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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 “낙태죄, 자본주의와 결합해 여성억압”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100인 선언, 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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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국가는 여성의 출산능력을 경제·인구정책의 부속물로 취급하면서 자본을 위해 노동력 수급을 조절해왔다. 성별분업구조를 유지해 여성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해 저임금·불안정 노동 구조를 유지하고 여성에게 전가된 무급재생산노동을 당연시해왔다. 즉, 낙태죄는 자본의 이윤논리와 결합해 여성의 몸을 수단화하고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자본주의사회의 구조적 억압의 한 표현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100인 선언문 중-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100인이 형법상 '낙태죄' 전면 폐지와 함께 정부가 여성의 재생산권 전반을 보장해야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의 이름을 걸고 공동 행동을 진행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100인 선언’ 참가자들은 29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의 몸에 대한 국가통제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했다. 기자회견 마무리 즈음엔 '낙태죄'와 '국가통제'가 적힌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이들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100인 선언문’에서 정부의 형법 개정 입법예고안을 비판했다. 이들은 “14주 이상의 임신중지는 의무적으로 상담을 해야 하며, 국가의 허락을 거쳐야만 임신중지가 가능하게 되는데 이는 임신중지 허락을 위해 기관 방문 등의 절차를 거치는 사이 여성이 임신중지의 적기를 놓치는 등 건강권과 의료접근권의 제약을 낳게 한다”라며 “또한 불가피하게 24주 이상의 후기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필히 제공되어야 할 안전한 의료시스템은 무시된 채 국가의 처벌만을 남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입법안이 허용하고 있는 임신중지에 대한 의사의 진료거부권 또한 문제로 제기됐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진료거부권은 정부가 임신중지를 의료행위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으로, 여성의 의료접근권을 심각하게 제약할 뿐 아니라 임신중지를 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강화시킨다”며 “이에 의료법 제15조 진료거부 금지 조항은 임신중지 시술에도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하며, 의사 개인의 신념에 의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설희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 여는 발언에서 “모낙폐는 문재인 정부의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 입법예고안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모낙폐는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 및 성과 재생산 권리 확대를 위한 목소리를 모아내는 연대체로, 2017년 9월 발족 이후 현재 27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결합하고 있다.

문 공동집행위원장은 “정부는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를 그대로 둔 채, 주수 기간, 사회경제적 사유, 상담 의무 등 허용 요건을 신설하면서 ‘위헌적 상태를 제거했다’고 선전했지만 이는 여성을 우롱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처사”라며 “국가와 사회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임신중지라는 것은 결코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 여성의 온전한 자기결정권이 될 수가 없다”라고 밝혔다.

문 공동집행위원장은 또한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좋은 엄마가 될 자격’에 대한 기준을 정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히 문제적”이라며 “사회경제적 사유를 기준으로 임신중지를 허용하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청소년, 미혼모, 비정규직, 장애여성, 빈곤여성은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인가? 낳을 권리를 택할 것인지, 낳지 않을 권리를 택할 것인지 임신 당사자인 여성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 외에 ‘모성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대체 어떤 기준이 있을 수 있나?”라고 차별이 내재된 정부 법안을 규탄했다.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은, 여전히 위험할 것

이날 기자회견에서 여성노동자 지수 씨는 “작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소식을 듣고 이제 곧 집근처 병원에서, 사회적 낙인에 대한 걱정 없이, 비용에 대한 걱정 없이, 충분한 의료적 상담과 양질의 임신중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10월 7일 정부가 내 놓은 입법안은 그야말로 여성들에 대한 배신이었다”라고 말했다.


지수 씨는 “사회경제적 사유 입증을 위해 상담과 숙려기간을 거치려면, 회사에 과연 며칠의 휴가를 써야만 임신중지 시술이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봤다”라며 “몇 개 없는 연월차휴가를 쪼개어 상담기관과 의료기관을 전전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수 씨는 “먼저 휴가를 내고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한 사실을 확인한 후 임신중지 결정 이후엔 다시 휴가를 내고 상담기관을 찾아야 한다. ‘비혼상태라 아이를 낳기 어렵다’, ‘경제적 곤궁함 때문에 아직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 ‘폭행으로 인한 임신이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사정까지 시시콜콜 이야기하며 아이를 낳을수 없는 이유를 소명해야 할 것이다. 상담사실확인서를 받아들고 다시금 24시간 이상의 숙려기간을 기다려 다시 휴가를 내고 의료기관을 찾아 임신중지 시술을 진행해야 한다. 의사의 진료 거부권까지 인정된다며 시술가능한 병원을 찾아 헤매는 고통은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페미니스트 책방 팸(FEMM)을 운영하는 상드는 “어떤 이유에서든 임신중지의 경험은 아픈 경험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지를 선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라며 “여성 개개인의 상황과 조건은 무시하고 오직 임신주수에 따라 합법화되거나 불법화되어 범죄자로 만드는 이런 개정안은 임신, 출산, 양육 과정에 대한 사회적 지원 대책도 없이 오직 여성과 가족에게 책임을 떠맡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자본주의 도입 후 만들어진 한국의 낙태죄… “조선에선 낙태 처벌 없었다”

장혜경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책위원장은 “여성의 몸은 국가의 인구정책과 경제논리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어 왔다”라며 “‘태아의 생명권’ 운운하는 낙태죄 존치론 주장은 낙태죄의 맥락을 고려할 때 얼마나 허구적인지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장 정책위원장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낙태 행위 자체를 처벌하지 않았으나, 일제강점기 때 낙태죄가 만들어졌고, 해방 후에도 유지돼 지금까지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있다.

장 정책위원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통제로 노동력 수급을 조절하면서 자본 축적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한다”라며 “뿐만 아니라 여성억압과 차별을 가져오는 상별분업구조를 타파하기 보다 이를 적극 활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에게 무급 가사·돌봄노동을 전가시키고, 여성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해 여성노동자들을 저임금·불안정노동으로 내몬다. 여성의 몸과 분리될 수 없는 여성 노동력을 수탈하고 초과착취하여, 자본의 안정적 이윤생산에 기여토록 한다”라고 설명했다.

행동하는 이화인에서 활동하는 윤연재 씨는 “낙태죄를 존치하겠다는 건 여성을 출산의 노예이자, 남성들의 노예로 삼겠다는 것”이라며 “가부장제를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그 추한 발버둥을 그만두라”고 밝혔다. 윤 씨는 “그토록 소중한 생명이었다면 왜 과거 특정한 시기 국가적으로 이뤄지고 장려됐던 여아 낙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인가” 물으며 “사회의 필요와 권력자 남성들의 입맛에 따라 바뀌는 생명에 대한 기준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정부는 지난 7일 ‘낙태죄’ 유지를 골간으로 하는 입법예고안을 내놨다.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만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법안이다. 정부는 임신 15~24주에는 성범죄로 인한 임신이나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등에만 낙태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그 외의 임신중지는 범죄시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이에 여성계는 각계 각층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28일엔 기독교인들이 낙태죄 완전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지난 14일엔 모낙폐 주최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천주교 신자 기자회견’이 열리는 등 종교계도 나서 활발하게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루루루

    같은 여성으로써 형법상 낙태죄 폐지 그 필요성에 심히 공감하나 의사의 진료거부권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어떤 의사가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하기 위해 의사가 될까요? 너무 가혹한 것 같습니다. 내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의사)에게도 가혹한 행위를 하라고 강요하는 꼴 되는 것 같아요. 낙태죄 폐지에는 찬성합니다만 의사의 진료 거부권 인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