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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의 집회 금지

[질문들] 집회는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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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는 모두의 삶을 휘감은 채 낯선 상황을 펼치고 있다. 우리는 한 번도 풀어본 적 없는 문제에 더듬더듬 답을 찾으려 하지만 문제는 계속 이어진다.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코로나19 자체만으로도 어려운데, 코로나19가 파생시킨 문제는 삶의 전방위에 걸쳐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인권활동가들은 코로나19의 위기는 생명과 안전의 위기를 넘어 사회·경제적 위기이며 인권의 위기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감염병의 대응은 생명과 안전을 비롯해 인권을 기반으로 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대응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인권 문제 중에서도 내가 고민하는 주제는 집회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집회의 자유가 잘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의 집회는 이제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됐다. 집회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되어 방역을 위해 집회 금지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로 삶의 위기를 겪는 사람들은 “이 시국에 집회라니”라는 비난에 위축되고 집회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코로나로 경영이 어렵다고 해고된 노동자들에게도, 용역들에게 집을 철거당해 집에 머무를 수조차 없는 철거민들에게도 집회 한 번 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지난 11일 자유민주국민운동 등 보수단체는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종로경찰서장,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이 “광화문 일대 모든 집회를 금지해 국민의 집회 결사 자유를 억압했다”며 고발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과연 이들은 정말 집회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일까? 사람들은 내가 주장했던 집회의 자유와 이들의 주장을 같은 것으로 생각할까? 나의 고민은 한층 더 어려운 문제 속으로 빠져들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집회는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까

코로나19 초기부터 집회가 금지됐다. 2월 21일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청계광장과 주변 차도와 인도에 집회금지를 통보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의 각 지자체로 확장되면서 금지장소가 점점 늘어났다. 지자체의 집회금지 고시는 주요 집회 장소나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이뤄졌고, 예외 없이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금지 기간은 대부분 종료일이 명시되지 않은 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이런 조치들은 집회가 공중 보건에 위협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와중에 8월 15일 광화문 집회는 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시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8·15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판사의 해임을 청원하고 여당은 판사의 이름을 붙인 법을 발의했다. 코로나19가 계속되는 한 집회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일까? 집회가 우리는 위험에 빠뜨리는 것일까?

먼저 8월 15일 전후의 시간을 살펴보자. 2월부터 교회로부터의 소규모 감염은 이어졌고 8월에 들어서 2주 동안 교회에서 193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교회를 주축으로 하는 집회가 광화문 일대에 예정되었고 서울시와 경찰이 집회를 금지했지만 집회는 열렸다. 집회가 코로나19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집회 자체가 원인인 것과 집회에서의 행위가 원인인 것은 다른 문제다.

감염병의 특징상 접촉과 밀집, 밀폐가 전파의 원인이다. 교회에서 감염이 발생한 것은 밀폐된 곳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행위가 전파를 용이하게 했기 때문이다. 광화문 집회는 야외였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밀접한 접촉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코로나19 자체를 부정하고 방역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 때문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파하면서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들까지 위험에 빠트렸다. 이들의 행위는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 행동이 집회라는 방식으로 표출됐다고 해서 집회 자체가 위험한 것이 될 수는 없다. 같은 날 민주노총 2천여 명이 모인 기자회견을 했지만 이 집회로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은 없다. 민주노총은 현장에서 참가자들에게 마스크와 얼굴가림막 등을 배포하고 발열 체크를 하는 등 안전한 집회를 위한 조치를 했다.

방역과 집회는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감염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는 집회는 금지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서울시는 그런 우려 때문에 8월 15일 개최 예정인 모든 집회를 금지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이 중 2개 집회를 허용할 것을 결정했다. 법원 판단의 중요한 기준은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방역을 양립하게 하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감염병 예방을 위하여 집회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집회시간, 규모 등과 무관하게 일정 지역 내 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제한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제한지역의 집회라도 집회시간, 규모, 방법 등을 개별적, 구체적으로 살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필요한 최소한 범위 대에서 집회를 제한하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금지처분 집행정지를 신청한 100명의 집회에 대해 공간상 거리두기가 가능하고 참가자들이 마스크 착용과 손 세정 등 방역수칙을 준수한다면 집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결정했다. 사실 이 내용은 그동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집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방역과 집회가 모두 가능해야 한다는 인권단체들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약속한 방역 지침을 어기고 100명이 아니라 집회를 금지당한 사람들이 허용된 집회 장소로 몰렸다는 것인데 이것을 미리 재판부가 판단했어야 하는가이다. 판사는 명확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만으로 기본권을 제한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방역 약속이 거짓말인지, 100명의 집회가 사실은 100,000의 집회를 염두에 둔 것인지 단지 의심만으로 집회를 금지할 수는 없다. 만일 실제 집회에서 공중보건의 위험이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집시법으로도 경찰의 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판단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경찰이 특정 집회에 대해 불법이 예상된다고 금지하거나, 과거 불법집회의 전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금지하는 것을 비판한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21일에 부천시가 금지한 집회가 인천지법의 판결로 허용되어 진행됐다. 인천지법은 광복절 집회 판결보다 한층 더 구체적인 방역지침을 제시했고 최근 서울과 인천지역의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판단했다. 이 판결 역시 “행정당국은 집회의 규모와 장소, 방법 등을 제한할 재량을 가지지만 그 제한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라는 점을 중심에 뒀다. 집회 주최 측은 법원이 제시한 방역조건을 준수했고 마찰 없이 마무리했다.

집회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인권활동가들은 집회를 금지하는 서울시청을 찾아가 방역과 집회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거절했다. 다분히 행정 편의적인 방식은 집회에 대한 조치만이 아니었다. 방역조치에 시민의 협조를 구한다고 하지만 정부의 결정을 그대로 수용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강제성이 있는 조치에 대해 시민들의 수용성을 높이려면 공포를 키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집회에 대한 공포를 키웠듯이 서울시가 마스크 착용 의무를 강조하면서 공개한 ‘어느 마스크를 쓰시겠습니까?’ 포스터도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코로나19 중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 메시지는 감염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고 환자를 비난하게 만든다.

8·15 집회 이후 나온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의 ‘박형순 금지법’은 판사의 이름을 붙여 판사에게 책임을 묻는 동시에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법안으로 집회를 문제의 원인으로 만든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도 삼권분립을 위반하면서 행정관청의 권한 남용에 대항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개정안을 내 역시 집회가 문제인 냥 만들었다. 국민들의 분노와 공포를 밑거름 삼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권력의 권한을 키우느라 기본권은 안중에도 없다. 비판해야 할 행동과 지켜야 할 가치의 구분을 없애버렸다.

매일 발표되는 코로나19 확진자의 수를 확인하며 감염병의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만, 그 숫자 뒤에 삶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코로나의 위기는 확진자의 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느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위기를 겪는 사람들이 현재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해결과 개선을 요구할 목소리를 낼 공간이 사라졌다. 방역이 선이고 집회는 악인 것처럼 인식되고 집회가 기본권임에도 권리 행사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방역에 해가 되는 사람들로 지목된다. 이들의 목소리를 삭제하고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정부는 코로나 상황의 장기화에 대비해 경제와 방역을 모두 살리는 균형있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가 장기화된다면 경제만이 문제가 아닌데 왜 인권과 방역이 함께 가는 길을 찾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가? 시민들이 서로 협력해서 방역과 함께 인간을 존중하는 삶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정치는 왜 없는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서 드러난 다양한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체제와 제도로 보완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를 함께 살며 견디고 있는 모든 사람이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더라도 서로의 고통에 사회적으로 연대할 수 있어야, 서로가 겪는 불의에 함께 저항할 수 있어야 코로나19 이후의 삶도 가능할 수 있다.
  • 문경락

    방역이 선이고 집회는 악인 것처럼 인식되고 집회가 기본권임에도 권리 행사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방역에 해가 되는 사람들로 지목된다. 이들의 목소리를 삭제하고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정부는 코로나 상황의 장기화에 대비해 경제와 방역을 모두 살리는 균형있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가 장기화된다면 경제만이 문제가 아닌데 왜 인권과 방역이 함께 가는 길을 찾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가? 시민들이 서로 협력해서 방역과 함께 인간을 존중하는 삶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정치는 왜 없는가?

  • 익명

    인권은 존중하지만 다른사람의 생명권이나 안전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짖누르면서 자신의 인권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이번의 집단 집회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가?
    경제적 손실뿐만아니라 개개인의 생명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집회가 잘못된 것이 아닌 특수한 상황에서도 일부의 단체가 마스크 같은 방역 장비도 없이 집단 집회를 참석하는 것이 악의적인 것이다.
    자기 자신들을 기본권리를 행사하기 위함이라 포장하는데 그것은 이 특수한 상황이 지나가고 내세워도 누가 뭐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굳이 이 특수한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남들을 비판하는가? 지금 이 단체집회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다른사람들의 인권을 짖밟는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