유 민주주의 질서 및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가장해 시스템을 경멸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우려했다.(5)

그러나 8월 28일 베를린 행정법원은 거리 준수와 마스크착용 등을 조건으로 집회를 허용했다(6). 법원의 집회허용판결 이후 곧바로 극우 잡지 <컴팩트-매거진>은 시위를 광고했고, 우익 극단주의 정치가부터 인종차별반대 운동가들까지 집회참여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집회 참여인원은 대략 3만 8,000여 명으로, 집회 참가자 모두가 거리 유지나 마스크 착용을 준수하지 않았다. 이날 극좌 청년들과 극우 청년들이 같은 집회 장소에 모이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현재 독일은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극우파나 네오나치들은 독일제국깃발(7)을 대용하고 있는데, 이 깃발이 시위당일 거대하게 등장했다. 더욱이 시위 당일 저녁, 제국시민운동과 홀로코스트 역사를 부인하는 우익 극단주의자 시위대 450~500여 명이 연방의회 건물 저지선을 넘어 계단을 점령했다.

우익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제외한 연방의회의 모든 정당들은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았다. 독일 대통령인 슈타인마이어는 “독일 연방의회 앞에서 제국깃발과 극우주의적 난폭함이 우리 민주주의의 심장에 견딜 수 없는 공격을 가했다”고 비판했다(8). 일부 극우세력의 연방의회 공격으로 어두운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경계와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8월 31일 <타츠> 신문사가 정치학자 라트예(J, Rathje)와 진행한 인터뷰(9)에서 몇 가지 유의미한 내용을 소개한다. 라트예는 29일 시위의 많은 모순에도, 시위대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었고,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기대를 갖고 참여한 사람도 많았다고 밝혔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으로 극우 극단주의자들의 변화를 꼽았다. 이번 시위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음모이데올로기 결합이 드러났는데, 새로운 음모이데올로기는 미국에서 유행한 극우 음모집단 ‘큐어넌(QAnon)’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서 트럼프는 딥스테이트에 맞서는 해결사로 기능하는데, 이러한 서사가 극우 내러티브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독일연방공화국을 합법적인 국가가 아니라고 가정하는 우익 극단주의자들과 제국시민들의 음모이데올로기는 큐어넌 음모론과 양립이 가능한 것이다. 이로 인해 29일 연방의회 앞에 제국깃발이 거대하게 집결했고, 이들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연방의회 계단을 오르는 이미지의 선전효과는 매우 컸다. 그들이 던진 메시지는 ‘우리가 함께한다면 국가는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였다. 이는 곧 연방공화국의 쇠퇴를 상징했다. 인종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페기다(Pegida)(10)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극우파 내러티브는 ‘시민에 대해 음모를 꾸미는 국가’, 즉 시민을 속이고 있는 국가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라트예는 이들이 공론의 장에 계속 영향을 미치겠지만, 사변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팬데믹은 시민들에게 여러 차원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각종 규제 및 경기침체 등으로 피로도도 상당하다. 더욱이 정치적 자유와 기본권 제한은 각종 음모론을 양산해 무의미한 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국은 독일과 비슷하게 국가 차원의 강력한 대응이 8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전염병 확산을 막는 것이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맞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왔던 기본권 제한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권리와 정치적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제한된다면, 이 시기 음모론으로 재무장한 극우적 이데올로기가 시민사회를 위협할 가능성은 한국 사회에서도 이미 발견되고 있다.

(1)
RKI(Robert Koch Institute): 독일 연방 보건부 산하 공공보건(연구)기관으로, 로버트
코흐 연구소는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관련 정보 및 통계, 방역기준과 이에 따른 지침 등을 주관하고 있다. 한국의 질병관리청의 업무와 흡사하다.
(2)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을 잘 통제하고 있는 일국적 수준으로 양성률 5%미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성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발생하는 감염 건수, 감염률, 중환자 비율 및 사망자 수에 대한 관리도 중요하게 관리돼야 한다고 독일 보건당국은 강조하고 있다.
(3)
과학연구에서 투자 기업가 정신, 분석, 미디어, 자선 활동 등에 이르기까지 Deep Tech 및 선진 기술(AI, Longevity, Fin Tech, GovTech, InvestTech) 영역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상업 및 비영리 조직의 컨소시엄(https://www.dkv.global/overview).
(4)
https://www.zdf.de/nachrichten/politik/corona-parlament-goering-eckardt- 100.html(검색일. 2020.10.20)
(5)
Felix Hackenbruch, Julius Betschka, Julius Geiler. Berlin verbietet Corona-Demos – Drohungen gegen Polizei (www.tagesspiegel.de, 26. August 2020)
(6)
Julius Betschka. So will die extreme Rechte den Corona-Protest unterwandern (www.tagesspiegel.de, 25. August 2020)
(7)
1892년부터 1919년까지 독일제국이 사용했던 국기로 나치정권 초기였던 1935년까지 사용됐다.
(8)
"Angriff auf das Herz unserer Demokratie". Eskalation am Reichstag. (tagesschau.de, 30. August 2020)
(9)
Politologe über Demo von Coronaleugnern: “Eine große Propagandawirkung”. 31.08.2020. (https://taz.de/Politologe-ueber-Demo-von- Coronaleugnern/!5706393/)
(10)
2014년 10월 드레스덴에서 설립된 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인 유럽인(Patriotische Europäer gegen die Islamisierung des Abendlandes)의 약자로 범유럽, 반 이슬람, 극우정치운동을 표방한다.
  • 문경락

    팬데믹은 시민들에게 여러 차원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각종 규제 및 경기침체 등으로 피로도도 상당하다. 더욱이 정치적 자유와 기본권 제한은 각종 음모론을 양산해 무의미한 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국은 독일과 비슷하게 국가 차원의 강력한 대응이 8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전염병 확산을 막는 것이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맞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왔던 기본권 제한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권리와 정치적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제한된다면, 이 시기 음모론으로 재무장한 극우적 이데올로기가 시민사회를 위협할 가능성은 한국 사회에서도 이미 발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