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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뉴딜’ 한다면서 ‘그린벨트’ 막개발

[이슈②]학교와 5분 거리, 발암물질 내뿜을 ‘산업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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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구린 뉴딜’ 연재 순서]
(1) 반환경·비민주 옷 입은 신재생에너지
(2) ‘그린 뉴딜’ 한다면서 ‘그린벨트’ 막개발
(3) 문재인의 그린 뉴딜, ‘사회 대전환’ 한다면서 정책 ‘우려먹기’
(4) 한국판 뉴딜, ‘기업’은 지원하고 ‘고용위기’는 패싱한다
(5) 한국의 기후 운동, ‘우리’는 누구이고 ‘저들’은 누구인가?
(6) 도시가 만들어낸 기후위기는 시골로 향한다
(7) 그린워싱

초등학교에서 고작 85m 떨어진, 26만여㎡의 그린벨트 땅에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곳 주민들은 그린벨트 부지에 산업단지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았다. 주민설명회가 열렸다고 하는데, 언제 어디서 개최됐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시행사와 지자체는 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발암물질 발생 위험을 숨기고 사업을 강행했다. 인근 산업단지로 인해 주민들은 이미 악취 등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나마 산업단지와 주거지역의 ‘완충장치’를 하던 것이 그린벨트였다.

지자체는 이 그린벨트마저 산업단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7월 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의 ‘그린 뉴딜’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정부 그린 뉴딜 계획에는 미세먼지 차단 숲 630ha와 생활밀착형 숲 216개소 등의 도심 녹지를 조성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현재 있는 그린벨트를 막개발하면서, 새로운 도심 숲을 조성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행태였다.

  그린벨트(산업단지 부지) 내 밭

주거지역에 침입할 산업단지

인천광역시 남동구 남촌동 625-31번지 일대엔 남촌일반 산업단지(남촌산단) 조성 사업이 추진 중이다. 남촌산단의 시행사는 인천시 남동구와 산업은행, 현대ENG 등으로 구성된 남동스마트밸리개발(주)이라는 민·관합동법인이다. 총사업비는 2천147억 원가량이며, 사업 승인은 인천광역시가 맡았다.

남촌산단이 들어설 부지는 승기근린공원을 포함해 저수지, 주말농장, 국궁장, 밭 등으로 이뤄진 그린벨트 지역이다. 사업지에서 불과 85m 떨어진 곳에는 선학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반경 500m 이내에 3곳의 학교가 더 있고, 5분 거리에는 어린이집도 있다.

그린벨트 부지에서 도보 10분가량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연수구 주민 소순길 씨는 “나야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겠다 싶으면서도, 중학생 딸과 장모님을 생각하면 정말 비상식적인 사업”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마을 주민들은 인근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악취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289만 평 산단과 주거지역의 완충지였던 ‘그린벨트’

소순길 씨는 저녁마다 아내와 사업지 인근의 승기천을 산책하곤 한다. 승기천은 남동구와 연수구 사이를 흐르는 하천이다. 하천 길을 따라 걸으니, 마스크 사이로 악취가 스며든다. 평소에도 이렇게 악취가 나느냐고 묻자, 그는 “구간마다 냄새가 다르다. 숨이 막힐 때도 있다”며 “비만 오면 공장의 오염물질이 쓸려 나와 악취가 더 심하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미 90년대부터 산업단지로 고통을 받아왔다. 남촌산단 사업지 남측방향 길 건너에는 1997년에 들어선 957만4000㎡(289만 평) 규모의 남동국가산단이 위치해 있다. 산업단지에서 배출되는 악취 때문에, 남동국가산단 주변 지역은 2006년에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됐다.

남촌일반산단과 2km 거리의 논현주공1단지에 사는 문종권 씨도 평소 악취로 골치를 앓고 있다. 그나마 이 지역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산업단지와 주거지역 사이의 그린벨트가 완충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었다. 문 씨는 “날씨가 흐린 날이면 유독 냄새가 오래갔다”며 “그래도 그린벨트가 어느 정도 완충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남촌산단 조성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현 추세를 역행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린벨트(산업단지 부지) 인근에 산업단지 조성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주민이 모르는 설명회, 알고 보니 발암물질 4종 위해도 초과

뿐만 아니라 남촌산단은 추진 과정에서 발암물질 은폐와, 주민 의견수렴 미흡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7월, 남촌산단 조성을 반대해온 ‘인천 연수평화복지연대•인천 남동평화복지연대(평복연)’는 시행사가 발암물질 4개 항목의 발생위험을 속이고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주민 의견 청취 자료에는 “발암성·비발암성 물질 모두 위해도 지수 이하로 예측된다”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시행사가 공개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는 “현황농도(포름알데히드) 및 가중농도(카드뮴, 벤젠, 비소)에서 총 4개 항목이 발암 위해도값(10-6)을 초과하는 것으로 예측된다”고 적혀 있었다. 이에 인천시는 해당 사실을 인정하면서 “환경영향평가서를 요약하는 과정에서 검토가 미흡했다”고 해명했다. 주민설명회조차 제대로 공지되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산단 조성 조식을 들었을 만큼, 주민 의견 수렴도 이뤄지지 않았다. 문종권 씨는 “주민 설명회가 열린다는 걸 알아야 참여도 하지 않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올해 언론 보도를 통해 산단 조성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환경영향평가 대상 지역인 연수구 주민 소순길 씨도 남촌산단 추진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평복연을 통해 듣게 된 소식이었다. 설명회가 열리는 줄 알았더라면, 여기에 참석해 산단 조성 반대를 주장했을 터였다. 박주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설명회와 공람 방식이 있었지만, 관련 정보를 지역 언론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정도로 굉장히 형식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걱정거리는 남촌산단뿐이 아니다. 남촌산단 남동쪽에는 올해 준공을 목표로 도시첨단산단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 산업단지 역시 23만3000㎡ 면적의 그린벨트 위에 지어지고 있다. 산단조성 과정에서의 발암물질 논란도 있다. 시행사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낸 환경영향평가서에따르면산단조성시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니켈, 6가크롬, 카드뮴, 벤젠, 납 등 6종이 건강영향평가기준 및 환경기준을 초과한다. 주민들이 일상을 꾸려가던 주거지역이, 거대한 산업단지가 될 위기에 처한 셈이었다.

  그린벨트(산업단지 부지)와 85m 거리의 초등학교

문재인 정부, 그린벨트 해제 논란 일단락?…원래도 해제 중

지난 7월, 문재인 정부가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논의하며 논란이 일었다. 시민사회 단체들은‘그린뉴딜’하겠다는 정부가‘그린벨트’를 푸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확대되자 7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은 “개발제한구역은 미래세대를 위해 계속 보존해야 한다”며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또 다른 그린벨트인 ‘태릉 골프장’ 개발은 예정대로 진행키로 했다.

개발제한구역은 ‘환경 보전’이라는 목적 때문에 그린벨트라 불린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방지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 보전 △안보 시설 공간 확보 등을 목적으로 도입한 제도다. 박 대통령은 77년까지 8차례에 걸쳐 국토면적의 5.4%(539만7,110㎢)를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했다. 1999년까지 유지되던 그린벨트는 김대중 정부 들어 역대 최고치인 782㎢가 해제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644㎢ 해제)의 ‘국민 임대 주택’, 이명박 정부(88㎢ 해제)의 ‘보금자리주택’, 박근혜 정부(16㎢ 해제)의 ‘뉴스테이’ 건설 등을 이유로 그린벨트는 꾸준히 해제됐다. 이렇듯 역대 정권은 주택 정책에 있어 그린벨트를 ‘해제 예정지’ 정도로 인식해 왔다.

일단 그린벨트 해제 논란은 대통령의 공식 입장으로 일단락된 듯하다. 하지만 인천시 남촌산단을 비롯해 국토부의 3기 신도시 사업 등으로 그린벨트는 계속 훼손되고 있다. 이미 문재인 정부가 임기를 시작한 2017년부터 2019년 말까지 15㎢의 그린벨트가 해제됐다. 해제된 지역은 부산, 광주, 경기, 경상남도 등이다.

인천시가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는 근거는 ‘2020년 수도권 광역도시계획’에 있다. 2009년 당시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 구 국토해양부 등은 수도권 광역도시 계획 변경안에서 그린벨트 해제 총량을 설정하고 활용방안을 제시했다. 변경안은 ‘보전 가치가 낮은 부분을 산업용지 등 도시용지로 해제·활용을 허용하되, 지가상승이나 환경 훼손 등의 부작용을 방지하는데 중점’을 뒀다. 인천시는 그린벨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온 결과, 해제 총량 9.096㎢ 중 1.13㎢만이 남았다.

남촌산단이 삽을 뜨기 위해서는 중앙도시계획위원회(중도위)의 심의 절차가 남아 있다. 지난 2016년 3월 개정된 ‘개발제한구역의 조정을 위한 도시관리계획 수립 지침’에 따르면 30만㎡ 이하의 그린벨트 해제 권한은 시·도지사에 위임할 수 있다. 단, 국토부와 사전협의를 거쳐야 한다. 인천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그린벨트 해제 사전협의에서 국토부는 ‘인천 남촌산단 사업지가 녹지이며 사업지 주변에 도시첨단산단이 지어지고 있는 등’의 이유로 중도위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평복연이 요구한 주민설명회가 취소되면서, 중도위 개최 역시 기약 없게 됐다.

한편 그린벨트 연구자인 변병설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가가 그린벨트를 숲으로 조성하거나, 당장은 그대로 묶어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변 교수는“장기적으로 국가가 그린벨트를 매수해 시민의 여가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 방치되고 있다 해서 개발을 기다리는 땅으로 여겨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박주희 사무처장도 “그린벨트도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도시 숲이고, 생활공간 속 녹지다. 정부는 있는 녹지를 어떻게 잘 가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선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문경락

    개발제한구역은 ‘환경 보전’이라는 목적 때문에 그린벨트라 불린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방지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 보전 △안보 시설 공간 확보 등을 목적으로 도입한 제도다. 박 대통령은 77년까지 8차례에 걸쳐 국토면적의 5.4%(539만7,110㎢)를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했다. 1999년까지 유지되던 그린벨트는 김대중 정부 들어 역대 최고치인 782㎢가 해제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644㎢ 해제)의 ‘국민 임대 주택’, 이명박 정부(88㎢ 해제)의 ‘보금자리주택’, 박근혜 정부(16㎢ 해제)의 ‘뉴스테이’ 건설 등을 이유로 그린벨트는 꾸준히 해제됐다. 이렇듯 역대 정권은 주택 정책에 있어 그린벨트를 ‘해제 예정지’ 정도로 인식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