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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30년,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의 코로나 분투

[INTERNATIONAL3] 코로나19의 확산과 멕시코 마킬라도라 노동자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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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마킬라도라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출처: GULDHAMMER]

세계화 속의 코로나19

한국 사회에서 ‘세계화’가 회자된 지 30년 가까이 흘렀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여러 영역과 관점에서 우리는 부지런히 ‘세계화’ 돼 왔다. 인적, 물적, 비물질적 자원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속화됐다. 해외여행이 별스럽지 않고,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다른 모습,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이 색다르지 않게 여겨진다. 우리 기후에서 자라지 않는 농산물이 식탁에 오르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어느 나라 어디에서 만들어 유명하다는 물건이 우리 손에 있는 것도 당연해졌다. 상품의 생산지를 묻는 일이 무의미한 경우가 많아졌고 한류라는 문화 현상도 익숙해졌다.

그런 주변 환경의 변화가 부지런히 세계화된 우리 사회를 증언해줄 때, 그곳에서 발견되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는 그 증언을 반박했다. 세계시민주의라는 가치가 무색하게 대규모 난민 신청은 ‘우리’를 위협하는 ‘사태’로 여겨졌고, 이주 노동자에게 차별적 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어떤 물건들은 생산지에 따라 구매 거부를 당하기도 했다. 인적, 물적, 비물질적 자원이 대규모로, 손쉽게, 신속히 이동하는 만큼 ‘어떤’ 사람들, ‘어떤’ 물건들, ‘어떤’ 콘텐츠가 무리 지어 밀려들어 온다는 사실에 일부는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이 세계화를 저지시키지는 못했다.

그렇게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 코로나19가 개입했다. 인간의 이동이 자유로웠던 만큼 바이러스의 이동도 쉬웠다. 상품의 이동이 자유로웠던 만큼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의 영향은 깊고 긴 파동으로 모두에게 전해졌다. 세계적 대유행의 조짐이 보이자 대부분의 사회는 인적 교류를 중단했고, 물적 교류는 지연됐다. ‘어떤’ 인적, 물적, 비물질적 자원 유입에 가졌던 불안은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과 결합했다.

코로나19의 세계화, 그 결과의 지역화

코로나19의 확산은 자유로운 인적 물적 교류를 전제로 한 자본주의 체제를 강타했다. 그러나 그 충격은 모두에게 골고루 같은 방식으로 가해지지 않았다. 불안정한 노동조건에 처한 노동자가 가장 먼저, 가장 강한 충격을 경험했다. 그들이 흡수한 충격 덕분에 세계화한 자본주의는 정상에 가깝게 작동하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가 가져올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코로나19에 대응하지 않는 지역도 있다. 바로 2월 28일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후 5개월도 되지 않아 누적 확진자 33만 명, 사망자 3만8천 명(7월 18일 기준)을 기록하고 있는 멕시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멕시코의 마킬라도라 산업(외국의 원자재·중간재를 수입해 조립·제조 후 재수출하는 업종)은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965년 멕시코 정부가 고용촉진을 위해 마킬라도라 산업촉진정책에 대한 법령을 발표한 이후, 이 산업은 인적 물적 자원의 자유로운 교류를 전제로 지난 50년간 발전해왔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면서부터는 더욱 급격히 성장했다.

마킬라도라 산업은 대부분 미국과 접경지대인 멕시코 북부 국경도시들에 분포한다. 미국 자본으로 설립된 제조업체들은 미국으로부터 원재료를 수입하고,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으로 이를 조립 및 가공해 완제품을 생산한다. 의류, 전기전자, 자동차, 의료 부문의 완제품은 원재료의 공급국인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된다. 이러한 산업 모델은 멕시코의 고용시장과 미국의 소비시장 상당 부분을 지탱한다. 멕시코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4월 마킬라도라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270만 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시골 출신의 교육수준이 낮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들이다. 국경지대, 노동집약적 제조업, 여성화된 노동, 수출품이라는 마킬라도라 산업의 특징은 코로나19의 확산 속에서 가장 첨예한 지점이 됐다.

마킬라도라 산업과 코로나19

지난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했을 때만 해도 멕시코에서 공식 확진자 수는 폭발적이지 않았다. 미국 확진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3월 21일 미국과의 국경 통행을 제한했고, 3월 24일 총 3단계 가운데 2단계 방역 체제로 들어간 후 확진자가 천 명을 웃돌자 3월 30일 대통령령으로 긴급방역 법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4월 30일까지 사회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활동을 제외한 모든 활동이 중지됐다. 이렇게 중지된 활동에는 기업의 생산 활동 즉, 노동자들의 집단적 근로 행위도 포함됐다.

법령에 따라 마킬라도라 기업체들도 생산라인을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방역조치를 따른 기업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국경도시 후아레스시에서만 160개의 대규모 마킬라도라 제조업체가 3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4월 중순까지 30개 업체가 공장을 계속 가동하고 있었다.① 또 다른 대표적인 국경도시 티후아나가 위치한 바하칼리포르니아주에서는 전체 마킬라도라 기업 가운데 절반 넘는 곳이 방역지침을 위반하고 대규모 생산 라인을 가동했다. 국경지대에서 대규모 조립 가공 라인을 운영하는 기업들뿐 아니라,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멕시코 곳곳에 자리 잡은 영세 마킬라도라 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 마킬라도라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출처: GULDHAMMER]

결국 4월 14일 티후아나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42세 노동자가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했다. 그는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고, 회사에 그 사실을 알렸지만 회사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일한 공장은 의료품 생산이나 필수적인 공공부문 활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생산라인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라인은 바이러스를 실어 날랐고, 기어코 죽음을 생산했다. 그로부터 열흘 후인 4월 24일 티후아나에서는 60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전 세계 경제를 주춤거리게 만들었지만, 일부 마킬라도라 기업들에는 오히려 호기로 작용했다. 마킬라도라 기업들이 저임금 노동력으로 생산하고, 무관세 혜택으로 수출하는 상품들은 글로벌 기업의 상표를 달고 멕시코 대도시와 미국의 주요 소비재로 공급된다. 이러한 메커니즘 안에서 일부 의류업 마킬라도라 기업들은 마스크 생산업체로 변신했고, 미국의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함께 늘어난 의료품 공급을 늘렸다. 4월 멕시코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던 시점에는, 매일 수십만 명의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이 생산라인에 열 지어 앉아 장시간 노동을 계속했다. 멕시코 정부는 이를 관리 감독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수요 안정을 위해 마킬라도라 기업의 생산라인 중단을 바라지 않는 미국 정부의 압력에 따라 5월 초부터 마킬라도라 공장의 업무를 재개하는 데 합의해주었다.

마킬라도라 노동자의 파업

정부와 기업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4월 17일 후아레스시의 6개 마킬라도라 기업 노동자들이 공장 폐쇄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그들은 마스크와 장갑 같은 개인위생 물품을 지급하지도,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휴식을 보장하지도 않는 회사를 규탄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물류업체 Syncreon에서 2명의 사망자와 6명의 확진자가 나왔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에 대해 경영진은 침묵했다.

4월 이후 멕시코에서 확진자 수와 지역 확산이 급증하면서,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의 파업도 여러 지역으로 확산했다. 마킬라도라 기업들은 방역지침을 준수하지 않고 공장을 가동하며 코로나19 확산을 방치했다.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기업이 방역지침에 따라 공장을 폐쇄하고 임금을 삭감하거나 지급하지 않아 노동자의 생존권이 위협받기도 했다.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가 대다수인 마킬라도라 산업에서 임금 삭감과 무임금은 생계유지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은 점차 임금 삭감 없는 공장 폐쇄와 코로나19 확산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부당 해고 중단을 요구했다. 또한 근무 시 회사가 적절한 방역 조치를 취하고, 확진될 경우 수당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멕시코 여성들이 정부에 코로나 보호 조치를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출처: GULDHAMMER]

이러한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의 투쟁은 코로나19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가장 취약한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지속적으로 사내 노조를 강화하는 정책을 취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노조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편에 서기보다 사측의 이해를 대변하거나 친정부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몰고 온 예측 불가능한 변화 속에서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전 세계적 경제위기의 첫 번째 희생자가 자신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개별 사업장의 호황이 자신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것이 희생이 아닌 마땅한 권리 요구의 근거가 돼야 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지금 멕시코를 휩싸고 있는 코로나19의 확산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계속되는 세계화, 계속되는 코로나19의 확산

멕시코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이 뚜렷하게 둔화하지 않았음에도 6월 1일부터 뉴노멀로 복귀를 시작했다. 한 달 후인 7월 1일 ‘멕시코, 미국, 캐나다 협정’(멕시코에서는 T-MEC, 미국에서는 USMCA, 캐나다에서는 CUSMA 약자를 사용한다)이 발효됐다. 앞으로 16년간 효력을 발휘하게 될 새로운 버전의 자유무역협정은 노동시장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시급 16달러 이상을 받는 노동자들이 조립을 해야 관세가 면제된다는 조항이 덧붙여졌다. 필수사항은 아니지만 노조 가입도 권고하고 있다. 이 협정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뒤를 이어 국가 간 경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인적, 물적, 비물질적 자원을 통해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또 다른 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는 동시에 세계 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자유로운 이동을 촉진해야 하는 모순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모순이 빚어내는 비합리, 불의, 두려움, 불안과 직면하고 있다. 바로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의 투쟁이 직면한 현실이다.

<각주>
① https://www.elcomercio.com/actualidad/maquiladorasinvernaderos-coronavirus-mexico-covid19.html
  • 문경락

    이러한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의 투쟁은 코로나19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가장 취약한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지속적으로 사내 노조를 강화하는 정책을 취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노조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편에 서기보다 사측의 이해를 대변하거나 친정부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몰고 온 예측 불가능한 변화 속에서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전 세계적 경제위기의 첫 번째 희생자가 자신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개별 사업장의 호황이 자신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것이 희생이 아닌 마땅한 권리 요구의 근거가 돼야 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지금 멕시코를 휩싸고 있는 코로나19의 확산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