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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만들어낸 기후위기는 시골로 향한다

[유하네 농담農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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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망했다

“엄마 언제 비가 그쳐?” 2주의 짧은 방학을 맞은 유하가 매일 아침 물어봅니다. 비가 그쳐야 마당에 수영장을 설치하고 친구들을 불러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영선수가 꿈이었던 유하는 코로나가 터지고 수영장에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당 수영장만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근데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올해는 망했어” 유하가 뾰로통합니다. 엄마도 속으로 “올해도 망했어” 합니다.

  비가 그친 사이 풀을 매는 유하 아빠 [출처: 이꽃맘]

6월 중순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사실 신이 났었습니다. 원주로 이사 오고 나서 유하네는 계속 물 걱정을 하며 살았거든요. 원주로 귀농한 첫해였던 2018년, 유하네는 이른바 마른장마를 만났습니다. 야심차게 600평의 밭을 빌렸었습니다. 참외도 심고 콩도 심고, 들깨도 심을 생각이었죠. 6월 중순 장마가 오기 전, 미리 키워 놓은 콩 모종을 잔뜩 심었죠. 비가 오면 푸릇푸릇 콩이 잘 자라겠구나 하면서요. 근데 웬걸,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물과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물이 나오지 않는 밭이라 물지게를 지듯 양손에 조리개를 들고 물을 날랐습니다. 600평 밭에 물을 주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결국 콩 모종이 타들어 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가래침만 뱉어도 산다는 들깨도 모조리 타 죽었습니다. 작년에는 그나마 비가 조금 와서 들깨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제대로 된 장마가 오려나 기대했었습니다. 6월 말 장마 초기만 해도 이상하게 우리 동네만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시간 날씨앱을 들여다봤지만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얼른 콩 모종을 들고 나섰습니다.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유하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콩을 심다 호미를 던지고 “하늘이 우리를 버렸나. 성당에도 열심히 나가는데” 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물 주면 되지. 그래도 이렇게 함께 밭에 있으니까 난 좋다.” 호스로 콩에 물을 주며 유하 아빠가 웃습니다.

남쪽 지방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으로 올라왔습니다. 유하 엄마의 원망을 들은 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비가 왔습니다.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 끊임없이 내리는 세찬 비에 고추가 넘어가고, 들깨가 녹아내려도 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달렸던 대추도 다 떨어지고 벌이 날지 못하니 피었던 대추꽃도 그냥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밭 곳곳은 물길로 파헤쳐지고 밭 한쪽에서는 물이 뽀글뽀글 계속 흘러나오는 샘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지.” 비가 잠시 그친 사이 넘어진 고추나무를 세우며 다짐합니다.

북극곰의 불행이 우리의 삶으로

이번 길고 긴 장마는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아무렇지 않게 써왔던 많은 것들 때문에 지구의 온도가 1도 이상 올라갔고, 빙하들이 녹아내리고 찬 공기들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이번 역대급 장마를 만들어냈다고 뉴스가 떠들어 댑니다.

“엄마, 북극곰들이 얼음이 없어서 헤엄을 치다가 지쳐서 물에 빠져 죽는대요.” 유하가 들려줬던 북극곰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북극곰의 불행이 우리에게도 오는 것 아닐까 무섭기도 했습니다. “유하야, 우리가 쓰고 버린 쓰레기들이 우리 눈에안 보인다고 사라진 게 아니야. 지구 밖으로 나가지는 못할 테니 어딘가에 또 모여 있겠지. 그러니까 뭐든지 아껴 쓰고 되도록 쓰레기를 덜 만드는 사람이 되자.” 뉴스를 보던 유하 파파의 일장 연설에 유하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태양광 발전은 친환경인가

비가 계속 오고 전국에 산사태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우루루룽” 천둥이 칠 때면 혹시 뒷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아닐까 긴장했습니다. 재작년 옆 산에 굵은 나무들이 다 베어지고 태양광 발전 시설이 들어오면서 걱정은 더해졌습니다. 산 밑에 있는 이웃 어르신 집이 걱정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사히 지나갔지만 텔레비전에서는 태양광 시설이 무너진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에서는 태양광 시설이 산사태의 원인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친환경 에너지라며 태양광 시설을 장려했던 정부의 변명이었습니다.

복숭아밭 옆에 갑자기 들어선 태양광 시설은 마을의 걱정거리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매달 옆 복숭아나무 사진을 찍어두자.” 마을 반장님이 제안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세하 [출처: 이꽃맘]

마을에 살던 할아버지가 시내로 나가면서 농사를 짓지 못하자, 산 전체의 나무를 베어 내고 태양광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동네 사람인데 말릴 수도 없고” 하며 지켜봤습니다. 정부는 자연환경을 위해 화석연료를 줄여야 한다며 ‘친환경’ 이라는 이름을 붙여 태양광 시설을 장려했습니다. 노년기의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한다며 마치 연금이라도 되는 양 홍보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농사를 짓기 어려운 농민들에게는 솔깃한 제안이었습니다. 땅도 팔리지 않고 농사를 짓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하는데 정부가 지원금을 줘가며 태양광 시설을 지으라고 하니, 그것도 ‘친환경’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놨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결국 산은 민둥산이 되고 우후죽순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큰 트럭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을 작은 길이 무너졌습니다. 수로를 내겠다며 이리저리 골을 파내는 요란한 공사들이 이어졌습니다. 베어진 굵은 나무를 보며 화를 냅니다. “도시 산업을 위해 시골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제대로 값도 안쳐주는 도시 사람들 먹거리 만든다고 농민들은 골병이 들고, 가뜩이나 밭이며 논이 줄어드는데 있는 밭도 태양광들이 다 차지하니 도대체 어쩌란 말이야. 식량자급률이 20% 조금 넘는다는 거 도시 사람들은 모르나봐.” “저기서 나오는 전자파가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모르잖아. 바로 옆에 있는 우리들이 다 감내해야 하는 거잖아.” “저 태양광 패널들 오래되면 다 쓰레기 될 텐데 저건 다 어찌 처리할 거야. 무한대로 에너지를 만드는 친환경 태양광?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러다가 마을 전체가 태양광 발전소가 될 것 같아. 요즘은 태양광 농사라고 한다며?” 24시간 함께 하며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유하 엄마와 아빠는 봇물 터지듯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다행히 비가 그쳤습니다. 안절부절 하늘만 보며 사는 초보 농부 유하네에게 “이제 하늘만 의지해 농사짓는 시대는 갔다”고 누군가 훈수를 둡니다. 핸드폰 하나로 온도며 습도며 다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팜이며 공장형 채소농장들이 등장하고 있는 시대에, 비닐도 안 깔고 농사짓는 유하네를 안타까워하는 현실적인 조언이기도 합니다. “농부마저 하늘을 믿지 않으면, 농부마저 자연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요.” “그러니까 자연을 지키는 농부를 공무원으로 고용해야 해. 그래야 농부가 늘지. 유럽은 그렇다잖아.” “농민수당도 안 준다는데 우리나라에서 가능이나 한 얘기야?” 또 신나는 토론이 이어집니다. 오늘은 서울에서 쉬러 온 선배를 앞에 두고 토론회가 벌어집니다. 선배는 “야 이거 그대로 유투브에 내보내면 인기 있겠는데” 하며 웃습니다.

유하네는 시 하나를 읽으며 오늘도 땅을 지키러, 자연을 지키러 밭으로 나섭니다.

농부-김준태

그의 신발엔 흙이 묻어 있다
그는 날마다 하늘을 밟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