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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벼랑 끝 홈리스…“적정 주거가 답”

[이슈2]“홈리스 공영급식 확대, 의료급여 체계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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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코로나19, 홈리스가 의지한 모든 것이 사라지다
②코로나 벼랑 끝 홈리스…“적정 주거가 답”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때도 다르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급식소 폐쇄’, ‘의료 공백’, ‘복지시설 강제 퇴거’ 같은 홈리스의 인권 문제가 터져 나왔다. 늘 비슷한 문제가 반복됐지만 반짝 뉴스거리로 떠올랐다 사라질 뿐이었다. 《워커스》가 전염병이 퍼질 때마다 홈리스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현재의 복지체계를 살펴봤다.

통제되지 않는 민간 급식소
“권역별 공영급식소 확충해야”


취약계층에게 복지서비스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따라서 전염병이 돌아도 방역에 힘쓰며 복지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는 게 정부의 책임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2월 16일 “독거노인, 쪽방촌 거주자 등에 대한 무료급식, 진료 봉사 등이 축소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도록 복지 전달 체계를 점검하라”는 지시사항을 내렸다. 하지만 홈리스 현장의 복지체계는 이번에도 무너지고 말았다. 많은 무료급식소가 폐쇄되며, 홈리스들을 일상적인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었다.

홈리스행동은 3월 서울 지역 무료급식소 33곳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이들 중 25곳은 교회, 비영리단체 등이 운영하는 민간 지원 급식소이고, 8곳은 공적 지원 급식소다. 조사 시점인 3월 7일 기준, 민간 지원 급식소의 절반가량인 13곳이 코로나19를 이유로 급식을 중단했거나 중단한 적이 있다. 반면 공적 지원 급식소는 100% 운영을 계속했다. 문을 연 곳이 공적 지원 급식소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홈리스들이 이곳으로 몰렸다. 공적 지원 급식소 ‘소중한사람들’은 방문자 수가 과거 200~250명에서 최근 400명까지 늘었고, ‘참좋은친구들’ 역시 200명 수준에서 350명까지 증가했다. 그야말로 ‘급식 경쟁’이 벌어졌고, 식사를 해결하지 못하는 홈리스도 늘어났다.

운영을 유지하고 있는 공적 지원 급식소들도 모두 ‘완전 공영’ 형태는 아니다. 공적 지원 급식소 역시 모두 민간 위탁돼 운영된다. 서울시는 2010년 ‘따스한채움터’를 개소하며 ‘민관협력’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용자의 자존심과 위생, 거리 미관을 해결한다는 이유에서다. 수원시 역시 2014년 민관 협동으로 무료급식소를 개소했다. 이 같은 ‘민관협력’은 시가 급식 장소를 제공하고, 그곳에 종교·민간단체가 들어와 급식을 위탁 운영하는 방식이다.

지방정부가 급식소 운영을 민간에 맡기니 관련 법령도 지키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노숙인 복지법에 따르면 노숙인 급식시설은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 따라 신고하게 돼있다. 하지만 공적 지원 급식소 57.1%는 집단급식소 신고를 하지 않았다. 민간 지원 급식소의 경우 무려 87.5%가 집단급식소 신고를 하지 않았다. 식품위생법상 집단급식소는 영양사 고용 여부, 식자재 점검 절차, 시설 위생 상태 등의 조건을 갖추도록 한다. 현재 신고 되지 않은 공적 지원 급식소 절반이 질 좋은 식품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급식시설 미신고를 방치할 경우 장기적으로 급식 위생 등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코로나19로 인한 ‘급식 대란’을 계기로 권역별 공영급식소가 시급히 만들어져야 한다. 합법적으로 설치된 권역별 공영급식소는 홈리스에게 하루 세끼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동안 서울시는 급식소를 만들며 ‘아름다운 민관협력’으로 포장했는데, 이런 급식소들은 법적으로 신고되지 않은 곳이 많다. 공공이 거리 홈리스 민원을 해결하려는 목적에서 ‘전시 행정’을 한 측면이 크다. 또 민간 위탁 형태로는 공공이 통제할 수도 없다. 지금처럼 무료급식을 공공이 책임지지 않으면, 신종 감염병이 나타날 때마다 ‘급식소 폐쇄’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공병원의 ‘코로나 전담병원’ 지정,
홈리스가 갈 병원은 없다


서울시는 2월 25일 “6개 시립병원(어린이병원, 은평병원, 서북병원, 보라매병원, 동부병원, 북부병원)은 일반 진료를 축소하고 ‘코로나19 비상진료체계’를 마련한다”며 “공공의료 기능은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치료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만성질환 관리와 일반진료가 필요한 시민은 일반 병·의원을 찾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보건복지부는 서울 59곳의 ‘국민안심병원’ 목록을 발표하며 국민 의료 서비스를 유지토록 했다.

하지만 이는 홈리스가 아닌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였다. 2018년 기준 전국의 노숙인 진료기관은 267개소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중 211개소는 보건소 혹은 더 작은 규모의 보건지소다. 병원급 이상 공공의료기관은 39개에 불과하다. 2018년 한국의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5.8%(OECD 평균은 51.8%). 가뜩이나 적은 한국의 공공병원 다수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탓에 홈리스가 갈 수 있는 병원은 더 적어졌다. 서울만 하더라도 병원급 이상 노숙인 진료시설 9곳 중 5곳이 코로나19로 초진환자의 진료, 입원을 제한했다.

곧바로 홈리스들은 ‘의료 공백’ 위기에 내몰렸다. 노숙인 진료 건수는 현저히 감소했다. 서울시립 은평병원의 ‘노숙인 진료비 청구 및 지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2월 노숙인 진료 실적은 60건에서, 2020년 1월에 71건, 2020년 2월에 44건으로 대폭 줄었다. 마찬가지로 시립병원인 보라매병원의 노숙인 진료실적도 2019년 12월 262건, 2020년 1월 251건, 2020년 2월 211건으로 감소했다. 수원의 경우 병원급 이상 노숙인 진료시설이 단 한 곳인데, 코로나19 전담병원 지정으로 초진과 외래 진료의 길이 아예 막힌 상태다.

물론 지자체로부터 ‘노숙인 의료급여’ 지원을 받는 일부 홈리스는 노숙인 진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급여 지원을 받지 못하는 홈리스는 사실상 방치 상태다. 의료급여 수급자가 아닌 홈리스는 노숙인 진료시설을 이용할 수도 없고, 경제적 여건으로 일반 병·의원을 방문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의료급여지원 체계가 있는 지자체는 6곳에 불과하다. 또 전국의 의료급여자 중 97%가 서울에 몰려 있어, 지방 홈리스들은 의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서울은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제도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수급 조건이 까다롭다.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노숙인 자활시설 입소자 중 노숙인 해당 기간이 3개월 이상 유지된 것으로 확인된 사람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거나 6개월 이상 체납된 사람이라는 중복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이 기준을 통과하더라도 정부가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한 의료기관을 이용할 경우에만 의료급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노숙인 의료급여제도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단 노숙인 당사자들이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의료급여제도 안으로 진입하기 어렵다. 특히 신규 홈리스가 그렇다. 또 의료급여를 받아도 노숙인 지정 진료시설이 대부분 보건소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은 일반 의료급여(국민건강보험)로 가까운 병원을 쉽게 드나든다. 홈리스도 손쉽게 일반 병원에 다닐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린 한 명 걸리면 다 죽어…”
정부가 방기한 ‘적정 주거’의 보장


문제는 적정 주거다. 적정 주거가 부재하면 개인위생을 챙기지 못하고,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나 질병에 취약해진다. 서울시 2018년 노숙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노숙인 중 54.3%가 신체 질병을 앓고 있다. 최근 1년 동안 병원에 입원한 홈리스는 29.3%에 달한다. 때문에 인권 단체들은 당사자들이 ‘홈리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가 ‘적정 주거’를 보장하는 것이 홈리스를 위한 최선의 정책이라고 말한다.

적정 주거를 누리지 못하는 한국의 홈리스는 얼마나 될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한국 홈리스는 1만801명에 달한다. 거리 홈리스는 895명, 자활시설 홈리스는 1684명, 일시보호시설 홈리스는 1047명, 재활요양시설 홈리스는 7175명이다. 홈리스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주거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쪽방 주민도 5664명에 달한다. 지역 분포로는 서울 홈리스가 3628명(33.58%)으로 가장 많다. 다음은 대구 1014명, 경기 947명, 부산 784명 순이다.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의 약 91%가 시설 홈리스다. 2008년 이후 홈리스 전체 규모는 줄었지만, 2018년 자활시설 홈리스는 전년 대비 101명, 일시보호시설 홈리스는 53명 늘었다. 정부가 시설을 중심으로 행정을 펼치고 있는 탓이다. 2019년 보건복지부 ‘노숙인 등의 복지사업 안내’만 봐도 별지를 제외한 전체 분량 210쪽 중 132쪽이 시설과 관련된 내용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이 시설들을 온전히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서울의 노숙인 재활시설 8곳 중 한 곳만이 시립이다. 요양시설은 6곳 중 3곳이, 자활시설은 23곳 중 3곳만이 시립이었다. 나머지는 민간에서 운영하거나, 정부가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적정 주거’를 보장받지 못하는 쪽방 주민도 코로나19에 무방비다. 쪽방 주민들은 “우리는 한 명 걸리면 다 죽는다”고 말한다.¹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화장실도 공용이다보니 이들이 느끼는 전염병의 공포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최근 용산구 동자동과 중구 남대문5가동 쪽방 주민들은 개발로 인해 ‘비적정 주거’마저 유지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형진 활동가는 “적정 주거가 답이다. 사실 ‘집 같지 않은 집’에 사는 홈리스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시설 서비스가 필요할 수 있겠으나 다른 옵션이 없는 게 문제다. 쪽방과 고시원의 경우 건물 안전, 창문 여부 등 최소한의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사실상 빈곤층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임시 거처에 대한 별도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또 시설보다는 독립주거를 보장하면서 홈리스들이 복지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 쪽방신문 2호, 2020.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