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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30년…베를린시정부, 대기업 부동산 몰수법 제출

가결되면 24만 채 몰수…주민 54.8%가 몰수에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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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최대 부동산기업 ‘도이체 보넨’이 소유한 주택 약 10만 채를 정부가 몰수할 가능성이 커졌다. 독일이 자본주의 서독으로 흡수 통합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베를린 주민들은 부동산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점점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타게스슈피겔>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베를린 시정부가 ‘도이체 보넨(Deutsche Wohnen AG, DW)’ 등 부동산 대기업이 소유한 주택을 몰수하도록 하는 법안을 주의회에 회부했다. 이제 베를린 시의회는 4개월 내에 이 법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 주의회가 이를 통과시키지 않으면 내년 중 주민투표가 진행된다.

  도이체 보넨 몰수(Deutsche Wohnen & Co enteignen!)’라는 이름의 연대운동이 지난해 6월 14일 베를린 주정부에 주민발의안을 제출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https://www.dwenteignen.de/]

법안은 독일 ‘도이체 보넨 몰수(Deutsche Wohnen & Co enteignen!)’라는 이름의 연대운동이 지난해 6월 14일 주정부에 낸 주민발의안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주민발의가 성사되려면 2만 명의 서명을 모아야 하지만, 7만7,001명이 이 발의안에 서명할 만큼 부동산 대기업 몰수 운동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발의안은 3000천 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기업을 대상으로 이외 주택을 정부가 몰수해 공공기관이 관리하도록 한다. 청원이 성사될 경우 모두 주택 24만 채가 몰수된다.

그 동안 독일에서는 ‘DW 몰수’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민간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을 정부가 몰수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등의 논란이 뒤따랐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베를린 시의회 고문관이 독일 헌법 15조에 따라 주택 몰수가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으며 위헌 논란을 불식시켰다. 독일 헌법 15조는 “토지, 천연자원 및 생산수단은 국유화를 목적으로 보상의 성격과 범위를 결정하는 법률에 의해 공공소유 또는 기타 형태의 공기업으로 이전될 수 있다”고 정한다. 1949년 제정된 독일 헌법 해당 조항은 나치 유산에 대한 국가 통제를 지지하는 공감대 속에서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이제 대기업에 대한 통제를 원한다.

법안 표결을 4개월 남겨둔 현재, ‘DW 몰수’ 운동은 법안 부결을 예상하며 다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내년 중 주민투표에 이 발의안이 부쳐지기 위해선 모두 17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표결 결과, 50%가 찬성하면 발의안은 ‘법’이 된다.

<타게스슈피겔>이 2019년 초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4.8%가 몰수를 찬성했다.

집은 기업에 금융투기의 대상일 뿐

베를린 시정부는 발의안에 대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법안을 심의했지만 심의에 441일이 소요되면서 비판이 컸다. DM 몰수는 지난 5월 18일 베를린 시정부가 주민발의안이 제출된 지 300일이 지나도록 법적 검토의견을 내놓지 않은 것은 직접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민당이 이끄는 베를린 시정부는 좌파당, 녹색당이 연립해 구성됐다. 사민당은 대기업 소유 주택 몰수 조치에는 반대하고 있다. 베를린 연정은 지난해 10월 한창 DM 몰수 운동이 여론을 달구고 있던 때 몰수조치 보다는 5년간의 임대료 동결로 사태를 우회하고자 한 바 있다.

DW 몰수 운동은 베를린이 임대료 폭등으로 몸살을 앓으며 시작됐다. 베를린은 주택 86%가 임대주택일 만큼 인구 다수가 세입자이다. 그러나 임대주택 다수를 대기업이 소유하고 월세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주도해 문제가 됐다.

DW가 소유한 부동산은 전국 주택 16만3천 채와 상업용 부동산 2천600채로, 이 중 11만1500채 이상이 베를린에 있다. 이는 베를린에 있는 부동산 열 채 중 한 개꼴이다. 베를린 4대 부동산 회사가 소유한 주택을 합하면 25만 채에 이른다.

사회주의 언론 <레프트 보이스>에 따르면, DW는 부동산회사라기보다는 금융회사에 가깝다. 몰수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 법안이 주택 신설을 방해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애초 DW가 건설하는 신규 주택은 거의 없는 편이다. DW는 대신 기존 주택을 매입하며 임대료를 올려 왔다. DW는 또 임대료로 거둬 들이는 수익보다 더 많은 배당금을 매년 투자자들에게 지급한다. 이것은 그들이 매년 재산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주장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시 말해 부동산기업이 소유한 집은 금융 투기의 대상일 뿐이다.

‘DW 몰수’ 대변인 미하엘 프뤼츠는 “전에는 대기업을 몰수한다고 하면 ‘벽 반대편(공산주의 동독)으로 가’라고 했을 법하지만 지금은 찬성하고 있다. 집세가 해마다 올라가고 있어 별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