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툭 까놓고 얘기합시다, 문제는 자본주의입니다

[기고]4월 10일, 청년 발언대회를 개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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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총선이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어김없이 ‘청년문제’라는 말이 여러 정치세력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무대에서 청년들은 언제나 들러리일 뿐이었습니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절박한 삶의 문제들은 총선이라는 잔치가 끝나면 버려지는 땔감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청년들은 불안과 좌절의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결국 청년들은 “이번 생은 망했다”는 대사만 읊조리고 있습니다. 절망의 연출자는 자본주의였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하루아침에 나약하게 태어난 것도, 꿈 없이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죽어라 일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들이붓는 것 같은 생활 앞에서, 쌔빠지게 노력해도 열리지 않는 ‘기회의 문’ 앞에서 청년들은 좌절해야 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인구의 절반을 청년들이 채워갈 동안, 부자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졌습니다. 가진 자들의 이윤을 눈덩이처럼 굴리기 위한 촌극에 청년들은 갉아 먹혔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청년들의 삶은 시들어갔습니다.

지긋지긋한 ‘차악론’에 청년들은 지쳤습니다

문제의 근원이 자본주의라는 것을 청년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좁아터진 취업문에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청년들은 무한경쟁의 살얼음판으로 내몰려야 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방값 때문에 청년들은 방음도 환기도 되지 않는 방에 허리를 접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갚을 길 없이 쌓여만 가는 빚 때문에 청년들은 막막함의 이자만 차곡차곡 쌓아가야 했습니다. 하루 쯤, 아무런 걱정 없이 쉬고 싶어도 돈,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어도 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영화관과 극장을 찾아도 돈, 일상에 필요한 모든 것들에는 영수증이 붙어있었습니다. 통장 잔고만큼 행복할 수 있고, 지갑 두께만큼 꿈꿀 수 있는 것이 청년들의 삶이었습니다.

적은 인원을 장시간 노동에 내몰다 언제든 버리는 것이 ‘가성비 좋다’는 자본주의 체제, 집에서라도 쾌적하게 지내고 싶거든 돈을 내라는 자본주의 체제, ‘빚도 공부다’라며 사회에 나선 청년들 대다수를 빚쟁이로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 그 속에서 청년들이 겪는 고통은 구체적인 것이었지만, 역대 정권과 정치인들이 내놓는 해결책은 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자본주의 때문이다”라는 근본적 문제의식은 저들의 밥그릇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헬조선’의 불은 더욱 거세졌고, 청년들의 조난신호는 잿더미 속에 묻혀가고 있습니다.

‘노오력하라’는 말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 청년들은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더 최선을 다해 ‘노오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과 ‘정의’였습니다. 자본주의는 문제가 없다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책들에 청년들은 지쳐버렸습니다. ‘네 맘 다 안다’던 그 많은 정치인들은 모두 “최악보다는 차악이 낫다.”는 하나마나 한 소리만 보탤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청년들이 얄팍한 주머니에서 꺼낼 수 있는 삶의 선택지는 최악 아닌 차악을 고르는 것뿐입니다. “고시원보다는 옥탑방이 낫지.”, “일 없이 집에 붙어있는 것보다는 이력서 한 줄이라도 보태는 게 낫지.”, “쫄쫄 굶는 것보다는 컵라면이라도 먹는 게 낫지.” 그렇게 청년들은 위안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청년들의 삶에 역대 정권과 정치세력들은 어떤 전망도 주지 못했습니다. ‘최악 혹은 차악.’ 자본주의가 허락하는 상상력의 좁은 테두리 속에서 청년들의 삶도 함께 쪼그라들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순 때문에 낭떠러지로 밀린 청년들

2016년,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 속에 청년들은 있었습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외쳤던 청년들의 절절한 목소리 속에는 꿈도, 희망도 죄다 저당 잡혀 빈털터리가 된 청년들의 삶이 있었습니다. 박근혜가 끌어내려지고, 모두가 희망을 이야기했으나 청년들은 또다시 저들의 정치놀음에 버려졌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어느새 자본가들의 민원 해결사로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비정규직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실업문제는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은 거대 양당의 야합 속에 누더기가 됐습니다. 수구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이라는 낡은 이정표 사이에서 청년들은 또 다시 길을 잃었습니다. 간혹, “세상을 바꾸자”는 말을 하는 청년들에게는 ‘불만만 많다’는 핀잔이나 ‘조금만 기다리면 다 해결될 것이다’라는 하나마나 한 말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016년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에 느꼈던 분노를 청년들은 2019년 ‘조국 사태’를 보며 다시 느껴야 했습니다. 계급의 문제로 청년들은 서서히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습 자본주의’, ‘갑질’이라는 이름의 진단명은 고통의 근원을 오롯이 설명하지 못합니다. 주택과 토지를 독점하는 ‘부동산 재벌’들이 있기 때문에 청년들은 지하방으로, 고시원으로 몸을 구겨 넣고 있습니다. 싼값에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자본가들 때문에 청년들은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을 단념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상품으로 팔아먹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청년들은 비싼 등록금에 치이고, 벅찬 부채에 시달리며 등골이 휘고 있습니다. 오늘의 고통과 시련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언젠가는 개천에서 비상하는 용의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본주의의 신화를 믿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은 자본주의의 호시절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태어나자마자 IMF를 겪었고, 2008년 미국 발 경제위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고용불안’, ‘양극화'라는 말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집이 없어 찜질방을 전전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밥값이 없어 굶거나 라면을 훔쳐야 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쌓여가는 부채에 질식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무참하게 죽어나가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것처럼 청년들은 이 모든 문제의 주범을 자본주의라고 쉽사리 부를 수 없었습니다. 케케묵은 반공 이데올로기는 청년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습니다. ‘힐링’과 ‘소확행’으로 누더기가 된 삶이 수선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존버’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본주의가 떠미는 절벽 끝으로 청년들은 한 발 한 발 밀려나고 있습니다.

고장 난 자본주의에 미래는 없습니다.
4월 10일, 청년 발언대회로 모여 주십시오.


그러나 상황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 발 대공황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금단의 장막에 가려져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 또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고장 난 자본주의에 더는 미래가 없다는 외침은 이제 공공연해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더 이상 자본주의의 그림자 속에서 말라죽어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가진 자들의 주판놀음에 튕겨 나갈 수 없습니다. “배부른 줄 알라”는 말, “노력하라”는 말 더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 지배자들의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경주마가 될 기회’가 아닌 평등을 청년들은 원합니다. 오늘을 갈아 넣으며 막연한 내일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기를 청년들은 원합니다.

일자리가 없는 것도, 비싼 방세에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를 전전하는 것도, 부채에 허덕이는 것도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외쳐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우리 삶의 운전대를 낡은 정치세력과 자본가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자본주의라는 고장 난 버스에 우리 몸을 실을 수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문제는 자본주의라고 툭 까놓고 얘기해야합니다.

이제 청년들이 거리로 나와 자본주의에 책임을 물어야 할 때입니다. 자기 삶에서 맞닥뜨리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고발하고, 자본주의 너머를 모색하고 요구해야 할 때입니다. 4월 10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청년 발언대회 “청년이 말한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사회주의가 답이다”가 열립니다. 청년 발언대회는 자유발언대 형식으로 진행되며, 청년이라면 누구든 당일에 현장에서 손을 들어 발언을 신청하여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습니다. 발언 주제도 청년 발언대회의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때문에 내 삶이 얼마나 힘든지, 청년 문제를 십 수 년째 해결 못하는 자유주의세력과 수구세력 모두 얼마나 한심한지, 지금 나에게 무상교육, 청년부채 탕감, 다주택자 주택 몰수, 실업문제 해결이 얼마나 절실한지, 우리가 왜 지금 사회주의를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진솔한 발언을 기대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아저씨

    공장 들어가라고 권하고 싶네요. 청년들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붕" 떠서 세월만 보내기 쉽다고 보입니다. 지금은 정규직이 어려우니까 공장을 옮겨다니며 책을 볼 수 있습니다. 20대라면 사실 공장과 책을 겸하는 것이 더 나은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너무너무 힘들지만. 30대라면 노조 간부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요. 한국의 군소정당 내지는 변혁적 단체나 당들을 볼 때 님들이 마땅한 곳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네요.