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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폭발 참사, 혁명 뒤에도 계속된 부패의 결과

다시 고조된 사회 불안…“빵 없는 평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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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사람이 된다는 것은 비극의 삶을 견디는 것을 말한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레바논 출신 안토운 이싸(Antoun Issa) 씨가 <가디언>에 5일(현지 시각) 폭발 참사로 미어지는 심정을 전했다. 그는 이번 폭발 참사는 레바논 사람들을 괴롭혀온 수많은 비극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과연 레바논의 고통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1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1860년대 내전일까? 15만 명의 레바논인을 죽였고 그 중 많은 이들을 여전히 발견되지 않은 집단 무덤에 누어있게 한 1975-1990년의 내전일까?”라고 물었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4일 질산암모늄 보관 창고가 폭발해 135여 명이 목숨을 잃고 50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 전체 600만 인구 중 30만 명이 이재민이 됐다. 다시 끔찍한 재난 사고를 당한 레바논을 많은 이들이 가슴을 조이며 지켜보고 있다. 지난 가을 대중 시위로 정부를 쓰러트린 레바논 사람들. 그러나 이 폭발은 혁명 후에도 바꾸지 못한 사회 여건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과연 이들은 어디쯤 있었던 것일까?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참사 현장 [출처: DemocracyNow!]

독일 언론 <타즈>에 5일 기고한 베이루트에 체류 중인 율리아 노이만(Julia Neumann)의 설명을 보면 그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레바논에선 물가가 급등하고, 통화 가치는 하락했으며,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한다. 새 정부는 개혁의 희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실제 많은 이들은 이번 참사가 혁명 후에도 해결되지 못한 적폐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레바논 기자 라미 크와리도 <데모크라시 나우>에서 5일 “수년 간 계속된 무능함과 부패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노이만에 따르면, 현재 레바논은 근대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파산한 것과 다름 없는 국가 재정과 코로나19는 레바논 화폐 가치를 8개월 만에 80% 이상 떨어트렸다. 인터넷과 전기가 끊어지기 일쑤고 수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15만 요식업 노동자 중 25,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육고기업종의 60% 이상도 최근 몇 주 동안 문을 닫았다. 고기를 살 여유가 있는 사람이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레바논 상점의 진열대에는 오래 전부터 가격표가 없다. 사람들은 먼저 가격을 묻는다. 식품이나 우유, 의약품 등 모든 물품의 가격이 매일 상승하기 때문이다. 육류 1kg은 42,000원, 우유 1팩은 4,200원 씩 매주 치솟고 있다.”

레바논에선 지난 가을 수십만 명이 부패와 빈곤을 참다못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내각 사퇴와 독립적인 과도정부, 그리고 선거를 요구했다. 분노는 거대했으나 항의는 평화롭게 이어졌다. 청년과 노인, 가난한 사람과 소수의 중산층이 종교나 정치적 차이를 넘어 함께 어깨를 걸었다. 무슬림 순니파와 시아파, 기독교 등 여러 종교가 함께 정부의 사퇴를 요구했다. 각 지역이 18개 종교 공동체 중 하나로 이뤄진 나라에서 이 모습은 매우 흔치 않은 일이었다.

결국 지난해 10월 29일 사드 하리리 총리가 사퇴를 선언했고, 올 1월 새로운 정부가 형성됐다. 그러나 반란이 지나갔음에도 수백만이 여전히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체제는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간 기득권층과 외국자본의 수탈에 국가도 거덜 난 상태였다.

레바논에선 1990년 군벌이 위로부터의 평화를 선언하며 전쟁을 종식했다. 이후 그들은 평화를 위해서라며 전쟁범죄를 단죄하지 않았다. 대신 신자유주의를 택했다. 이 과정에서 신흥재벌이 성장했으며, 정치와 끈끈하게 엮였다. 그들은 에너지와 통신, 상수도 등 공공부문을 서로 나누었다. 각 교파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부나 지지자들을 위해 국가기구와 재정, 자원을 이용했다. 그러면서 수십억 달러 이상이 그들의 손에 흘러갔다. 반면 도서관이나 대중교통 등 공공기관은 드물다. 나라는 완전히 사유화됐고,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가 이를 진두지휘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분쟁은 줄어들었으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이 찾아왔다. 현재 레바논의 현실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16년 세계불평등랩(World Inequality Lab)에 따르면, 상위 1%가 레바논 총수입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하위 50%는 10%를 쥘 뿐이다. 중산층의 지갑도 얇아졌다. 공공 부채는 국내총생산의 약 170%에 이른다.

혁명 후 레바논인들은 변화를 원했다. 그러나 그 대신 전 교육부장관 하산 디애브가 새 정부를 이끌었다. 그리곤 경제위기가 시작하자 새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9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공공부문 축소와 민영화 등 외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사회 불안은 다시 고조되고 있다. 특히 순니파 청년들은 시아파 헤즈볼라와 긴밀한 현 정부에 불만이 많다. 어떤 이들은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러나 레바논 정치학자 치나 엘-헬로우(Zina El-Helou)는 “이것은 우리가 지난 시기 겪었던 긴 내전과 충돌의 결과”라며 “현재의 경제 및 재정 상황 또한 사회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안은 논리적인 수순이다. 빵 없이는 평화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문경락

    결국 지난해 10월 29일 사드 하리리 총리가 사퇴를 선언했고, 올 1월 새로운 정부가 형성됐다. 그러나 반란이 지나갔음에도 수백만이 여전히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체제는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간 기득권층과 외국자본의 수탈에 국가도 거덜 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