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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th of Light

[리부트reb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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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밤을 장식하는 조명은 하루가 다르게 더 높아지고 더 밝아진다. 하지만 우리 시대 마천루의 눈부신 조명이 무색하게도 오늘날 세계를 밝히는 작업은 점점 요원해 보인다. 한때 세계를 인식하는 출발점이었던 ‘계몽’(Lumières)의 프로젝트는 동시에 (도래할 시간과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유토피아의 기획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에트의 붕괴 이후 너무나 손쉽게 폐기되어버린, 세계를 붙잡고자 하는 노력의 다른 이름이었던 계몽과 유토피아의 자리에는 이제 다만 소비자본주의의 환등상만이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세계에서 잃어버리고만 ‘미래’라는 시간은 마천루의 층고라는 공간에 대한 욕망으로 전치되어버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더 이상 미래라는 불확실한 시간이자 가능성이 아니라, 수많은 복제품처럼 경쟁적으로 솟아오르는 마천루와 그것이 가리키는 강고한 현재주의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끊임없는 현재가 소환하는 미래상이란 볼품없다. 자본주의적 현재 이후에는 ‘세계의 종말’만이 있는 것이다. 오늘 범람하는 디스토피아의 이미지는 그래서 반-미래적이다. 그것은 도래할 시간이라기보다는 악화한 현재를 공간적으로 표상할 뿐이기 때문이다. 디스토피아적 (반)미래에 대한 이미지가 곧잘 공간으로 표현되거나 상상되는 이유다. 마천루의 눈부신 조명은 절대 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