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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영웅 말고 사람대접 받고 싶다

[이슈②] 1년에 한 명꼴로 자살, 절반은 의료 현장 떠나는 간호사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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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챌린지’는 코로나19 최전선에 있는 의료인의 사기를 독려하기 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제안한 국민 참여형 캠페인이었다. 중대본부장은 국무총리, 1차장은 보건복지부 장관, 2차장은 행정안전부장관이다. 의료 정책을 주도하는 정부 부처의 이 제안에 의료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현장을 정부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 간호사들은 또 한 번 답답한 상황과 마주쳤다. 전공의 파업으로 생긴 의료 공백을 메우며 다시 국민 영웅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일 자신의 SNS에 “코로나19와 장시간 사투를 벌이며 힘들고 어려웠을 텐데, 장시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시겠습니까?”라며 간호사들을 추켜올렸다. 문 대통령은 이제 정부가 간호사들을 돕겠다며 간호인력 확충, 근무환경 개선, 처우개선 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간호사들은 정부가 의사파업에 흠집을 내기 위해 간호사를 이용한다고 반발했다. 간호사의 노동 조건 개선 등을 위해 활동하는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행간)’는 9월 2일 즉각 성명을 내고 “말로만 하는 간호사 처우 개선은 이제 그만하라”며 “구체적 실행계획과 재정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신규 인력을 아무리 충원해도, 현장의 과중한 업무강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경력 간호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고, 미숙련 간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현장은 모두에게 위험하다”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간호사 면허자 중 절반은 현장을 떠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간호사 면허소지자 35만 명 중 활동하는 간호사 수는 18만 명에 불과했다.

코로나 시대, 살얼음판을 걷는 간호사들

사실 간호사들은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이후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 5월 27일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현장의 간호사 근무실태조사’ 결과1를 보면 이 같은 상황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정부의 지침이 있었지만 간호사는 아파도 쉴 수 없었고, 과도한 업무로 인해 피로가 누적돼 있었으며, 무엇보다 보호 장비 부족으로 감염에 대한 불안이 컸다.

해당설문에서 간호사는 절반 이상(55.7%)이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인식하면서도 2일 이상 출근을 했고, 이 중 27.3%는 거의 매일 몸에 이상을 느끼면서도 정상근무를 해야만 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4명 중 3명(76.5%)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했다. 과도한 업무로 인한 피로누적(52.6%), 장시간 근무에 따른 집중력 저하(31.7%) 등을 감염위험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간호사의 우려는 기우로만 끝나지 않았다. 실제로 간호사의 코로나19 감염률은 직접 환자를 상대하는 보건 의료노동자 중 가장 높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코로나19로 감염된 의료 관련 종사자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사 순으로 많았다.


간호사들은 충전될 겨를도 없이 소진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분회에 따르면, 보라매병원의 경우 코로나 초기엔 간호사 1명이 4∼5명을 간호했지만, 환자 수가 점점 늘면서 현재는 10명으로까지 증가했다. 게다가 중증환자가 늘어 업무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8.15집회 참석자나 수도권 확진자 중 노인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승아 서울대병원분회 노동안전부장은 “최근 서울대병원 간호사들에게 받는 편지가 늘었”는데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어하거나, 업무 과다로 사직서를 쓰고 싶다거나, 병원에서 버티는 게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간호노동자들은 최근 정부의 국립대병원 간호인력 확충 계획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9월 17일 교육부가 발표한 국립대학병원 인력 증원 계획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앞으로 간호사 96명, 간호조무사 14명을 충원한다. 이승아 노동안전부장은 교육부 계획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시점이 나오진 않았지만, 병원에서 이 인력을 코로나 전담 인력으로 배치하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 업무가 몰려 나이트 근무 중인 간호사가 17∼18명까지 보고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의료 인력, 예산 등의 지원을 공언했던 정부지만, 현장 간호사들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수도권에 위치한 코로나 전담병원 간호사 D씨는 “원래 병원 경영상황이 좋지 않던 상황에서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지정됐다. 임금 체불이 걱정되던 참이었는데 정부는 코로나 진료를 하면 고생한 만큼 보상을 해줄 것처럼 말했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월급은 병원보다 적었다”라고 밝혔다. 비슷한 일이 대구에서도 있었다. 현재는 일부 합의됐지만, 간호사를 포함한 대구 의료인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문제에도 정부가 난색을 표해 차별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본질을 비껴가는 간호 인력 대책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부터 간호사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그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고통 받다가 생을 포기하는 간호사도 있었다. 최근 5년 동안에만 네 건 이상의 간호사 자살 사건이 있었다.

결국 지난해 1월 5일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에서 서지윤 간호사가 숨진 채 발견되며 간호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는 반향이 일었다. 서울시 차원의 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여러 개선 방안을 제출해 기대도 모았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조항 등이 법제화됐지만 병원은 예전처럼 돌아간다. 사람이 죽어도 달라지지 않는 병원을 보며 간호사들은 이전보다 더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의료 현장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신규간호사의 이직률로 가늠해볼 수 있다.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신규간호사의 이직률은 2014년 28.7%, 2015년 35.4%, 2016년 35.3%, 2017년 38.2%, 2018년 42.7%로 매년 빠르게 상승 중이다. 의료법에 간호사 최소 배치기준이 있으나 실제 환자 돌봄 업무를 하지 않는 관리자들이 이 기준을 충족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병원 간 과도한 경쟁으로 현장의 업무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간호사들은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를 법제화하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부는 이 단순하고도 명확한 해결책 대신 거리가 먼 대책을 발표해 원성도 사고 있다. 행간 이민화 활동가는 “정부 정책은 현 사태에 대한 뒷수습이 대부분이고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거의 없다. 현재 일하고 있는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현장 간호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장과 유리된 정책이 나온다”라며 “행간과 의료연대본부가 지난 7월 청와대를 찾아갔을 때도 청와대는 기존 제도가 있다는 식의 발언만 되풀이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2018년 3월 보건복지부는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대책〉에서 의료기관이 간호서비스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간호관리료)를 간호사 처우개선에 사용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간호관리료 가산에 따른 추가 수입분을 간호사 추가 고용 및 근무 여건 개선 등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사항도 권장 사항에 그친다. 간호사 채용 독려를 위한 간호관리료 차등제를 2000년부터 시행 중이지만, 기관의 자발적 협조에 기반하고 있기에 그 실효성이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다. 또 간호관리료가 워낙 적게 책정돼 있어 병원 인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간호사 인건비의 절반도 보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정부는 간호사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며 2007년부터 간호대 입학 정원을 크게 늘렸다. 그 결과 ‘전국 간호대 및 간호학과 입학정원’은 2007년 1만1000명에서 2014년 1만8000명으로 7년 사이 7천 명(62.7%)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2016년 기준 간호사 대비 ‘의료기관 근무 간호사 수’의 비율은 50.80%로 효율적인 인력 활용은 여전히 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간호사 인력이 수도권 및 대형병원에 집중돼 지방·중소병원의 간호사 인력난이 심각하다.

이상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은 “간호사 일자리엔 지역별, 병원규모별 일자리 임금 격차 문제가 존재한다”라며 “간호사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선 정부가 간호사 인력 규모와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지역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공공 재정을 투여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책임연구위원은 또 “현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는 데 의료가 꼭 필요한 것이라면, 간호사 인력 수준은 환자 안전 및 의료서비스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도 강조했다.

금기가 된 그 이름

지난해 1월 5일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에서 서지윤 간호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나 발견하면 우리 병원은 가지 말아줘. 조문도 우리 병원 사람들은 안 받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자필유서 말미에 남긴 채였다.
서울시 차원의 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져 7개월간의 조사가 진행됐다. 지난해 9월 조사 보고서를 발표한 진상대책위는 이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사망’이자 ‘공공의료기관에서 벌어진 중대사건’으로 규정했다.

진상대책위는 해당 보고서에서 “서울의료원의 경영방침은 외형적인 사업 확대에만 치중해 간호사의 업무량과 노동 강도는 높아졌지만 이에 비해 적정 인력 배치와 합리적 운영, 실질적 노동조건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또 “분주한 간호업무와 교대근무 등은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이어져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내부에서는 은폐하기 쉽고, 외부에서는 인식하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간호사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했다.

진상대책위는 조사 보고서를 마무리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20개 영역, 34개의 과제를 권고했다. △경영진 징계 및 교체 △간호관리자 징계 △간호부원장제 도입 △적정 인력 배치 △고충처리 전담조직 마련 등이 주요 과제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이행된 것은 없다.

우선 경영진 교체 사항은 김민기 병원장이 지난 1월 나가면서 일부 책임지는 듯 보였지만 이를 ‘쇄신’으로 보긴 어려워 보인다. 지난 6월 취임한 모 병원장은 2018년까지 서울의료원에서 의무부원장 등 주요 요직을 거쳤던 인물로, 사건 전부터 서울의료원 정책에 깊이 간여했던 경영진이다. 교체 권고를 받았던 (의무)부원장 역시 그대로다. 서 간호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3명의 간호관리자도 경징계로 마무리됐다.

진상조사위에 참여했던 김경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새서울의료분회장은 “사망 사건 책임이 경징계로 끝났기에 병원은 이제 무슨 잘못을 해도 무서울 것이 없어졌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있지만, 우리 병원에선 아직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책제안과 함께 병원 인력의 핵심인 간호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됐던 간호부원장 자리 역시 마련되지 않았다. 서울의료원은 지난 9월 조직을 개편하며 간호부원장을 신설하지 않고, 기존 의무부원장 아래 공공의료본부장(간호본부장)을 두는 데 그쳤다.

서 간호사와 일했던 동료 B씨는 “서지윤이라는 이름은 병동에서 ‘금기’가 됐다”라며 “관리자들은 서 간호사의 죽음 자체를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 서 간호사의 1주기 행사를 병원 내에서 하긴 했는데 간호사들은 보지도 않고, 집회는 가드들에 둘러싸여 가려진 채 진행됐다”고 씁쓸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