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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일용직 국민연금 직장가입이 2년 유예된 이유

[1단 기사로 본 세상] 늘 아랫목부터 챙기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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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아래 두 기사는 내용이 같다. 두 기사 모두 핵심은 ‘건설일용직이라도 한 달에 8일 이상만 일하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직장가입자로 가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취업과 실업을 반복해본 나는 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잘 안다. 지난 4월까지 정규직 직장인이었던 나는 건강보험료를 월 18만 원쯤 냈다. 그 중 9만 원은 회사가 부담했으니, 내가 부담한 건강보험료는 나머지 9만 원에 불과했다. 건보공단은 4월말 내가 퇴직하자마자 곧바로 친절하게 우편물을 보내왔다. 그러고선 귀하는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했으니, 지역가입자로 전환해 돈을 내라고 했다. 실업자인 나는 소득은 한 푼도 없지만 차도 있고 집도 있다는 이유로 5월부터 건강보험료를 혼자 22만 원씩 부담해야 했다.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월 22만 원은 엄청난 압박이었다.

여기에 국민연금도 지역가입자가 돼 따로 내야 하는데 구직활동 중에는 1만 7천 원 정도의 적은 돈만 내면 된다고 알려줬다.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만 65살 이후에 받을 국민연금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 현장, 저 현장을 떠도는 건설일용 노동자들은 운에 따라 일거리가 몰릴 땐 죽도록 일하지만 하나의 공사가 끝나면 또 기약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그동안 건설일용직 노동자가 4대 보험 직장가입자가 되려면 한 달에 최소 20일을 일해야 했다. 현장 사정에 따라, 혹은 하도급 받은 사장의 사정에 따라 한 달에 꾸준히 20일을 채우기란 만만찮다. 일이 몰릴 땐 한 달에 35대가리도 하지만 일이 없을 땐 10대가리도 하기 어려운 게 건설현장 일용직 처지다. 대가리는 일당 얼마로 구두 계약한 건설일용직들이 한 달에 몇 개의 일당을 받을지 계산하는 단위를 뜻하는 비속어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건설일용직은 늘 4대보험에 가입하려면 지역가입자로 해야 했다. 그만큼 부담이 컸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부당함을 해결하고자 건설일용직에게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자격을 대폭 완화해 한 달에 8일만 일하면 직장가입 자격을 얻도록 국민연금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좋은 일이다. 가난한 서민을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개정된 시행령은 2년 전인 2018년 8월 1일부터 시행됐는데 여전히 건설일용직들은 한 달에 20일 이상 일해야 직장가입자 자격을 얻었다.

아래 두 기사는 거의 같은 내용인데 보도된 시점은 만 2년의 시간차가 난다.

  매일경제 2020년 7월 31일 17면(왼쪽)과 세계일보 2018년 7월 25일 12면

  경향신문 2018년 7월 24일 온라인 기사

왼쪽 기사는 매일경제 2020년 7월 31일 17면 기사다. 오른쪽 기사는 세계일보 2018년 7월 25일 12면에 실린 기사다. 경향신문도 2018년 7월 24일 온라인 기사로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거의 같은 내용의 1단 기사가 2년의 세월을 건너 지면에 실렸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오른쪽 세계일보 기사처럼 애초 건설일용직은 2018년 8월 1일부터 한 달에 8일 이상만 일하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직장가입자 자격을 얻어야 했다. 그런데 왼쪽 기사처럼 건설일용직은 2년 뒤인 2020년 8월 1일에서야 그런 자격을 얻었다.

건설업계의 시행령 개정 반발 때문이었다. 전문건설업계는 2018년 시행령이 입법예고 되자 기존 공사에 추가로 공사비를 증액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건설일용직을 아예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용부담을 우려한 반발이었다. 복지부는 건설업계의 민원을 받아들여 기존 건설현장은 적용을 2년간 유예했다. 덕분에 서민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선한 정책은 2년이 지난 2020년 8월 1일에야 시행됐다.

경제신문들을 보면 건설업계는 최근 20년간 늘 불황의 연속이다. 덕분에 건설업계의 볼멘소리는 위력을 발휘해 가장 험한 일을 하는 일용직 건설노동자의 건강과 노후 소득보장은 2년간 유예됐다.

정부 관료는 건설일용직과 건설업계 중 누가 더 어려운지 가늠할 때 건설업계 손을 들어줬다. 권력을 더불어민주당이 잡든, 미래통합당이 잡든 늘 이런 식이다. 늘 아랫목부터 데우는 정책으론 윗목에 놓인 서민의 삶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실현할 수 없다. 대통령과 민주당 국회의원, 그 주변에 얼쩡거리는 정치꾼들만 이렇게 단순한 진실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